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38화 (138/198)

# 138

현세의 왕

“와 좋다아~”

아영이는 튜브 위에 앉아 발장구를 치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호텔 놀러가지 않아도... 아니 여기가 호텔보다 더 좋은 것 같아!”

나는 칵테일을 들이키며 그녀를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이 펜트하우스를 산 것은 작년 가을. 그래서 풀장에 물을 채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영이야 워낙에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서 어렸을 적부터 해외를 안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이렇게 서울 빌딩 숲 중심에서 물놀이를 하는 것은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요새는 어때?”

“응 뭐가?”

“아나운서 공부 말이야.”

“아아 그거. 잘 돼가고 있어. 자자 한 번 봐봐.”

그녀는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정확하고 분명한 발음으로 내게 말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5월 2일 토요일 BKS 9시 뉴스 이아영입니다. 오늘 첫 뉴스입니다. 김은재 전 의원이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내정되었습니다. 정계에 입성해 재선 의원을 지낸 뒤, 낙선과 공천 실패를 거듭했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정무감각으로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잘한다. 눈을 감고 들었다면, 정말 현직 아나운서가 말했다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단지 그녀는 지금 푸른 풀장, 노란색 튜브 위에서 빨간색 비키니를 입은 채로 말하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 뿐이다.

‘...잘하잖아?’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녀가 말했다.

“어때 오빠? 잘해? 나 아나운서 될 거 같아?”

그녀는 미술대학원을 졸업한 뒤, 갑자기 아나운서를 하겠다고 나섰다. 예전에 아버지 결백을 밝혀졌을 때, 자기가 나온 영상을 찾아보았는데 그 때 당당하게 그 뉴스를 발표해주던 아나운서 누나가 너무 멋져보였다나. 너무 급작스러운 진로변경이었지만, 그녀는 아나운서가 되도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미모 되고, 몸매 되다보니까. 물론 처음 시작할 때는

‘여러분 아... 안녕하십니까? 하아 이게 아닌데.’

‘안녕하십니까’도 제대로 못했는데, 본인 학교 근처 아나운서 학원에 다니다보니 금세 실력이 붙었다. 나는 그래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네.”

“흐음... 그래? 이상하네... 요새 선생님이 많이 늘었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뭐 계속 하다보면 나아질 지도. 근데 실기보다도 필기시험이 더 문제 아냐? 한국어능력 시험이랄지.”

“그래서 그거 위주로 요새 열심히 하고 있어. 모의고사 점수도 점점 늘고 있고.”

그녀 말에 따르면 그녀는 미술로 진로를 정하기 전까지는 공부도 곧 잘해서 전교권에서 놀았다고 한다. 단지 미술이 더 좋아서 미술을 전공했을 뿐. 그리고 영어관련 점수는 시작부터 만점이었다. 애초에 영어로 뉴스 브리핑을 해도 될 정도였으니까.

“아... 그래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붙겠는데 이거?’

처음 한다고 할 때만 해도 부잣집 아가씨의 현실감각 없는 철없는 포부 같은 것으로 여겼는데, 제일 큰 장벽이라고 여겼던 필기시험마저 넘어버리면 진짜 될지도 모르겠다. 특히 경쟁률이 낮은 종합편성채널 쪽으로(그 쪽은 실력보다도 외모를 더 본다는 게 정설이다.)간다고 하면 금방 붙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녀가 아나운서가 되는 게 탐탁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난번에 ‘주가조각 인터뷰 녀’사건 때 느꼈지만, 여자 친구가 유명해지는 게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녀가 아나운서가 되면, 또 엄청나게 인기를 끌 게 뻔했다. 예뻐서.

‘그렇다고 하겠다는 걸 말릴 수도 없고...’

예전에 이것 때문에 빙 돌려서 이야기를 하긴 했었다.

‘음... 근데 굳이 아나운서를 해야겠어? 전공인 미술 내버려 두고?’

하지만 그녀는 그럴 때마다 말했다.

‘오빠 전에도 말했지만 현대 미술이라는 게...’

그녀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국내 미술계에 뭔가 더러운 꼴을 보고 환멸감을 느꼈던 것 같다. 교수의 눈이 예술의 기준이 된다나 뭐라나.

‘차라리 웹툰 작가를 했으면 했지. 순수 예술은 안 할 거야.’

그래서 결국 그렇게 끝이 났다. 유학에 대학원 졸업까지 했는데. 조금 아깝지만 본인 선택이 그러하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다고 해도 먹고 쓰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그러던 중, 아영이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그런데 오빠. 여기 혼자 살기는 조금 넓지 않아?”

“아 그렇긴 하지.”

나는 거기까지 말했다가, 바로 이어 말했다.

“그래도 좋아. 극장도 커서 좋고. 익숙해지니까 살만 한데? 그리고 내가 높은 곳 좋아하잖아. 원래.”

“으음...”

그녀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더 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요새 들어서 점점 더 결혼을 암시하는 말을 하곤 한다. 그녀는 이어서 물었다.

“그나저나 저녁에 손님이 오신다고?”

“응.”

“누구?”

“업계 사람이야.”

“흐음...”

그녀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건 무리도 아니다. 요새 왠지, 여자들이 엄청 꼬인다. 예전 MBE 아나운서부터 해서, 회사 근처 치과의사, 백화점 직원, 과거 중학교 동창, 심지어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신입사원까지 가는 곳마다 내게 들러붙는 여자들이 생겼다.

“여기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보고 가고 싶으면 보고 가시고. 덩치 큰 외국인 남자거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크로우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나다보니 아영이도 대충 존재를 알고 있긴 했다.

“그래? 그 때 말했던 그 중요한 외국인 손님?”

“응.”

“내가 오빠랑 그 분 저녁 해드리고 갈까? 그 분 뭐 좋아하셔?”

옆집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온 이후로도 그녀는 여전히 가끔 내게 음식을 해다 주곤 했다.

“치킨.”

“치키인?”

“응. 그 분이 치킨 좋아하시거든.”

“그럼 내가 해줄게. 기름기 적게. 오빠 요새 조금 살찐 것 같거든. 30대 초반에 성인병 걸리면 안 되지.”

그녀는 요새 그렇게 내 건강 걱정도 자주 한다.

“...그래.”

*

그날 오후. 나는 닭다리를 뜯는 크로우를 보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평소보다 담백한 것 같군요. 소스도 심심하고요. 그런데, 맛있습니다. 느끼한 것들과는 조금 다른, 매력이 있군요. 여긴 어디 치킨입니까?”

크로우는 요새 프랜차 치킨 박사가 다 되어 있었다. 매달 외뢰서를 가져올 때마다 나와 치킨 파티를 했기 때문이다.

“아아 파는 게 아니고. 어떤 요리사가 해준 것이거든요.”

“그렇군요. 요리사 분이 실력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요리사나 하면... 차라리 좋을 텐데...”

“네?”

“아니요. 혼잣말입니다. 그나 저나 여기 새 집에 오시라고 한 건 처음 인 것 같군요.”

크로우는 식탁 너머로 보이는 풀장과, 정원과 그 뒤 너머 서울의 야경을 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대표님. 여긴... 마치 왕들의 성 같군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왕들이요?”

“네. 대표님은 왕 같으시고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내 재산이 1조가 넘어가면서부터 조금은,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나는 왕이었다. 자본주의가 만든 왕. 돈이 없어서 뭘 하지 못하는 것은 없었고, 주변 사람들은 알아서 머리를 숙였다.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돈이 많으면 왕이 된다. 지금은 그런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크로우에게 민주주의를 들먹거렸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왕은 없어요. 대통령이 있지.”

크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통령. 그렇지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여태 그가 7개월 동안 해온 일들이, 차기 대통령 주자들을 조사해오는 일이었다. 나는 그가 조사해온 문서를 꺼내며 말했다.

“오늘은 한상훈 의원님. 2회차로군요.”

오늘 받아 보게 된 것은 한상훈 의원 2회차 조사. 나는 이미 7개월 전 1회차 조사 때 ‘구순길 리스트’사건 때, 한상훈 의원이 죽은 사람에게서 돈을 받은 것을 확인했다. 당연히 뇌물죄, 당시 사건 때

‘저는 그 사람 알지도 못합니다.’

라고 말하고 다녔으니 위증까지 더해야한다. 이게 밝혀지면 그는 정치인으로서 크게 타격을 받을 게 분명 했다. 하지만 나는 당장 풀지는 않았다. 이건 대법원에서 이미 ‘무죄’로 해놓은 사건이어서 다시 들춰냈다간 법조계 쪽에서 부담이 갈만한 사건이었기 때문. 진실이 ‘예’라고 해도, 사법부에서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게 되어버린다.

게다가 한상훈 의원은 검사 출신이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검사. 수많은 판사들이 동기고 선배고 후배인 마당에 야당 실세기도 하니 진실을 터트린다고 해서 그게 진실로 받아들여지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수를 더 추가하기로 했던 것이다.

한상훈 의원은 그런 루머가 있었다. 의원이 되기 전 검사 시절 접대고 뭐고 해서 룸싸롱을 제집 드나들듯하던 수준으로 여색을 밝혔다는 것. 의원이 된 이후로 기자 눈이 무서워 대놓고 그걸 풀지 못해서 비서를 바꿔가며 동침을 한다는 그런 루머가. 그래서 나는 크로우에게 이 루머도 파헤치게 시켜 놓았다. 알고 있는 약점은 많은 수록 좋으니까. 크로우는 내게 말했다.

“네 지난번에 이어서... 대표님이 원하시는 정보가 들어 있을 겁니다. 원하시면 까마귀 꿈을 보셔도 되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제가 내용 한 번 보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던 나는

‘아니 이거...’

얼굴이 살짝 달아올라 들고 있는 문서를 부채삼아 두어 번 흔들었다.

‘완전 야설이잖아?’

이번 보고서에는 중년의 국회의원 아저씨가 본인의 비서들이랑 외도를 하는 내용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까마귀 안대를 메고 자면, 야동 한편을 볼 참이다.

‘대체 어디서 이런 짓을 한 거지?’

찾아보니 여의도 국회의 국회의원실이다.

‘무슨 의원실이 모텔이냐... 이러라고 세금 낸 게 아닌데...’

나는 일 년에 수백억대 세금을 내고 있었다. 수익이 큰 만큼 세금도 많았다.

‘뭐 어찌되었든 약점 하나 더 추가로군.’

한상훈 의원은 결혼해서 이미 자녀를 셋이나 두고 있었다. 이게 밝혀지면, 대통령 꿈은 물 건너가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요새 간통죄는 폐지되고, 불륜에 대해서도 시선이 조금은 관대해졌지만, 이것만 해도 대선 때 지지율 10%정도는 날아갈 것이다. 한상훈 의원은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내가 수를 쓰면 말이다.

‘그럼 언제 터트리느냐가 문제인데... 일단 내년에 대통령이 누가 되나 보고 결정하자.’

오늘 2020년 5월 2일이다. 차기 대선투표는 딱 2021년 5월 2일날 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내일 아침이면 나는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이름 검색 슬롯이 세 개니까.

‘1번 주성원 2번 한상훈 3번 곽지원’

각각 이름을 써넣으면

‘주성원 전 서울시장 대통령 당선!’

‘한상훈 대통령후보 아쉽게 낙선’

‘곽지원 대통령후보 돌풍 대신 미풍으로.’

그런 식으로 기사가 뜰 것이었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가 나서서 바꿔버릴 것이다. 차기 대통령을.

‘봐서 대선 테마주나 사놓을까? 주성원 시장 관련주가 뭐였더라...? 무슨 건설이었나? 개발이었나?’

문득, 예전에 서울 시장 선거 때, 미래 뉴스를 보고 주식을 샀던 것이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누가 서울 시장이 될지 뉴스를 보고 주식을 사고팔고 갈아탔었지만. 이제는 아예 누가 대통령이 될지 내가 결정하는 수준에 다달았다.

‘차기 대통령은 내가 정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현세의 왕은 나다. 미래의 정보를 휘두르는 자. 과거의 정보를 모두 알 수 있는 자. 대통령도 내게 손을 대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임명할 거니까. 나는 손을 비비며 생각했다.

‘좋아 그럼 내일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나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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