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29화 (129/198)
  • # 129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앞으로 김 이사님이 블루E&M의 새 대표로서, 회사를 이끌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말에, 내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눈이 커진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연신 인사를 해댔다.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내게 폴더인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김정균 이사다. 지난 번 블루E&M 방문 당시에 내게 찰싹 달라붙었던 바로 그 사람. 안용균 전 사장의 급작스러운 퇴임 이후, 혼란스러운 회사 내부를 수습하고, 다시 회사를 이끌어나갈 사람으로, 낙점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한손으로 악수를 건넸다.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황송하다는 듯 양 손으로 내 손을 붙잡는다.

    “네 사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연봉협상 같은 세부적인 절차는 장 부사장님과 이야기 하시면 될 겁니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서 밖에 있는 서 비서에게 말을 전했다.

    “서 비서.”

    “네 사장님.”

    “김 이사... 아니 김 사장님 장 부사장님에게 안내해드려.”

    “네 사장님.”

    “아 그리고, 돌아올 때, 장근이 좀 내 방으로 데려와 줘 할 이야기 있으니까.”

    “네 사장님.”

    나는 김 이사에게 문 밖으로 손짓을 해보였다. 김 이사는 다시 한 번 내게 폴더인사를 하고 사장실 밖을 나선다. 그를 내보낸 나는 그대로 창가 가까이 가보았다. 오늘은 날씨 참 좋다. 가을 하늘은 화창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팔짱을 끼고 서서 그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멀리 솟아 있는 남산, 유유히 흐르는 한강, 도로를 오가는 차들 그리고 햇빛을 반사하고 있는 빌딩들. 그런데, 그 높은 빌딩을 보던 중이었다. 문득

    ‘끄아!’

    어둠 속으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사라진, 탁준기가 떠오른다.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을 꿈이라고 한다면, 악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탁준기가 악인이고, 적이고를 떠나서 그렇게 사람 죽는 것을 생생하게 보다니, 한동안은 그 광경이 뇌리에서 잊히질 않을 것 같다.

    허공 위로 날아가며 공포에 질린 탁준기의 얼굴, 그리고 그를 던져놓고 돌아서던 정보성. 그의 비서 얼굴을.

    ‘...그 비서...’

    나는 비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탁준기의 멱살을 잡은 채 던지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

    ‘이사님. 당신이 나 언제 사람취급이나 해주셨소?’

    생각해보면, 탁준기는 다른 사람 무시하던 그 본성이 스스로의 목숨을 죈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음... 그 비서... 이름이 정보성이라고...’

    지금 돌이켜 보면 그와는 여태 여러 번 만났었다. 예전에 탁준기와 처음 만났을 때 카페에서도 있었고, 서울시장 시상식 때도 주차장에서 만났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에는 이 사장실 바로 밖에서, 사장실 안으로 들어오려다가 장근이에게 막혀서 들어오질 못했다. 생각해보니 살인자하고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소름이 돋는다.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물이로군...’

    하지만 어쩌면, 그와 다시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이 탁준기보다도 탁문수와 어떻게 더 가까운 지는 잘 모르겠지만. 탁문수가 꿈에서 중얼거렸던 대로

    ‘흐음 그래? 한상훈이라... 재밌는 녀석이로군. 나도 한 번 만나봐야겠는걸.’

    탁문수의 곁에 서 있는 그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

    ‘똑똑’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창 밖에 시선을 둔 채로 크게 말했다.

    “들어와.”

    곧 문을 열고, 서 비서와 장근이가 들어온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그런데, 지금 장면이 묘하다. 빌딩 안, 서 있는 사장과, 그의 경호원. 그 모습이 왠지 다시 한 번 더 그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돌아섰다.

    “야 장근아.”

    “네 사장님.”

    “넌... 나 배신하지 마라.”

    내 말에

    “네에? 그게 무슨...”

    장근이는 눈을 크게 뜬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오늘부터 정직원으로 삼을까 해서 말이야.”

    “정직원이요?”

    “그래. 너도 비정규직으로 두 달 있었잖아. 이제 제대로 계약하고 나한테 월급 받아가라.”

    그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 네! 사장님.”

    장근이가 일을 하는 두 달 동안, 별일이 생기진 않았지만, 나는 그래도 장근이를 곁에 두기로 했다. 그 존재 자체가 도움이 될 때가 있었으니까. 어쩌면 두 달간 별일이 생길 수도 있었는데, 그가 있어서 일어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뭔가를 실행하려고 했는데 장근이를 보고, 쫄아서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연봉은... 일단 1억으로 맞춰서 시작할게. 명절 보너스나 년말 보너스 같은 건 그 때 그 때 내가 기분 내키는 대로 주는데... 서 비서에게 대충 들었지? 부족하진 않을 거야.”

    정말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때 그 때, 주식에서 번 돈이나, 회사 실적가지고 보너스를 지급하는데, 대개 몇 백억씩 벌리는 게 일상이어서, 서 비서든 장 부사장이든, 핵심 측근에게는 수천만 원씩 덥썩덥썩 쥐어주곤 했으니까.

    “아 네 사장님.”

    “그리고 칭호 문제가 있는데... 매번 장근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박 경호원? 그렇게 하면 조금 긴 것 같고... 그래서 그냥 제 2비서로 삼으려고.”

    “제 2비서요?”

    “응. 뭐 근데 업무는 똑같이 하고, 그냥 호칭만. 박 비서로 하는 걸로. 내가 편해서 그래.”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나는 옆에 있는 서 비서에게도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서 비서도 들었지. 그렇게 해줘? 두 사람 모두 평소대로 서 비서는 업무보조를 담당하고, 박 비서는 경호 담당을 하는 것으로.”

    “네 사장님.”

    “그래. 그럼 두 비서 모두 잘 부탁하네.”

    내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다. 이 두 사람을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아랫사람을 둘 때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충성심이라는 것 말이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그 능력이 온건히 나에게 쓰이지 못한다면 좋은 부하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능력이 좋고 충성심이 낮다면 오히려, 주인에게 해가 될 때도 있다. 나는 문득

    ‘여포, 미방과 부사인, 범강과 장달, 맹달’

    삼국지에 나오는 배신자들 이름을 떠올렸다. 배신자는 능력 고저에 상관없이 들이지 않는 게 낫다. 안용균 사장처럼 발견되면 즉시 처리하고 말이다.

    “그럼 나가봐.”

    “네 사장님.”

    두 비서는 내게 인사를 하고 사장실을 나간다. 두 사람에게 장점이 있다면, 다름 아닌 나와 공유한 시간들이다. 박 비서, 장근이는 나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적, 5살 6살 때부터 동네에서 같이 놀면서 큰 녀석이다. 유도도 같이하고, 내가 고등학교에 가기 전 10년은 같이 지낸 동네 동생이다.

    그리고 서 비서, 지훈이는 대학교 2학년 때 동아리에서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딱 10년, 같이 술도 먹고, 동아리도 하고, 군대도 갔다 오고 창업도 같이 해본 학교 동기다. 두 사람 모두 어렸을 적부터 좋은 모습, 부끄러운 모습 모두 보고 보여주고 지내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두 사람은 정말 믿을만한 사람들이다. 내가 돈이 없던 시절부터 나와 인간적으로 교류를 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내게... 관우와 장비... 아니 아니지 그보단 제갈량과 조운? ’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 전화기가 울렸다. 제갈량에게서

    “사장님.”

    “응?”

    “장 부사장님께서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아 그래 들어오시라 그래.”

    곧 문을 열고 장 부사장이 들어온다.

    “그래요 김 이사와는 만나보셨습니까?”

    “네 사장님. 말씀하셨던 연봉보다 조금 낮게 불렀는데, 반색하면서 승낙했습니다.”

    “음 역시 제가 너무 많이 불렀던 가요?”

    장 부사장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사장님.”

    그는 내가 누구든 연봉을 너무 높게 책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장 부사장 본인에게도 말이다.

    “네 잘하셨네요. 본인이 만족하면 됐지요. 우리 회사는 돈 아끼고요.”

    “네 사장님.”

    “취임식은 어떻게 할까요?”

    “작게 하지요. 안용균 사장이 좋지 않게 나간 마당에 성대하게 잔치하고 싶지는 않군요. 어디 좋은 곳 잡아서 저녁 식사 정도 합시다. 그쪽 이사들 불러서요. 거기서 제가 김 사장 어깨 한 번 주물러 주고. 취임식은 거기서 알아서들 하는 것으로”

    “네 사장님.”

    장 부사장은 고개를 숙이고 사장실을 나서려고 했다. 나는 그런 그를 붙잡았다.

    “아 장 부사장님.”

    “네?”

    “몇 개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말씀하시지요.”

    “그 수연그룹 탁준기 사망했다는 뉴스는 들으셨지요?”

    “네 물론입니다.”

    “혹시 무슨 이야기 들려오지 않던가요? 뭐 뒷이야기나... 수연그룹 쪽의 반응이나... 그런 것들이요.”

    나는 사건의 내막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굳이 장 부사장에게 물어보았다. 세간에는 어떻게 이야기가 돌고 있나 해서.

    “제가 듣기로는...”

    장 부사장은 잠깐 말꼬리를 흐리다가, 내게 물었다.

    “사장님 혹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읽어보셨습니까?”

    “아 알지요. 그 학교에서 짱인 엄석대가 다른 애들 괴롭히다가 왕따 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네 그 글 결말을 보면, 주인공이 경찰에 잡혀가는 엄석대를 보면서 그런 말을 하지요.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하고요. 딱 그런 반응이라고 합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나는 그의 말을 따라 말해보았다.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네. 워낙에 어렸을 적부터 그룹 내에서 사고를 치고 다니던 사람이어서... 몇 번 투자 잘해서 돈을 불렸다곤 했는데... 최근 이런 저런 일들 겪으면서 빚도 지고 범죄자로 몰린 끝에 자살을 한 것으로요. 수연 그룹 내에서도 최대한 입단속을 하긴 하지만 그쪽도 반응은 비슷하다고 합니다.”

    “음... 그렇군요...”

    “네, 더 물어보실만한 것이 있으신가요?”

    “아 네. 한 가지만 더 물어보죠. 그 수연전자의 탁문수란 사람은 평판이 어떻습니까?”

    그런데 살짝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그분은 대단히 훌륭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영적 감각도 뛰어나고, 용병술도 뛰어나셔서 윗사람들에게는 일찍이 그룹 후계자로 찍혔고, 아랫사람들도 알아서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듣기로는 성품도 대단히 좋으시다고... 재벌 3세답지 않게 평사원들에게도 아주 잘해준다고 합니다.”

    “아...아... 그래요오?”

    “네. 그래서 투자업계 쪽에서는 그런 말도 돕니다. 수연전자 그리고 수연그룹 전체를 탁문수 보고 투자를 할만도 하다. 뭐 그런식으로요. 아무래도 사업이라는 게 업황도 중요하고,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니까요.”

    “음... 그래요. 그렇지요...”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에게 말했다.

    “그러면, 나가서 일 보셔요.”

    “네 사장님.”

    장 부사장이 문 밖으로 나서고, 다시 나혼자 사장실에 남게 되었을 때, 나는 포털사이트에다가 탁문수를 써놓았다. 익숙한 얼굴. 꿈에서 봤던 바로 그 얼굴. 수도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탁탁 치던 그의 모습이 여전히 선하다.

    ‘이 사람이... 성품이 대단히 좋다고?’

    장 부사장은 정말 업계 정보라면 빠삭한 사람인데,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혀를 내두르면서 그 포털창을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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