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42화 (142/198)
  • # 142

    운명을 손에 쥔 자

    나는 의자에 앉아 마우스를 요리조리 클릭했다. 포털사이트 맨 윗면에는

    ‘차기 대권구도 대격변. 주성원 시장의 독주를 막을 사람은?’

    그런 뉴스가 떠 있다. 대선이 1년이나 남았지만, 다른 언론들도 이미 주성원 시장의 승세를 점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한상훈 의원이나 이수원 의원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에 의해서 제거되었으니까. 본래 한상훈 의원과 7%정도 차이로 당선이 되기로 했던 주성원 시장은 바뀐 미래에서는 보다 쉬운 상대를 만나 거의 20%에 가까운 격차를 벌리며 대통령에 당선되게 된다.

    아무래도 7%차이보다는 20%차이를 내며 당선되는 게 대통령 본인에게는 국정을 운영할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나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주성원 시장. 그 잘생긴 중년 남자의 얼굴을 빙글빙글 돌리며 생각했다.

    ‘잘 해보시오. 앞으로 내 부탁도 잘 좀 들어주고.’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포털사이트 메인에 돌아와 이번에는 한상훈을 써넣어보았다. 주주룩, 한상훈 의원 관련한 뉴스가 나온다.

    ‘한상훈 전 의원, 1심 뇌물 수수 및 위증죄로 유죄 확정. 징역 5년 판결’

    ‘완벽한 증인, 증거가 나와 버린 한상훈 전 의원 과연 항소할 수 있을까?’

    앞으로 한두 달 한참은 한상훈 의원 이야기가 계속 나올 것 같다. 그래도 나름 거물 정치인이었으니, 갈 때도 그냥 갈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그도 대중의 화제가 되는 것도 이게 마지막일 것이다. 징역 5년. 좀 줄여서 3~4년 살고 나온다 하면 주성원 시장이 대통령이 되어 있는 시점이다. 주성원 시장이 아무리 사람 좋은 사람이라곤 해도, 정적을 그냥 내버려둘리는 없다. 그는 다시 재기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한상훈’뉴스는 온건히 내 것이 될 것이다. 나는 12시간 뒤, 12일 뒤, 12주 뒤, 12달 뒤. 4개의 뉴스에 들어가서 모두 한상훈을 집어넣어 보았다. 12시간 뒤, 12일 뒤, 12주 뒤. 뉴스까지는 모두 한상훈 의원 뉴스가 뜬다. 항소 포기하고 징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뉴스, 한상훈 의원의 부재를 야당이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관한 뉴스. 그런 것들이 줄지어 나온다. 하지만 12달 뒤에는.

    ‘한상훈 대표 카이게임즈에 이어 다시 한 번 더 대박. 아마존 퓨쳐싱크 인수에 2조 원 베팅.’

    내 이름이 나온다. 하여간 정치인들은 연예인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 확 뜰 때는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지만, 잊힐 때는 금세 잊힌다는 점 말이다.

    ‘좋아 이제 앞으로... 모든 뉴스에서 ‘인물검색’세 슬롯 중 한 가지는 ‘한상훈’ 고정. 내 차지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두었다. 이제 내 일거수일투족은, 미래 뉴스에 기록되어서 나에게 날아올 것이다.

    ‘한상훈 대표 해외 진출’

    ‘한상훈 대표 다시 한 번 큰 성공’

    좋은 뉴스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강남역 추돌사고.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 대표 휘말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상품 거래에서 큰 손실’

    좋지 못한 뉴스는 정정보도가 나올 때까지 변수를 줄 것이다. 이것으로 사실상 나는 무적이 되어버렸다. 나에게는 어떤 해악이 있다한들. 나는 그것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한상훈 대표. 길 걷다 마른 하늘에서 친 날벼락에 사망.’

    그런다 하면. 그 날은 그냥 집에서 얌전하게 영화나 보면 될 테니까 말이다. 나는 이제 내 운명을 손에 쥔 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

    그렇게 정치권 정리를 끝낸 2020년 6월 말. 오랫동안 내 곁을 지켰던 서 비서가 예고한 대로 회사를 떠났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사장님.”

    “그래. 수고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해주신 은혜 생각하면 평생 곁에서 힘이 되어드려도 모자란데...”

    “아니야. 뭐 내가 널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일은 걱정하지 마. 요 며칠 지켜 봤는데. 박 비서가 너보다 더 잘하더라.”

    나는 서 비서 옆에 서 있는 박 비서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 그럼 다행입니다. 사장님. 그럼 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회사 일 할 때 뭐 문제 생기면 바로 보고 하고.”

    “네 사장님.”

    나는 그렇게 사장실에서 서 비서와 작별인사를 했다. 그가 떠나고 나니 시원섭섭하다. 하지만 언젠가 그가 회사 밖에서 나를 크게 도와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 비서가 떠난 뒤, 나는 박 비서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냐. 너. 밖에서 혼자 있을 거 생각하면 조금 재미없을 텐데.”

    내 말에 박 비서가 답한다.

    “일을 재미로 하나요.”

    “흠. 맞는 말이다만. 너도 봐서 알겠지만 비서 자리에서 있으면 대기하는 시간이 99%야. 뭐 아무 거라도 할 것을 정해놔. 태블릿으로 영화를 보든, 드라마를 보든, 웹소설을 보든. 아니면 그냥 책도 좋고 말이야. 대기할 때 그런 거 한다는 나는 뭐라고 안 해. 일 할 때만 빠릿빠릿하게 하면 말이지.”

    박 비서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사장님.”

    “그럼 오늘부터 시작이로군. 그럼 시험이나 해볼까? 오늘 내 일정은 뭐야? 박 비서.”

    “딱 하나입니다. 텐센트하고 계약 일정 정하는 것. 오늘 오전 11시에 텐센트 투자부 임원 몇 분, 그리고 우리 측에서 장 부사장님, 정형석 이사님. 김훈일 이사님과 미팅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아아 그래. 알았어 가봐.”

    박 비서를 제자리에 돌려보낸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내 자리 앞에는 세 개의 모니터에는 수 없이 많은 숫자들이 오고가고 있다.

    ‘메디제네틱스 124000 6주 매수’

    ‘메디제네틱스 125000 7주 매수’

    ‘메디제네틱스 126000 14주 매수’

    어느 한쪽에서는 주식을 자동으로 매수하고 있고

    ‘NXN게임즈 4750 4561주 매도’

    ‘NXN게임즈 4740 1560주 매도’

    ‘NXN게임즈 4730 2225주 매도’

    어느 한쪽에서는 주식을 자동으로 매도하고 있다. 사실상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잘하고 있나?’

    하고 지켜보는 것 정도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를 차린 지 2년 차. 나와 장 부사장은 모건스탠리나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노무라증권에서 쓰는 AI매매 알고리즘을 가져와서 회사에 적용을 시켜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 계좌에도 마찬가지.

    물론 12주 뒤 어떤 종목이 상한가 가서 얼마가 되고, 그래서 그 때까지 얼마를 어떻게 사놓고. 그런 것은 내가 정하지만. 세부적인 매매는 로봇이 자동으로 매매를 하게 되어 있다. 요새는 이런 매매는 나보다도 컴퓨터가 더 잘해서, 나는 더욱 더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박 비서에게

    ‘대기하는 시간이 많으니 그 때는 영화를 보든 뭘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라고 해놓았지만,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대개 출근을 한다고 해도 이렇게 컴퓨터가 잘 돌아가나 그 정도 보는 것 정도. 나머지는 영화를 보든 드라마를 보든 게임을 하든 여가를 보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수억 원씩 꼬박꼬박 컴퓨터가 잘 벌어다 주니까.

    사실 펜트하우스에서 똑같은 일을 해도 상관은 없는데. 이런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 만큼은 나도 정장 입고 사장실에서 대기를 했다. 장 부사장을 비롯한 다른 이사들 기다리는데, 옥상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이면 너무 미안할 거 같아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었다.

    ‘11시라... 두 시간 정도 남았군. 그럼 뭘 할까...’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별 생각 없이 구글 플레이에 들어 가보았다. 그런데 눈에 띄는 배너가 하나 있다.

    ‘NXN게임즈 신작 세븐 레전드 매출 1등 감사 인사.’

    ‘세븐 레전드’. 오늘 매도에 걸려 있는 NXN게임즈가 만든 바로 그 게임이다. NXN게임사는 얼마 전 상장한 작은 게임회사로. 나는 12주 전. 12주 뒤 뉴스에서

    ‘NXN게임즈 신작 세븐 레전드 구글, IOS 매출 1위.’

    그런 뉴스를 보고 매매 알고리즘에 넣어 두었었다. 아마 이 주식도 내게 최소 10억은 벌어 주었을 것이다. 나는 그걸 지켜보았다.

    ‘이게 그렇게 재밌나?’

    미팅 까지 두 시간 남았겠다. 나는 그걸 다운받아서 실행을 해보았다. ‘세븐 레전드’는 여태 많이 나온 수집형 RPG게임이었다. 조금 게임은 식상한데, 좋은 그래픽, 잘 만들어진 캐릭터가 흥미를 끈다. 나는 휴대폰을 만져가며 조금 그걸 해보았다. 그런데 맨 처음 준 무료 뽑기권으로는 SSS등급 캐릭터가 나오질 않았다.

    ‘음 얼마나 과금 해야 그거 하나 주는 거지?’

    나는 바로 천만 원 정도를 과금 해서 뽑기를 해보았다. 모든 SSS등급 캐릭터가 내 것이 되었다. 그런데 서버에서는 등수가 200등 정도다. 출시 날짜를 보면 3일 지났는데. 천만원 쓰고 30분 만져보니 바로 200등이다. 하여간 요새 게임은 대개 이렇다. Pay to win. 돈만 쓰면 바로바로 등수를 올려준다.

    ‘음... 조금 더 해볼까.’

    나는 과금을 더 해보았다. 바로 5천만 원 더. 이번에는 캐릭터와 함께 장비를 뽑았다. 쉬지 않고 장비를 뽑아보니 무기, 투구, 갑옷, 팔찌, 신발. 모든 장비를 SSS등급까지 맞출 수 있었다. 6천만원 쓰니 바로 서버 10등이다. 내 위로 9명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음... 나 말고도 누군가가 6천만 원씩 게임에다가 쓰는 사람이 있단 말이로군. 그나저나 나는 뭐가 부족해서 20위인거지?’

    검색을 해보니, 이번엔 룬. 룬이라는 게 필요하다. 나는 4천만 원 정도를 더 써서 룬까지 SSS등급을 맞춰 놓았다. 그러고 보니 전체 2등이다. 1억원 과금 하고 두 시간정도 게임하니 전 서버 2등. 요새 게임은 다 이렇다.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도 나를 이길 수 없다. 2등을 하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 것은 1등이다. 1등의 아이디는 ‘천룡인’이다.

    ‘뭐하는 사람이지...? 무슨 게임 BJ라도 되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띠리리~ 띠리리~’

    전화기가 울렸다. 시계를 보니 11시. 미팅시간이다. 나는 2시간 동안 1억 들인 게임을 끄고, 그냥 바로 지워버렸다. 돈만 쓰면 바로 강해질 수 있는 이런 게임은 내게 더 이상 흥미를 가져다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번 계약 끝나면 아영이 데리고 유럽 여행이나 갔다 와야겠다. 작년에 가족들만 보내고 나만 못 갔었으니...’

    나는 전화기를 들고 바로 대답했다.

    “응 나갈게.”

    *

    그 달 말. 나는 결국 텐센트에 나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회사가 가지고 있는 카이게임즈 63% 지분 전량을 넘기는 주식 양수도 계약을 맺었다. 무려 2조원의 현금을 주고받는 국내 게임회사 역사상 최고액의 딜. 언론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초대형 잭팟 무려 2조원’

    ‘카이게임즈 1200억원 투자했던 한상훈 대표 2조원에 벌여 들여’

    ‘주식 천재 한상훈 대표 16배 넘는 수익률. 투자계의 큰 손으로.’

    그런 뉴스를 줄지어 쏟아냈다. 개 중에는 그런 뉴스도 있었다.

    ‘무려 현금 2조원. 총알 장전한 한상훈 대표 다음 투자 목표는 어디?’

    솔직히 말하자면, 2조원을 당장 쓸 만한 곳은 없었다. 나는 일단 장 부사장에게 매우 보수적으로, 안전한 채권 쪽으로만 투자를 하도록 지시해놓았다. 카이게임즈나 퓨쳐싱크처럼 확실한 카드가 있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예정이었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옹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든가.

    ‘투자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제 1원칙 돈을 잃지 않을 것. 제 2원칙 1번을 지킬 것.’

    이라고. 한 마디로, 수익을 보지는 못하더라도 잃지는 말란 말이다. 지금 현금 2조원을 조용히 아껴놓으면 언젠가 기회는 올 것이다. 한 번 더 크게 업그레이드를 할 만한 절호의 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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