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17화 (117/198)

# 117

BJ키파

‘띠리리, 띠리리’

알람이 울린다. 나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대접에 콸콸 부은 다음, 그리고 찬장에서 시리얼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아마 이것도 하지 않았을 텐데,

‘나 없는 동안 이거라도 챙겨 먹어.’

아영이가 사다 준 시리얼이라 꼭 먹게 된다. 나는 시리얼을 먹다가 생각이 난 김에, 잠시 휴대폰을 들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영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지? 보고 싶어.’

그리고 10초 정도, 그걸 바라보았다. 문자 옆에 있는 숫자 ‘1’이 지워지지 않는 것을 보니 한참 자거나, 드라이빙을 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 쯤 어디 있으려나...?’

아영이는 절친 사라와 함께 델마와 루이스처럼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대륙횡단 여행 중이었다. 도시를 옮겨갈 때마다 시차가 매번 바뀌어서 지금 몇 시에 살고 있는지 알기도 힘들다.

‘뭐 보게 되면 답장하겠지.’

간단히 식사를 마친 나는 이빨을 닦고 옷을 챙겨 입은 뒤, 머리를 만졌다. 때마침.

‘위이잉’

전화기가 울린다. 나는 그걸 받았다.

“응. 나갈게 지금.”

출근 준비를 마친 나는 집 밖으로 나섰다. 우리 집 복도에는 190cm의 거구. 장근이가 서 있다. 장근이는 나를 보고 몸을 반 접어 인사한다.

“이상 없습니다. 사장님.”

나는 장근이의 어깨를 한 번 툭 쳐주고는

“응. 수고하네.”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하주차장에 가보면, 서 비서가 시동을 건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셨습니까?”

“응 좋은 아침.”

내가 뒷좌석에 타는 사이, 장근이는 휘익 그 큰 키로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다음, 조수석에 탄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서 비서는 차를 몰고 우리집 주차장을 나선다. 그 사이 장근이는 계속해서 주변을 살핀다. 그를 본 나는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는 않은지, 또 어떤 차가 따라오지는 않는지. 내가 지켜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역시 쓰길 잘했군.’

장근이를 고용한지 일주일 째, 나는 이렇게 셋이서 출근을 했다. 조금 유난을 떤다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한 달은 이렇게 할 작정이다. 탁준기가 창살 안에 들어갈 때 까지. 물론 이 모든 것은 ‘크로우가 일을 잘 해온다’는 가정 하에 이루어지는 일이다. 만약에 그가 눈을 껌뻑거리며

‘죄송합니다. 요청하신 정보를 수집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라고 한다든지 하면, 모든 것은 수포로 넘어간다. 나는 계속해서 불안감에 사로잡힌 채로 탁준기와 긴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내 ‘공격’이 가능할 것이다.

‘잘 해 와야 할 텐데...’

대신 ‘수비’만큼은 이미 거의 완벽하게 해놓았다. 장근이를 고용한 것도 있었지만. 나는 미래뉴스를 토대로 들어올 공격을 이미 모두 차단해놓았다. 회사 안으로 들어온 나는 바로 장 부사장을 불러서 그 점을 확인해놓았다.

“그래서 제가 말해놨던 것은?”

장 부사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말씀하신대로 모두 준비시켜놓았습니다. 사장님.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결전은 앞으로 2주 뒤부터다.

*

나는 팔짱을 낀 채로 HTS를 지켜보았다. 정확하게는 ‘블루E&M’의 호가창을.

‘거래량 평범. 특이한 매수 주체도 없고 매도 주체도 없다...’

나는 살짝 졸린 눈으로 슬쩍 시계를 바라보았다. 8월 21일 오전 11시 30분. 결국 결전의 날이 왔는데, 잠잠하다.

‘오늘부터 매도가 나와야 하는데...’

내가‘12주 뒤’뉴스에서 본 대로라면 안용균 사장은 25일. 자신의 지분을 팔았다고 공시하게 된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1대 주주는 지분을 파는 즉시 공시해야하고, 기타 대주주는 5일 내로 공시를 해야 한다. 한마디로 그가 주식을 판다면 오늘부터 주식을 정리해야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호가창은 평온하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래도 나는 확신을 했다.

‘음... 조금 더 기다려보자. 정정보도는 오지 않았으니.’

정정보도 기한은 그 사건이 있기 전 혹은 한 달이다. 그러니까 한 달 내 뉴스라면 변화가 생기는 즉시 정정보도가 오고, 한 달 뒤 뉴스라면 한 달까지는 정정보도가 온다. 이번 뉴스는 대략 24일 전에 보고 받았으므로, 미래가 바뀐다면 반드시 정정보도가 온다.

‘그래 그것보다는...’

나는 최근 들어 공매도가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체크해보았다. 월 초부터 슬금슬금 늘어나던 공매도 수량은 요새 꽤 늘어나 있었다. 정상적인 주가 상승을 방해할 만큼. 딱 그림은 맞아 떨어진다.

‘어째 이 양반은 수법이 바뀌질 않냐...’

공매도를 친 다음 악재 뉴스를 만들어 주가를 끌어내린다. 고영식품에서부터 진양개발, 그리고 이번 것 까지 모두 똑같은 패턴이다. 주식이라는 게 오르고 내리는 것 밖에 돈이 벌릴 기회가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지만. 문제는 이미 나한테 다 파악이 됐다는 점이다.

‘어디로 들어올지 알면 그 힘을 역이용하는 건 쉽지. 유도가 그런 것처럼’

나는 문득 고객센터가 ‘마스터 크로우’를 설명할 때 했던 묘사를 떠올렸다.

‘그는 당신이 어디를 붙잡으려 할지 알고 있을 겁니다.’

“흠...”

뭔가 마법적인 일이지만, 어찌되었든 좋다. 나는 그의 부하인 크로우가 일을 잘 해오기만 하면 된다. 그러던 때였다.

‘왔구나.’

갑자기 블루E&M의 주가가 하락한다. 어디선가 떨어진 매물 폭탄 때문이다. 겉으로만 봤을 때는 공매도에 지친 개미가 나가떨어지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배경을 알고 있다 보니, 내 눈에는 안용균 사장이 주식을 팔아치우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99%. 탁준기와 결탁한 안용균 사장이. 이번 케이스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바로 회사의 CEO인 안용균 사장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는 것에 있다.

지난 비상건설 때도 그랬지만 작전을 칠 때는 대개 대표와 손을 잡거나 혹은 최소한 암묵적인 허용 정도는 하고 한다. 지금 블루E&M의 실질적인 대주주는 나지만 일단 일은 안용균 사장이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손을 붙잡은 듯하다. 둘이서 손잡고 나 엿 먹이고 돈 챙겨가는 식으로. 나한테 딱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안 대표... 어쩌다가 그런 결정을 내리셨는지 모르겠지만... 꼬리를 흔들 주인을 잘 못 고른 거야. 잘 못 골라도 한참.’

물론 그럴 수 있긴 하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가 최근 급성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신흥 회사다. 그의 눈에는 새로운 루키보다 50년간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이 되어온 수연의 이름이 더 거대해보였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게 얼마 걸리지 않을 테지만. 나는 호가창이 밀리는 것을 지켜보다가, 전화기를 들어서 다이렉트로 장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사장님. 말씀드린 대로 블루 E&M 지분 확보하세요.”

“네 사장님.”

주가조작 세력은 대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길 원한다. 올리고, 내리고, 그걸 반복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탐욕스럽게 만들어서 지옥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블루 E&M은 내가 직접 경영하지는 않지만, 내 회사고, 내 놀이터다. 이곳에서 불장난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이 회사를 만든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

8월 25일. 나는 사장실 문을 나섰다.

“가자.”

“네. 사장님.”

내 뒤로 서 비서와 경호원 장근이가 따라붙는다. 가는 길에 서 비서는 전화를 넣었다.

“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 대표님 비서 서지훈입니다. 네. 오늘 대표님이 회사에 직접 방문하신다고 하셔서요. 네. 아 네. 별건 아니고 그냥 업무보고 받으신다고 하시네요.”

서 비서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걸 전해 듣는 안용균 사장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주식은 다 팔았는데, 갑자기 주인이 오고 있다니. 보통 본인 회사에 출근도 안하는 작자인데. 아니나 다를까.

“대표님... 갑자기 무슨 일로...”

그는 살짝 창백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니 이 근처 지나가다가, 겸사겸사 들렸습니다. 인사도 할 겸 해서.”

나는 아직 그가 지분을 파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네 그러셨군요.”

그는 살짝 안도감이 섞인 말을 내뱉었지만, 불안감이 모두 가시지는 않아 보였다.

‘흥 도둑이 제발 저리고 있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슬쩌억 회사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러는 사이.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 재무이사 김석현입니다. 대표님. 기억하시지요?”

블루E&M의 주요 이사들이 내게 와서 고개를 조아린다. 얼굴 한 번 비춰본 적 없지만, 이곳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나는 그들을 보며 안용균 사장에게 말했다.

“아 잠시 온 김에, 이사들님하고 이야기도 나누죠. 근황 토크도 좀 할 겸.”

“아... 네”

나는 불심검문을 나온 상사처럼 회의실 한쪽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다른 이사들이 허둥지둥 와서 자리에 앉는다. 그리 수가 많지는 않다. 워낙에 작은 회사기도 했고,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반갑습니다. 블루E&M 이사 여러분.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군요. 저희 회사가 블루 E&M에 투자를 한 지 1년 만에 거의 두 배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요 며칠은 좀 주춤하긴 했지만요.”

나는 ‘요 며칠은 좀 주춤하긴 했지만’을 말할 때, 안용균 사장을 슬쩍 보았다. 주가를 ‘며칠 좀 주춤하게’ 만든 장본인인 안용균 사장은 눈을 빠르게 좌우로 굴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불안해 미치겠다는 표정이다. 나는 그런 그를 내버려둔 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난 번 아이돌 매니지먼트 프로젝트는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하더군요. 시청률도 잘 나오고 아이돌 푸쉬도 제대로 돼서... OH엔터 권오혁 사장님도 만족해하신다고 합니다. 직접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 역시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별말씀을...”

내 칭찬 세례에 그들은 어찌 대답해야할지 몸둘바를 몰랐다. 여기서 나는 본론을 꺼냈다.

“그리고 그 다음 프로젝트 말인데... 이 마이 빅 텔레비전 말입니다.”

‘마이 빅 텔레비전’은 사파이어TV 최초로 종합편성채널 한 곳과 연계해 만들어낸 빅 프로젝트다. 종편에서는 연예인을 섭외해서 사파이어TV를 통해 개인방송을 내보내는 형식. 여기에 사파이어TV의 유명BJ들도 합류해서 합방을 펼친다. 종편은 신선한 컨텐츠를 제공하고, 사파이어TV는 플랫폼과 BJ를 제공하는 것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이게 제 생각에 앞으로 사파이어TV의 명운을 가를만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참가 BJ명단 나왔나요?”

내 말에 이사 하나가 빠르게 대답한다.

“네 대표님.”

“그거 목록 좀 보여주세요.”

“네 대표님.”

그는 고개를 숙이더니 쏜살같이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가 서류 한 장을 들고 온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거기에 맨 위에 딱 그 아이디가 있다. ‘BJ키파’ 본명 노칠연. 일주일 뒤에, 걸그룹과의 라이브 방송에서. 걸그룹 팬들 그리고, 타 종편 시청자들이 천 명가량 몰려들었을 때, 내 입으로 말하기도 뭐한 정도의 ‘대형 사고’를 치는 인물.

회사 운영이 잠시 마비될 정도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강력한 제제를 일으키고, 시가총액 수 백억을 날릴 인간 핵폭탄. 나는 한 손으로 그 서류를 들고 나머지 한 손의 검지를 튕겨 그 이름을 팡팡 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분은...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요? BJ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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