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33화 (133/198)

# 133

가든 로얄(2)

‘좋아 오늘 종가에 다 팔고 나가자.’

나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여 들고 있던 주식을 팔았다. 매도 체결. 계산을 해보니 오늘 번 돈은 대략 30억 정도다. 30억. 보통 사람은 평생 걸려도 벌까 말까한 큰돈인데도, 나는 그걸 보면서도 덤덤하다. 단지

‘으... 눈 아파’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비볐을 뿐이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다보니, 안구건조증이 심하다. 이건 직업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눈이 조금 풀렸을 무렵 나는 눈길을 돌려서 오늘 날짜를 확인해 보았다. 10월 26일. 10월도 벌써 막바지다. 요번 달 정산을 해보니 특히 성적이 좋아서 400억 정도 벌 것 같다.

내가 잘했다기 보다는, 12시간 뒤, 12주 뒤, 뉴스가 좋은 게 떴던 것뿐이지만. 그래도 나도 나름 발전을 해서 요새는 개별선물이나 옵션을 조금 씩 섞어서 수익률을 늘리고 있었다. 12시간 뒤 뉴스 특성상 개별선물이나 옵션을 활용할만한 뉴스가 자주 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보너스 용도로 써먹고 있었다.

조금 아쉬운 것은 해외 진출인데, 12시간 뒤 뉴스에서 나오는 뉴스들은 경제에 특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스페인 토마토 축제니, 중동에서 ISIS를 두고 벌어지는 전쟁이니, 멕시코에서 태어난 하얀색 송아지니 하는 뉴스가 너무 많은 비중으로 섞여 있어서 등급이 올라가 뭔가 바뀌지 않으면 당장은 효율이 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카이게임즈나 현영제약 같은 게 하나 떠야...’

결국 내 자산을 극적으로 불려줄 것은 그런 유니콘 같은 기업이었다. 전 세계를 제패할 게임이나, 신약을 만들 만한 그런 회사. 하지만 그런 뉴스는 나오질 않았다. 뭐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애초에 그런 회사가 매번 자주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런 회사가 내 눈을 피해가기도 어렵다.

거의 1년 동안 나오는 뉴스를 거의 다 보기 때문에 뉴스에 자주 언급될만한 회사는 결국 내게 포착이 되기 마련이다. 그 때까지 나는 조용히 현금을 축적해놓으면 될 것이다.

‘기회가 없음을 아쉬워하지 말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경계하라.’

라는 주식 격언이 있으니까.

‘그럼 오늘은 퇴근할까. 딱히 할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서 비서”

“네 사장님.”

“나 오늘 오후에 일정 없지?”

“네 없습니다.”

“그럼 나 퇴근할게. 박 비서랑 같이 퇴근 준비 해.”

“네 사장님.”

통화를 마친 나는 외투를 걸쳐 입은 뒤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두 비서 역시 퇴근할 준비를 모두 마쳐 있다.

“가자.”

“넵”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 비서에게 물었다.

“서 비서. 나 내일 일 있던가?”

“네 사장님. 신입사원 환영회. 그리고 우수사원 시상식이 있습니다.”

“아 그래... 모레는?”

“모레는 포츈 지 촬영과 인터뷰가 있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예전에는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 출근을 하는 날보다 많았는데, 요새는 반대가 되었다. 일정이 없는 날이 거의 없다. 관리하는 회사도 많아지고, 관리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많은 업무를 장 부사장에게 위임을 했다고 해도,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었으니까.

“포츈 지는 뭐래? 내가 국내에서 몇 번째 부자라고?”

“27위라고 하던데요.”

“그래? 27위.”

“네.”

그건 아마 겉으로 드러난 주식만 가지고 정하는 것일 것이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100% 지분. 1조 3000억. 물론 가지고 있는 개인 자산도 있긴 하지만. 그건 남들도 마찬가지니까. 아니 생각해보면 나는 드러나지 않은 자산은 적은 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부동산이라고 할 것도 없고, 현금 뭉치가 들어 있는 금고도 없으며, 어디 해외에, 페이퍼컴퍼니에 쟁여둔 자산도 없었다. 수성이니, 미래니, KJ니, LC니 우리나라에서 수십 년 간 거부로 살아온 사람들은 대한민국 곳곳에 차명으로 건물도, 땅도, 미술품도 많았으니까. 심지어 자기 회사 주식도 차명으로 가지고 있는 게 드러난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 ‘27위’라는 것은 부자들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이거야.’

라고 해놓은 돈을 가지고 비교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 따져보면 조금 더 낮을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정직하게, 가지고 있는 돈을 보여줬으니까.

‘아마 수연의 탁문수나 KJ의 장한설에 비하면 훨씬 적겠지?’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지난 해. 포춘지 국내 100대 부자

‘10등 탁문수 수연전자 부회장 3조 6400억원. 상속’

‘15등 장한설 KJ쇼핑 회장 2조 7800억원. 상속’

그 재벌 3세들은, 지금 포츈지에 나오는 돈도 2조, 3조정도 씩 되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닌 것이, 이들은 뒤에 붙은 대로 ‘상속’으로 부를 부여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탁문수는 아버지 탁우경 수연회장이 12조원을 장한설은 아버지 장철용 KJ회장이 10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 사람들 돈이 그들에게 갈 것이었다.

‘음...’

나는 집에 고이 모셔져 있는 가든 로얄의 초청장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제 나를 로얄 패밀리에 껴주시겠다... 그건가.’

나는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다. 거기에 참석할지 하지 않을지 말이다.

‘한 번 가서 만나봐? 그 쪽 사람들은 뭐하고 노는지?’

하는 생각과

‘보나마나 선민의식으로 뇌가 차 있을 텐데... 그 녀석들하고 이야기해서 뭐해?’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

10월 말. 나는 우리 집 주차장에서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크로우와 만났다. 크로우는 내게 평소보다 조금 얇은 보고서를 가져다주었다. 보고서 제목은

‘탁준기의 수연 그룹 내부 조사 자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보고서의 얇음에 조금 실망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수고 했어요 크로우.”

이건 크로우가 일을 해오지 못한 게 아니라, 탁준기의 조사가 부족했기 때문이니까.

“네 대표님.”

크로우가 신출귀몰하게 사라진 이후, 나는 바로 그걸 들고 우리집으로 들어와 그걸 읽어보기 시작했다. 크로우가 조사해온 자료, 정확하게 말하자면 탁준기가 조사한 자료는 얇았지만, 몇 가지 읽을 만한 게 있긴 했다.

‘수연화학 사장이 미녀 연예인 이혜신 스폰 중’

‘수연통신 사장은 FX선물거래로 300억 정도 날려’

‘수연전자 김찬용 이사는 반 탁문수 파 반역의 핵심 인물.’

‘수연패션 이준희 회장 반 탁문수. 내가 들고 나면 내 편을 들어줄 것’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수연 그룹을 공략할만한 수준의 정보는 되지 못했다. 특히 핵심적으로 탁문수에게 치명타를 입힐만한 정보 같은 건 없었다.

‘이것 가지고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걸 읽어 내려갔다.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러했다.

‘내 최종 목표는 수연이었어.’

라고 하던 탁준기의 그 말은 탁문수를 협박하기 위한 최후의 발악, 허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아무리 봐도 그렇다. 이것만가지고는 탁준기라고 해도 탁문수를 쓰러트리고 회장 자리에 오를 수가 없었다. 나는 머리를 굴렸다.

‘둘 중 하나야. 진짜 그런 게 없거나... 아니면 문서화 하지 않고 진짜 본인의 머릿속으로만 알정도로... 큰 비밀이었다는 것’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보고서를 넘겨보았다. 그런데, 마지막 장, 마지막 줄에 조금 특이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핵폭탄은 탁우경이 죽거나, 죽으려고 할 때 쏜다.’

“이건...?”

탁우경은 현재 수연그룹을 이끌고 있는 수연그룹 회장이다. TV에도 자주 나오는 우리나라 재계의 거물. 탁준기의 큰 아버지이자, 탁문수의 아버지. 그 말이 말하는 것은 분명했다. 탁준기는 어떤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탁우경이 죽고 탁문수가 전면으로 등장하는 순간, 승계과정에서 ‘핵폭탄’인 뭔가를 터뜨린 다음 본인이 승계를 받는다는 시나리오를.

‘탁우경이 몇 살이었지?’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그를 검색해보았다. 그의 나이는 71세. 백발에, 눈썹까지 완전히 하얀 백미白眉가 되었지만, 꼿꼿한 모습이 꽤나 정정해 보인다.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은데...’

하긴, 탁준기도 아마 이 시나리오를 짤 때 10년, 20년은 생각해두고 짰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한테 걸려서 손목이 잘리고, 탁문수에게 자살 당하게 됐지만 말이다.

‘하긴... 그 때가 유일한 기회라면 기회일 테지.’

대개 왕이 죽거나 죽으려 할 때는 나라가 뒤숭숭해지기 마련이다. 차기 왕권을 두고 왕자들끼리 싸움이 나니까. 대신들은 왕자들 뒤에 줄을 서고, 왕이 죽기 전부터 각 파당에서 목숨을 뻔 당쟁이 벌어진다. 최근 마성 그룹 전희중 회장이 좋은 예다, 낚시하다가, 낚시터에서 심장마비에 걸려 죽는 바람에 형제들끼리 왕자의 난이 벌어졌었다. 이제 내 물음은 다음으로 옮겨갔다.

‘그 쪽... 상속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우리나라는 상속재산이 30억 원을 넘어가면 최고세율 50%를 적용한다. 탁우경의 재산은 작년 포브스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10조원이 넘는다. 뭐 뒤에 얼마나 꼬불쳐 있는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어쨌든 드러난 주식만 봤을 땐 그렇다. 그리고 탁우경이 죽으면 10조 중 5조를 상속세로 내야만 한다. 수연그룹 주식을 팔아서라도.

‘그 때 공백을 노리면... 수연 그룹을 꿀꺽하는 것도 가능 할 수도 있다. 어려운 일이긴 하겠지만... 한번 알아볼 가치는 있겠군.’

나는 그 탁준기의 마지막 문장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확실하진 않지만, 어쩌면 탁준기의 계획을 실행해서 수연의 장이 되는 게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 묘한 인연이로군. 살아 있을 땐 악연이었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침대 메트릭스를 들어 올리고 그 문서를 거기다가 던져두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거기 남아 있던 문서에 눈이 간다. 바로 가든 로얄의 초대장. 나는 그걸 들고 다시 한 번 그걸 보았다.

‘11월 3일 토요일 저녁. 귀하를 초대합니다.’

약속 날짜는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그걸 보다가, 결심했다.

‘어쩌면 이것은, 수십 조 짜리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초대자는 장한설이었지만, 거기에는 분명, 탁문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거기 가서 그와 한 번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했다. 분명 잘 짜인 미소로 나를 대해 줄 테지만. 그래도 상상하는 것과 직접 만나보는 것은 또 다를 지도 모르니까. 나는 이어서 장소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수동면사무소’

‘아니 근데... 대체 여기서 뭘 한다는 거지? 면사무소에서?’

일단 만반의 준비는 해두어야 할 것이다. 일단 내 안위 측면에서.

‘음... 일단 박 비서와는 동행 필참. 그리고 그전에...’

*

저녁 9시. 나는 인물검색에

‘한상훈’

을 써넣었다. 물론 이것을 써넣었을 때, 걸리는 사람은 대개 국회의원 한상훈이다. 야권이 약해진 요즘 강한 발언력으로 여전히 잘 나가시고 있다.

‘좀 이번 한 번 만 비켜 갑시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검색’ 버튼을 눌렀다.

‘오!’

다행이도 내 기사가 먼저 뜬다. 12주 뒤 뉴스.

‘국내 27위 부자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 대표. 소아암재단에 직접 방문 30억 쾌척’

“아. 이거!”

지난 주, 인터넷 서핑하다가 우연히 본 소아암 환우 사연 때문에 30억을 내기로 마음을 먹고.

‘서 비서 괜찮은 날 있는지 알아봐.’

그런 말을 해뒀었는데. 이것 때문에 기사가 났나 보다.

‘내가 3주 뒤에 소아암재단에 가는구나...’

만약에 내가 저 모임에 참석했다가, 뭔가 잘못된다면 여기서 일단 ‘정정보도’가 올 것이다. 죽은 사람이 소아암재단에 ‘직접 방문’을 할 수는 없으니까.

‘좋아 이걸로 일단 내 안전은 확보 됐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가든 로얄의 초대장을 다시 메트릭스 아래로 던져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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