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37화 (137/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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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개월 뒤

    “그 쪽의 제안은 이렇습니다.”

    장 부사장은 자신이 들고 있는 문서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걸 받아 들었다. 왼쪽 위에는 영어로 ‘Tencent’한자로는 腾讯텅쉰이라고 쓰여 있는 푸른색 마크가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카이게임즈 인수 제안 안내서.’라 쓰여 있는 문구가 있다.

    “지난번에 제안 거절했던 게 작년 10월 즘이었죠?”

    “네 그렇습니다. 사장님.”

    “음 거의 7개월만이네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2020년 5월. 초여름이다. 작년 초 CBT를 시작했던 카이게임즈의 판타지 워 그라운드가 출시 된지도 이제 거의 일 년 반. 출시 때부터 화제가 되었던 판타지 워 그라운드는 그해 게임시장을 석권하고 올해까지도 전 세계 점유율 1등을 다투는 게임이 되어 있었다. 카이게임즈의 시가총액은 무려 2조 4천억 원. 내가 맨 처음 샀을 때 2천억 원이었단 것을 생각하면 12배가 올랐다. 63% 지분을 가지고 있는 우리 회사 지분은 1조 5천억 원에 달했다.

    ‘그럼 얼마나 제시를 하셨는지 볼까?’

    나는 제안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살짝 눈이 커져 중얼거렸다.

    “어이쿠야.”

    ‘보유지분 63% 중 20% 매도 시 6천억 원’

    ‘보유지분 63% 중 63%전량을 2조원’

    “2조원이나 내겠다네요? 전량 사는데?”

    “네 그렇습니다. 저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참 중국인들은 참 통도 커요. 이게 대륙의 기상인가.”

    “네 프리미엄을 5천억이나 더 얹어주겠다니... 하긴 근데 그만큼 중국 사업에서 더 이익을 낼 자신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음...”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본래는 보유지분 20%정도만 팔고, 다른 회사를 살 현금만 확보하려고 했는데 5천억 원 프리미엄은 크다. 나도 혹할 정도.

    ‘프리미엄도 프리미엄이지만... 주가가 어떻게 될지가 더 문제지’

    어느 게임도 시간이 지나면 물 흘러가듯 유행이 흘러가기 마련이다. 한참 흥행했던 배틀 로얄 방식 게임은 천천히 유행이 지나가고 있었다. 판타지 워 그라운드는 그나마 후발주자 중 성공한 편이라서 아직 동시접속자가 유지되고는 있었지만, 그것도 년 말 즈음이면 점차 줄 예정이었다. 나는 그 점을 ‘IT/과학’카테고리에서 이미 확인을 해두었다.

    ‘모두 다 파는 것도 고려를 해봐야겠군.’

    물론 주식을 모두 팔게 되면 카이게임즈의 소유권은 내게서 없어진다. 한 마디로 ‘시가총액 10조 원 어치의 회사를 지배하는 것’ 그랜드마스터 등급에 도달하는 조건에서 멀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금 2조원이 생긴다면... 이걸로 시총 5~6조짜리 회사를 새로 사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겠지.’

    어차피 핵심은 돈이다.

    “이건은 제가 조금 더 생각해보고, 다시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네 사장님.”

    “요새 현영제약은 어떻답니까?”

    “좋습니다. FDA판매허가 진행 중이니 곧 시장에 시판 겁니다.”

    “잘 됐군요. 끝까지 잘 마무리 해 달라. 전해주세요.”

    “네 사장님.”

    장 부사장은 고개를 숙이며 사장실을 나간다. 현영제약 역시 내가 예상했던 절차를 고대로 밟아서 신약이 FDA 3상을 통과하고, 판매허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시가총액 1조원이 조금 넘었던 현영제약은 FDA 3상 통과 소식에 한때(한 3일정도)3조원 가까이 갔다가, 지금은 2조 2천억 원이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때 촬영장에서 휴대폰 보던 아줌마, 아저씨들...’

    나는 작년에, MBE 슈퍼개미를 만나다. 두 번 째 촬영 때를 떠올렸다. 그날, 나는 그렇게 말을 해놨었다.

    ‘지난 번 종목과 함께 블루E&M과 현영제약이 포트에 추가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머리를 박고 주식을 사던 아줌마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때 현영제약을 샀다면, 아마 더블. 두 배를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블루E&M을 샀다면?’

    솔직히 말하자면, 블루E&M은 꽝이었다. 이것저것 게임, 연예계 쪽과 콜라보를 해가며 시장점유율을 늘렸던 블루 E&M은 유러피안TV가 똑같은 방법을 쓰는 바람에 다시 밀려가고 있었다. 주가는 옆으로 길게 횡보. 샀으면 +-10%대 수익이거나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사업 구조상 적자를 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 크게 성장을 하지는 못했다.

    물론 내가 대규모 투자를 한다던가 하면 뭔가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블루E&M은 예전 안용균 사장 사건 때문인지 그다지 애정이 가진 않았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제 300억짜리 회사에서는 조금 관심이 떨어진 것 같긴 하다. 이제 나는 조 단위 회사를 두 개나 가지고 있었으니까. 잠재적으로 하면 세 개.

    ‘우리 쪽 유망주는... 성과를 낼 때 다 됐는데.’

    작년 10월 발견했던 퓨처싱크는 AI번역 회사였다. 빅데이터에 기반. 과거 번역된 문서들을 한데 모아 보다 더 정교한 번역을 해주는 회사로 이 시스템이 아마존, 구글보다 더 정교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까 2조원 주고 사가는 거겠지만.’

    이 시스템이 완성이 되는 것은 이번 달 아니면 다음 달이다. 완성된지 2달 뒤 즈음 실리콘밸리에서 AI학회에 발표될 것이고, 그러면 거기 참석한 아마존 AI사업부 담당자가 현존 세계 최고 부자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 회장에게 보고를 한다.

    나는 이미 작년에 150억 주고 80% 지분 매수를 해놓았다. 제의가 얼마나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하게 갈 것이다. 비즈니스는 잘 나가고 있다. 나는 곧 10조원 대 회사를 휘두르는 부자가 될 것이다.

    ‘그랜드 마스터 등급 달면서 말이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전에 간간히 매매하고, 오후에 장 부사장 봤으니 오늘 해야 할 일은 다 끝났다. 나는 사장실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서 비서, 박 비서, 나 먼저 퇴근할게.”

    밖에 서 있던 박 비서는 내게 인사를 한다.

    “들어가십시오. 사장님.”

    그런데, 서 비서가 일어서더니 내게 따라 붙는다.

    “저... 사장님.”

    “응?”

    “그 카이게임즈 팔기로 하셨나요?”

    보통 이런 것을 물어보는 애가 아닌데 왜 물어보는 것일까. 나는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서 비서, 잠시 따라와.”

    “네.”

    나는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상승 버튼을 눌렀다.

    ‘띵~동’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나와 서 비서는 그 안에 들어간다. 엘리베이터에는 1층부터 40층까지 버튼이 있고, 그리고 그 위에 ‘P’라고 쓰인 버튼이 있다. 나는 ‘P’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곧 기계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비밀 번호를 입력해주십시오”

    나는 빠르게 층수 몇 개를 눌렀다.

    ‘32, 18, 7, 3, 22, 15’

    그러자 그 목소리는

    “펜트하우스”

    내가 가려는 층을 말해주었다. 엘리베이터는 우리 집. 인빅투스 빌딩의 최상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에 선다. 나는 넥타이를 풀어 던지고, 외투는 소파 위에 걸쳐 놓은 다음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며 말했다.

    “너 뭐 마실래?”

    “아니요. 저 근무 중인데... 저는... 운전도 해야하고요.”

    “맥주 말고 딴 거 마시면 되잖아.”

    “그럼 오렌지쥬스로 주십시오.”

    나는 오렌지 쥬스가 담긴 팩을 꺼내 그에게 던진 후, 그와 함께 야외 테라스로 나왔다. 5월 슬슬 바람이 뜨거워지는 때다. 나는 테라스 옆에 있는 풀장을 보며 생각했다.

    ‘곧 물놀이 할 때가 되었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서 비서가 내게 물었다.

    “저... 그런데 저는 왜 부르셨는지?”

    나는 맥주를 한 번 들이키고, 멀리 길게 펼쳐져 있는 서울 시내를 보며 말했다.

    “너 솔직히 말해봐.”

    “네?”

    “너 카이게임즈 샀지?”

    내 말에, 서 비서는 솔직하게 대답한다.

    “...네”

    “얼마나 샀니?”

    “산건 대략... 음...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샀는지는 모르겠고, 받는 족족 월급을 거기 다 갖다 박았다?”

    “네. 보너스도요. 전부.”

    나는 어이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은 얼마나 되니?”

    “40억 원 조금 넘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서 비서하고, 그 때 촬영 중 현영 제약 사던 사람들이 겹쳐서. 서 비서는 회사 창업할 때부터 내 곁에 있었으니, 정말 초기에 나를 따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문득 그와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내 곁에 있으면 3년 안에 포르쉐 굴린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래 40억이면 포르쉐 사서 굴릴 만 하겠구나.”

    그 말을 들은 서 비서는 오렌지 쥬스를 마시다 말고 내게 말했다.

    “저... 감사합니다. 사장님. 아니... 상훈이 형. 정말 감사했어요.”

    나는 다소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서 비서. 지훈이가 정장을 입은 채로 내 이름을 부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나는 그 대사에 위화감을 느끼다가, 그에게 말했다.

    “너... 설마 비서 일 그만둘 거냐?”

    “네. 다음 달 까지만 일하고 두겠습니다.”

    “창업하려고?”

    “네.”

    역시나, 내 곁에 있는 2년 내내 비서자리에 앉아서 영어작문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팔 때부터 알아보긴 했다. 언젠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 정도는.

    “음 그래... 근데 나도 너 없이는 일이 좀 잘 안 굴러갈 것 같은데.”

    “비서 업무는 박 비서에게 모두 가르쳐 놓았습니다. 3달 전부터요.”

    “3달 전부터? 그럼?”

    “네 3달 전부터 결심하고, 박 비서에게는 말했었습니다.”

    “뭐야 그럼 나만 몰랐던 거야?”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12달 뒤,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알아도, 한달 뒤 비서가 그만둘 줄은 모른다. 그게 내 능력의 아이러니다.

    “뭐 그래. 나도 네 꿈을 막을 수는 없지. 그건... 내 철학이랑도 맞지 않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그 대신에... 한 가지만 들어다오 내 소원.”

    “뭐... 말씀이십니까?”

    “네 회사 51%지분. 나한테 팔고 시작해라. 정확히 말하자면 초기 투자자로 시작하는 거지.”

    “네에?”

    “좋잖아. 너도 든든한 뒷배 얻어서 40억도 큰돈이긴 하지만 그건 스타트업계에서 그런 거 아니야? 진짜 IT에 들어갔을 때 그거 가지고 되겠어?”

    “그래주시면... 감사하지요.”

    “그래 대신에, 3년 내로 상장하는 걸 목표로 하는 거야 어때?”

    “노력해보겠습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래 열심히 해봐.”

    그런데 그 때, 지훈이가 내게 물었다.

    “저... 근데 형님. 카이게임즈는 그래서 파실겁니까?

    나는 그 질문에 그 녀석을 위아래로 쳐다보며 말했다.

    “와 이 녀석 완전히 주식투자자 다 됐네. 이거?”

    “저도 형님 곁에서 2년 있었습니다. 풍월 읊을 때도 됐지요.”

    “그래에...”

    나는 맥주를 한 번 더 들이킨 다음, 잠시 한 번더 고민을 했다. 내게 가장 큰 수익을 준 카이게임즈. 하지만 이제 해어져야할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 자리에서 결심을 하고, 그에게 말했다.

    “너만 알아둬. 이건 조 단위 거래니까.”

    “네.”

    “팔 거야. 63% 전부 뭐 나 대신 텐센트가 들어오는 거니 내가 팔았다고 해서 급락은 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전망이...”

    내가 그말을 하는데, 서 비서가 말한다.

    “저는 형님을 믿습니다. 형님 나가시기 전에 저 먼저 조용히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은 주식을 팔고 나간다는 말이었지만, 왠지 회사를 나간다는 말이랑 겹쳐 들렸다.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음 그래. 어쨌든 2년간 수고 많았다. 나가서 잘 해봐. 하면서 나한테 보고하고.”

    서 비서, 아니 대학동기 서지훈은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형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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