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22화 (122/198)
  • # 122

    정의구현(3)

    나는 서서 팔짱을 낀 채로 사장실 안을 뱅글뱅글 돌았다.

    ‘음...’

    그러다가 나는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12시 30분. 정소영 대표가 ‘탁준기.hwp’파일을 가져간 지 세 시간 정도 지났다.

    ‘이제 뜰 때가 됐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탁준기’를 검색해보았다.

    ‘오!’

    떴다.

    ‘비상건설 비리청탁의 내막. 숨겨진 흑막은 수연그룹의 3세. 탁준기 이사?’

    오라클 뉴스 특종 기사. 올린 시간을 보니 오후 12시 26분. 올라온 지 5분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기사다. 나는 빠르게 내용을 훑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용은 따로 읽어볼 게 없었다. 사실상 기사의 원본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어서. 나는 기사 내용보다 더 내려서 달린 댓글을 더 찾아보았다.

    ‘댓글 달리기에는 너무 이른가...’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워낙에 파격적인 제목에, 내용이었기 때문인지, 벌써 댓글이 꽤 달려 있었다.

    ‘이거 봄에 끝난 사건 아니었나... 근데 수연그룹 사람이 몸통이라고?’

    ‘하여간 재벌 3세 새끼들은 왜 인성 똑바로 된 사람이 없냐.’

    ‘이거 그 자살한 기자도 자살 당했던 거네? ㅎㄷㄷ 무섭당...’

    ‘지난번에 걸렸는데 수연그룹 사람이라서 봐줬나보네요. 검찰이.’

    ‘검찰도 한통속이구만. 싸그리 잡아넣자.’

    탁준기 이사님은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랐다. 시작은 8위. 좋은 데뷔다. 오늘 저녁 즈음 되면, 당연히 1위로 치고 나갈 것이다. 전국의 사람들이 그 이름을 모두 알 수 있도록. 흡혈귀가 햇빛을 보면 사그라지듯이, 악당도 대중에 악행이 드러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소멸되기 마련이다. 나는 손은 모은 채로 그렇게 되기를 조금 기다렸다. 그런데 그러던 때였다. 기사가 뜬지 30분이 지났을 즈음

    ‘강하준, 한소진 동료에서 연인으로. 열애 밀착 취재’

    포털 메인 사이트에 그런 뉴스가 떴다.

    ‘에엥?’

    강하준 하면 만화를 찢고 나온 외모, 소위 만찢남으로 유명한 아이돌. 한소진은 아역 출신으로 자연 미인으로 유명한 청순미녀 배우. 그런데 둘이 사귄다니. 놀라운 이야기다.

    ‘진짜로?’

    마성의 제목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걸 클릭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기사를 보니 두 사람이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같은 집에서 나와 같은 차에 타는 장면이 포착되어 있다. 빼도 박도 하지 못하고 100%. 확정. 두 사람은 사실 연기력 측면에서 조금 모자라서 배우는 B급 배우 취급을 받지만 한명은 아이돌 출신이어서, 다른 한 명은 아역배우 출신이어서 인지도 자체는 높았다.

    ‘둘이서 미니시리즈 주연으로 나왔다고 본 것 같긴 한데... 촬영장에서 눈 맞은 건가?’

    나는 기사를 올려다보았다. 기사를 낸 곳은 ‘투데이S’. 연예인 가십 전문 뉴스회사다. 이원재 이사가 운영하던 키스톤미디어와 라이벌인, 유명 언론사. 나는 그걸 보다가 문득,

    ‘이거 덮으려고 이거 냈네요~’

    하는 인터넷 음모론을 떠올렸다.

    ‘아니... 설마... 이거? 탁준기 이사가 시킨 건가?’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에이 우연히 겹친 거겠지.’

    하고 반신반의 했는데 진짜 타이밍 참 묘하다. 하필 지금이라니. 나는 다시 한 번 사진을 보았다. 사진에는 남녀 둘 다 긴팔에 얇은 와이셔츠까지 걸치고 있다. 사진 아래쪽을 보니

    ‘3월 경 강하준이 사는 오피스텔에서...’

    라는 부연설명이 쓰여 있다. 3월에 취재 해놓고 지금 내놓았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

    ‘입금이 지금 되어서’

    라는 답 외에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다시 포털사이트에 돌아와 순위표를 보았다.

    ‘1등 강하준, 2등 한소진, 4등이 강하준 한소진, 7등이 강하준 열애 10등이 투데이S.’

    10등 안에 5개가 두 사람 관련 검색어다. 탁준기는 밀려도 한참 밀렸다. 포털 메인뉴스에도 뜨지 않았다.

    ‘역시 그냥 죽지는 않겠다 이거군.’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일이긴 하다. 탁준기는 언론으로 대중을 가지고 노는데 매우 익숙한 녀석이었다. 그대로 앉아서 맞아 죽는 것도 이상하다. 다만 그 방식이 의외였을 뿐.

    ‘강하준 한소진 열애설이면 대체 얼마나 돈을 쓴 거야?’

    쓴 연막이 꽤나 짙다. 나는 문득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았다.

    ‘혹시... 오라클 뉴스 기사가 강제로 내려지기라도 한건...’

    나는 검색창에 탁준기를 써 넣었다.

    ‘숨겨진 흑막은 수연그룹의 3세. 탁준기 이사?’

    다행이도 아직 오라클 뉴스 기사는 남아 있다. 하지만 이상하다. 보통 이런 엄청난 기사가 뜨면 줄지어서 다른 회사에서도

    ‘수연여행 탁준기 이사 비상건설 주가조작의 몸통’

    ‘비상건설 주가조작 실세는 따로 있었다? 수연 그룹의 검은 그림자.’

    ‘주가 조작에 나선 재벌 3세. 탁준기 이사의 은밀한 취미’

    그런 식으로 복제된 뉴스를 내보내기 마련이다. 다 돈이 되니까. 그런데 어째 이번에는 조용하다.

    ‘소스가 한정되어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어디서 어떻게 외압이 들어오는 건가?’

    생각해보면 이 기사를 덮으려고 하는 게 탁준기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여기에는 검사 한 명, 고위직 경찰 한 명, 그리고 언론사 간부 두 명이 끼어 있었다.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꽤 있다. 나는 서 비서를 시키려다가, 내가 직접 휴대폰을 들었다. 그런 다음 정소영 사장을 찾아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 중이라 삐 소리가 울린 뒤...’

    그녀는 어디론가 전화 중이었다. 자기가 거는 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오는 전화를 받고 있는 것인지. 어느 쪽이든 바쁘긴 할 것이다.

    ‘정소영 사장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건은 이원재 이사가 나서줘야 확실히 승부를 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대원일보 홈페이지, 그리고 데일리스포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혹시 이쪽 뉴스가 뜨지 않았나 확인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런 뉴스는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일말 불안한 마음도 든다. 방금 전 그는 내 앞에서,

    ‘하죠. 아니... 하겠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회사로 돌아가는 중에 어쩌면, 마음이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뜨는 해... 하지만 수연그룹에 대적하기는 모자라다.’

    블루E&M 안용균 전 대표도 그런 연유로 나를 배신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를 믿기로 했다. 그는 셋째로 태어나서, 쭈욱 언더독으로, 형들 등쌀에 밀리면서 자라온 사람이었으니까. 나에게는

    ‘형과의 싸움에도 승산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첫째 형인 이원상한테 밀리는 게 사실이었다. 그는 이원재 이사보다 7살이나 많았고, 경험도 훨씬 많았다. 애초에 지금 이원재 이사가 앉아 있는 데일리스포츠 사장 자리도 형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으니까. 본인은 나름 노력한다 한다 해도, 아버지나 그를 보좌해온 수많은 이사들은 그의 잠재력을 높지 않게 칠 가능성이 있었다.

    ‘열세에 있는 사람은 모험적인 수를 두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다. 사실 그가 이곳을 떠난 지는 대략 한 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정소영 사장이 ‘탁준기.hwp’소스를 가져간 뒤 3시간 뒤에 뉴스를 내보낸 것을 생각하면 조금 더 시간을 줘야 맞다. 얼마 뒤, 정소영 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네 대표님 전화하셨습니까?”

    “네 대표님 혹시 기사 올리고 다른 곳에서 외압이 들어오거나 그런 게 없나 해서요.”

    내 말에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주 없다고는 말 못 드리겠습니다만... 어쨌든 저와 저희 직원들은 꿋꿋이 맞서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조금 심적으로 힘드실지도 모르겠지만 기다려보세요. 아마 증원군이 올 겁니다.”

    “증원군이요?”

    “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나는 그녀에게 한 마디를 더 해놓았다.

    “저 그나저나 오늘 그 외압? 해온 사람들 일단 명단 추려놓으세요. 이름 소속 직위 같은 것들요.”

    “...아 ...네.”

    이건 전쟁이다. 지난 번 안용균 사장한테

    ‘탁준기가 얼마 주기로 했습니까?’

    그 말을 내뱉었을 때부터. 이미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다. 나는 더 이상 숨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나아가 더러운 짓으로 나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검찰이든, 경찰이든, 언론이든, 재벌이든 다 때려 부술 것이다. 나는 그럴 의지도 있고, 그럴 수 있는 힘도 있다. 오후 1시.

    “사장님 점심 식사는?”

    “나 햄버거나 사다줘. 빅맥 셋트로.”

    “네 사장님.”

    나는 나가서 먹는 대신 햄버거를 시켰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인터넷을 모니터링 했다. 여전히 포털사이트는 ‘강하준, 한소진’이 점령하고 있고, 탁준기는 후속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으음...’

    내가 살짝, 애가 탈 무렵. 오후 1시 50분. 마침내 새 기사가 떴다.

    ‘재벌 3세의 어두운 그림자. 비상건설 주가조작의 수뇌는 수연 그룹 탁준기 이사.’

    그것도 대원일보 메인화면에. 이것도 조금 의외다.

    ‘아니 데일리스포츠에서 나올 줄 알았는데.’

    이원재 이사가 어떻게 아버지를 구워 삶았다보다. 대원일보에서 이런 기사를 냈다는 것은, 사실상 선전포고로, 수연그룹의 압박을 정면으로 뚫고 가겠다는 의지가 들어가 있다고 봐야했다. 확실히 메이저에서 나온 기사여서 그런지, 이 기사는 바로 포털 메인사이트에도 올라갔다.

    탁준기 이사는 검색어 순위에 다시 올라가서 10위, 7위, 5위, 결국 3위를 찍었다. 강하준 한소진 바로 다음이다. 1위를 못한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나는 납득했다. 나 역시 12시간 뒤 뉴스에 내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 노력해 봤으니까. 어지간한 사고를 치지 않으면, 경제계 인사가 실검 1위하기가 만만치 않다.

    ‘평소 재벌 3세 이미지가 워낙에 바닥이어서, 주가조작만 가지고는 1위하기가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되었든 대원일보에서 기사가 뜨니 클릭 수를 노리고 쫒아오는 후속기사도 줄줄이 튀어나왔다.

    ‘오라클뉴스가 내보낼 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더니...’

    놀라운 일이다. 댓글도 한시간만에 수천 개가 달렸다. 만약에 오늘 아침에 ‘정치’쪽에 랭킹 뉴스를 썼다면 아마 이 기사가 나왔을 것이다.

    *

    오후 3시. 결국 탁준기 이사는 실검 1위를 찍었다. 정치면 그리고 경제면 모두 탁준기 이사의 얼굴이 나왔다. 그런데, 그 와중이었다.

    ‘탁준기 이사 주가조작 의혹 부정. 자살 권유한 강주혁 기자와는 3년 전 본 게 마지막.’

    그런 뉴스가 떴다.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역시 유력 언론지와의 인터뷰가 나와 있다.

    ‘강주혁 기자와는 3년 전에 여행사 취재 왔기에 점심을 먹고 응답을 해준 것이 전부.’

    ‘비상건설 정기웅 사장과도 안면이 있을 뿐 직접적인 접촉은 없어’

    ‘비상건설에 투자한 운용사들. 나와는 무관.’

    그런 식으로 기사에 나온 내용들을 모두 부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며 씨익 웃었다.

    “흥 예상대로다 요녀석아.”

    미안하지만, ‘탁준기.hwp’파일에는 애초에, 그렇게. 탁준기 본인이 부정을 할 수 있을만 한 정보만 실려 있었다. 심증은 99%인데. 진짜인지 아닌지 확실한 증거는 없는 수준으로. 물증은 따로 있었다. 나는 내 메일함에 들어가서 휴대폰에 ‘탁준기2.hwp’파일을 다운 받았다. 여기에는 그가 부정했던 것들을 싸그리 뒤엎는

    ‘탁준기와 강주혁 기자가 접촉을 한 증거 사진’

    ‘정기웅 사장과 사전에 주고받은 문자.’

    ‘비상건설 매집에 참여한 운용사들을 직접 지휘한 증거’

    모두 들어 있었다. 크로우가 ‘이상할정도로 유능하게’가져온 절대 빼도 박도 못할 증거들. 나는 그걸 첨부해서 정소영 대표, 그리고 이원재 이사에게 보냈다.

    ‘이걸로 끝내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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