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20화 (120/198)
  • # 120

    정의구현

    ‘타닥 타닥 타닥’

    나는 빠르게 손가락을 놀렸다. 그러다가 눈을 껌뻑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우 이거 일이로군 일.’

    세 시간째, 나는 문서 하나를 작성하고 있었다. 언론사에 돌릴 투고용 기사다. 크로우가 보내 준 자료가 워낙에 방대했기 때문에, 이것을 축약해서 투고용 문서로 바꾸는 것도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이걸 해냈다. 그 원동력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이 보고서 안에는 내가 궁금하던 요소들이 쓰여 있었다는 점이었다. 보고서 내용 중에는

    ‘비상건설 정기웅 사장은 수년 전부터 서울시 공무원들과 접점을 만들어놓은 바, 이번 사업자 선정에서 유리할 것이 알고 있었음. 하지만 본인 개인의 채무가 많아 주식을 사들일 여력이 없었음. 그 때 마침 탁준기 강주혁을 비롯한 주가조작단이 접촉. 정기웅 사장은 그들의 주가조작을 허용해주는 대신 금 50억원을 따로 받을 계획이었음. 이 중 선입금 받은 3억 중 일부는 종로 3가 ‘태양귀금속’에서 금괴로 바뀌어 서울시 공무원에게 금품으로 살포됨.’

    정기웅-탁준기 커넥션에 관한 내용도 들어 있고.

    ‘강주혁 기자는 BKS방송국에 모든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탁준기 이사를 협박함. 하지만 탁준기 이사는 그의 딸이 집으로 귀가하는 사진으로 응수하며 역으로 협박했고, 딸 사진을 본 강주혁 기자는 백기를 포기하고 그의 자살 권유를 받아들임. 본인이 주가조작의 죄를 뒤집어쓰는 대신 가족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계약을 함. 그 계약서와 강주혁 기자의 유서 원본 두 가지 는 강주혁 기자의 구글메일 계정 모두 들어있음 계정의 아이디는...’

    강주혁 기자가 자살 하게 된 과정도 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기나긴 보고서를 읽으면서도 쉽게 지치지 않고 문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재밌었으니까. 내가 이 문서 작성에 집착할 수 있는 둘째 이유는 시간이 촉박해서였다. 강주혁 기자 자살의 내막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탁준기 이사는 진짜로 누군가를 납치, 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협박을 하고 그게 먹히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하루 이틀 뒤면 해외에 나가 있었던 부모님, 그리고 아영이가 귀국한다. 나는 그전에 탁준기 이사를 전국구 스타로 만들어주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나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생수를 하나 꺼내 벌컥 벌컥 들이킨 다음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 내로 이 작업을 끝내고, 내일 바로 탁준기를 지옥에 보낼 것이다.

    *

    ‘띠리리~ 띠리리~’

    울리는 알람에 나는 눈을 떴다. 어제 늦게까지 문서작업을 한 지라 허리가 살짝 찌뿌둥하고 눈이 뻐근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곧바로 일어났다. 오늘은 매우 할 일이 많았으니까. 나는 평소처럼 씻고, 먹고, 입고

    “가자.”

    서 비서, 그리고 장근이와 함께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하면서 나는 서 비서에게 말을 해두었다.

    “서 비서. 오늘 오라클뉴스 정소영 대표님 스케쥴 확인하고 비어 있으시면 오전에 나 보러 오시라 그래.”

    “네 사장님.”

    사장실에 들어온 나는 바로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어제 내가 내게 보내놨던 메일이 있다. 탁준기를 파멸시킬 문서가 첨부되어 있는. 나는 일단 그걸 바탕화면에 다운받아 두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바로 언론사에 뿌려버리고 싶지만, 조금 참기로 했다. 왜냐하면, 내가 작성한 이 문서에는 탁준기 뿐만 아니라 그를 비호해준, 검사, 경찰, 언론사의 고위직 인사까지 모두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쓸 때는 몰랐는데, 쓰고 나니 이 문서 사람을 하는 저격용 소총이 아니라, 그 근방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쓸어버리는 박격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소영 대표와 한번 상의를 하고 내보내기로 했다. 이걸 그대로 써서 내보냈을 때 오라클 뉴스가 감당을 할 수 있는지, 그게 조금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장님. 정소영 대표님 10시 이전에 최대한 빨리 오시겠답니다.”

    “그래.”

    8시 45분. 보고를 받은 나는 평소처럼 HTS를 켜 놓고 미래뉴스를 읽었다.

    ‘음 그래 성보F&A가 어닝서프라이즈...’

    그러던 중 문득 묘한 생각이 하나 들었다.

    ‘잠깐만, 오늘 탁준기를 검색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이리되든 저리되든 탁준기 관련된 기사를 풀 예정이었다. 정소영 대표와 만나서 상의를 하는 것은 절차의 문제일 뿐. 그렇게 되면 그는 오늘 9시 뉴스에 스타가 되어야한다. 중간에 이상한 일이 없다면. 나는 ‘12시간 뒤’ 인물검색란에 ‘탁준기’를 써넣어보았다. 기사가 하나 나온다.

    ‘비상건설 비리청탁, 주가조작 실제 핵심은 수연그룹의 3세. 탁준기 이사’

    제대로다. 내가 딱 원하는 내용의 기사. 나는 그것을 클릭해보았다. 기사의 내용은 내가 어제 정리해서 바탕화면에 올려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건의 진행을 조금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기사화’되어 있을 뿐이다.

    내가 만든 미래가 미래뉴스에 나와 있다니, 조금 재밌다. 나는 그걸 더 읽어보았다. 내가 살짝 고민했던, 검찰, 경찰, 언론 고위직 간부. 모두 실명이 까여 있다. 저격총 대신 박격포가 고대로 나간 모양이다.

    ‘결국 그렇게 되는군.’

    그것은 삼십분 뒤 결정이 났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부드러운 베이지색 정장을 입고 온, 미모 CEO 오라클뉴스 정소영 대표가 나를 찾아옴으로써. 그녀는 내 문서를 보고

    “세상에... 이런 일이...”

    처음에는 조금 놀랐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내게 말했다.

    “이거... 그대로 내보내겠습니다. 대표님. 물론 저희 회사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내보낼 수 있어야. 언론이라고 할 수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군요. 외압 때문이라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약에 오라클 뉴스가 어떻게든 막힌다면... 저도 따로 수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네 대표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대표님 이 문서 그대로 메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기사는 오늘 내로. 내보내주세요.”

    “네 대표님.”

    정소영 대표는 나와의 면담 후, 문을 열고 나섰다. 그런데 그러던 때였다. 서 비서가 사장실 문을 붙잡으며 내게 말했다.

    “저 사장님.”

    “응?”

    “방금 정소영 대표님하고 이야기 하시는 사이에, 다른 분이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누구?”

    “저... 수연여행 탁준기 이사님이요. 11시 즈음 오셔서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래?”

    나는 살짝 놀랐다. 본인 스스로가 움직이다니.

    ‘흠...’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지난주에 안용균 전 블루E&M 대표에게

    ‘탁준기에게 얼마나 받기로 했습니까?’

    그렇게 말을 해놨으니, 본인도 이제 알았을 것이다. 내가 그의 의도와 전략을 모두 꿰뚫고 있다는 것을. 비상건설 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을 것이다.

    ‘오늘 밤에 감방 가실 분이... 나를 찾아오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오라 그래.”

    “네 사장님.”

    나는 문을 닫고 나서려는 서 비서에게.

    “아아 잠깐.”

    그를 멈춰세웠다. 그리고

    “밖에 장근아. 잠깐 들어와 봐.”

    그 대신 장근이를 불러서 사장실 안으로 들어오게 시켰다. 장근이는 그 특유의 남성스러운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그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안심이 된다. 나는 그에게 말을 해두었다.

    “11시에, 아주 뺀질뺀질 하게 생긴 사람이 올 거야. 돈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쳐 바른 것 같은 사람.”

    “네.”

    나는 침을 한 번 삼킨 다음 이어 말했다.

    “그 사람이 내 ‘적’이다.”

    장근이는 잠시 눈을 내려깔았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

    ‘띠리리 띠리리~’

    서 비서의 전화가 왔다. 보나마나다.

    “들어오시라 그래.”

    문이 열리고 탁준기 이사가 들어온다. 평소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너스레를 떨던 사람이 오늘은 입을 굳게 닫고 있다. 그 꼴이 볼만하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내가 그걸 해주었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탁 이사님.”

    그런데 그 사이, 뒤편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못 지나갑니다.”

    “가야겠다면?”

    “할 수 있으면 해보시오.”

    장근이와 탁 이사 비서. 그 거한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탁준기 이사보다도 그쪽에 관심이 많이 갔다. 탁 이사의 비서도 나름 한 덩치 하지만, 장근이에 비하면 머리하난 작다. 그 뿐이랴 장근이는 유도 선수출신이다. 그것도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은메달을 딴. 거구의 비서는 정장에 셔츠에 넥타이까지 메고 있는데, 그건 유도 선수에게 ‘나 죽여주시오’하는 거나 다를 바 없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 번 제대로 붙어보면...’

    하는 생각을 했다. 아쉽게도 탁 이사가

    “됐어. 나가 있어.”

    손짓을 하는 바람에 끝나고 말았지만 말이다. 상황은 정리되고, 장근이만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장근이가 방문자의 뒤를 지키고 서 있다. 이게 보통 내 사장실 구도다. 탁 이사는 그가 부담스러웠는지 내게 말했다.

    “이 분도 좀 나가있으시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제가 또 나름 유도를 해서 1:1로는 지지 않는다. 자신하지만... 탁 이사님은 또 이런 거 저런 거 이상한 것을 쓰실 지도 몰라서...”

    탁 이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내가 남의 오피스에서 칼이라도 휘두른다 그런 말이야?”

    “그럴 수도 있으실 거 같던데요.”

    나는 바로 뒤이어 말했다.

    “알아 본 바로는.”

    내 말에, 탁 이사의 눈이 커진다. 그럴 만도 하다. 여태까지 그가 품었던 의문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것. 나는 그에게 말했다.

    “탁 이사님 알면 알수록 무서운 분이시더군요. 첫 인상도 조금 그랬지만.”

    내가 뭐라고 하든, 그는 내게 말했다.

    “내가 오늘 여기 찾아온 것은, 휴전을 하기 위해 찾아온 거야.”

    “휴전?”

    “...그래. 휴전. 나는 더 이상 네 회사에 손대지 않을게. 블루E&M에 들어갔던 공매도는 더 높은 가격에 환수될 거야. 내 사비를 들여서”

    “그건 당연한 거지요. 베팅을 했다가, 졌으면 토해내는 거. 응당 그걸 받아들이셔야죠 주식 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거기에다가 한 마디를 더 해주었다.

    “비상건설 때 이미 겪어 보시지 않았습니까?”

    비상건설 이야기를 먼저 꺼내니 그도 평정을 잃는다.

    “뭐야?”

    나는 당장이라도 나를 덥치려는 듯 의자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 때, 장근이가 앞으로 쓰윽 나서자, 그는 얼굴을 울그락 붉그락 하면서도 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저 거한의 비서도 상대가 안 되지만, 평범한 체구의 탁준기라면 장근이는 하늘에 던지면서 가지고 놀 수도 있다. 나는 그 점을 짚으며 말했다.

    “화는 내지 마시고요. 여기서 화내면 화 보시는 건 그쪽이니까.”

    그는 분한 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천억 원 잃고도 분노조절을 하게 만든다. 남들 종아리만한 장근의 팔뚝. 참 믿음직스럽다.

    “어찌되었든, 하자 휴전. 나는 앞으로 너에게 다시 위해가 될 만한 일은 하지 않을게. 피차 다시는 상관하지 않도록 하자. 서로 피차 모르는 체 살아가자고. 나쁜 인연은 여기까지 해놓고.”

    나는 잠깐 탁자를 툭툭 치다가, 그에게 말했다.

    “뭐 나쁜 이야기는 아니군요. 저도 탁 이사님이랑 엮이는 거 더는 싫거든요. 돈은 벌긴 했지만 시장에 딱히 탁 이사님 돈만 있는 건 아니니까...”

    거기서 나는 말 꼬리를 흐리다가, 다른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제가 하나 해야 할 게 있어서요. 그게 혹시 탁 이사님한테 위해가 갈까 걱정이되네요.”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게 뭔데?”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정의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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