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25화 (125/198)

# 125

사필귀정

나는 벤치에 다리를 꼬고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 따라 유독 하늘이 높아 보인다. 성큼 가을이 다가왔음이 느껴진다.

‘가을이라...’

내가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중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어느 새 내 앞에 나타난 크로우가 내게 고개를 꾸벅 인사를 한다. 지극히 정상적인 인사다. 복장도 평범한 정장을 입고 있어서 딱 보면 그냥, 해외 출장을 온 외국인처럼 보인다. 이제 이쯤 되면 인적이 많은 다른 곳에서도 그를 만나도 될 것 같다. 나는 그에게 옆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지난 번 조사 자료는 정말 좋았습니다. 내용의 질이며 양이며...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제가 해야 할 것 같네요. 그 자료 덕분에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었거든요.”

“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는 참 겸손한 스타일인 것 같다.

“이틀간 뭐하고 지냈습니까?”

“일했습니다.”

“일이요?”

“네”

나는 고개를 갸웃 하며 말했다.

“그래요? 제 의뢰가 없을 땐 쉬는 게 아닙니까?

“네. 마스터 크로우께서는 크로우들이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저희는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땅을 보며 말했다.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일이 저희 일입니다.”

“그래요? 쉬지 않고요?”

“네. 저희는 쉬지 않습니다. 세상이 쉬지 않고 돌아가듯이요.”

‘음...’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한다니, 조금 불쌍하다. 내가 상사였다면, 시원하게 포상휴가라도 줬을 텐데. 아니 생각해보니 못 줄 것도 없다.

“그러면 제가 휴가는 대신 못 내드리지만 따로 포상금이라도 드릴까요?”

내 말에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다. 갈색 피부 때문에 그 이빨이 유난히 눈에 띈다.

“괜찮습니다. 마음만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크게 한 천만 원 정도 쥐어주려고 했는데.

“정말 괜찮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는 대표님에게 돈을 받아봐야 쓸 수도 없습니다.”

“쓸 수가 없어요?”

“네.”

“아니 그럼... 어디서 자고 뭘 먹고 산답니까?”

“자는 곳은 따로 구비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음식도 나오고요.”

“그래요오...”

내가 눈을 살짝 내려 깔고 말꼬리를 흐리자, 그가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대표님. 저는 크로우로 일하면서 충분히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아니 과분한 보상이지요.”

“과분한 보상이요?”

그는 몽마르트 공원에 무수히 나 있는 풀들을 보며 말했다.

“네. 과분한 보상.”

“무슨 보상이기에...”

“그건... 말씀드리기가 뭐하군요.”

나도 모르게 너무 나간 모양이다. 나는 거기서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새 의뢰가 있습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네 무엇이십니까?”

“그 전에 조사 부탁했던 탁준기라는 인물...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내 말에 크로우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군요.”

마치 그걸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그 죽음이... 조금 이상합니다. 언론이나 경찰에서는 자살을 했다고는 하는데 제가 알기로 그 사람은 자살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죽기 전에 저한테 문자도 보냈는데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보낼만한 문자도 아니었고요. 그리고 그가 썼다는 유서 내용도... 영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크로우는 내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다.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그가 진짜로 자살을 했는지, 자살이 아니라면, 누구한테 죽임을 당한건지. 죽임을 당했다면 죽인사람은 누군지. 왜 죽였는지. 그리고... 혹시 저와도 연관이 있는지 그것 모두 알아보고 싶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크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그를 보고 급하게 말했다. 그는 의뢰내용만 딱 들으면 사라지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크로우 씨.”

“네 대표님.”

“이 의뢰도 한 달이 걸립니까?”

“...네”

지난 번 의뢰보다는 단순한 일 같아서, 혹시나, 조사 기간이 줄어들지 않을까 했는데, 아쉽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아 그리고”

“네 대표님.”

나는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말했다.

“뭐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있나요? 다음번에는 같이 식사라도 하게.”

“...저는 뭐든 가리지 않고 먹습니다.”

“단순히 먹는 것 말고, 좋아하는 것은요?”

“글쎄요. 딱히...”

“그러면 제가 알아서 정해보지요. 다음번에는 이렇게 공원에서 만나지 말고 어디 음식점에서 같이 식사라도 합시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표님.”

이제 그가 사라질 타이밍이다. 나는 그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는 평범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저벅저벅 반대쪽 길로 걸어갈 뿐이었다.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땅으로 숨어 들어가거나, 둘 중의 하나일줄 알았는데, 참 평범하다.

‘허 참... 이상하네... 보지 않으면 사라지고 보고 있으면 걸어가고... 무슨 슈뢰딩거의 스파이인가’

뭔가 미스터리하고 알 수 없는 것이 많은 그였지만, 하나 분명한 것이 있었다. 그가 유능하다는 점 말이다. 한 달 후면, 나는 탁준기 이사 죽음의 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크로우에게 의뢰를 맡겨놓은 나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나와는 다르게 대중의 관심은 금새 탁준기 이사에게 멀어져갔다. 거기 걸리는 시간은 단 하루. 대한민국을 흔들어놓았던 탁준기 주가조작 사건은 단 하루 만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본인이 죄를 시인하는 유서를 쓰고 자살해버린 탓이다. 아무리 악인이라고 해도 죽은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건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다.

‘저 재벌 3세 놈이 저런 짓을...’

분노하던 대중들은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탁준기 세 글자 이름은 하루정도 더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렸지만, 그게 다였다. 정말 그의 죽음을 ‘만들어낸’ 사람이 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으로 인해서 일어나야 했을 많은 일들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먼저 그 조사내역에 있던 사람들의 조사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몇몇 의식 있는 기자들이

‘탁준기 사건. 죽음으로 끝난 게 아니다.’

라는 식의 기사를 써서 내보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된 수사가 이루어 질리는 만무했다. 조사가 된다고 해도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쪽의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탁준기 본인이 혼자서 한 것입니다.’

라는 식으로 회피를 해버리면 그만이다. 죽은 사람을 데려다가 와서 대질심문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수연여행 주가도 반등했다. 탁준기가 죽은 게 호재여서. 주식시장은 그렇게 무서운 곳이다. 탁준기 본인이 남 목숨 흔들어 가며 주식도 흔들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광경이다. 나는 어제 -24% 급락했다가 오늘 +15%급반등에 성공한 수연여행 주가를 보며 생각했다.

‘탁준기 본인은 이걸 보면 뭐라고 할까...’

공매도 친 물량은 적당히 장부사장이 환매를 했을 것이다. 크게 이득은 보지 못했지만, 뭐 됐다. 애초에 돈을 벌기보다는 탁준기를 엿 먹이려던 장치 중 하나였으니까. 엿 먹으려는 사람이 죽어버렸다. 주식 게시판에는 이와 관련된 의견들이 다양하게 올라와 있었다.

‘와 탁준기 개새끼 죽어서 다행이다.’

‘어제 괜히 팔았네요 ㅠㅠ 하루만 더 버틸걸.’

‘크. 어제 종가 베팅한 거 제대로 터졌네요. 개꿀.’

‘그래도 양심은 있네요. 죽어서 주주가치 보전해줬으니’

‘아니 양심이 있었으면 애초에 그런 짓을 하지 않았겠죠. 개새끼는 개새낍니다. 그나마 자살해서 깔끔하게 마무리된 거지.’

탁준기 관련해서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와중에 그런 이야기도 있엇다.

‘그나저나 탁준기 지분은 누가 받는 거래요? 그 사람 결혼도 안했던데’

그건 나도 조금 궁금하다. 정확한 답변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연그룹에서 다시 가져가겠죠. 어차피 그쪽에서 나온 가지인데’

그런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애초에 수연그룹에서 계승순위가 낮은 탁준기한테 여행사 하나를 던져준 격이었으니까. 수연여행에서도 공식적인 발표가 나왔다.

‘수연여행은 탁준기 이사의 일탈과는 관련 없어. 대주주 관련해서는 곧 공시가 있을 것’

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이게 이대로 끝이다 이건가...’

세상은 그렇게 그를 잊는 듯 하다. 단 하루만에. 나는 잊지 않았지만 말이다. 크로우가 돌아오는 날은 딱 한 달 뒤. 9월 29일이다.

*

8월의 마지막 이틀. 나는 이틀 연속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귀국하는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먼저 8월 30일. 가족들이 귀국했다. 가족들은 여행을 하면서 유럽 각국에서 사온 선물을 하나 씩 내게 주었다. 먼저 어머니는 이탈리아에서 향수를 사오셨다.

“얘 이거 이탈리아 남자들이 제일 많이 쓰는 거란다. 유럽에서 이탈리아 남자들이 제일 인기 있다네 그래서 사왔어.”

“네 한 번 써볼게요 어머니.”

아버지는 프랑스에서 와인을 사오셨다.

“이거 현지에서만 파는 거라 우리나라에서는 돈 주고도 못산대. 부자 아들에게 이게 좋을 것 같아서 사왔다.”

“네네 감사해요.”

그리고, 동생은 스페인에서 산 축구 유니폼을 선물해주었다.

“오빠 이거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이야. 가레쓰 베일? 제일 잘생긴 사람 거 사왔어.”

“...난 바르셀로나 좋아하는데.”

“응? 그게 뭔 차이인데?”

어찌되었든, 무사히 잘 갔다 와서 다행이다. 위협이 되던 탁준기는 죽었으니, 가족들도 안전할 것이다. 둘째 날 8월 31일에는, 아영이도 귀국했다. 그녀는 내 선물로 명품 선글라스를 사왔다.

“이거 면세점에서 사온 건데... 오빠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사 왔어.”

부잣집 따님 안목답게 딱 멋진 것을 사왔다.

“그래, 고마워.”

생각해보니, 내가 그녀에게 준비해놓은 선물도 있었다.

“아 참 아영아. 너 미국에 가 있어서 몰랐을 것 같은데... 그 사람 말이야.”

“누구?”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한 사람. 탁준기.”

“응.”

“죽었어.”

아영이는 눈이 커져 양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왜에?”

“그 때, 봄에는 잘 피해갔지만... 어떻게 다시 폭로가 나왔나봐. 그래서 죄를 추궁 받다가 자살했어. 자기 빌딩 옥상에서”

나는 내가 했다는 말은 쏙 빼놓았다. 늘 그렇지만, 아영이가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다. 그게 오히려 그녀를 위해서 좋다.

“정말?”

“응.”

그녀 역시도 그건 조금 이상하다 싶었나보다.

“참... 그 사람은... 죽어도 죽을 것 같지가 않았는데... 자살했구나...”

“아무리 독한 악인이라고 해도 자기 죄가 세상에 까발려져서는... 그나저나 거기에 고영식품 관련한 내용도 있었어. 경찰도 재조사 들어간대.”

“정말?”

탁준기가 죽었다고 했을 때, 하나 기쁜 기색이 없었던 그녀였지만,

“응. 잘 하면, 부모님 명예 되찾을 수 있을 거야.”

그 말에는 꽤나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잘됐다... 잘 됐어.”

아영이의 아버지는

‘나는 결백하다. 내 딸아.’

그런 유서를 쓰고 죽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절절한, 진심이 담겨 있는 유서였다. 탁준기 것과는 다르게. 고영식품 재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가 했던 그 말이 사실임을 누구나 다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아영이와 팔짱을 낀 채로 인천국제공항을 나오며 생각했다.

‘사필귀정이로군. 사필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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