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24화 (124/198)
  • # 124

    정의구현(5)

    나는 눈을 껌뻑이며 다시 한 번 기사 제목을 읽어보았다.

    ‘수연여행 탁준기 이사 투신 사망.’

    충격적인 기사다. 나는 침을 삼키며 그 기사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주가조작 및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던 수연여행 탁준기 이사가 수연여행 본사빌딩에서 투신, 사망했다.’

    첫 줄을 본 나는 기사를 읽다 말고, 휴대폰을 찾았다. 내가 보고 있는 뉴스는 12시간 뒤 뉴스다. 탁준기는 12시간 내로 죽는다. 아무리 악인이라고 해도, 사람이 죽는 것을 방조할 수는 없다.

    ‘탁준기한테 전화를 해야 하나? 죽지 말라고? 아니 내 이야기를 들을 리가 없잖아... 그러면 수연여행 빌딩에 119라도 불러야 하나?’

    119를 부르려면 최소한 언제 투신하는지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한다. 나는 기사를 더 읽어보았다. 특히 그가 뛰어내린 시간을 위주로. 그런데,

    ‘경찰은 탁 이사가 오늘 오후 9시 18분, 본인 소유의 수연여행 빌딩 옥상에서 창밖으로 투신해 그 숨졌다고 밝혔다.’

    그가 죽은 시간이 오후 9시 18분이다. 나는 살짝 몸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나 방금 전까지 9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나는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휴대폰에 나오는 시간은 9시 24분이다. 이미 늦었다. 6분 전, 탁준기는 이미 사망했다. 혹시나 투신한 다음 급하게 살리면 살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수연여행 빌딩 주변을 오가던 다수의 행인들에 의해 신고를 받은 119 대원들은 출동해 그의 상태를 확인한 후, 투신 직후 즉사한 것으로 판단...’

    그런 이야기도 쓰여 있다. 이러나저러나 빌딩 옥상에서 투신했다고 하니, 즉사일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허 참... 하필 그 시간에...’

    12시간 뒤 뉴스는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6시간 뒤, 3시간 뒤, 1시간 뒤 뉴스도 내보낸다. 정확하게는 ‘12시간 뒤까지의 뉴스’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 건 유독 심하게 30분도 안 되는 미래 뉴스를 내보냈다. 내가 뒤늦게 뉴스를 본 탓에 미래뉴스는 과거뉴스가 되버린 것이다.

    ‘...내가 9시 뉴스만 안 봤어도...’

    내가 만약에 8시 55분 알람에 깨자마자, 미래뉴스를 읽었더라면. 그래서 이 기사를 접했다면, 탁준기가 죽기 전 20분 전즘에는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늦었다. 탁준기는 죽었다. 6분 전에. 이정도면 미래뉴스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기사가 뜰 판이다. 나는 포털사이트로 돌아와

    ‘탁준기’

    를 검색해보았다. 아직 사망뉴스는 뜨지 않았다.

    ‘하긴 6분이라면... 빨라야 지금 시신 수습하고 있겠지...’

    그는 죽었다. 나는 의자에 기댄 채로 잠시 그에 대해 생각했다.

    ‘...다른 사람 죽이는 것도 눈 하나 깜딱 하지 않던 녀석이니... 죽었다고 해서 안타깝진 않지만... 그래도 법의 판결을 받았어야 하는데...’

    그런데, ‘탁준기가 자살했다’고 생각을 할 때마다, 내 머리 속에 묘한 저항감,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뭐지...? 대체...’

    이상해도 영 이상하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다시 한 번 탁준기가 보낸 문자를 보았다. 이건 본인이 보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저주와 악의로 가득 차 있는 문자.

    ‘...두고 봐라 내가 반드시 복수하고 만다. 이 개새끼야’

    나는 그 문장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았다.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사람이... 자살을 해?’

    내 위화감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문자가 보내진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그가 문자를 보낸 것은 정확히 8시 30분이다. 그리고 9시 24분 자살. 문자를 보낸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복수를 결의해놓고 한 시간도 안 되서 자살이라...’

    복수라는 건 사람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는 요소다. 살짝 납득이 가질 않는다.

    ‘너무 분노에 차서? 그걸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서? 뛰어내렸나?’

    하지만 그것도 아닐 것 같다. 그는 그럴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타인에게 냉정해도, 본인에게 매우 애착이 강한 스타일. 강주혁 기자도 똑같이, 궁지에 몰려 자살을 택했지만, 그는 왠지 그런다 해도 납득이 갔다. 하지만 탁준기는 절대로, 자살 같은 걸 할 위인이 아니었다.

    ‘혹시... 자살이 아니라 타살?’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는 적이 많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때문에 전 재산을 날린 것을 알면, 칼들고 그에게 쫒아갈 사람들도 있었다. 여자친구 아영이만 해도 그렇다. 그녀는 심약해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그녀 역시 술에 취하면 복수 이야길 꺼냈으니까.

    ‘누군가가 그를 옥상으로 불러내서 밀쳤다... 어쩌면...?’

    기사에 그런 면이 더 쓰여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기사를 더 읽어보았다.

    ‘경찰은 수연여행 옥상 현장에서 유서를 발견했으며...’

    그런데, 유서가 있다. 유서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자살을 했거나, 혹은 ‘자살로 위장되었다.’고 봐야 한다.

    ‘유서에는 주로 본인의 주가조작으로 인해 손해를 본 모든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그런데 유서 내용도 영 이상하다.

    ‘그 녀석이 누구한테 미안하다고 할리 없는데... 뭐 거짓말이야 잘하는 녀석이었니... 그럴 수도... ’

    하지만 영 찜찜하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그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얼마 뒤, 현실에서도 뉴스가 떴다. 9시 50분 경에.

    ‘속보 - 탁준기 이사 본인 회사 빌딩에서 투신.’

    죽은 지 22분만에 떴으니 ‘속보’라는 이름에 걸맞게 빠르게 뜨긴 했다. 나에게는 그다지 빠른 뉴스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

    다음 날 아침. 평소와 마찬가지로 옷을 챙겨 입고 문 밖을 나섰다. 장근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장님. 가시지요.”

    “응.”

    나는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그 묵묵한 장근이가 지하1층 버튼을 누르면서 그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사장님. 보셨습니까? 어제... 그 탁준기 이사 죽었다는 뉴스?”

    ‘물론이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빨리 봤을 걸’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 짧게 대답했다.

    “응.”

    “...그러시군요.”

    내가 탁준기를 두고

    ‘녀석이 내 적이다.’

    그 말을 해둔 덕에, 장근이도 조금 신경을 쓰고 있었나보다. 적이 죽었는데, 영 찜찜하다.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서 비서도 그 말을 꺼냈다.

    “사장님 어제 뉴스 보셨지요? 저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무리는 아니다. 어제 탁준기는 실검 1등에 두 번 올랐다. 오후 4시에 비리기사로 한 번, 9시에 사망기사로 한 번.

    “예전에 뵈었을 때 그분은 진짜... 절대 자살 같은 거 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서 비서는 예전에도 몇 번, 그를 본 적이 있었다. 늘 자기애 강한 태도, 오만한 태도를 견지하던 그를. 나는 서 비서에게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서 비서는 운전대를 돌리며 말했다.

    “그렇지요? 사장님? 참... 하긴 근데 재벌 3세로 호화롭게 살다가 교도소 가서 앉아 있으려면 죽을 맛이겠죠.”

    “...응...”

    그러던 때 였다. 갑자기 서 비서가.

    “아! 설마... 혹시!”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뭐가?

    “혹시... 그 사람 감빵 들어가기 싫어서 대타 내세워서 자살 시킨 게 아닐까요? 본인은 다른 사람으로 둔갑하고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걸.”

    예전에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이 중국에서 위장죽음을 했다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중국에서나 가능한 일일이다. 우리나라 공권력이 아무리 허술해도, 사람을 바꿔서 죽일 수는 없다.

    “왜 중국사람 중에 닮은 사람 골라서...”

    “닮은 사람 고를 시간이 어딨냐. 12시에 기사 나고. 9시에 죽었는데”

    “아... 그러네요.”

    옆에 있던 장근이도 한 마디를 한다.

    “아마 그런 쪽을 택하려고 했다면... 투신이 아니라 불에 타 죽는 쪽으로 했을 겁니다. 그래도 치과 이력 같은 거 검사하면 다 나오지만...”

    죽은 것은 탁준기가 맞다. 나는 그런 것보다도 탁준기가 의도하지 않은 죽음, 타살 그 중에서도 ‘자살을 당한 케이스’로 의심을 하고 있었다. ‘탁준기가 살아있을 때 손해를 보는 사람들.’들도 꼽아보자면 꽤 많았으니까. 어쩌면 그가 죽어서 속을 쓸어내리고 있는 사람들도 몇 몇 있었을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서울지검 문희상 검사다. 크로우가 물어다 준 정보에 실명이 쓰여 있던 바로 그 사람. 비상건설 주가조작 사건을 축소 은폐 조사하여 상부에 보고한 사람. 탁준기한테 몰래 현금 7억원을 받기로 했던, 떡검. 하지만 이제 탁준기가 죽어서, 검사들끼리 서로 선배님 후배님 봐주기 들어가면 조사가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직접 탁준기 유서를 봤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 인간이 누구한테 사과를 했다는 그 유서가 몹시 궁금했지만. 그 유서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으면, 그를 본 따 나오는 미래뉴스에서 받아볼 수 없다.

    ‘으음...’

    “왔습니다. 사장님.”

    서 비서가 모는 차는 금새 회사에 도착했다. 나는 일단 나는 탁준기 이사 일은 접어두고, 일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오늘 해결할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까.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 비서에게 말했다.

    “서 비서. 장 부사장님 불러서. 사장실로 오라 그래.”

    “네 사장님.”

    장 부사장을 부른 것은 수연여행 때문이었다. 주가의 30%를 쥐고 있던 인재人災인 악재가 해소되었으니, 이제 반등을 할지도 모른다. 서 비서는 사장실로 장 부사장을 데리고 왔다.

    “부르셨습니까?”

    “네. 부사장님. 혹시 어제 뉴스 보셨습니까?”

    탁준기의 ‘ㅌ’도 나오지 않았지만, 장 부사장은 찰떡같이 대답했다.

    “네 봤습니다. 공매도 팀은 일단 관망하라 지시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공매도는 오늘 장 봐서 유연하게 대응하세요. 환수를 하던 관망을 하던”

    “네 사장님.”

    거기까지, 탁준기 죽음에 대한 대응을 모두 마친 나는 HTS를 켰다.

    ‘그래 탁준기는 이제 잊자. 죽은 건 안타깝지만... 죽을 놈이 죽었으니... 된 거지. 나는 평소대로 돈... 돈이나 버는 거야.’

    평소처럼 돈을 벌려고. 그런데, 영, 여엉. 탁준기 죽음 미스터리가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주먹으로 책상 위를 쳤다.

    ‘...으 궁금해!’

    죽을 놈이 죽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영 이상하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달력 앱을 켰다. 나만이 알고 있는 복잡한 패턴 무늬 잠금을 해제하고 나면, 거기에는 언제 뭘 사고 뭘 팔면 되는 지, 돈을 버는 로드맵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다. 이번 달은 더 이상 채워 넣을게 없을 정도로 다 들어가 있다.

    ‘그래 요번 달은 이거면 돈은 충분해.’

    그렇게 생각한 나는 8시 55분. 이메일을 받은 즉시 기사 제목도 보지 않고 바로 하단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거기에는

    ‘크로우를 부르시겠습니까?(1회 남음)’

    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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