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45화 (145/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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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년 창립제

    나는 물끄러미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현영제약 +4%’

    현영제약은 오늘도 상승했다. 신약 임상 통과 이후로 색이 파란 날보다 빨간 날이 훨씬 더 많다. 내가 살때만 해도 1조원이던 주가는 현재 2조를 넘어 우상향을 하고 있었다. 주식 게시판에 들어가보면

    ‘미국 FDA에서 인정받기 어려운거 아시죠? 40년 경력 현영제약의 실력입니다.’

    ‘3상 통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죠. 3년만 쥐고 계시면 부자 됩니다.’

    ‘시총 4조까지는 쉽게 갈 듯. 적극 매수 추천’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댓글이 달려져 있었다. 개중에는 내 이야기도 쓰여 있다.

    ‘한상훈은 손에 금이 붙었나. 대는 족족 두 배 세 배 가네.’

    ‘현영제약으로 5천억 넘게 번 것 같던데 진짜 대단하네요.’

    ‘그 사람 진짜 천재임. 카이게임즈도 그랬는데 다른 거 뭐 사나 봐서 또 따라 살 예정.’

    그리고, 그런 이야기도 쓰여 있었다.

    ‘한상훈 따라 살 거면 그냥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를 사면 되는 거 아님?’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상장사 아님. 개인투자자 자금도 안받음’

    ‘그럼 걍 현영제약 사서 한상훈 대표 팔기 전까지 그냥 홀딩하면 되겠네요.’

    ‘그러네요. 그냥 사서 한상훈 대표 팔고 나가기 전까지 같이 있읍시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봐서 조금 있으면 팔 건대...’

    그것은 ‘내년 있을 큰 사건’의 파장을 우려해서였다. 내년에는 종목을 떠나서 주식시장 자체가 좋지 않아질 확률이 높았다. 신약 개발 때문에 한창 버블이 쌓이고 있는 현영제약 역시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회사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급하게 들어온 돈은 나갈 때도 급하게 나가기 마련이니까.

    ‘최대한 고점에서 팔고 나가면 좋겠지만... 시점을 어디로 잡아야할지... 미래뉴스 찾아보며 확실한 타이밍을 찾자. 구매자 선정은 그 다음이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띠리리~’

    전화가 울린다. 나는 그걸 들어 답했다.

    “네”

    “사장님. 장 부사장님입니다.”

    서 비서보다 많이 낮은 박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이제 슬슬 익숙해져가는 참이다.

    “그래 들어오시라 그래.”

    “네 사장님.”

    곧 문이 열리고 장 부사장과, 그의 비서 한 명이 함께 들어온다.

    “사장님. 전에 말씀드렸던 보고서들입니다.”

    장 부사장은 빈손이지만, 그의 비서는 꽤나 무거워 보이는 A4 용지들을 들고 있다. 나는 책상 한 켠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아 거기 내려놓으세요.”

    장 부사장의 비서는 내 책상 끄트머리 쪽에 그걸 내려놓는다.

    ‘쿵’

    하고 살짝 책상이 흔들릴 지경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고했어요. 이건 제가 검토하고, 이른 시간 내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사장님.”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내 방을 나간다. 나는 책상 위의 보고서들을 부채꼴로 펼쳐보았다. 맨 앞장에는 ‘~관한 보고서.’라 이름들이 쓰여 있다. 나는 그걸 눈으로 훑었다.

    ‘코아인프라, 송진양조, 로하게임, 태진가스, 창해식품...’

    대략 열 댓 개의 보고서가 있다. 이들은 경기 방어주 목록이다. 경기 방어주란, 경기가 좋든 나쁘든 꾸준히 일정한 매출을 올리는 주식을 뜻한다. 예를 들면 꼭 사야만 하는 생활필수품, 술, 담배, 식료품 관련주, 역시 생활에 필수적인 전기, 가스 관련주, 돈이 없어도 휴대폰은 써야하니까 통신주. 매출이 급격하게 줄지도 늘어나지도 않는 주식들이다.

    내가 이것들을 고르게 된 것 역시 ‘내년 있을 큰 사건’의 파장을 우려해서다. 혹시나 주식시장이 출렁인다 할지라도 주가가 떨어지지 않을만한 종목. 이것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소유하고 있는 상장사 다섯 개.’마스터 등급 유지를 위해서 사는 것이었다. 현영제약을 팔면 자회사 현영바이오까지 소유권을 잃게 되니까. 조금 다행인 점은 나머지 세 곳.

    ‘OH엔터테인먼트, 지우엔터테인먼트, 블루E&M’

    세 가지 모두, 경기 방어주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엔터 산업은 게임 산업과 비슷하게,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아도 내수가 꾸준히 발생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굳이 팔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시총 2000억 이하여서 조금 떨어진다 한들 딱히 영향을 줄만한 녀석들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나는 여기서 받은 보고서들을 가지고 문서 하나를 만들어두었다. 회사와 CEO가 한 쌍이 되는 문서를

    ‘코아인프라 – 김상관, 송진양조 – 감진성, 로하게임 – 이강현.’

    이런 식으로. 이 분들은 모두 인물검색에 한 번씩 올라갔다 내려올 것이다. 애초에 경기방어주란 딱히 오르고 내리고 할 게 없었으니까. CEO 미래가 어떤지 한번만 들춰 본 다음 괜찮은 녀석들은 모두 제의를 넣을 작정이다.

    ‘그런 다음 가장 괜찮은 조건으로 수락하는 주식을 사는 것으로.’

    만약에 카이게임즈나 현영제약 생각해서 나를 따라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이번에는 낭패를 볼 것이다. 주식이 오를 거라고 생각해서 사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니... 그래도 최소한 경기민감주는 피할 테니... 낭패는 아닌가?’

    어쩌면, 조금 똑똑한 투자자라면 내 반응을 보고

    ‘앞으로 시장이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장 부사장도 내 지시를 듣자마자 그렇게 말했었으니까. 어찌되었든 가지고 있는 주식은 이렇게 처분한다. 최근 뉴스에 올라오기 시작한 퓨쳐싱크도 마찬가지. 본래는 아마존 오퍼를 거절하면서 약을 살살 올리면서 몸값을 불릴 생각이었지만, 그것도 한 두 번만 하고 바로 팔아버릴 것이다. 달러로.

    그리고 그 때, 결전의 순간에 달러나 미국국채, 금, 은과 같이 안전자산을 쥐고 있다면 어쩌면 큰 기회가 올 지도 모른다. 지금 보다 몇 배 부자가 될 만한 큰 기회가. 각종 회사와 CEO 이름을 연결시켜놓은 나는 그것을 저장한 다음 내 휴대폰에 전송시켜두었다. 오늘 밤부터 이 사람들 미래를 들춰볼 것이다.

    ‘좋아 이건 이렇게 하기로 하고.’

    미래 대비와 별개로 계속해서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근 미래, 이제 코 앞. 2주 앞으로 다가선 창립 2주년 행사 말이다. 2주년 행사는 근처 호텔을 하루 빌려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날에는 오현주도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얼마 전, 나는 직접 권오혁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점을 물어보았다.

    ‘권 사장님 이번 행사 때 소속 연예인분들도 오십니까?’

    ‘네 장 부사장님이 그래달라고 요청하셨는걸요. 사회 진행을 저희 회사 탑 배우 두 분. 오현주 씨, 김준형 씨 두 분이 맡아주실 겁니다. 그리고 최근 저희 회사 소속이 된 나인테일 공연도 있을 예정이고요.’

    오현주는 심지어 행사 메인 MC 중 한 명이었다. 내가 해외에 갔을 때 장 부사장이 그렇게 처리를 핸 모양. 이렇게 됐는데 이제 와서 오지 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 날 뵙지요.’

    ‘네 사장님.’

    나는 권오혁 사장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아니 그녀가 오든 안 오든... 내가 그녀와 바람을 핀다... 사실 그게 말이 안 되는데...’

    나는 여전히 아영이가 좋았다. 해외여행 전후해서 아영이와 혹시 크게 싸울 일이 있을지 경계했지만, 그런 일도 없었다. 해외여행에 갔다온 이후로, 아영이는 다시 아나운서 공부를 한다고 자기 모교 도서관을 열심히 다녔고, 나는 나대로 미래 대비를 한다고 바빠서 제대로 얼굴 볼일이 없었으니까. 나는 다른 가능성들을 생각해보았다.

    ‘혹시 아영이가 바람을 피나?’

    내가 변심을 할 수 있다면, 그것 딱 하나 뿐이다. 아무리 내가 그녀를 좋아해도 바람 피우는 여자를 용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영이는 작년, 내가 그녀의 복수를 완성해준 시점에서 나를 애인으로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내 건강 챙기고 내 일정 챙기는 등, 거의 아내 역할을 하려고 했다.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니야 그건 불가능해. 내가 바람을 피웠으면 피울까. 그건 아니야’

    나는 그쪽으로 생각을 넘겨보았다. 혹시나 오현주가 나에게 적극적으로 유혹을 해온다면. 아주 없을 일도 아니다. 최근에 포브스니 뭐니 내 재산이 밝혀진 이후로 그런 일이 자주 있었으니까. MBE 단발여신 신민선 아나운서부터 해서, 이 여자 저 여자 나한테 달려드는 통에, 매번 유혹을 뿌리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오현주는 배우로서 자부심이 강한 스타일이었지만, 어쩌면 그 속에는 상류층 생활에 대한 갈망이 강하게 깃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연예인의 숙명. 그녀는 나를 붙잡아서 화려한 인생을 평생 유지하려고 할 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나도, 나를 믿지 못하겠다.

    ‘오현주가 유혹을 해오면 어쩌지? 창립제가 있는 호텔에서 내게 방 키를 건네면?’

    일단 아영이 생각이 먼저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때 내가 그걸 뿌리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오현주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원초적인 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내 나를 다잡았다.

    ‘아니야 아무리 미녀가 나를 유혹한다고 해도... 그럴 수는 없어. 차라리 아영이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를 만난다면 모를까...’

    아영이에게 상처가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당장은 그렇다.

    *

    창립 행사 1주가 남은 시점. 나는 인물검색 세 슬롯에 인수대상인 CEO들과 함께 간간히 내 이름과 오현주 역시 번갈아가면서 이름을 적어 넣었다. 내 이름은

    ‘한상훈 대표의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해외 주식 팔아치워. 그 의도는?’

    그런 뉴스가 떴는데, 반대로 이번엔 오현주 쪽에서 스캔들 뉴스가 나왔다.

    ‘탑스타 오현주 은밀한 새벽 데이트. 상대방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사장 한상훈?’

    전에 봤던 뉴스와 똑같은 제목의 뉴스다. 나는 이마를 붙잡았다.

    ‘아니 대체 왜 이러지?’

    기사 내용도 똑같다. 오현주가 푸른색 벤틀리에 타는 모습도 그대로 찍혀 있다. 나는 그걸 보다가, 생각했다.

    ‘잠깐만 이 사진이 나왔다는 것은... 호텔 주차장에 파파라치가 왔다는 거잖아?’

    오현주는 인기가 늘어날수록 극성팬들과(개 중에는 극렬스토커도 있었다.)파파라치의 표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회사 창립 2주년 기념제에 MC를 보러 온다는 것이 그들에게 알려져 있을 법도 했다. 나는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박 비서.”

    “네 사장님.”

    “그 1주 뒤에 창립제 있는 호텔 말이야.”

    “네.”

    “거기 파파라치 보안 좀 강화하라고 해. 아예 틀어막는 수준으로. 혹시라도 쥐새끼 하나라도 걸리면. 우리 회사, 그리고 계열사하고는 평생 인연 없을 거라고 확실하게 말해놔.”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후, 한 30분 즈음 지났을 때에. 정정보도가 왔다.

    ‘정정보도 - 탑스타 오현주 은밀한 새벽 데이트. 상대방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사장 한상훈?은 구독자의 개입에 의해서 수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수정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그걸 읽어보았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라고는 사진이 빠지고. 단지 거기에 두 줄의 내용이 더 추가되었던 것뿐이다.

    ‘한상훈 대표의 파란색 벤틀리를 타고 이동하는 오현주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녀를 태운 차는 삼성동에 위치한 오현주의 오피스텔에 도착해서 다음 날 오후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사진보다도 더 자극적인 글씨다.

    ‘아니... 이거 뭐야 대체?’

    이렇게 되다 보니, 내가 그녀와 바람을 피우는 건지 아닌 건지. 더더욱 모르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1주가 더 지나고. 나는 그렇게 ‘모르는 채’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2주년 창립제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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