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정의구현(2)
탁준기 이사는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벌리며 말했다.
“뭐어?”
잘 알아들었을 텐데, 못 알아들은 것처럼. 나는 다시 한 번 그 단어를 말해주었다.
“정의구현이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슬쩍 내 모니터를 보았다. 바탕화면에는 ‘탁준기.HWP’파일이 고대로 있다. 지금 자기 이름이 쓰여 있는 파일이,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사실을 그는 죽어도 모를 것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저는 오늘 언론에 당신의 악행들을 모두 까발릴 생각입니다. 비리청탁 설계, 주가조작 자금 운용, 꼬리자르기, 그 와중에 있었던 자살 권유. 사실상 살인. 비상건설뿐만 아니라 과거 고영식품에서 있었던 일 까지 전부.”
고영식품까지 나오자, 그는 튀어나올 듯 눈이 커졌다.
“아니...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아느냐. 다시 그 이야기로 간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비밀이다. 미래의 뉴스를 받아 보고, 과거 있던 일을 모두 들춰 볼 수 있는. 나만의 비밀. 나만의 힘. 탁 이사는 나의 그 힘에 살짝 몸을 떨며 내게 말했다. 공포심에 기세가 한풀 꺾인 모습이다.
“그러지마. 대체... 왜... 그걸 그렇게 한다고... 네게 얻어지는 게 뭐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글쎄요...”
나는 잠시 그에게 해줄 말을 골랐다. 그런데 왠지, 예전에 고객센터와 했던 말
‘왜 내게 이런 힘을 준 겁니까?’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그게 떠올랐다. 희한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마 이게... 귀족의 의무 노블리스 오블리제 같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대개 힘이 있는 것은 귀족들이니까... 정의를 구현하는 데는 또 힘이 필요하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말에 ‘무슨’ ‘무슨’ ‘무슨’ 궁금한 것도 많다. 나는 그래서 알려주었다. 정확하게.
“탁준기 당신은 수연그룹에서 금수저 물고 태어났지. 돈이란 건 물론 힘이야. 당신은 그 힘으로 뭐든 할 수 있었어. 조금 마음을 좋게 먹었다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지키면서 살 수도 있었겠지. 그러지 않았겠어? 응? 못난 사람 좀 도와주고, 당신 아무리 먹고 쓰고 자고 해도 평생 써도 남잖아? 돈이.”
나는 이어서 말했다.
“그렇게까지는 못해도 본인 스스로를 위해서 살 수도 있었겠지. 공부를 했으면 유학을 갈 수 있었을 테고, 운동을 했으면 최고의 트레이너를 쓸 수 있었을 거고, 예술을 했어도 되지 않나? 시간도 돈도 많은데. 하지만 당신은 그 힘을 가지고 더 약한 사람을 수탈하는데 힘을 썼어. 그것도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나는 침을 한 번 삼킨 다음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본인이 복 받은 줄 모르고, 흙수저로 태어나서 열심히 사람들을 개돼지 취급해? 그건 아니지. 아니어도 한참 아니야. 남들은 최소한의 기회도 부여받지 못하거나, 한 두 번 오는 것이라도 잡으려고 아둥바둥사는데, 그걸 더 빼앗아? 그건 내가 두고 볼 수가 없어. 그래서 바로 잡아주려고 한다. 그게 바로 정의구현이고 말이야.”
그는 몸을 벌벌 떨며 말했다.
“네가 그런다고 한들... 뭐가 바뀔 거 같아? 어차피 약육강식의 세상이야. 네가 그런 짓 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래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어차피 세상이라는 건, 보는 사람마다 각자 다르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나한테는 덤비지 말았어야지. 약육강식? 좋다 이거야. 하지만 지금 네가 보고 있는, 네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너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나?”
나는 그 말을 하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아니야.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너도 알겠지. 너와 내가 싸워서 여태 누가 이겨왔는지. 본인은 여태 늘 이겨왔으니 이번에도 이길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 못 골랐어. 잘 못 골랐어도 한 참 잘못 골랐지! 하필 나를 골랐으니”
“그러니까. 그러니까. 없었던 일로 하자 이거 아니야? 내가 잘못 골랐다. 그러니까 없었던 일로 하자고”
나는 그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베팅에 실패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게 상식이지. 너도 주식쟁이라면 의연하게 받아들여. 나한테 빌지 말고. 네가 여태까지 돈이며 목숨이며 앗아간 다른 사람들은 누구한테 하소연 할 데가 있었을까? 아닐걸.”
내 말에 그는 완전히 포기를 한 채로 말했다.
“내가...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까 용서해줘. 봐줘. 그냥... 없던 일로 하자. 응? 여태까지 일들은 모두...”
지금와 애원해봐야 이미 늦었다. 정소영 사장은 이미 나한테서 자료를 받아 갔다. 빠르면 지금 인터넷에 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미 늦었어. 가서 변호사나 알아봐. 뭐 잘하면 무기징역은 피할 수 있겠지. 요새 법원도 느슨하니까. 한 70살 되면 나올 수 있지 않겠어?”
거기까지 내가 말하자, 그는 잠시 양손으로 얼굴을 쥐어뜯는 듯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얼굴은 분노에 상기된 채다. 방금전까지 용서를 구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좋아 정의구현이든 뭐든... 시발 그게 되나 보자! 나도 알고 있어. 네 밑에 오라클뉴스란 곳이 있다는 것 정도는. 어디 한 번 할 수 있는 만큼 해봐. 씨발놈이 어떻게 뭘 알았나 몰라도...”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욕을 해댔다. 그가 욕지거리를 내뱉자, 장근이가 한 발 더 앞으로 나선다. 나는 그래도 손을 들어 저지했다. 오늘은 몸으로 싸우는 날이 아니다. 탁준기는 그대로 문을 열고 사장실 밖으로 나섰다. 그가 밖으로 나간 뒤, 나는 잠시 그와 정소영 사장을 생각했다. 정 사장은 나름 강단있는 여장부였지만, 그래도 탁준기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음... 혹시라도 오라클뉴스의 언사가 막힌다면...’
오라클 뉴스는 인터넷에서는 나름 지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아직은 메이저 취급을 받지는 못하고 있었다.
‘오라클뉴스가 막힌다면... 어쩌면 시간이 길어질 수도...’
그건 싫다. 저 미친놈이 광기에 빠져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오늘 12시간 뒤 뉴스에는 뉴스가 나긴 났는데...’
하지만 그것만가지고는 확신을 할 수 없다. 뉴스가 떴다고 한들 100%. 세상에 화제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탁준기 이사는 다시 한 번 본인의 힘을 써서 미꾸라지처럼, 도마뱀처럼 피해나갈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검찰, 경찰 그리고 언론 재벌까지도 몇 명 엮여 있는 문제다. 그 사람들이 협동하여 수비를 친다면. 오라클 뉴스는 너무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선 안 돼. 이번엔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놓는다.’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찾았다. ‘이원재 이사’ 웬만하면, 엮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건 역시 어쩔 수 없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 띠리리 띠리..’
통화대기음이 끝나자마자,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이사님.”
“네 대표님.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난 대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전에 이사님이 말씀 하셨던 것 있죠? 제가 다른 재벌 3세보다 강해질 것 같다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까?”
“네 물론입니다.”
“그럼 와서 증명해보세요.”
“네? 그게 무슨...?”
“와서 베팅을 하는 겁니다. 내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칩을 모두 보여주시고, 제가 베팅하란 곳에 베팅하세요. 충성의 의미로.”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곧 그리로 가겠습니다.”
*
문을 열고 이원재 이사가 들어온다. 급하게 온 탓인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얼굴이 붉어지니 더 닮은 것만 같다. 카이지랑.
“대표님”
“이사님”
나는 바탕화면에 있는 ‘탁준기.HWP’을 이원재이사에게 보여주었다. 이원재 이사는 그걸 보고 바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
“...이건... 폭탄이로군요. 핵폭탄...”
글을 보고 핵폭탄이라고 하는 것도 센스가 있었다. 나는 박격포라고 했지만 뭐 비슷한 뉘앙스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를 도와서 폭탄을 투하할 생각이 있습니까?”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뭐지요?”
“제 신임이요.”
“신임...? 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에 이걸 해주면. 그래서 수연그룹과 정면승부를 해준다면. 제가 앞으로 이원재 이사님을 믿고 지원을 해주도록 하겠습니다. 수연그룹 대신 저를 선택하신 거니까요.”
“...잠깐 고민 좀 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그는 잠시 내게서 떨어져서 사장실 바깥쪽 서울 전경이 보이는 통유리 앞에서 서 있었다. 아마 저것이 저 이원재란 사람의 가장 중요한 순간일 것이다. 나냐, 아니면 수연그룹이냐. 이 베팅에서 실패하면, 그는 메이저로 발돋움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릴 것이다. 나는 잠시 그를 지켜보았다. 인생 최대의 고민을 하는 그를. 그는 그러다가 3분 정도 지났을 즈음에 내게 다가왔다.
‘3분이라... 인생을 거는 베팅치고는 좀 짧군.’
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가 말했다.
“하죠. 아니... 하겠습니다. 이 자료 토대로... 기사 내드리겠습니다. 제가 컨트롤하는 모든 매체를 통해서요.”
잘했다. ‘장고 끝 악수’라는 말도 있는데, 잘한 결정이라면 3달이면 어떻고 3분이면 어떻겠는가. 나는 그에게 말했다.
“파일은 이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는 입을 앙다문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대신... 대표님도... 앞으로 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입니다.”
프랑스의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의 명언 중 ‘인생은 B와 D 중의 C다.’라는 것이 있다.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라는 것. 인생은 매번이 선택이다. 주식을 하든 하지 않든, 사람은 매번 자기 인생을 선택하며 나아간다. 그 선택 중,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을 선택할 때 일이다.
누구와 친구가 될 것이지, 누구의 구애를 받아줄 것인지,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에 따라 사람의 인생은 요동치게 된다. 오늘은 나를 택한 두 사람의 인생이 많이 바뀌는 날이다. 나는 사장실 창가에 다가가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금수저 두 사람의 운명이 여기서 갈리는 군. 하나는 나를 적으로 선택해서, 하나는 나를 동료로 선택해서.’
두 사람의 선택이 정반대인 만큼, 선택의 결과 역시 극명할 것이다. 나는 한 명은 추락시킬 것이고, 한 명은 위로 올려줄 것이다. 천칭을 들고 있는 운명의 신처럼. 나는 내 손바닥을 보고 두어 번 손을 쥐었다가 폈다. 그런 다음 다시 한 번 창밖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