# 147
2주년 창립제(3)
나는 멀어져가는 그 푸른색 벤틀리를 쳐다보았다. 미래 뉴스의 기사에 의하면 저 벤틀리는 오현주의 집에 들어가 하루 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애인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남모르게 씨익 웃었다. 그녀 역시 나에게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우스워서.
‘하긴... 생각해보면 오현주 같은 미인이 애인이 없는 게 이상하지. 하여간 요새 도끼병에 걸렸어 도끼병에. 돈 좀 생겼다고 모든 여자가 날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니.’
요새 이 여자, 저 여자 할 것 없이 나한테 달려드는 통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병에 걸려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짓다가, 자연스레 의문이 들었다.
‘그나저나 그럼... 저걸 모는 사람은 대체 누구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문제가 하나 있었다.
‘잠깐... 파파라치를 막았어도, 뉴스는 나왔어. 분명... 오현주네 집에서 하루 있었다고... 그럼 오현주네 집 주차장 근처에 파파라치가 있다는 뜻이잖아.’
파파라치는 본래, 바로 이곳. 호텔 주차장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걸 막은 탓에, 그는 오현주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그런 뉴스가 나온 것이다. 나는 급히 박 비서에게 말했다.
“박 비서 차 타. 그리고, 저 차 좀 쫒아봐.”
내 말에, 박 비서는 민첩하게 차에 타며 내게 물었다.
“저 차요?”
“응 알지? 내 차랑 똑같이 생긴 차. 저 벤틀리.”
“네 알겠습니다.”
박 비서는 빠르게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았다. 하지만 먼저 앞서나간 벤틀리를 따라잡기는 쉽지가 않았다. 막 행사가 끝난 시점이라 호텔 주차장이 혼잡했기 때문이다. 그 벤틀리는 시야에서 사라지려고 했다. 박 비서가 내게 말한다.
“저... 사장님. 저... 놓칠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 말을 하는 동시에, 벤트리는 우리보다 앞서서 호텔 밖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박 비서는 내게 물었다.
“어쩌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저 차의 목적지를 알고 있었다. 지난 기사에서 분명,
‘한상훈 대표의 파란색 벤틀리를 타고 이동하는 오현주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녀를 태운 차는 삼성동에 위치한 오현주의 오피스텔에 도착해서 다음 날 오후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오현주의 집이 삼성동의 오피스텔이라고 했었다. 나는 박 비서에게 말했다.
“...삼성동 쪽으로 몰아 일단.”
“넵”
박 비서의 차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 사이 나는 스마트폰으로 ‘오현주 집’을 검색해보았다. 놀랍게도, 인터넷에서 오현주가 사는 오피스텔 이름이 바로 나왔다.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삼성동 수지리츠빌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을 본 나는
‘하여간 연예인은 할 게 못되는 군.’
그런 생각을 하며 그 곳을 말했다.
“삼성동 수지리츠빌로.”
“네 사장님.”
나는 한 마디를 더 말해놓았다.
“최대한 빨리 몰아.”
“네 사장님.”
아무리 혼잡한 서울 도로도, 롤스로이스가 달리면 대개 길을 비켜주기 마련이다. 괜히 스치기라도 했다가, 5:5라도 나오면 본인 차보다도 더 많은 돈을 물게 될지도 모르니까. 박 비서가 운전하는 롤스로이스는 폭풍같이 도로를 달려 나갔다. 박 비서는 평소에는 법은 완전 준수 하고 도덕도 적당히 준수해가며 안전운전 하던 녀석인데,
‘최대한 빨리 몰아 달라’는 내 주문에 도덕성은 완전히 제로, 법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도로를 달렸다. 이럴 때 보면 평소 억눌려 있던 운동선수 본연의 야수성이 보이는 것 같다. 한참 차를 몰던 그는 나에게 말했다.
“사장님 저기 보입니다. 벤틀리.”
거의 다 따라잡았다. 이내, 박 비서가 모는 롤스로이스는 그 벤틀리를 우측 편을 스쳐 지나갔다. 내 자리에서 오현주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이쪽에는 아예 시선을 돌리지 않고, 운전자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그녀 너머 운전자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그건 여의치 않았다. 박 비서가 속도 조절을 하며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계속 따라 갈까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아니. 우리가 먼저 간다. 먼저 그 오피스텔로 가자.”
“네 사장님.”
박 비서는 내 주문대로 그 벤틀리보다도 더 빨리 오현주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오현주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 운전수에 대해 생각했다.
‘음... 누굴까? 대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오늘 같이 MC를 보던 김준형이다. 오현주 못 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꽃미남 배우. 요새 슬슬 한한령도 풀리는 추세여서 중국을 넘나들며 수백억대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벤틀리 같은 거야 손 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젊고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
‘잠깐만 그렇다면 더블로 문제로군. 우리 회사 남녀 간판 탑스타끼리 연애라.’
물론 요새 누가 누구랑 만난다고 해서 흠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것을 우리 회사에서 관리하고 관리를 하지 못하고는 천지 차이다. 두 사람 다 로맨스 드라마에 워낙 많이 나오는 사람들이라 조금 기사가 나쁘게 나오면, 두 사람에게 판타지를 가지고 있던 열성팬들이 등을 돌릴 수도 있다.
‘근데 그러면... 권오혁 사장이 모르고 있나?’
나는 그런 생각에 휴대폰을 들어서 권오혁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
권오혁 사장은 조금 늦게 전화를 받았다.
“네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뭐라고 첫 마디를 떼야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에게 말했다.
“아... 사장님. 이건 그저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인데 혹시 오현주 씨. 애인이 있습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권 사장은 꽤나 당황한 눈치다.
“네? 그건 왜 물어보시는지?”
나는 방금 전 질문이 조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 아니, 이건 단순히 투자자로서 물어보는 겁니다. 현주 씨가 무슨 스캔들이 날만한 관계가 있나 해서요.”
권 사장은 살짝 말꼬리를 흐리며 말했다.
“글쎄요오... 그런 건 없는 걸로...”
권오혁 사장도 모른다. 그러면 이건 이번에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남의 사랑을 막거나 방해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연예인이란 본래 본인 행동 하나하나에 수백억이 오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권 사장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파파라치에 대한 경계도 될 것 아닌가. 권 사장은 내게 재차 물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 보시는 지?”
나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때, 동시에
“사장님 다 왔습니다.”
박 비서가 내게 말했다. 나는 권 사장에게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통화를 끊었다. 박 비서가 모는 차는 오피스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하니 먼저 차단기가 우리 차를 가로막는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백발의 경비원이 스윽 얼굴을 내민다. 생각지 못한 난관. 나는 몇 가지 대화를 떠올렸다.
‘잠시 여기 주민 보러 왔습니다.’
‘몇 호 보러 오셨지요?’
‘프라이버시 때문에 말하기 조금 그런데.’
그런데, 그 경비원은 건장한 체구에 정장을 입은 박 비서, 그리고 차 앞의 롤스로이스 마크를 보더니 그냥 차단기를 열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인사와 함께. 조금 황당하지만 어쨌든 잘 되었다. 롤스로이스는 미끄러져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 오피스텔은 한강변 바로 옆에 위치한 만큼 꽤나 럭셔리했지만 규모가 조금 작았다. 주차장도 한 눈에 들어올 만한 수준. 박 비서가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나는 손을 모은 채로 잠시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본, 내 차와 똑같이 생긴 푸른색 벤틀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 차는 마침 내 차 바로 앞에 섰다. 나는 누가 거기서 내리나 유심히 지켜보았다. 먼저 내린 것은 오현주다. 그녀는 참석했던 드레스 위에 긴 외투를 걸친 채로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 운전자는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뭐지? 나름 파파라치를 피하는 방법인가?’
주민들 시선 때문에라도 조금 시간차를 둘 것 같긴 하다. 오현주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간 뒤에도, 그 차는 움직이지도 않고, 운전자가 걸어 나오지도 않았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 더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 때, 박 비서가 한마디를 했다.
“사장님.”
“왜?”
“돌아보시지는 마시고, 백미러 보십시오. 저희 뒤에, 카메라 들고 있는 녀석이 있네요.”
나는 그의 말대로 돌아보지는 않고, 백미러를 바라보았다. 지금 보니 대형차와 차 사이에 기다란 대포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 이쪽을 기웃거리고 있다.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가서 저거 뺏어.”
“네 사장님.”
박 비서는 그에게 문을 열고 그에게 다가갔다. 나 역시 살짝 늦게 차에서 내려서 그를 따라갔다. 대포카메라를 든 파파라치는 거한이 그에게 다가가자 다소 놀라 주춤댔다.
“뭐... 뭐야?”
자신의 카메라가 목표란 것을 깨달은 그는 그걸 뒤로 숨기려고 했지만, 박 비서에게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박 비서는 유도세계선수권대회 메달리스트의 손으로 순식간에 그 카메라를 낚아챘다. 그런 다음, 그걸 내게 건넸다. 기자용 카메라라서 구조는 특이하지만, SD카드를 쓰는 건 똑같았다. 나는 거기서 사진이 들어있는 SD카드를 빼냈다. 잡힌 파파라치는 내게 악을 써댔다.
“너... 뭐야 대체? 남의 걸 그렇게 뺏으면 어떻게 해? 그거 비싼 거야 임마!”
나는 SD카드는 주머니에 넣고, 그에게 물었다.
“비싸? 얼마나 하는데?”
“삼... 아니 오천만원!”
오천만원. 그걸 들은 나는 그걸 박 비서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돌려드려.”
그리고 한 마디를 더했다.
“잘게 부셔서.”
두 번째 명령을 들은 박 비서는 그 자리에서 그 카메라를 무릎으로 깨부쉈다. 카메라는 그 자리에서 두동강이 났다. 박 비서는 그 두 조각을 땅에다가 거칠게 던졌다. 카메라는 땅에서 한 번 더 박살이 났다. 그걸 본 파파라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지갑에서 내 명함을 꺼내 그에게 던지며 말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이다. 당신 내 회사에 손해를 입히려고 했어. 카메라 값이 아쉬우면 연락해. 누가 인생 쫑 나는지 보자고.”
파파라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나는 그 녀석을 두고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
“가자.”
“네 사장님.”
나는 다시 우리 차로 돌아 왔다. 일단 이걸로, 스캔들 뉴스는 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궁금증뿐이었다. 아직도 푸른색 벤틀리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걸 보며 생각했다.
‘...궁금하긴 한데... 됐다. 남자친구가 있든 없든... 오현주 씨 사생활인데. 더 캘 수도 없고. 권 사장에게 언질만 해놓자. 오현주 씨가 누구랑 사귀는 것 같다고. 프라이버시 보호에 더 유의해달라고.’
그렇게 결론을 지은 나는 롤스로이스 뒷문을 열며 말했다.
“서 비서. 가자. 그냥.”
“네 사장님.”
나는 뒤 좌석에 다시 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였다. 벤틀리의 왼쪽 문. 그러니까 운전자 석이 스르르 열렸다.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보여준다는데 안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거기서 누가 나오는지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