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15화 (115/198)
  • # 115

    보이지 않는 위험

    나는 기사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블루 E&M 안용균 대표. 보유 지분 5% 장내매도’

    내용은 간단하고 명확했다. 블루E&M, 사파이어TV의 안용균 대표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분을 7%를 팔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공시 기사답게 내용이 딱히 없다. 제목을 그대로 풀어놓은 것 밖에는.

    8월 25일 보유 지분 7% 장내매도 했다고 공시했다.

    ‘7%나 팔았다고?’

    안용균 대표는 당시 우리 회사에서 투자를 받으면서 보유지분이 매우 낮아진 상태였다. CEO기는 하지만 사실상 내가 유임을 시켜줘서 CEO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 주식은 매우 적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데 15%가 안 될 텐데?’

    나는 창을 하나 더 띄워서 빠르게 블루E&M의 재무제표를 확인해보았다. 대주주 지분관계는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34.4%

    안용균 9.2%

    기억대로다. 안용균 사장은 9.2%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인수할 때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인수시점에서 블루E&M의 시가총액은 대략 600억원. 당시 우리 회사는 안용균 대표가 가지고 있던 지분150억 중 절반인 75억은 본인에게서 사고. 200억 원은 우리 회사에서 유상증자를 해서 대주주 지위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800억이 된 시가총액에서 우리 회사가 가진 지분은 275억. 안용균사장은 75억 원 정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 때 만들어진 지분비율이 34.4%와 9.2%였고 그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7%를 팔았다...’

    7%를 팔면 안용균 사장의 지분은 2.2%로 주저앉는다. CEO야 고용된 CEO들은 1%도 가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니. 하지만 창업자라고 하기에 민망한 수준까지 내려간다.

    ‘대체 왜...?’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것이다. 대체. 왜 팔았을까. 대개 모든 회사에서 대주주나 CEO의 지분 판매는 악재다. 회사의 주인이 주식을 팔게 되면 개인 투자자들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내릴 것을 아니까 파는 것 아냐?’

    하고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이 상식이다. 나는 그래도 좋게 생각해보려고 했다.

    ‘뭔가 급전이 필요해서 파는 게 아닐까? 권오혁 사장처럼 강남에 집을 산다던지...’

    하지만 그것은 아닐 것 같다. 블루E&M은 최근 주가가 많이 올라서 시가총액이 1600억정도 했다. 그러니까. 안용균사장의 지분은 대략 150억은 된다는 말이었다. 150억. 급전이 필요했다하더라도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 되지. 굳이 주식을 팔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고 싶거나... 아니면 진짜 악재가 있어서? ...아니 어쩌면?’

    마지막 시나리오가 하나 더 있긴 하다.

    ‘악재를 만들어내는 시나리오.’

    이원재 이사는 내게 경고했었다.

    ‘대표님이 가지고 있는 회사 중 하나를 비집고 들어가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는 안용균 사장에 대해 생각했다.

    ‘회장님 여기 앉으시지요?’

    ‘대표님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강자에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그.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탁준기 이사에게 굽실대는 건설사 사장을 생각했다.

    ‘탁 이사님 반갑습니다. 헤헤 예전에 아버님과 같이 골프를 치곤 했었는데...’

    시나리오가 하나 툭 튀어나온다. 강자에게 비굴한 사람. 그리고 수연그룹의 재벌 3세.

    ‘음...’

    하지만 이건 가설일 뿐이다. 아직까지 확실한 것은 없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는 상태. 나는 일단 그가 주식을 처분한 날짜만 확인해두었다.

    ‘8월 25일.’

    이 역시 아직 한 달 가까이 남았다. 그동안 뭔가 정보를 더 캐내야할 것 같다. 뭔가 우리 회사에 위해가 갈만한 일이 있다면, 그전에 차단할 것이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출근 준비를 한 채 집에서 나와 옆 집. 아영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아영이는 내게 평소처럼 아침 식사를 준비해두었다. 나는 아영이와 아침식사를 같이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영이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래서 몇 시 비행기라고?”

    “오전 11시.”

    “그럼 얼마 안 남았네?”

    “응 오빠 보내고 짐 정리한 다음 나가봐야지.”

    “그래? 음...”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혹시나, 아주 혹시나 미국에 가는 길에 누군가 해하려고 하지 않을까.

    “...내가 태워다 줄까?”

    “아니 오빠 오늘 출근해야한다며?”

    “그래도 인천공항 잠깐 갔다 오지 뭐.”

    “괜찮아 어차피 리무진 버스 우리 집 코앞에 오는데.”

    ‘음...’

    그건 맞다. 우리 집에서 1분 정도 걸어가면 인천 공항행 리무진 버스가 온다. 그녀의 동선을 생각하면 강남역, 리무진버스, 인천공항 순으로, 모두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다. 내가 직접 차를 모는 것보다 그편이 훨씬 안전할 것이다.

    “그래. 그럼... 잘 갔다 와.”

    아영이는 영문은 모르지만, 내가 그녀를 걱정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듯했다.

    “응. 걱정 마. 가서 연락할게.”

    나는 그녀에게 키스를 받고 그녀 집을 나왔다.

    ‘그래 뭐 별일 없겠지... 생각해보면... 아영이랑 나랑 사귄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외부에 노출도 거의 되지 않았으니까...’

    그건 그랬다. 부모님조차 최근 안부전화를 할 때도

    ‘요새 만나는 사람은 있니?’

    라고 물어올 정도였으니까. 내가 그녀와 사귀는 것을 알고, 같이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실질적으로 내 곁에 붙어 있는 서 비서 정도뿐이었다. 탁준기가 뭔가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한다고 한들, 그녀를 특정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 뭐 별일 없겠지. 가족들도 모래 출국이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주차장에는 내 차가 세 대 늘어서 있다. 포르쉐 파나메라, 벤틀리 벤테이가 그리고 최근에 산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도합 10억이 넘는 차들. 나는 거기서 주머니에서 벤틀리 차키를 꺼내 열고 거기 탔다.

    람보르기니는 산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내 간택을 자주 받지는 못했다. 특히 출퇴근 할 때는. 다른 직원들은 직장이라고, 열심히 일하겠다고 마음먹고 오는 곳인데, 오너가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면 조금 그런 마음이 꺾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벤틀리도 비싼 건 매한 가지지만, 그래도 이건 점잖은 면이 있다.

    ‘부으응’

    나는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는데, 마침 주차장에서 검은색 국산SUV가 뒤에 따라 붙는다. 평소 같았으면 별 생각이 없었을 텐데. 조금 그 차가 눈길을 끈다. 첫째는 우리 집 주차장에서 별로 자주 보지 못한 차라는 점.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오피스텔 지하에는 국산차가 더 적다. 있어도 대부분 대형차. 그런데 저건 중형SUV다. 자주 보이는 차는 아니다. 둘째는 선팅을 매우 강하게 했다. 대낮인데 운전자 음영만이 대충 보일 정도. 물론 평소 같았으면

    ‘누가 놀러왔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을 텐데. 이원재 이사의

    ‘탁준기 이사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경고가 나를 조금 과민하게 만든다.

    ‘에이... 뭐 아니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차를 몰았다. 강남역에서, 신논현역으로, 신논현역에서 논현역으로. 그런데 자꾸, 그 차가 내 백미러에 들어온다.

    ‘...가는 길이 같은가?’

    그것도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내가 출근하는 이 길은 청담동 쪽이나 동호대교나 성수대교 쪽으로 가려고 한다면, 탈만한 길이다.

    ‘음...’

    나는 천천히 우리 회사 주차장 쪽으로 차를 꺾으면서도, 그 차를 주시했다. 그런데 왠지, 그 차는 다른 차들보다 다소 느리게 내 뒤편을 지나쳐갔다. 우리 회사에 따라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왠지, 내 차가 ‘회사 안으로 잘 들어가나 안가나’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허...’

    나는 혀를 차며 차에서 내렸다. 여태 출근하면서 누군가 나를 따라올 것이란 상상을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탁준기 이사를 엿 먹일 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하 지난번에 주성원 기자랑 아예 마무리가 됐어야 되는데...’

    역시 그 때가 문제다. 검찰은 어떻게 된 것이 주변인만 잡아들였을 뿐이다. 가장 큰 대어는 잡지 않았다.

    ‘잡지 않은 건지 못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대개 세상일들은 대부분 ‘하지 않은 것’과 ‘하지 못한 것’의 경계가 모호하기 마련이다. 하지 않아놓고 못했다고 하거나 하지 못해놓고 않았다고 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모로 가도 한 달이면 되는데...’

    사실 한 달이면 된다. 현재 상황은 타임리미트 게임이다. 크로우가 유능하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한 달...’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회사 상층에 위치한 사장실로 왔다. 서 비서가 나를 보고 일어서서 인사한다.

    “오셨습니까?”

    “응.”

    나는 문득 그를 보다가 탁준기 이사와, 그의 뒤를 지키고 있던 거한을 떠올렸다. 왠지 유치한 상상이지만 대표와 비서, 이사와 비서간의 2:2 태그매치가 상상이 간다.

    ‘내가 탁준기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비서가 문제란 말이야... 나보다 10cm는 큰 거 같은데 어떻게든 쓰러트려서 조이기 기술 쪽으로 가면... 아니 근데 완력이... 그 녀석 떡대가 너무 크던데...’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별로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그 문제의 중심에는

    “음? 사장님 안 들어가십니까?”

    눈을 동글동글 뜨고 있는 이 녀석. 서 비서가 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서 비서 혹시... 요새 운동 같은 건... 안 하나?”

    내 말에 녀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아시잖아요. 사장님. 저 그런 거 태생적으로 싫어합니다.”

    그건 그렇다. 이 녀석은 예~전부터 책이나 컴퓨터만 파던 전형적인 너드다. 운동, 폭력과는 상관계수가 0에 가까운 인물.

    “하아... 그래.”

    나는 사장실로 들어와서 잠시 내 의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에게

    “응 아들 무슨 일이야?”

    “여행 준비는 잘 돼가세요?”

    “아니 뭐. 나야 네 엄마랑 동생에 파묻혀 가는 거지. 보디가드나 하고 말이야.”

    마침 그 단어가 나온다. 보디가드.

    “...그나저나 너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말이야.”

    “죄송해요. 바빠서.”

    “음 그래 뭐... 이해는 한다. 너한테서 월급 받아서 먹는 사람이 수백 명인데 어쩔 수 없지.”

    “네... 저... 근데 아버지.”

    “응.”

    “그 장근이 있잖아요.”

    “응 장근이는 왜?”

    “걔 선수 그만두고 보디가드 같은 것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하고 있어. 서울에서 가끔 고향 올 때 도장 들리고 그런다 야.”

    “아아 잘 됐네요. 아버지 걔 전화번호 아시죠?”

    “그러엄. 알려줄까?”

    “네.”

    “그래 잠깐마안...”

    됐다. 장근이라고 하면 우리 도장이 배출해낸 최고의 인재다. 20대 초반에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헤비급 계의 괴물.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인해서 한손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고 은퇴하고 말았다.

    ‘그 사고만 아니었더라도... 올림픽에 나갔을 재목인데...’

    지금은 전성기보단 못하겠지만, 그건 정말 세계정상급 레벨, 올림픽 단위에서 문제다. 나는 다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서 비서가 아니라... 그 녀석과 함께라면?’

    함께일 필요도 없다. 내가 뒤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동안, 장근이는 혼자서 탁준기는 종이장처럼 날려버리고, 뒤에 서 있는 거물도 쉽게 제압할 것이다.

    “응 여기 전화번호 있네. 지금 불러줄게.”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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