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16화 (116/198)
  • # 116

    시즌2

    나는 책상에 턱을 괸 채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사파이어TV 주최 판타지 워 그라운드 개회 성황리 종료’

    ‘사파이어TV 아이돌 매니지먼트 108 지원사격 나선다.’

    1년이 넘는 기간동안 워낙에 많은 기사를 읽어서 그런지, 굳이 클릭을 해보지 않아도 내용이 머리 속에서 그려진다. 나는 검색어를 바꾸어보았다.

    ‘블루E&M’

    곧 몇 가지 기사가 더 뜬다.

    ‘1인 미디어 시대. 커져가는 시장기대에 유러피안TV, 블루E&M 급등.’

    ‘블루E&M 52주 신고가. 어디까지 올라가나?’

    블루E&M의 주가가 잘 나가고 있다는 기사들이다. 역시나 겉으로 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왜...? 왜 파는 것일까? 정말 개인적인 사정? 개인적인 사정으로 150억이 필요해? 아니면 단순 차익 실현? 지금보다 떨어질 까봐?’

    블루E&M주가는 내가 투자한 이후로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카이게임즈와 OH엔터테인먼트와의 연계가 있긴 했지만, 사실 1등주자인 유러피안TV가 워낙에 오르는 덕분에 같이 오른 것이 크다. 주도주를 따라가는 2등주랄까. 지금 주가는 약간 과대평가된 감이 없잖아 있긴 하다. 나는 HTS를 통해서 최근 공매도 수량을 체크해보았다.

    확실히 최근 들어 공매도 수량이 조금씩 늘고 있다. 단순히 과열에 베팅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워낙에 타이밍이 배나무 밑에서 삿갓 고쳐 쓰는 타이밍이라 예의 주시를 해야 할 것 같다.

    ‘음...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대주주인 우리 회사에 먼저 보고를 하겠지... 하지만 보고를 하지 않는 다면... 내가 직접 찾아내겠어. 본인보다 더 빠르게.’

    나는 안용균 사장을 비롯해 블루E&M의 주요 이사들 이름목록을 뽑아냈다. 이제 이 사람들은 내 인물검색에 모두 올라가서 며칠간 ‘검색’될 것이다. 무슨 뉴스가 나오는지.

    ‘좋아 그러면 오늘 저녁부터는...’

    그러던 때였다.

    ‘띠리리리~’

    전화기가 울린다. 서 비서다.

    “응 왜?”

    “저... 사장님.”

    그런데, 서 비서 목소리가 조금 요상하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저... 찾아오신 분이 있습니다. 성함이 박장근 씨? 라고...”

    나는 화색이 되어 말했다.

    “아아 들여보내 줘.”

    곧 문이 열리고 키가 190센티에 전신이 근육질인 남자 하나가 들어온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우리 둘은 씨익 웃었다. 나는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와 장근아! 이게 몇 년 만이냐.”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를 안아주었다. 그런데 녀석이 워낙에 큰 탓에 그림은 내가 안긴 형국이 되었다. 나는 녀석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려 주었다. 온 몸이 강철 같다.

    “잘 지냈지?”

    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형님도 잘 지내셨지요?”

    “응. 나야 뭐 보시다시피”

    나는 손짓으로 사장실 안쪽, 특히 밖이 훤히 보이는 전면 유리를 가리켰다. 그 너머로 서울의 강남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공의 상징.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나도 170후반의 작지 않은 키지만 이 녀석은 꽤 올려다봐야 한다.

    “그나저나 너 대체 언제 이렇게 컸냐... 중학생 때는 나랑 비슷하거나 조금 작았던 것 같았는데...”

    “글쎄요. 중3때 즈음이니까... 형님이 딱 도장 안 나오신 때 이후로? 그 때부터 계속 크더라고요.”

    “그러니까... 내 기억에 너... 초등학생 때는 수진이하고 싸우고 그랬던 것 기억나는데.”

    초등학교 때, 동생이 때리고 다니던 남자아이 목록에는 이 녀석도 있었다. 지금은 동생보다 몸무게가 두 배 넘게 나갈 테지만. 그땐 그랬다. 내 말에 장근이는 피식 웃는다.

    “그랬었지요. 그 때는.”

    웃는 얼굴을 보니 딱 초, 중학생 때, 봤던 모습 그대로다.

    “그래도 야 오랜만에 보니까 옛날 생각나고 좋구나.”

    “저도 그렇습니다. 형님. 그나저나 이렇게 출세하시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에이 뭘...”

    “아니요. 고향 친구들끼리 술 마실 때마다 다들 형님 이야기를 합니다. 저희 동네에서 제일 부자가 나왔다고... 형님이 관장님 건물 사드린 것도 늘 이야기가 나옵니다. 관장님도 자랑 삼아서 자주 이야기 하시고요.”

    “아아 그래. 뭐 효도지. 앉아”

    나는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 사이, 열려 있던 사장실 문이 닫힌다. 지금 보니 서 비서가 몰래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나보다.

    ‘아아 190cm가 넘는 근육질 남자가 들어오니... 누군지 궁금 할만도 하겠지.’

    나는 그가 닫은 문을 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는 서 비서를 불렀다.

    “서 비서.”

    “네?”

    “들어와 너도.”

    본래 자리로 돌아가려던 그는

    “아 네 사장님.”

    내 말을 듣고 사장실 안으로 들어온다.

    “서 비서도 앉고.”

    서 비서는 장근이의 존재감 때문인지 떨떠름하게 서 있다가, 그에게서 살짝 떨어져서 앉았다. 나는 그에게 장근이를 소개시켜주었다.

    “이 쪽은 박장근. 우리 고향 후배고, 아버지 도장에 다니던 동생. 그리고... 몇 년도였지? 그 선수권 대회가?”

    “2011년입니다.”

    “아 그래 세계 유도 선수권대회 은메달리스트야. 지금은 경호원 일을 하고 있고. 에 그리고 이쪽은”

    나는 이어서 서 비서를 소개시켜주었다.

    “우리 대학 동기고, 뭐... 동아리도 같이 했었고 창업도 하려고 했었고. 뭐... 그러다가 내 비서로 들어온 서지훈이야.”

    나랑 오랜 기간 친했지만, 각자 시간대가 다른 두 사람이다. 내 소개에 둘은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악수를 나눈다. 지금 이렇게 보니 두 사람은 완벽하게 대조되는 느낌이다. 하나는 대학 입학과 졸업까지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공부벌레. 하나는 중학생 때부터 유망주 평가를 받아 세계 탑 레벨에 가까이 갔던 운동선수.

    ‘옛날에 임금님이 무관과 문관... 보는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 서 비서를 보며 말했다.

    “장근이한테는 이미 말했지만... 내가 장근이를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경호를 맡길까 해서 부른 거야. 어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 달만.”

    서 비서는 내게 물었다.

    “경호요?”

    “응.”

    서 비서는 슬쩍 장근이 눈치를 보면서 내게 물었다.

    “왜...요? 여태 경호가 필요하시다고 하신 적은 없으시잖아요?”

    “아아... 뭐 그냥. 나도 혹시 필요한 일이 있지 않을까 해서. 방비 차원으로.”

    나는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건 내 심증일 뿐인데, 굳이 서 비서까지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래서... 장근아. 앞으로 한 달간 나랑, 여기 있는 서 비서를 경호해 주길 바래.”

    내 말에, 장근이는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맡겨만 주십쇼.”

    동시에, 서 비서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 나 가는데 모두 따라 다니잖아. 내가 위험해지면 너도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사실 뭔가 위협을 받는 다면, 이 녀석이 더 위험할 것이다. 솔직히 나는 나 스스로 정도는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유도복을 벗은지는 꽤 되었지만, 아직 몸에 익어 있는 기술들이 있엇으니까. 단지 장근이를 쓰는 것이 더 확실한 카드이기 때문에, 고용을 한 것 뿐이다. 그의 월급은 내가 10초 숨 쉬는 동안 벌릴 수준이니까. 서 비서는 잠시 입을 모은 채로 이마를 긁적였다.

    ‘내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는 눈치다. 나는 두 손을 마주치며 말했다.

    “어쨌든 그렇게 됐으니까. 두 사람 서로 친해지길 바래. 둘이 나이가... 비슷 할텐데?”

    둘은 서로를 쳐다보고 말을 주고 받는다.

    “저는 스물 아홉입니다.”

    “아... 저도”

    “마침 동갑이네. 잘 지내. 친구들끼리.”

    “네 형님.”

    “...네 사장님.”

    “저 그러면 오늘부터 바로 업무 시작하겠습니다. 형님 그... 앞으로 어떻게 불러드려야 할까요?”

    “사장님 아니면 대표님... 둘 중 하나로 불러.”

    “네... 사... 사장님”

    장근이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를 봐와서 그 호칭이 조금 어색한 것 같았지만, 이내 적응해서

    ‘사장님 출근할 때 동선이 어떻게 되시죠? 차는? 차번호가? 세대. 네 차종은? 포르쉐랑 람보르기니 그리고 벤틀리요... 네.’

    본격적인 경호 업무를 맡기 시작했다. 본래 ‘돈 잃고 속 좋은 놈 없다’는 옛 말 이 있을 지경이니까. 탁준기처럼 승부에, 돈에 집착이 강한 사람이라면 내게 강한 원한을 품었을 수도 있다. 뭔가 불법적인 일을 저지를 정도의 강한 원한. 장근이는 그로부터 나를 보호해 좋은 방패가 될 것이다.

    *

    그로부터 이틀이 더 지났다. 장근이는 자연스럽게 내 경호원으로 녹아들었다. 내가 가는 곳에 따라 붙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지켰다. 그가 있으니 훨씬 마음이 편하다. 장근이는 유도 선수출신의 강력함도 있었지만 본래 고향동생이어서 믿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장근이도 알고, 장근이 부모님도 알고 있었다. 반대도 마찬가지, 장근이는 우리 아버지를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로 여겼기 때문에, 나에게도 비슷한 충성심을 보였다. 서 비서와는 조금 어색하다 싶었는데(워낙에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라)때때로

    “서 비서님은 그럼 전공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경제학입니다. 장근 씨는 그러면 그 때 사고 이후로 다시 선수는 하지 않고 계신 거고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나중에는

    “아무래도 사장님이랑 같이 먹는 게 좋지. 대체로 다 비싸고 맛있는 거라.”

    “아아 그렇군.”

    “응 사장님은 그런데에는 돈 하나도 안 아끼니까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내가 작정하고 먹으면 조금 부담스러워 하실 수도 있는데.”

    서로 말을 놓는 것까지 보게 되었다. 잘 됐다. 예전에 다른 회사가거나 할 때, 서 비서 혼자 멀뚱멀뚱 세워놓아서 미안한 것도 있었는데, 이렇게 둘이서 친해져 놓으면 서로 심심할 일도 없고 좋을 것이다. 해외에서는

    ‘오빠 여기 지금 뉴욕 월스트리트야 별 생각 없었는데, 오빠 주식 하니까. 생각나서 와봤네. 내일 여기서 차 렌트해서 LA까지 갑니다. 슝슝’

    아영이한테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아들 엄마가 아들 덕에 호강한다. 로마는 정말 어찌나 볼거리가 많은지. 여기서 한 달 동안 있어도 다 못 보겠더라. 보는 것도 재밌고 먹는 것도 맛있다. 고맙다 아들.’

    어머니와 가족들한테서도. 이걸로 일단 오프라인의 안전은 보장 해놓았다. 이제 남은 것은 온라인에서의 싸움이다.

    ‘8월 25일었지... 블루E&M 대주주 매도 공시가 나온 날짜가...’

    2대주주는 지분이 변경된 지 5일 내로 공시를 내야한다. 그러니까. 20일부터 주식을 팔 수 있다는 말이다. 20일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대체 뭐지...?’

    나는 계속해서 미래뉴스에서 인물검색을 통해서 안용균 사장과 블루E&M 이사들을 추적했다. 간간히 내 이름도 적어놓고, 혹시 몰라서 탁준기 이사 이름도 적어 넣고. 그러던 중이었다. 기사 하나가 내 손에 걸렸다.

    ‘이거 였구나.’

    하는 것이. 거미사냥 시즌2다. 지난번에는 꼬리를 자르고 도망갔을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진짜 아예 끝장을 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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