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43화 (143/198)
  • # 143

    세 가지 뉴스

    “그럼 제가 없는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사장님. 걱정 마십시오.”

    나는 부 사장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네. 뭐 걱정 하시 않습니다. 평소에도 장 부사장님이 잘 해주시는 걸요.”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네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내 뒤에 있는 아영이에게도 인사를 한다.

    “아영 씨도 좋은 시간 보내시길.”

    “네 부사장님.”

    인사를 마친 장 부사장은 다시 엘리베이터에 타고, 버튼을 누른다. 곧 그가 탄 엘리베이터는 위로, 회사가 있는 위층으로 올라간다. 나는 뒤를 돌며 말했다.

    “가자.”

    “응응”

    아영이는 한 손에는 캐리어를 들고 나머지 한 손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한 손은 그녀의 손을 잡고, 나머지 한 손에는 캐리어를 들고 주차장을 걸어갔다. 우리 회사 빌딩, 지하주차장에는 회사 주차장과 별도로 내 개인용 주차장이 따로 구비되어 있다. 내 개인용 주차장에는 모두 여섯 대의 차가 있다.

    포르쉐 파나메라, 벤틀리 벤테이가,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페라리 812슈퍼패스트, 부가티 디보, 롤스로이스 고스트. 본래 차 수집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빅딜이 있을 때마다 하나 둘 포상용으로 사다보니 여섯 대나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와 보니 차 하나하나 마다 뭔가 업적을 기리는, 시간의 이정표가 되어 버렸다.

    포르쉐는 창업 했을 때, 벤틀리는 OH엔터 인수했을 때, 가장 최근 산 롤스로이스는 카이게임즈를 텐센트에 넘기고 산 것이다. 아영이가 내게 묻는다.

    “뭐 타고가?”

    “오늘은... 이거.”

    나는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부가티 디보에 불이 들어온다. 전 세계에 40대 한정된 자동차로, 70억 정도 하는 물건이었다. 제작과 동시에 부가티사의 전 차종인 부가티 시론 오너들에게 완판 되었었지만, 그 중 한 명 미국의 어떤 부자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내게도 기회가 왔다. 나는 아영이와 부가티에 타고, 시동을 켰다. AI가 내게 물어온다.

    ‘한상훈 운전자님 반갑습니다. 목적지를 말씀해주십시오.’

    나는 거기 대답했다.

    “인천국제공항.”

    ‘인천국제 공항 확인되었습니다. 예상 경과 시간은 58분입니다.’

    ‘58분이면 가서 면세점 둘러볼 시간은 충분하겠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부웅~’

    부가티 디보는 소리를 내며 강남대로를 질주해나갔다. 2020년 7월. 텐센트와의 2조원짜리 빅딜을 성사시킨 나는 아영이와 함께, 유럽여행을 떠났다. 예전에 하와이에 놀러갔던 때 이후로 거의 1년만 인 것 같다. 그 사이 내 자산은 몇 조가 불어났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몸이 바빠서 움직이질 못했다. 하지만 요번 7월은 기회가 좋았다.

    먼저 카이게임즈를 매각해서 회사 일거리가 많이 줄었고, 주식 매매에는 알고리즘 매매를 도입한 덕택에 해외에서도 한 두시간만 일하면 똑같이 매매를 할 수 있었으며, 미래뉴스로 스크리닝을 해본 결과 중요한 일이 없었다. 그리고 최근 몇 주간 인물검색에 나 그리고 장 부사장 이름을 넣어 본 결과 딱히 손쓸 만한 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한 달. 유럽여행을 계획했던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스위스, 독일,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까지 도는 한 달 짜리 여행. 작년 여름에 가족들을 보냈던 바로 그 코스다. 그 땐 이러저러한 일 때문에 나는 나가지 못했지만, 일 년 만에 가게 된 것이다. 내 옆자리에 탄 아영이는 꽤나 신이 나 있었다.

    “오빠랑 유럽이라니! 늘 가고 싶었는데 드디어 소원 푸네.”

    그녀는 아나운서 공부를 하다가도, 해외여행 가자는 내 제안을 바로 승낙했다. 설렁설렁 해도 아나운서가 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의 표출인지 아니면 본래 그다지 아나운서가 되려는 마음이 부족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좋았다. 애초에 그녀가 아나운서 되는 것을 그다지 탐탁지 않아 했으니까.

    “그러게. 나도 일만하다가 나가게 돼서 좋다. 가서 네가 가이드 잘 해줘. 통역도 해주고.”

    “응응”

    나는 유럽에 초행이었지만 그녀는 이미 두어 번 갔다 왔다고 했다. 어렸을 적에 한 번. 대학 다닐 때 한번. 부잣집 따님답다. 지금 재산은 나보다 백 분의 일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출국 소속을 받고 조금 이른 시간에 면세점에 도착했다. 아영이는 면세점을 제집처럼 걸어 다녔다. 그녀는 내 팔을 잡고 어디론가로 향하며 말했다.

    “오빠 일단 구찌 매장부터 가자.”

    이 드넓은 면세점 매장을 어떻게 아는 건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쇼핑은 그냥 한국에서 세금 내고 하면 안 되나?’

    하는게 내 생각이지만, 그녀는 면세점 쇼핑을 일종의 게임처럼 즐겼으므로. 나는 거기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물건을 싸게 사면 돈을 버는 맛이 있다나. 나는 재산이 조 단위를 넘긴 이후로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세금이 있든 없든, 뭐든 딱히 가격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면세점을 걷던 중에 아영이가 갑자기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아 저 언니.”

    “응?”

    나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거기에는 오현주의 얼굴이 커다랗게 올라와 있다.

    “그 때 그 연기 잘하는 언니다. 그치? 오빠네 회사 사람이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네.”

    오현주. 옛 이상형. 올해 초까지 드라마, 영화 가리지 않고 폭풍 활동을 했던 그녀는 요새는 작품 활동은 조금 쉬고, CF를 자주 찍었다. 그 중 하나가 이 면세점에 걸려 있는 듯 하다.

    “내가 원래 다른 사람은 별로 인정 안 하거든.”

    “음? 뭘 인정 안 해?”

    “미모. 근데 저 언니는 정말 예쁘긴 한 것 같아.”

    나는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다.

    “아아. 그래.”

    혹시나 예전에 내가 팬이었다는 게 티가 날 까봐. 그게 먹혔는지 아영이는 오현주 얼굴을 잠깐 보다가 구찌 매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자. 오빠. 사고 싶은 게 많단 말이야.”

    “아아 그래.”

    *

    유럽여행은 정말 좋았다. 이국적인 풍경, 음식, 사람들, 모두 좋았다. 유럽은 관광산업이 발달해서 어딜 가든 충분한 팁만 있다면 왕처럼 대접을 해주었다. 좋은 것 보고, 맛있는 것 먹고, 신기한 것 해보고. 나는 아영이와 꿈같은 나날들을 보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나는 미래뉴스를 보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내 의식과도 같은 일이었다. 마치 이슬람 사람들이 하루 세 번 기도를 하듯이, 나는 아침 8시 55분에 한 번, 저녁 8시 55분에 한 번 두 번만큼은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아영이도 그것만큼은 건들 수 없게. 잘 조정을 해놓았다. 그래서 나는 유럽에서도 지속적으로 뉴스를 받아보았다. 평소처럼 주식 관련 뉴스도 받고

    ‘진성일렉트로닉스. 수성전자에 피인수.’

    ‘오케이 진성일렉트로닉스 체크.’

    내 이름으로 검색해서 내 뉴스도 받아보았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 대표. 올해도 소아암 센터 방문. 50억 쾌척.’

    ‘아아 지난번 갔을 때도 분위기 훈훈하고 좋았지. 또 가는 구나.’

    그런데, 참 특이한 일이었다. 평소 그렇게, 자주 걸리는 것은 아닌데, 이곳 유럽에 놀러온 한달 동안, 나는 세 건이나, 놀라운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놀라우면서도 내 인생이랑 아주 밀접한 뉴스들 말이다.

    *

    첫 번째 놀라운 뉴스는 첫 번째 여행지인 이탈리아에서 받은 것이었다. 정통 나폴리식 피자와 파스타 식사를 하고 소화 겸 트레비 분수 근처를 걷다가, 잠깐 아영이가 화장실 간 사이에 뉴스를 봤는데 웬걸. 내 머리를 때리는 뉴스가 하나 떴다.

    ‘아니... 잠깐... 이거... 정말? 이게 가능한가?’

    나는 다시 한 번 그 뉴스를 읽어보았다. 지금 보니 아주 없을 일도 아니다.

    ‘음... 그래... 확실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어쩌면 내게, 많은 득이 될 수도 있는 뉴스였다. 나는 일단 뉴스에서 나오는 사건 시간을 기억해두었다.

    ‘내년, 2021년 4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9개월 뒤 즈음이로군.’

    첫 번 째 뉴스는 9개월 뒤 있을 일이었다. 어쩌면 내게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일.

    *

    두 번째 놀라운 뉴스는 스위스에서 받아 본 것이었다.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한 호텔. 여느 때처럼 불같은 밤을 보내고 지쳐 잠에 골아 떨어졌던 나는. 새벽 일찍 눈을 비비며 일어나 휴대폰을 들고 호텔의 미니바로 향했다. 그리고 생수 하나를 들고 조용히 미래 뉴스를 보다가.

    “푸흡!”

    거기서 나온 뉴스에 가슴팍에 물을 흘리고 말았다. 두 번째 뉴스는 정말 놀랍고도, 중요한 사건을 보도한 뉴스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뉴스를 앞에 둔 채로 잠시 고민했다.

    ‘아니 이건... 귀국을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비행기 표 값이야 내게는 별로 아쉽지 않다. 하지만 그 뉴스를 보다가, 이내 곧 평정을 찾았다. 두 번째 뉴스 역시 실현되는 시간은 딱 1년 뒤. 정확히 2021년 7월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일 년 뒤 일... 지금 내가 귀국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일단 기사 내용을 빠르게 암기한 다음 메일을 닫았다. 손을 쓸 수 없는 일이니, 지금부터 안달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기사 내용을 외운 채로. 다시 해외여행을 즐기는데 전념하기로 했다.

    ‘그래 이거에 대한 대책은 한국 돌아가서 짜도 늦지 않다.’

    하지만 여행을 즐길 때도, 계속. 그 뉴스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 두 번째 뉴스는 우리 회사의 명운을 가를 중차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장 부사장에게 언질이라도 해놔야 하나? 아니야 12개월 뒤인데. 그건 너무 일러. 오히려 지금 손을 썼다간 부작용이 난다...’

    나는 그렇게 나 스스로를 타일렀다. ‘12개월 뒤 일인데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고. 아영이도 가끔 내가 달라진 것을 깨달았는지.

    “오빠 요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회사에 무슨 문제 있어?”

    그런 것을 물어오곤 했다. 물론 나는 그럴 때마다.

    “아니야. 뭐 그냥... 나 없이도 잘 돌아가나 생각하는 거지.”

    그렇게 둘러댔다. 그러면 아영이는 내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나는 그래도 아영이에게 평범하게 보일 수 있었다. 세 번째 뉴스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

    세 번 째 뉴스를 받은 곳은 여행 막바지에 도착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였다. 해양의 도시이며, 내가 좋아하는 F.C.바르셀로나 팀이 있는 축구의 고장. 나는 아름다운 도시며, 사람들이며, F.C. 바르셀로나 캄프 누 구장이랄지 그런 것들을 보며 다시 유럽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앞에서 본 두 개의 뉴스가 가끔 머릿속을 돌아다녔지만.

    ‘에이 그거 내년 일이야. 지금은 여행이나 즐기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영이와 함께 아름다운 바르셀로나 해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피곤에 잠에 빠진 아영이를 두고 나는 또 메일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뉴스를 받아 본 다음,

    ‘한상훈.’

    으로 인물 검색을 하다가, 매우, 매우 놀라운 뉴스를 보고 말았다.

    “아니... 이게... 가능한가?”

    나는 그러면서 옆에서 자고 있는 아영이를 쳐다보았다. 이건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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