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28화 (128/198)
  • # 128

    까마귀 꿈(2)

    “한상훈 그 놈. 그 놈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사촌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한다.

    “음... 한상훈이라... 들어 본 것 같기도...”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라고, 작은 회사 굴리는 녀석이야.”

    인빅투스 이름이 나오니, 그 사촌형은 그제야 아는 척을 한다.

    “아아 인빅투스? 거기 무적투자인가 뭐시긴가? 나도 이야기 들었어. 뭐 손을 대는 대로 족족 벌어들인다고? 게임? 그런 걸로. 그 사람이 뭐 일반인이라고?”

    일반인. 이 사람들에게 일반인과 아닌 사람들이 따로 있나보다.

    “응. 그냥 시골에서 도장 운영하는 촌놈의 아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컸는지...”

    그걸 듣던 나는 한 가지 후회를 했다. 지난 번 12시간 뒤 뉴스를 보고

    ‘지금 전화하면 살 지도...’

    단 한 순간이라도, 저 녀석을 살리려고 했다는 것을. 사촌형은 그 명칭을 그대로 받아서 탁준기에게 묻는다.

    “그 촌놈의 아들이랑은 어떻게 엮이게 됐는데?”

    “...말하자면 길어. 맨 처음 만난 가든 엔비에서였는데...”

    그 때, 그 사촌형은 피식 웃으며 말한다.

    “너 그거 아직도 하냐? 그 카피 쇼를?”

    그는 가든 엔비를 카피 쇼라고 한다.

    ‘오리지날이 따로 있단 말인가?’

    탁준기는 입술을 우물거린다. 사촌형의 지속적인 무시에, 그도 화가 난 듯하다. 표출을 못할 뿐이지.

    ‘어딜 가서도 왕처럼 굴던 녀석이 하고 싶은 말 참느라 힘들었겠군.’

    “...어찌되었든. 그래. 그 천한 녀석이 나를 엿 먹인 거야.”

    “흐음 천하의 탁준기 씨가 일반인한테 정보전에 밀리셨다... 그건 내가 봐도 이상한 일이로군.”

    “그 녀석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어. 어떻게 검찰을 구워삶은 건지... 기자들을 구워삶은 건지... 내가 완벽하게 틀어쥐고 있다고 생각한 정보를 다 알고 있었어.”

    “흐음 그래? 한상훈이라... 재밌는 녀석이로군. 나도 한 번 만나봐야겠는걸.”

    사촌형이란 작자는 앞에서 애원하는 탁준기보다도 내게로 관심이 완전히 돌아서 있다. 탁준기는 그에게 재차 말한다.

    “일단 살려만 줘 형. 빚은 내가 금방 갚을게 알잖아 형도. 나 원래 잘 하는 거. 단지 이번 한번... 잘 못 실수를 했을 뿐이야.”

    사촌형은 차가운 말투로 말한다.

    “두 번이잖아. 비상개발 때 한 번. 그리고 블루E&M에서 또 한 번”

    “두 번째는... 내가 너무 급했어. 복수에 눈이 멀어서... 너무 급하게 일을 추진하는 바람에...”

    “이유야 어찌되었든. 두 번이면 충분하지 않니? 만약에 할아버지가 살아계셔서 지금의 널 봤다고 하면 어땠을까? 첫 번째는... 할아버지도 봐 주셨을 지도 몰라. 물론 일반인이였다면 한방에 아웃이지만 귀여운 손자가 그랬다니 한 번은 봐 주셨겠지 하지만 두 번이라... 두 번은 안 되지. 할아버지도 이걸 보셨다면 아마...”

    그는 오른쪽 손을 길게 들어 수도手刀를 만들어 자신의 왼쪽 손목을 툭툭 치며 말했다.

    “사인 보내셨을 거야.”

    그걸 본 탁준기의 눈이 크게 뜨인다. 뭔지는 모르지만, 절연, 혹은 그에 준하는 처치일 것 같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준기야.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때부터 늘 이겨 오셨던 분이다. 광복군, 미군, 군부독재자, 민주주의자 상대로 늘 승리해오셨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수연을 만들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승리의 DNA를 물려받아 태어난 사람들이야. 그런데 패배라니... 패배는 일반인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다. 이제 넌 수연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탁준기는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했다. 그는 악의에 찬 눈빛으로 사촌형을 노려 보며 말했다.

    “그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그만해! 날 도와줄지 안 도와줄지. 그거나 말해.”

    하지만 사촌 형이란 사람은 그걸 보고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좋은 변호사. 집유껴서 7년. 거기까지다.”

    “못 받아들이겠다면?”

    사촌형은 피식 웃으며 말한다.

    “못 받아들이면, 너한테 다른 옵션이 있어?”

    탁준기는 안광을 번뜩이며 말했다.

    “있지. 잘 들어. 내가 다른 회사 정보만 캐고 다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내가 지난 20년간 어느 회사보다도 치밀하게 조사를 해온 것이 바로 우리 회사. 수연이다. 애초에 그렇게 돈을 끌어 모았던 것도. 수연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어. 내 최후의 작전 대상은 수연이었단 말이다.”

    ‘아...’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입을 크게 벌렸다.

    ‘수연을 삼키려고 했다고?’

    지금은 까마귀 상태니까 부리를 벌리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탁준기 생각보다 야망이 큰 남자였다. 금수저로 태어나서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은 것도 이해가 간다. 왕자의 난. 진심으로 수연을 공략하려고 했다면, 종국에는 결국 돈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도 여기서 포기할게. 수연의 자리는 형에게 주고, 다시 넘보지 않겠어.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도와줘.”

    “거절한다면?”

    “내가 법원에 서기 전에 수연전자 부회장의 치부를 다 불겠어. 내가 조사했던 것 모두를!”

    그 말에, 수연전자 부회장. 그의 사촌형 탁문수의 한쪽 눈이 커진다. 여태 단 한 번도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그였는데, 그의 눈에서 살짝 분노가 서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원래 그 심드렁한 얼굴로 돌아와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탁준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탁준기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준기야. 한 가지만 말하자. 네가 패배한 이유는 아마 그것 때문일 것이다. 네 감정을 다 말하고 다니는 거. 그렇게 네 감정을 다 흘리고 다니니까. 천한 놈들에게 쳐 발리는 거다. 칼날을 드러낼 때는 반드시, 확실히 이기는 카드를 가졌을 때 드러내야한다. 아니면, 역습을 당할 수 있으니까.”

    나는 문득,

    ‘개돼지들!’

    내 앞에서 그렇게 대놓고 말하던 탁준기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런 말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단지 그를 재수없는 재벌3세 정도로만 여겼을지도 모른다. 탁문수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이어서 한 마디를 더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나를 위협하려면, 조금 더 확실한 요건을 갖추고 나서 위협을 했어야지. 그렇게 천둥벌거숭처럼, 분노에 차서 나에게 칼을 들이 밀면. 내가 무서워하겠니? 우스워하지.”

    말을 마친 탁문수는 그에게서 걸어 나와 그의 반대편에 선다. 그러자, 여태 뒤에서 멀뚱멀뚱하게 서 있던 탁준기의 비서. 그가 탁문수의 뒤에 선다. 마치 호위무사처럼. 탁문수는 탁준기에게 말한다.

    “적의란 완벽하게 승리한 상태에서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야.”

    탁준기는 놀라서 탁문수와 자신의 비서를 번갈아 본다. 탁문수는 이제 대놓고 말한다.

    “너,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니? 만나 달라 부탁 받은 사람이, 그것도 수연전자 부회장이 왜 일부러 수연여행 빌딩 옥상까지 왔을까? 너를 생각해서? 법정에 서게 된 사촌동생이 불쌍해보여서?”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나는 너, 어렸을 적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똥밭에서 구르는 게 싫다면, 저승으로 가야겠지. 잘 가라.”

    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던 탁준기의 비서에게 손짓을 해보였다. 오른손으로 수도를 만들어서, 왼쪽 손목을 탁탁 치는 바로 그 손짓. 그러자 그 거한은 바로 탁준기를 향해 걸어간다. 탁준기는 놀라 탁문수와 그의 비서를 번갈아본다.

    “아니... 뭐... 이게... 너...”

    그럼에도, 그의 비서는 탁준기를 향해 계속 걸어간다.

    “보... 보성아. 왜 이래. 넌 내 비서고, 보디가드 잖아. 왜...”

    탁준기는 뒷걸음치지만, 얼마가지 못해 그의 비서에게 목덜미가 붙잡혀 들어 올려진다. 그는 그를 붙잡은 채로 난간으로 들고 간다. 탁준기는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그에게

    “보... 보성아... 제... 제... 발”

    말한다. 하지만 그 때, 그 비서가 딱 한마디를 한다.

    “나도 한 마디만 합시다. 이사님. 당신이 나 언제 사람취급이나 해주셨소?”

    “아...”

    탁준기는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비서는 더 듣지도 않고 공원의 테두리에 있는 안전봉 위로 그를 내던져 버렸다.

    “끄아!”

    높은 비명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가, 탁준기가 낙하하며 금세 잦아든다. 끔찍한 일이다. 탁준기의 비서는 탁문수에게 돌아와 고개를 숙인다.

    “시키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부회장님.”

    “응. 나도 봤어. 잘 했다. 카메라는 확실히 재워뒀지?”

    “네.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유서는?”

    “준비해두었습니다.”

    탁문수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래. 망나니 밑에서 비서노릇 하느라 수고 많았다. 내가 보상은 제대로 해주마.”

    탁준기의 비서는 탁문수에게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한다.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그럼, 시끄러워 지기 전에 빠져나가자.”

    “네.”

    탁문수는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다가, 내가 있는 쪽을 보더니, 잠시 멈춘다.

    “으음?”

    탁준기의 비서가 그에게 묻는다.

    “왜 그러십니까? 부회장님.”

    나는 여태까지도, 그가 나를 본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그가 한 마디를 한다.

    “아니 왠... 까마귀가 여기?”

    나는 그제야, 그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놀라 눈을 크게 떴고, 동시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헉헉...”

    ‘쿵쾅쿵쾅’

    심장소리가 내 귀까지 울리는 듯하다. 나는 쓰고 있던 안대를 벗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욕을 했다.

    “이런... 시발.”

    살인사건을 직접 눈으로 본 충격 때문인지, 안대의 효과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어둠이 가라앉아 있다. 나는 이어서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시간은 오전 6시 48분. 잠에 들려고 노력했던 것이 10시였으니 대략 7시간은 넘게 잔셈이다. 나는 그 안대를 들어보았다.

    ‘이거... 진짜잖아.’

    그게 진짜인지, 아니면 만들어진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생생한 꿈이었다. 현실과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나는 그 설명서에 쓰여 있던 문구를 떠올렸다.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이라면. 인간에게 남은 것은 이야기뿐이다.’

    나는 몸을 벌벌 떨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침대 시트를 들고, 그 아래에서 크로우의 보고서를 들어보았다.

    ‘탁준기의 사망사건에 관한보고.’

    거기에는 방금 봤던 내용들이 자필로 쓰여 있다.

    ‘살해를 지시한 사람, 수연전자 부회장 탁문수’

    ‘살해를 실행한 사람, 탁준기 이사 비서 정보성.’

    ‘살해한 장소 – 수연여행 옥상 위, 살해한 시각...’

    그 뿐만이 아니라, 그의 대사들도, 모두 기록되어 있다. 마치 영화의 대본처럼.

    ‘탁준기 : 있지. 잘 들어. 내가 다른 회사 정보만 캐고 다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내가 지난 20년간 어느 회사보다도 치밀하게 조사를 해온 것이 바로 우리 회사. 수연이다.’

    ‘탁문수 : 준기야. 한 가지만 말하자. 네가 패배한 이유는 아마 그것 때문일 것이다. 네 감정을 다 말하고 다니는 거. 그렇게 네 감정을 다 흘리고 다니니까. 천한 놈들에게 쳐 발리는 거다.’

    아무리 봐도, 이건 너무 위험하다. 단순 사실만 나열되어 있다면 모를까, 이 문서는 너무 디테일하다. 마치 그 상황을 보고 기록한 것처럼.

    ‘이 문서는... 보는 사람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져올지도 몰라.’

    나는 이 문서를 폐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메모장에 아주 핵심적인 것들, 구체적인 장소, 시간 정도만 ‘ㄱㄴㄷㄹ’초성암호로 적어놓고, 그걸 들고 주방으로 왔다. 고무 장갑을 손에 끼고 가스불을 켜서 그 문서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연기가 나기 전 그걸 들고 화장실로 달려왔다.

    환풍기를 켜고 불타는 문서를 변기 앞에 대고 기다렸다. 끄트머리에 붙었던 불은 A4용지에는 전체로 불이 옮겨갔다. 나는 그것이 모두 탈 때까지 쥐고 있다가 끄트머리만 남았을 때 변기에 던지고 물을 내렸다. 스피디하게 문서를 처리한 나는 다시 침대 위로 왔다.

    침대 위에는 여전히 그 안대가 놓여 있다. 나는 그 안대를 들어보았다. 겉으로 봤을 땐, 그저 촌스런 안대일 뿐이다. 나는 그걸 한참 바라보다가,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후우...”

    왠지 모르지만, 한숨이 나온다. 문서는 태워서 없애버렸지만, 꿈에서 본 것은 쉽게 잊혀 지지 않을 것 같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무의식적으로 거기다가 ‘탁문수’를 써넣어보았다. 바로 나온다. 수연전자 부회장 탁문수. 수연그룹 제1후계자. 덤덤한 얼굴로 살인을 지시하던 그 사람. 나는 그 얼굴을 보다가 문득,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흐음 그래? 한상훈이라... 재밌는 녀석이로군. 나도 한 번 만나봐야겠는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