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13화 (113/198)

# 113

재벌집에서 파양된 고아

나는 살짝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탁준기란 이름이 나와?’

여태 그 이름은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절대 나오지 않고 있었는데, 그의 입에서 나오다니, 그것은 본인 스스로가 비상건설건의 흑막이 탁준기라고 시인하는 것과 같았다.

‘기성 언론에서는 하나도 나오지 않은 뉴스다. 이건 본인도 리스크를 짊어지겠단 소리인데.’

하지만 그 말을 했다는 것은 그 계획을 설계한 것이 나라는 것 또한 염두에 둔 말이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그에게 말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이원재 이사는 그의 입을 잠시 오므렸다가 피면서 말했다.

“저... 그 비상건설 사태 때... 주가조작을 주도한 것이 바로 탁준기 이사입니다. 작은 형과 함께. 저도 한 다리 건너서 정보를 들어서 거기 10억 들고 동참했던 것이고요.”

“...그랬군요.”

내 말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게 묻는다.

“저... 정말 모르셨습니까? 대표님?”

“네. 몰랐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정보를 얻은 경로는 첫 번째가 여자 친구인 이아영, 두 번째가 12달 뒤 미래뉴스다. 어느 쪽도 누구에게 밝힐 수 없는 요소들이다.

“...그러시군요. 어쨌든... 그 탁준기 이사는 이번 비상건설 사건으로 대략 1000억에 가까운 손실을 봤다고 합니다. 그 분은 비상건설이 될 것이란 확신을 해서... 비상건설은 대량 매집, 진양개발은 대규모 공매도를 쳤다가 엄청난 손실을 떠안으셨다고 합니다.”

그는 그 말이 매우 비밀인 것처럼 목소리를 낮춰 말했지만, 나 역시 다 아는 내용들이었다. 단지 1000억원이라는 돈. 그것 정도가 내 예상치보다 살짝 높았을 뿐. 주식은 욕심 부린 만큼 예측이 틀렸을 때 토해내기 마련이다.

‘천 억이라... 흥 욕심도 어지간히 부리셨군 그래.’

“그래서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아도... 그 비상건설의 비리를 밝혀낸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그 그는 그 유력한 용의자로 한상훈 대표님을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저를요? 왜요?”

물증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증을 찾아내려면 일단 이번 일을 폭로한 주성원 시장에게서부터, 본래 12달 뒤 폭로를 하게 되는 ‘본 폭로자’ 조상욱 주무관을 찾아낸 뒤, 그의 집 우체통에 12달 빨리 자료를 배달한 배달원을 찾아내야 하고, 그 배달원에게 정체를 숨기고 의뢰를 한 사람까지 찾아야한다.

그렇게까지 하면, 그가 중국인인 것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중국인인 한국에 유학 왔던 지린성 사는 서 비서의 친구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지만, 나 역시 그를 찾으라고 한들 찾기는 어렵다.

“물증은 못 찾았는데... 심증 때문에요. 지난 일로 가장 많은 돈을 벌게 되신 것은 한상훈 대표님이시니까요.”

“그건... 맞습니다만. 그건 단지 우연이 겹쳐서...”

“그 분은 그 우연을 믿지 않으신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상훈 대표님이 이번 일을 계획한 것으로 생각하고... 보복을 하려고 하고 있답니다.”

“보복이요?”

“네.”

“어떤...?”

“글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상훈 대표님이 거느리는 회사가 몇 개 되시잖습니까. 그런 곳을 하나 붙잡고 또 작업을 치려는 것이 아닌지...”

“아아 그래요... 탁준기 대표님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특이하신 분이군요.”

“그분이 조금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셔서... 이번 일이... 본인이 실패했다. 졌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으시더군요.”

‘흠...’

이미 크로우를 통해서 사건의 전말을 알아오라고 시켜놓은 통에, 그런 짓을 하려고 한다니,

‘이 녀석 운이 참 나쁘군.’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크로우로부터 정보가 들어오는 즉시, 그가 손발을 쳐내야할 것 같다. 그가 이상한 짓을 하기 전에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뭐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말에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조심하십시오 대표님. 탁준기 대표는 제가 어렸을 적부터 봐왔지만, 정말 욕심이 많고 자신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꽤나 잔인해질 수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번에 잃은 1000억원. 그에게도 적은 돈은 아닙니다. 그는 이번에 수연여행 주식을 담보로 사채까지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포인트를 하나 머릿속에 적어두었다

‘수연여행 주식을 담보로 사채.’

대주주가 주식을 담보로 사채를 썼다면, 만약에 주가가 폭락해서 담보금이 모자라졌을 경우, 주식을 토해내서라도 그걸 갚아야한다. 어쩌면 탁준기를 감방에 넣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이득을 챙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 분이 왜 그러시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나름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네 대표님.”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여태 그를 지켜본 결과 그는 조금 얍삽한 면은 있어도 탁준기같은 악당은 아니었다.

‘어쩌면 동료가 될 수도 있겠지. 내게 더 신뢰를 쌓는다면.’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말을 하나 더 꺼냈다.

“저... 그러고 보니 한상훈 대표님. 저희 데일리 스포츠가 연말에 기업공개를 합니다. 코스닥에요.”

“아 그러십니까?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수요예측으로 봤을 때 뭐 불발이 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한상훈 대표님이 투자를 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요새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가 워낙에 유명해서요. 아마 대표님이 참여하시는 것만으로도 공모가가 더 올라갈 겁니다.”

그건 사실이다. 요새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가 승승장구를 하다보니 우리 회사가 샀다 하면, 따라서 사는 투자자들이 생길 정도였다.

“음...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한 번 검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 돈 좀 써달라... 본인은 엄청난 정보를 줬다고 생각하나 본데...’

안타깝게도 나 역시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다. 호의를 받았다고 하기에는 조금 적다. 하지만 그래도 아무도 꺼내지 않은 그 이름을 탁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사실이니 그 점은 높이 평가를 해줘도 될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희 회사에 제안서를 보내주십시오. 제가 보고 한 번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대표님. 안 그래도 이번 건은 다음 주 즈음에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우연찮게 이런 곳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니요 뭐 괜찮습니다. 저도 오늘 마침 여유가 있는 날이어서 차를 보러 온 것이었거든요. 저는 이미 골랐습니다. 대표님도 천천히 보시고 사 가시지요.”

“네 대표님.”

*

그 다음 날. 나는 회사에 출근해서, 자회사들을 점검했다. 혹시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기지 않나 해서. 하지만 그런 조짐은 보이질 않았다. 판타지 워 그라운드는 계속해서 순항하고 있었고, 오현주 주연의 ‘내일 만나러 갑니다.’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자회사들 주가 역시 조금씩 우상향을 할 뿐. 딱히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질 않았다.

‘흥 하긴 지가 해봐야 뭘 하겠어.’

탁준기는 나름 재벌 3세긴 하지만, 후계구도에서 밀린 녀석이었다. 시가총액 도합 50조에 달하는 수연그룹 전체가 움직인다면 나라도 감당하기 힘들겠지만 수연여행 딸랑 하나 가지고 있는 그 녀석이 뭔가를 해봐야 내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미 내 자산은 알려진 것만 1조를 향해 가고 있었으니까. 예전에는 꽤 강해보였지만, 그것도 수연이란 이름을 등지고 있어서 그랬을 뿐이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단 말이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한 달 후면 크로우가 정보를 물고 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완전히 그를 자본시장에서 퇴출시킬 것이다.

‘본인 주식으로 사채까지 썼다고 했으니... 그럼 뭐 반대매매까지 또 눌러줘야지.’

나는 문득 든 생각에 전화기를 들어서 서 비서를 호출했다.

“네 사장님.”

“그 장 부사장님 좀 오시라 그래.”

“네 사자...”

내 말에 서 비서는 답하려다가, 말을 바꾸었다.

“아 부사장님 마침 지금 오셨습니다.”

“오 그래? 들어오시라그래.”

“네”

전화기 너머로

“들어가시지요. 부사장님.”

하는 소리가 들린 뒤,

‘똑 똑’

노크와 함께 장 부사장이 들어온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마침 부르려고 했는데 잘 됐습니다. 장 부사장님.”

“아 그러셨습니까? 저도 보고 할 게 있어서 찾아뵀습니다. 사장님.”

그가 보고 할게 있다고 하니,

‘혹시 다른 회사에 무슨 일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장 부사장은 공손하게 내게 물었다.

“하실 말씀이 무엇이신지?”

“아니. 먼저 말씀하세요. 무슨 보고요?”

내가 묻자 그는 들고 온 보고서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저 한참 찾을 때는 없더니... 최근 괜찮은 매물이 시장에 나와서 그거 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래요 뭔데요?”

나는 그걸 받아들었다. 거기에는

‘지우엔터테인먼트에 관한 보고서’

라고 쓰여 있다.

‘지우엔터?’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예전에 내가 12시간 뒤 뉴스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중국 회사로 팔려가서 내게 엄청난 수익을 주었던 그 회사. 재벌집으로 입양된 고아.

‘그 때 한... 1억 벌었던가?’

지금 1억이야 숨 한번 쉴 때마다 왔다 갔다하는 금액이지만, 학자금 대출도 갚지 못해 쩔쩔매던 내게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게 해준 1등 공신 중 하나. 나는 아는 척을 했다.

“그런데 이 회사 중국에 팔려가지 않았던 가요? 매물로 나왔어요?”

“네 사장님. 작년에 BEU에 매각되었었는데, 중국 사정이 영 좋지 않아서 금방 다시 매물로 나온 모양입니다.”

다행이도 우리 회사에서 이상한 일이 있다거나 한 일은 아닌 듯하다.

“아 그래요오...?”

“네 뭐 BEU입장에서는 이 회사로 한국과 중국시장에서 모두 시너지를 내려고 했는데... 요새 워낙에 중국 현지 사정이 복잡하다보니까... 해외 투자를 줄이고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합니다.”

“근데 1년 만에?”

“네 잘은 모르겠지만 가격 상관 없이 급하게 매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기회다 싶어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지우엔터는 OH엔터보다 보이그룹, 걸그룹이 강한 편이니까. 사서 OH엔터테인먼트와 연계를 시키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요새 중국금융시장은 요동을 치고 있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환율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이 곳 저 곳에서 이상한 조짐이 나고 있었다. BEU는 고아를 입양한 지 일년 만에 파양을 하려는 것 같다.

“그래요...일단 그러면 검토를 해볼게요. 제가.”

“네 사장님.”

나는 그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그 사이 장 부사장이 한 마디를 더 한다.

“저 사장님... 하시려던 말씀은...?”

생각해보니, 나도 그에게 할말이 있었다.

“아아... 그렇죠. 그 전에 가동했던 공매도 팀 있지요?”

“네 사장님.”

“그 팀. 다시 준비해주세요.”

내 말에, 장 부사장은 눈을 잠깐 껌뻑이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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