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14화 (114/198)

# 114

스크리닝

나는 책상에 앉아 장 부사장이 보내준 지우엔터테인먼트 보고서를 검토했다. 지우엔터테인먼트는 최근 다시 주가가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기업 BEU에 인수된 이후 야심차게 중국 활동을 모색해봤지만, 최근 중국내 투자기업들의 기조 변화와 한한령 장기화의 여파로 예상보다 저조한 실적을 내었음’이라고 쓰여 있다.

‘시총이... 250억 이네? 내가 살 때 300억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나는 내가 회사 다니던 시절. 그러니까 CEO가 아니라 평사원으로 회사를 다닐 때 주가를 검색해보았다. 딱 300억 정도다. 그러다가 슈우욱, 어느 기점에 800억까지 불어난다. BEU에 인수된 직후다.

‘아아... 이 때 딱 팔았었지...’

나는 차트를 보며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지금은 하루에 50억 60억씩 벌 때도 별 감흥이 없지만 그 때는 1억 번 것만 가지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호하곤 했었다.

‘하여간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래프를 더 움직여보았다. 지우엔터는 딱 800억을 찍은 이후로 계속해서 하락했다.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대주주가 바뀌었다고 해도, 시너지를 내지 못하면 똑같은 회사의 가치가 두 배 이상 튀어서 유지가 될 수가 없다. 급등했던 주가는 500억까지 내려온 다음 그 때부터 횡보 하락 시작한다. 일 년간 반토막 250억 원이 될 때까지.

‘BEU가 인수할 때보다 더 내려갔네...’

정말 잘 풀리지 않았나보다. 지우엔터의 간판스타는 걸그룹 나인테일과 하연서. 비주얼이나 실력은 거의 탑급인데 기획사 지원을 받지 못해 크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게 중국회사로 주인이 바뀌고 나서도 개선되지 못했나보다. 나는 그 때

‘김동일 개새끼! 우리 연서 불쌍하지도 않냐!’

CEO가 욕먹던 것을 떠올리고는 다시 한 번 종목게시판에 가보았다.

‘장쉰 개새끼! 우리 연서 불쌍하다 중국에 팔려가서 ㅠㅠ’

뭔가 비슷한 내용의 욕들이 쓰여 있다. 욕먹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장...쉰? 이분이 지금 사장님인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걸그룹 나인테일은 중국 가서 중국어 버전으로 앨범 내고 여기 저기 대륙을 횡단하며 행사를 뛰는 모양이었다. 그다지 성과는 없었지만.

‘운이 어지간히 없군... 좋아 여길 인수해서 권 사장에게 관리하게 시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권오혁 사장은 소속사 연예인들을 아끼는 것으로 유명하니까. 새로 매니지먼트를 받으면 다시 빛이 날 수 있을 것이다.

‘좋아 그러면...’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탁준기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원재 대표가 해주었던 충고. 평소 같았으면 별 생각 없이 결재를 찍었을 텐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돌다리도 두드려보게 된다.

‘여기 탁준기가 연관되어 있을 확률은? 이게 트로이의 목마라면?’

가능성은 그리 많지는 않다. 여긴 중국계회사여서 탁준기가 손을 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아... 일단 조심은 하되 그것보다는 내부단속에 신경 쓰자.’

나는 그러기로 마음을 먹었다. 만약에 그가 우리 회사를 공격해온다면, 기존회사를 가지고 어떻게 해볼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부터 막아야한다. 나는 휴대폰에서 메모장을 꺼냈다. 메모장에는 세 명의 이름이 쓰여 있다.

‘장상진, 신재은, 신동우’

세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회사의 주요 요인들이다. 우리 회사 장 부사장, 현영제약의 신재은 회장, 카이게임즈의 신동우 CEO. 가장 중요한 사람들. 이 사람들은 어제 저녁, 그리고 오늘 아침 연이어 두 번 검색을 해봤다. 혹시나 다른 동명이인 때문에 뉴스가 걸리지 않을 까봐. 그 결과 이 세 사람은 클린. 별 내용이 없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숨은 실력자’

‘중견 제약회사를 이끌고 있는 작은 거인’

‘카이게임즈의 창조성을 대표하는’

와 같은 수식어가 달린 좋은 기사만이 나올 뿐이었다.

‘좋아 오늘까지 이 사람들 검색하고 오늘 저녁부터는.’

오늘 저녁부터는 이쪽이다. OH엔터, 블루E&M, 오라클뉴스의 CEO들.

‘권오혁, 안용균, 정소영’

이중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것은 권오혁 사장. 그리고 OH엔터테인먼트다. 워낙에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사람을 가지고 하는 사업이다 보니, 작은 이슈에도 크게 흔들릴 때가 있다. 특히 오현주 같은, 매출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연예인이 흔들리기라도 한다면, 주가가 폭락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 세 사람 다음에는 다시 OH엔터 소속 연예인들 한 번 스캔해봐야지.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물론 예전에 인물검색으로 한 번 다 검색을 해보긴 했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나비효과. 나는 미래 뉴스를 보면서 계속해서 행동을 수정하고 있었다. 만약에 내가 미래 뉴스를 보지 않았다면, 탁준기 녀석과 척을 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있는 현재는 내가 바꾸어버린 미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도 계속해서 변할 것이다. 나로 인해서. 그러니까 한 번 미리 들춰본 미래라고 해도, 주기적으로 다시 검색을 해볼 필요가 있다. 다행인 점은 이번에 한 번 레벨을 올려놔서 슬롯이 세 개로 늘었다는 점. 그 때문에 전보다 1.5배의 효율로 검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누가 날 공격하려고 해도... 내게는 최고의 방패가 있단 말이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던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잠깐 혹시... 그 녀석... 뭔가 물리적인 폭력을 행하려는 것 아닐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도 폭력조직이 남아 있긴 했다. 물론 예전처럼 대놓고 활동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탁준기는 그런 사람들과도 연줄이 있을 만한 사람이었다. 강주혁 기자는 유서를 쓰고 자살했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몇 개 있긴 했다. 나는 사장실 안을 돌아다니며 생각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그런 일이 가능한가? 아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런 대담한 짓을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 녀석은 지금 1000억을 날렸다... 그러면... 이성을 잃고 이상한 짓을 할지도...’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걱정이 된다. CEO들은 인물 검색으로 방어가 가능하지만. 나와 가까운 우리 가족 같은 사람들은 인물 검색을 해도 나올 유명인들이 아니다. 이상한 방법으로 피살을 당한다면 뉴스거리가 되겠지만, 사고사 같은 것으로 위장을 해버리면 인물검색에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어쩌지?’

거기에 여자 친구인 아영이도 있다. 그녀는 고영식품 때문에 과거 원한이 있기도 해서, 탁준기 입장에서 그녀가 나랑 만나는 것을 안다면 그녀가 나에게 복수를 요청했다고(그건 사실이었다. 내가 탁준기를 짓밟은 것은 그녀의 요청 때문만은 아니었지만)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 역시 이름을 검색한다고 해서 뉴스에 나올 사람이 아니다.

‘한 달이면 되는데... 한 달만 지나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영이 원래 미국가려고 했었지’

생각해보니, 그녀는 원래 이번 8월에 미국에 갈 예정이었다. 룸메이트였던 사라랑 뉴욕에서부터 LA까지 미국횡단 여행을 한다고. 그런데 최근에 나랑 연애를 시작하면서 거의 취소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나는 바로 전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뚜르..’

그녀는 통화 대기음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내 전화를 받았다.

“응 오빠. 무슨 일이야? 일하는 중 아니었어?”

“아영아. 그 너 미국 가려던 것 있잖아. 남은 방학동안”

“으응.”

“아무래도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 정말 괜찮겠어?”

요새 한창 불타오를 때여서 나 역시 그녀와 붙어있는 게 좋았지만, 지금 당장은 미국에 보내놓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아니 나도 월 중순에 해외 출장이 생겨서 한국에 없을 것 같아서 그래. 너는 미국 안 보내고 내가 해외 나가버리면 의미가 없어지잖아.”

나는 그렇게 둘러 대놓았다.

“으응...”

그녀는 조금 고민했지만, 이내 승낙했다. 친구인 사라와의 선약을 깨는 것이 그녀도 내심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일정도 딱 새 학기가 시작하는 가을까지다. 그 때 즈음이면 크로우가 정보를 물어다 올 것이다.

‘좋아 이쪽은 됐고.’

나는 이어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이 동생 분은 정말 어지간히 내 전화를 안 받는다. 다행이도 통화 연결음이 10번 즈음 반복됐을 때.

“으응 왜.”

동생은 살짝 졸린 목소리로 내 전화를 받았다. 한 달에 100만원씩 용돈을 주기 시작했을 때는

‘오라버니 말씀만 하세요.’

그러더니, 요새는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나는 이마를 긁으며 말했다.

“수진아. 너 남은 방학동안 뭐할 거야?”

“글쎄. 딱히.”

전에 부모님을 통해 전해 듣기로 초등학교 교사인 동생은 의사인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방학 때 할 일 없이 집을 지키고 있다는 듯 했다.

“딱히 할 일 없으면 부모님 모시고 유럽이나 갔다 올래? 남은 방학동안?”

“유러업?”

“응 뭐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그쪽 남부로 돌아도 되고, 아니면 러시아핀란드덴마크 그쪽으로 가도 되고. 경비는 내가 다 댈게.”

내 말에 동생은 목소리 텐션이 바뀐다.

“정말?”

“응. 어차피 휴가철인데... 부모님 모시고 한 번 갔다 와라. 될 수 있으면 최대한 빨리. 비행기 표부터해서... 호텔 비용까지... 내가 카드 줄게. 비자카드. 그거면 네가 다 알아서 할 수 있지?”

동생은 완전히 활력이 살아났다.

“응응! 그럴게 오빠!”

하여간 얘는 돈을 줄때만 내게 잘 한다.

“대신 부모님 모시고 가는 조건이야. 너 혼자 가는 건 절대 안 되고 두 분 모두 가신다고 하면...”

동생은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걱정 마! 아빠는 내 말이라면 거절 못하는 거 알지? 거기에 엄마는 요새 나랑 놀러 다니는 게 일상이거든 내가 두 분 모시고 잘 다녀올게!”

동생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러면 부탁한다.”

“응!”

동생은 활기찬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이걸로 됐다. 혹시나 물리적인 위험에 노출될 사람들은 앞으로 한 달 동안 해외에 가 있을 것이다.

*

그날 밤. 나는 아영이를 만나

‘정말 괜찮겠어?’

‘응 잘 다녀와.’

미국행 일정을 확정 시켜버리고

‘오라버니 저 아버지, 어머니와 3인 로마행 비행기 티켓 끊었습니다. 퍼스트클래스는 미안해서 비즈니스로 끊었어요.’

동생에게서 보고를 받았다. 이걸로 됐다. 이 네 사람은 한 달 동안 해외로 보내버리면 안심이다. 나는 남은 기간 동안 CEO들 단속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이쪽이니까.

‘권오혁, 안용균, 정소영’

첫째 날은 별 일 없이 지나갔다.

‘권오혁 사장 비전 2019 발표.’

‘안용균 선수권대회 자유형 금메달 노린다.’

‘정소영 앵커 단아한 모습.’

조금 안타까운 점은 뒤쪽 두 분은 유명하지 않거나, 흔한 이름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밀린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다음 날 아침 한 번 더. 저 세 사람의 이름을 인물검색에 집어넣었다.

‘권오혁, 안용균, 정소영’

그런데, 정말 이 세 사람 중에, 한 명이. 요상한 뉴스가 하나 걸려들었다. 나는 그걸 한참 쳐다보았다.

‘이거... 이 분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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