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23화 (123/198)

# 123

정의구현(4)

사건은 다이나믹하게 흘러갔다. 오후 5시 탁준기의 반박인터뷰 기사가 나온 지 2시간 만에 다시 한 번 더 재반박 기사가 나왔다.

‘면식이 없습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탁준기가 했던 말들을 모두 뒤집는 증거가 실린 기사가. 인터넷 댓글은 완전 난리가 났다.

‘와 이 씹새끼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하네.

‘진짜 어이없는 새끼네 이거 사람들을 얼마나 개돼지로 알면 이렇게 거짓말을 하지?’

‘와 수연그룹 3세가 주가조작까지 해? 죽창... 죽창이 필요하다.’

‘죽창까지 안 들어도 될 듯 요. 판사님이 알아서 해주실 것 같네요.’

‘이정도면 살인협박에 살인교사도 끼어 있는 것 같은데... 엄정한 판단 부탁드립니다. 판사님.’

이쯤 되면, 빼도 박도 못하게 걸렸다. 요샌 인터넷 여론이 매우 무서운 시대다. 인터넷에서 인민재판이 이렇게 나면 사법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스크롤을 내리면서 그걸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이거 빡쳐서 안되겠네요. 수연여행 불매운동 갑시다.’

그런 이야기도 쓰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어디 불매운동을 한답시고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이야기다. 수연여행 불매운동까지 맞게 되면, 탁준기는 남은 돈까지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아... 맞아.’

나는 주식시장이 끝난 지 한참 지나고 나서야 수연여행 주가를 확인해보았다. 오늘 대체로 장이 좋았다. 장 초반 +2%대 상승을 보이던 수연여행 주가는 12시 30분 즈음 오라클뉴스에서 뉴스가 나오고 –6%대 급락한다. 작은 인터넷뉴스 기사라도 ‘주가조작’이란 단어가 들어가서 그랬을 것이다. 코스피건 코스닥이건 오너가 주가조작을 했을 경우 변명 할 것 없이 다이렉트 상장폐지니까.

‘탁준기가 수연여행에다가 주가조작을 한 건 아니지만 말이지.’

하지만 밖에서 새는 바가지 집에서 샌다고, 탁준기가 수연여행에다가도 뭔가 이상한 짓을 해놨다면 역시 바로 사망이다. 투자자들도 겁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주가는 조금 반등한다. 후속기사가 안 나오니까.

진위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저가 매수세가 몰린 것. 하지만 그것도 잠시, 1시 50분경. 대원일보에서 기사가 뜨는 것과 동시에 –18%까지 급락했다. 역시 공신력에서는 차이가 난다. 수연여행 주가는 결국 –24% 폭락으로 장을 마쳤다. 나는 문득 탁준기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런 짓을 해서 네가 얻는 게 뭐가 있다고?’

당시에는 당당하게

‘정의구현이요.’

라고 해놨는데, 생각해보니 돈도 꽤 벌었다. 장 부사장이 수연여행에다가 공매도를 쳐놨기 때문이다.

‘뭐 수연여행 자체가 큰 문제가 없다면 반등하겠지만...’

하지만 크로우의 보고서에는 탁준기가 비상건설을 매수할 때 자기 주식을 담보로 몰래 사채를 썼다고 했다. 자칫 횡령, 배임이 될 수도 있는 사안. 횡령과 배임 역시 상장폐지 문턱을 넘나드는 무서운 악재다. 조사에 들어가면 그 역시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서 비서를 불렀다.

“서 비서, 장 부사장님 연결시켜줘.”

“네 사장님”

서 비서는 내 요청대로 부사장실에 앉아 있는 장 부사장에게 전화를 연결시켜준다.

“네 사장님 전화하셨습니까?”

“부사장님. 공매도 팀은 잘 돌아가고 있지요?”

“네 물론입니다. 오늘 크게 수익 나더군요.”

나는 종목 이름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장 부사장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거의 한달 전부터 수연여행에 좌표를 찍어놨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강하게 갑시다. 기사 보니까. 최소한 다음 주까지는 반등 나오기 어려울 것 같네요.”

“네 사장님.”

생각해보면 이건 탁준기의 수법과 꽤 닮은 점이 있었다. 공매도를 쳐놓고, 뉴스를 내고, 주가를 폭락시켜 돈을 버는 방식. 탁준기는 없는 악재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보내고, 나는 숨겨진 악재를 드러내서 세상에 내보낸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나는 눈을 떴다. 침대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니, 오후 8시 50분. 저녁 메일을 보라고 울린 알람이다.

‘어우 얼마나 잔거지?’

오늘 저녁, 서 비서와 장근이와 셋이서 식사를 하고, 집에 들어온 나는 바로 잠에 들어버렸다. 하루 종일 탁준기 이사 건을 처리하느라 신경을 쓴 탓이었을 것이다. 피곤해서.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알람의 의도대로라면 컴퓨터 앞에 가야했지만 나는 그 대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9시 뉴스에 뭐라고 나오나 보고 싶어서. 오후뉴스는 조금 늦게 본다고 한들 별 손해가 없었기 때문에 살짝 뒷전으로 미루어 놨다.

‘끝나고 봐야지 그래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뉴스를 지켜보았다. 세간의 화제가 된 만큼 첫 번째 뉴스가 딱 탁준기 이사 뉴스였다.

“올해 4월. 서울시를 뒤흔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비상건설의 청탁비리, 주가조작 사건이었는데요. 사건 종결 된지 3개월만인 지금 새로운 용의자가 나타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김윤수 기자 보도합니다.”

나는 양 손을 뒷 머리에 대고, 다리를 꼰 채로 그걸 지켜보았다.

“...다름 아닌 수연그룹의 탁준기 이사. 개인 투자자로 왕성한 활동을 해온 그는...”

9시 뉴스는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일목요연하게 시간대 별로 나열을 해주었다.

“탁준기 이사는 기사 내용을 부정했지만, 후속기사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걸 보면서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이제 탁준기는 완전히 끝장이로군.’

이라는 것. 악행이 9시 뉴스에 이렇게 적나라하게 까발려졌으니, 완전 끝이다. 재기불능. 수연그룹이라고 해도 이건 못 막는다.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이게... 내가 만든 일이 9시 뉴스에 나오네.’

하는 생각.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다. 시작은 탁준기를 엿 먹이려고 시작했던 일인데, 9시 뉴스에 나오고 있다. 9시 뉴스가 다인가,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탁준기의 악행을 성토하는 글들이 베스트에 올라가고 있었다. 내가 기획한 사건이 나라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되어버렸다.

‘음... 확실히 미디어의 힘은 강하군...’

예전에, 이원재 이사와 사장실에서

‘처음 뵙겠습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입니다.’

‘대원일보 이원재입니다.’

두 번째로 만났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래를 아는 내 힘과, 현재의 미디어가 만나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의도하기만 한다면 세상의 여론을 쥐락펴락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 구속수사를 할 방침임을 밝혔습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탁준기 관련 뉴스는 끝이 났다. 뉴스를 보고 있었지만, 뇌에는 별로 전달이 안됐다. 아마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 혹은 예상한 내용이라서 그런 듯하다.

‘당연히 구속해야지. 쓰레기가 사람 형상하고 다니게 둘 순 없잖아.’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창가 쪽으로 걸어왔다. 우리 집에서 창밖을 보면, 강남의 풍경이 다 보인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들이 전부 훤히. 그 사람들도 모두, 오늘 있었던 일. 탁준기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가족과

‘엄마 그 뉴스 봤어? 응응 무섭더라. 재벌 3세가 그런짓 하고.’

누군가는 친구와

‘와 씨발 그새끼 진짜 개새끼더라. 근데 시발 돈이 그렇게 많아도 그렇게 돈이 더 고픈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든다.

‘어쩌면... 저 사람들에게 모두... 내 생각을 주입시킬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원한다면, 대중을 거짓으로 기만을 할 수도 있고, 진실로 인도를 할 수도 있다. 미래 정보를 대원일보와 오라클뉴스를 통해서 내보내면, 쉬운 일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고객센터와의 문답을 떠올렸다.

‘왜 제게 이런 기회를 준 것입니까?’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나는 그 답변을 중얼거렸다.

“스스로 생각해보라...”

어쩌면 그건 답을 회피하기 위해서 한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하라고 해준 답변인 것만 같다. 확실히 이것은 너무나도 큰 힘이다. 미래를 알 수 있는 힘. 선의를 배우려면 한 없이 베풀 수도 있고, 악의를 가진다면 엄청난 파괴를 불러올 수도 있다. 내가 스스로 생각을 하지 않는 다면. 자칫하면 엄청난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탁준기야 뭐... 여지없는 쓰레기였으니 매장시키는 게 당연했지만... 다른 일에 있어서는 최대한 주의해야겠군. 특히 미래 뉴스를 현대 미디어 뿌릴 때는...’

그런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다.

‘위이잉’

소파 위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가서 그걸 들어보았다. 아영이에게서 문자가 와있다. 장문의 문자가. 문자의 내용은 이러했다. 한 달간의 미국 종주 끝에 LA에 도착했다는 것. 사라와 마지막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것. 미녀 두 명에게 많은 남자가 달라붙었지만 다 거절했다는 것. 나 보고 싶다는 것. 나는 그것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나저나 탁준기 뉴스는 아직 모르나보네. 마지막 원수도 결국 감방에 가는 걸 보면 뭐라고 할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에게 답장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른 문자가 하나 더 와 있었다. 보낸 사람은 놀랍게도 ‘탁준기’. 8시 42분경에 탁준기 본인에게서 문자가 와 있다.

‘뭐야?’

8시 42분이면, 알람에 내가 깨기 전이다. 문자를 보냈는데 자느라 못 본 모양. 나는 그 문자를 받아보았다. 아영이의 문자에 못 지 않은 장문의 문자다. 하지만 이건 별로 보고 싶지가 않다. 시작부터 끝까지, 워낙 악의에 찬 저주와 협박과 욕설이 가득해 있어서. 나는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다. 미괄식 문자라 마지막 문장만 봐도 화자의 의도를 알 수 있다.

‘...두고 봐라 내가 반드시 복수하고 만다. 이 개새끼야’

두고 보자는 것. 복수 하겠다는 것.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낸 것을 보니 아직 구속이 되진 않았나보다. 나는 그 문자를 보다가

‘할 수 있으면 해보시오. 감빵에서.’

답장을 보낼까 하다가, 말았다. 보내야 뭐하나 싶어서.

‘스팸이라도 걸어놓을까...?’

생각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문자는 8시 42분에 딱 하나 오고 말았으니까. 내일부터는 어차피 문자를 보내지 못할 것이다. 교도소에 휴대폰은 들고 가지 못 할 테니.

‘음 그래도... 조금 신경 쓰이긴 하는군...’

내일 교도소 가기 전에 뭔가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12시간 뒤 뉴스로 한 번 검색이나 해볼까?’

뭔가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이거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받아서 인물검색에다가 ‘탁준기’를 써넣었다. 그런데

“엥?”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나는 바로 그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기사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본 나는 아랫 입술을 잡으며 생각했다.

“이게... 이럴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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