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36화 (136/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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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이사

    나는 책상을 톡톡톡 치면서 화면을 바라보았다. 모니터 위에는 메모장 하나가 올려 져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네 명의 이름이 쓰여 있다.

    ‘여당 – 주성원 야당 - 한상훈, 이수원, 정경화 제2야당 - 곽지원, 안상진 ’

    지금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 여섯 명이다. 내가 크루즈 위에서 들었던 이름은 네 명이었지만, 나는 여기서 임의로 두 명을 더 추가시켜놓았다.

    ‘음... 개헌이 된다고 했을 때 앞으로 대선까지 20개월 정도 남았군.’

    지금 당장으로서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정치는 워낙에 변수가 많아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국민들이 대선이 2년 반 남은 걸로 알고 있어서

    ‘차기 대선 예측’

    그런 기사도 나오질 않고 있었다. 아직 먼 미래 일이니까.

    ‘뭐 8개월만 지나면 누가 될지 알 수 있겠지만.’

    20개월 남았으니 8개월 지나면 12달 뒤 뉴스를 통해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 때 움직여볼까?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 올라오면 그 녀석 파보는 걸로?’

    하지만 그 때 움직여서는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 회장님만큼이나, 언론에 입김이 쌘 사람이 정치인들이다. 특히 뭔가 구린 게 있을 때는 필사적으로 막을게 뻔하다. 특히 대선후보로 오르내릴 때가 되면 당 차원에서 막을 것이다. 여당이라면. 대통령부터 비호를 해줄 것이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크로우 딱히 보낼 데도 없는데... 지금부터 파놓자. 이 여섯 명 모두.’

    크로우는 한 달에 한 번만 쓸 수 있으니까. 여섯 명을 모두 파보려면 반년은 걸릴 것이다. 게다가 선거로 들어가면 와중에 누군가가 돌풍을 일으키며 나타날 수도 있다.

    ‘털어서 뭔가 나오면 쥐고 있다가, 대선 레이스 봐가면서 때리는 거야. 가장 극적일 때.’

    정치인치고 구리지 않은 구석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크로우를 붙여 놓으면 금방금방 뭔가가 튀어나올 것이다. 그 사람이 나중에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그 정보는 유용할 것이다. 내가 대선판을 흔드는 큰 손이 되는 것이다.

    ‘가장 첫 타겟은... 아무래도...’

    나는 포털창에 ‘한상훈’을 검색해보았다. 역시나 맨 위에는 한상훈 국회의원이 뜬다.

    ‘이분 첫 타자가 돼 주셔야 겠지?’

    한상훈 국회의원. 나랑 동명이인,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 이익을 위해서 먼저 검사대에 올라 주셔야겠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CEO 한상훈’

    내 얼굴이 그의 얼굴 아래 올라 있으니까. 이건 어쩔 수가 없다.

    ‘털어서 나오시면 먼저 가시는 겁니다. 다른 분들도 똑같이 해드릴 테니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세요.’

    나는 이어서 한상훈 의원이 예전에, 뭔가가 의혹이 있었는지 검색을 해보았다.

    ‘빙고’

    역시나, 바로바로 나온다.

    ‘구순길 리스트에 올랐던 한상훈 의원. 무죄 판결에 한숨 돌려.’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청진건설 구순길 리스트에 올랐던 한상훈 의원 법원에서 오늘 오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아아 이 사건.”

    지금 돌이켜 보니 생각이 난다. 구순길 리스트 사건. 2년 전 사건이다. 예전에 구순길이란 건설사 대표가 검찰조사를 받기 전, 자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검찰 조사를 받기 전에 매달린 국회의원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이 모두 도와주기를 거절하자, 자살을 하면서 그 사람들 목록을 모두 유서에 적어놓았다.

    ‘한상훈 2억, 강용준 1억 4천, 지정환 1억.’

    그런 식으로. 그런데 당사자가 죽어버려서, 거기 쓰여 있던 사람들 모두 무죄로 흐지부지된 사건이다. 이건 명확한 사건이 있으니 크로우가 확실히 파내 줄 것이다.

    ‘그럼 이건부터 조사를 해봐야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메일에 들어가 크로우와의 만남 장소를 정했다.

    ‘음... 거기가 맛있었지.’

    우리 집 근처 호프집 하나로. 나를 위해서 일을 해주는데 양념치킨 정도는 무한대로 사줄 것이다.

    ‘띠리리~’

    전화가 온다. 서 비서다.

    “응?”

    “장 부사장님 오셨습니다.”

    “아 그래 들어오시라 그래.”

    “네 사장님.”

    곧 장 부사장이 사장실로 들어와 인사를 한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내게 물었다.

    “그래서, 마음은 정하셨습니까?”

    “아 안 그래도 같이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앉으시지요.”

    나는 그를 앉혀둔 채로 책상에서 보고서 하나를 꺼내들었다. 거기에는 여러 빌딩의 조감도가 주주룩 나열되어 있다. 나는 거기서 빌딩 한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이게 마음에 들던데 어떻게 보십니까?”

    그것은 삼성역 근처의 한 빌딩이다. 우리 회사, 신사옥 후보군 중 하나. 사옥 이전 건은 올해 초부터 논의가 되던 일이었다. 처음 장부사장이 여기저기 지인을 끌어 모아 20명 정도로 시작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계속해서 커져서 이제 사원만 150명에 달했다.

    다행이도 지금 들어와 있는 빌딩에 공실이 있어서 임대 층수를 늘려가는 방식으로 회사 규모를 키웠지만, 이제 그것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사옥을 이전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것도 임대가 아니라, 매입으로.

    “아아 여기 저도 가장 좋다고 생각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만큼 비싸서...”

    장 부사장은 늘 언제나 물건을 싸게 사려고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평생 투자자 생활을 해왔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나와는 조금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

    ‘자산이 매일 늘어날 것을 확신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장 부사장님.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카이게임즈 오늘도 4%상승 중인데요. 시총이 1조 6천억이니 우리 회사 지분가치가 300억은 넘게 올랐을 겁니다. 너무 싼 것만 찾을 필요는 없지요. 싼게 비지떡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장 부사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사장님.”

    “그러면 내일... 아니 오늘 당장 한번 같이 가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사장님.”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 부사장은 다음 안건을 꺼냈다.

    “그리고 다음 건으로. 지우엔터테인먼트는 권오혁 사장님 본인이 직접 관리를 하시겠답니다. 규모 상 본인이 해도 무리가 없는 정도라고 합니다. 사장님이 확인만 해주시면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편이 우리도 마음이 편하지요. 그렇게 하시라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래요. 그럼 가셔서 그 빌딩에 연락 해보세요. 오늘 우리가 보러 간다고. 언제 시간 되냐고.”

    “네 사장님.”

    장 부사장은 인사를 한 다음 자리를 떠났다. 지우엔터테인먼트 인수 건은 완만히 끝이 났다. 파는 사람이 빨리 팔고 싶어 하는 물건이다 보니, 돌다리만 몇 개 두드려 보면 따로 체크할만한 것이 없었다.

    ‘좋아 그럼 이걸로 6개가 되었군.’

    그랜드마스터 등급에 오르기까지 4개 더 남았다. 사실 이제 그 개수보다도 ‘시가총액 합이 10조.’라는 조건이 훨씬 더 중요했지만 말이다.

    ‘10조라... 카이게임즈, 현영제약이 각각 2조 이상을 찍는다 하면... 일시적으로 5조원 정도는 되겠는데’

    하지만 그래도 5조가 모자라다.

    ‘5조원짜리 회사...’

    가장 쉬운 방법은 인빅투스 인베스트 본사를 상장시키는 것이다. 기업공개모집. IPO. 코스피든 코스닥이든, 상장만 하면 2~3조의 가치는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요새 투자업계에서 내 명성이 자자했기 때문에 프리미엄은 꽤 두둑하게 받을 공산이 높았다.

    ‘지금도 자기 돈 맡아달라는 사람 많은데. 상장을 해버리면 우리 회사 주식 사고 싶어서 안달이 나겠지?’

    하지만 그건 싫다. 왜냐하면 그렇게 기업공개를 해버리면, 이름 모를 주주들과 이익을 공유해야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는 100% 승리만 한다. 당장 몇 조원 벌자고 다른 사람들 돈을 끌어들이느니 일단 내가 100%다 독식을 하면서 더 성장하고 싶다.

    ‘그럼 IPO는 됐고. 카이게임즈나 현영제약 같은 걸 한 두 개 더 인수를 하는 걸로...’

    그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든 생각에 이메일에 들어가 12달 뒤 뉴스를 클릭한 다음 주루루 스크롤을 내렸다. 그런 다음 랭킹 뉴스에 들어갔다.

    ‘요번 달은 안 썼었지.’

    랭킹뉴스.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기회. 솔직히 말하자면, 쓴다고 한들 제대로 뭐 하나 걸리는 게 없어서 12달 뒤에 뭐가 가장 핫한 뉴스인지 확인하는 차 쓰곤 했다. 12달 뒤에 가장 핫한 뉴스라면, 그게 어떤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신기술이든, 신제품이든, 신약이든. 돈이 될 지도 모르니까.

    ‘랭킹뉴스... 카테고리는... 경제.’

    나는 그걸 클릭한 다음 확인을 눌렀다. 그런데, 내 예상보다도 놀라운 뉴스가 떴다.

    ‘AI기업 퓨쳐싱크 무려 2조원에 아마존에 피인수’

    “퓨쳐싱크?”

    들어본 기업이다. 우리나라 IT천재들이 모여서 만든 AI기업,

    ‘근데 그게 2조원에 팔린다고?’

    기사를 보니 딱 12달 뒤 뉴스다. 나는 퓨처싱크를 검색해보았다.

    ‘퓨쳐싱크. 미래의 생각이 현실이 됩니다.’

    홈페이지 문구. 자본금은 50억. 비상장.

    ‘50억짜리 회사가 2조에 팔려? 그것도 아마존에?’

    1년 내로 엄청난 뭔가를 개발했다는 소리다.

    ‘이건 정말... 걸어 다니는 황금이로군.’

    12달 뒤 랭킹 뉴스에서 탑을 먹었을 정도니, 확실히 충격적인 뉴스긴 하다. 나는 그 기사를 클릭해서 전문을 읽어보았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였다. 아마존이 퓨쳐싱크를 100%지분을 매입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2조 2백억원 주고.

    ‘이건... 내가 먼저 사야겠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띠리리리~”

    전화기가 울렸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그걸 받아들었다.

    “사장님. 장 부사장님이 연락하셨습니다. 그 쪽에서 언제든 환영이라고 한다는데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 기사를 다시 한 번 훑었다. 기사는 다 외웠다 이미. 나는 창을 닫으면서 서 비서에게 말했다.

    “아 그래? 그럼 바로 외출 준비하시라 그래. 너희도 준비 하고.”

    “네 사장님.”

    *

    나와 장 부사장, 그리고 두 비서는 담당 직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빌딩을 돌아다녔다. 담당 직원은 40층 빌딩에서 1층부터 돌아다니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먼저 1, 2층.

    “보시다시피 1층은 은행과 카페가 장기 계약을 해놓았고요. 2층의 패밀리 레스토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위로는 다 사무실인데 공실은 거의 없고요”

    그 다음 26층, 30층. 36층.

    “저희 빌딩은 층간 15도 경사차양에 설치된 BIPV가 집광율을 높여서 태양광발전을 하는 친환경 빌딩으로... 마침 계약이 끝난 회사가 있으니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가 들어오셔서 26층부터 40층 사이에 골라서 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남는 층은 다시 임대 주시고요.”

    포트폴리오 때도 그랬지만 모든 층이 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구매를 결정했다. 특히 마지막으로 최상층 위의 펜트하우스를 봤을 때 말이다.

    “여기는 200평입니다. 보시다시피 헬스장, 스파, 수영장과 극장이 구비되어 있고요. 월세가 너무 비싸서 지금 몇 달 째 비어 있는데 대표님이 따로 임대를 구하셔도 되고, 아니면 회사 분들 중 누가...”

    담당 직원은 나를 보며, 웃으며 말한다.

    “대표님이 사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집안 곳곳을 돌아다녀 보았다 확실히 좋다. 마치 미국 셀럽들, 부자들 집처럼 해놓았다. 집안에 수영장, 테니스장, 헬스장, 스파까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다. 특히 야외 스파가 마음에 든다. 여기서 뜨거운 물로 목욕하며 와인 한잔과 야경을 바라보면 끝내 줄 것 같다.

    “이정도면 저희 빌딩은 다 보셨다고 해야합니다. 한 번 생각해보시고...”

    담당직원은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끊으며 말했다.

    “사겠습니다.”

    “네?”

    그 직원은 놀라서 내게 되물었지만, 나는 보다 더 분명한 말투로 말했다.

    “여기 사겠다고요. 계약 준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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