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30화 (130/198)

# 130

두 번째 출연

“에 그래서... 카이게임즈 지분을 사고 싶어한다고요?”

“네.”

“얼마나요?”

“15~20%정도. 그쪽 역시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판타지 워 그라운드에 대한 중국내 지배력을 강화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아아 여기가 원래 그런 식이죠.”

나는 책상 위에 올려 있는 문서를 들어올렸다. 거기에는 ‘텐센트’라고 쓰여 있다. 중국의 IT공룡. 2019년 10월 현재 시가총액이 무려 1260조원에 달하는 세계최대의 인터넷 기업. 텐센트는 자국내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해외의 다른 회사 지분을 사들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라이엇 게임즈, 클래쉬 오브 클랜의 슈퍼셀 등. 웬만큼 인기 있는 게임을 만든 회사에 텐센트의 돈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 판타지 워 그라운드가 글로벌 대박을 치고나니 그쪽에서 군침을 흘리는 듯하다. 나는 보고서를 내려다보았다.

“가격은 나쁘지 않네요?”

“네 사장님.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이정도면 꽤 많이 베팅을 했다고 봐야겠습니다.”

“음...”

나는 머리를 굴려보았다. 3월 오픈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판타지 워 그라운드는 지난 달 까지 출시된 지 6개월 만에 2천만장이 넘는 누적 판매고를 기록했다. 카이게임즈의 시가총액은 1조원도 훌쩍 넘어서, 지금 1.6조원. 거의 2조원에 다다르려고 하고 있었다. 게임 출시 전 카이게임즈 지분을 60%대까지 꽉꽉 눌러 담았던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지분가치 역시 1조원을 넘나들려고 했다.

‘그런데 1.6조원 20%로 하면 3200억인데... 이걸 5000억 주고 사시겠다라...’

나쁜 제안은 아니다. 우리 회사도 여기서 자금을 회수해서 다른 곳에 쓸 필요도 있었다. 신동우 사장님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차기작이 판타지 워 그라운드처럼 잘 나가리란 보장도 없고 말이다.

‘팔긴 팔야겠는데...’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 문서를 장 부사장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일단. 검토해보겠고 질질 끌다가 거절하세요.”

“네?”

“엑시트(투자금액을 회수하는 행위)타이밍은, 내년 중순정도로 합시다. 아직 플레이스테이션이나 XBOX등 콘솔용 버전 출시도 남아 있고, 그 때까지는 스팀에서 더 많이 팔릴 것 같으니까요. 지금 팔면 조금 일찍 파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나는 이미 12달 뒤 뉴스에 인물검색을 해놔서 알고 있었다.

‘카이게임즈 신동우 대표. FWG스팀 4천 만장 판매 돌파에 본인도 놀라.’

판타지 워 그라운드는 아직 덜 팔렸다. 반년에서 일 년 정도 지나면, 카이게임즈 주가는 더더욱 뛰게 될 것이었다. 최소 2.5조에서 어쩌면 3~4조까지도.

“그 때가서 다시 한 번 이야기 해보죠.”

“그러면 말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사장님.”

“그래요.”

장 부사장이 사장실을 나간 뒤, 나는 잠시, 탁준기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는 카이게임즈 5%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 저기 작전 같은 거 하지 않았더라도, 이것만 가지고 있었으면 2천억 정도 벌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탁준기 역시 나름 스토리가 그려진다. 왜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었는지. 나는 여전히 생생한, 그의 대사를 떠올렸다.

‘있지. 잘 들어. 내가 다른 회사 정보만 캐고 다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내가 지난 20년간 어느 회사보다도 치밀하게 조사를 해온 것이 바로 우리 회사. 수연이다. 애초에 그렇게 돈을 끌어 모았던 것도. 수연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어. 내 최후의 작전 대상은 수연이었단 말이다.’

내가 가든 엔비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재벌 3세가 주식 투자를 해? 역시 재벌 3세도 돈이 궁한 모양이로군.’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 역시 돈으로 사고 싶은 게 있었다. 바로 수연그룹. 대원일보 이원재 이사도 그랬지만, 대기업 총수의 적자로 택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그런 박탈감 혹은 열등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탁준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탁문수 생각도 난다. 뒤에서 눈 하나 깜딱 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데도, 앞에서는 칭송을 받는 자.

‘어쩌면 그럴 수가 있지?’

그는 완벽하게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때도, 탁준기를 상대하는 내내 거의 표정변화가 없었다. 딱 한 번.

‘내가 법원에 서기 전에 수연전자 부회장의 치부를 다 불겠어.’

탁준기가 그를 위협했을 때, 딱 한번. 얼굴에 분노가 서렸을 뿐이다. 그것도 금새 사라졌지만.

‘음 얼음장 같은 사람... 하지만 반대로 아무리 그래도 치부는 있다 그거로군.’

나는 그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쩌면, 그 ‘치부’가 다시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탁준기도 그것 때문에 내게 무릎을 꿇었으니까. 나는 탁자를 툭툭 치면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크로우를 쓸 만한 데가... 이런 쪽 밖에 없군. 과거의 정보만 캐오니 돈이 되질 않으니... 어디 숨겨져 있는 정보를 캐오는 것 밖에는.’

나중에, 뭔가 상황이 바뀐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이쪽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메일에 들어가서 12시간 뒤 메일을 열고 맨 아래, 크로우 소환 링크에 커서에 가져갔다.

‘크로우를 부르시겠습니까?(1회 남음)’

이번 달도 기회가 돌아와 있다. 한 달에 한 번. 딱히 다른 곳에 보낼 것도 없으니, 여기다가 써야겠다.

‘소환할 위치와 시간을 정해주십시오.’

나는 거기다가 바로 내일 저녁을 써내다가, 문득

‘사장님. 내일 MBE 촬영입니다.’

서 비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촬영이 정확히 언제라고 했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서 서 비서에게 물었다.

“서 비서.”

“네 사장님”

“내일 촬영 언제부터 언제지?”

“오후 1시 시작이니까요. 늦어도 5시 즘엔 끝나지 않을까요?”

지난 번 첫 출연 했을 때 대략 3시간 정도 촬영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이번엔 두 번째 촬영이어서 내가 더 익숙하니, 그보다 적게 걸릴 것이다.

“아아 그래.”

통화를 마친 나는 거기다가 내일 저녁 6시를 써놓고

‘장소는...’

잠시 고민하다가, 잠원한강공원. 이라고 써 놓았다. 이걸로 됐다. 내일 크로우에게 속은 살인자요, 겉으로는 인격자인 탁문수의 속을 알아오라고 시킬 것이다.

*

“MBE 수퍼개미를 만나다. 2019년 10월 첫 번째 주 게스트는. 최근 투자 업계 최고의 스타지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CEO 한상훈 씨입니다.”

박수 소리와 함께, 나는 앞으로 나아가 무대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반대편에는 젊고 아름다운 여MC 그리고 긴 구레나룻의 남MC가 앉아 있다. 지난번과 똑같다. 다행이다.

‘복수할 수 있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빙그레 웃으며 인사를 했다. MC들과 방청객들과, 카메라에.

“지난 1월에 이어 올해 두 번 째 초청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여 MC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바빠서 조금 힘들지만요.”

그의 말에 남MC가 받는다.

“아유 바쁘신 것도 복이십니다. 복. 요새 회사의 성장세가 엄청 나셔서 그러신 거잖아요.”

대본을 읽는 것뿐이지만, 그 역시 태도가 많이 달라져 있다. 지난 번

‘1조? 5년 안에? 웃기고 있네.’

했던 그였지만,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가 가진 지분 가치는 이미 1조가 넘어 있었다. 여 MC는 카메라를 보며 말한다.

“지난 번 소개시켜드렸을 때, 자본금 50억으로 시작해 수개월 만에 15배. 가지고 회사의 지분가치만 750억이 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기적과도 같은 스토리를 전해드렸었는데요. 오늘 더 놀라운 사실을 전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지분 가치는 무려 1조 4300억.”

그 엄청난 금액에 다들 놀란다.

“역으로 계산해보면 대략 19배정도입니다. 지난번보다 더 큰 성장을 이루셨어요.”

여 MC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 MC가 그걸 받는다.

“대단하십니다. 정말. 정말 대단하셔요. 제가 경제전문TV 12년 방송했는데... 거의 최고의 성적을 내신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본에 없는 애드리브. 왠지 그는 알아서 저자세로 바뀌어 있다. 나 역시 대본에 없는 애드리브로 엿이나 한 번 먹여주려고 했는데, 먼저 알아서 기어버리니, 그러기가 약간 꺼려진다.

“예견 했던 대로, 투자계획이 맞아떨어져서 다행입니다.”

“투자계획. 시청자들에게 어떤 것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에... 사실 여기서 말하면 두 번째인데... 저는 1월 달에도 말씀을 해드렸었습니다. 올해 어떤 종목이 유망할지요. 1월 달 방영분을 보여드렸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 말을 하면서 카메라쪽을 기웃거렸다. 물론 이건 대본에 있는 것이다.

‘(카메라 쪽을 기웃거리며)사실 여기서 말하면 두 번째인데’

라는 식으로. 내 대본에 이어서 여MC가 그걸 받는다.

“그럼 잠시, 참고자료 보시겠습니다.”

그러자 1월달. 방영되었던 내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이런 말 하면 조금 그렇지만... 저희 회사가 투자한 두 회사 모두 유망합니다.’

‘OH엔터테인먼트와 카이게임즈요?’

‘네. 둘 다 올해를 기점으로 폭풍 성장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심지어 클로징 멘트는 그것이었다.

‘올해 OH엔터테인먼트와 카이게임즈. 주가를 지켜보세요.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남MC가 그걸 보며 혀를 내두른다.

“네... 진짜. 그 때 방영 이후로, OH엔터테인먼트는 2배. 카이게임즈는 10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1월 분 방송 보시고 투자하신 시청자분들? 계십니까? 대박 나셨겠어요!”

남MC는 그렇게 말하지만, 솔직히 그걸 따라서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식 방송까지 챙겨보는

닳고 닳은 주식투자자들이 30살 먹은 어린놈이 와서 이거 사라 저거 사라 한다고 한들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물론 내 말을 믿은 소수는 대박이 나긴 했을 것이다. 여MC가 내게 묻는다.

“그 때, 자신감 있게 추천해주셨는데. 그게 다 적중하셨어요.”

“네.”

“그러면 혹시 오늘은 추천해주실만한 게 없으실까요?”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글쎄요. 저는 그 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투자한 종목 외에는 딱히... 잘 몰라서 이번에도 제가 산 종목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지난 번 종목과 함께 블루E&M과 현영제약이 포트에 추가되었는데요...”

그 말을 하는데 방청객 몇몇이 갑자기 푹 고개를 숙인다. 다들 휴대폰을 보는 모양새다.

“제 생각에 이 두 종목 역시 몇 년 대로 급등을 할 수 있는 그런 종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MTS가 잘되어 있어서 그걸로 매매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오후 1시 30분. 아직 한창 장이 열렸있을 때다. 내가 지금 방송촬영중이라 MTS를 켜서 볼 수는 없지만, 아마 지금 당장 블루E&M과 현영제약 주가가 조금은 올라갔을 것이다. 방청객 몇 명이 바로 사재껴서. 생각해보면 현명한 일이다. 내가 아는 정보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게 방송에 나가면

‘한상훈 대표가 이거 찍었더라’

하는 것 때문에 따라 살 개미들이 꽤 됐으니까. 지금 먼저 나 따라 사면 그것도 빠르게 사는 것이다.

‘참 약삭빠르신 분들이네.’

나는 그들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계속해서 녹화를 진행했다.

*

녹화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녹화가 끝나고 남MC가 먼저 와 개인적으로 인사를 한다.

“어유 대표님. 제가 지난 번 방송에서는 무례했습니다.”

결국 나는 남MC에게 한마디 쏘아주지 못했다. 촬영 내내 ‘대표님, 대단하십니다. 휼륭하십니다.’를 연발하는 마당에. 아무리 그래도 웃는 얼굴에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아 네. 뭐...”

그런 식으로 그냥 그를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어서 여MC도 내게 와 인사를 건넨다.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대표님”

그녀 이름은 신민선이다. MBE의 단발여신. 눈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찰랑거리는 게 예쁘긴 하다. 아무래도 미녀에게는 친근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네 민선 씨도 수고 많으셨어요.”

그런데 그 때, 그녀가 내게 다가오더니, 뭔가 하나를 건넸다.

“저 이거.”

나는 그걸 받아 들었다. 그것은

‘MBE 아나운서 신민선’

그녀의 명함이다. 내가 그것을 든채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살짝 윙크를 하며 소리 내지 않고

‘연락주세요.’

입을 뻥긋거렸다. 그리고 내가 뭐라고 하기 전에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반대쪽으로 사라져 갔다.

“허 참...”

내가 그 걸 들고 어안이 벙벙해 서 있는데, 서 비서가 다가와 말했다.

“대표님.”

나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명함은 주머니에 쑤셔 두고 그에게 물었다.

“응?”

“저. PD님이 그러시는데... 국장님이 여기 오셨다고, 대표님 잠깐 만나 뵙고 싶어 하신다고 하네요.”

“MBE 국장이?”

“네.”

‘언론사와는 친하게 지낼 것’은 우리 회사 모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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