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12화 (112/198)

# 112

이원재 대표

이원재 이사는 빙그레 웃으며 내게 말했다.

“차 사러 오셨나보군요. 대표님”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보다도 시선이 가는 것은 그 뒤에 서 있는 여자다. 새하얀 피부에 동그란 눈, 긴 속눈썹을 가진 미녀다.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해도, 그 색色이 매우 강렬해서, 눈에서 떼기가 어렵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을 하느니, 차라리 대놓고 물어보기로 했다.

“뒤에 계신 분은...?”

“아... 제 비서입니다. 김 비서.”

그는 뒤를 쳐다보며 손짓을 했다.

“인사드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 대표님이야.”

그의 말에, 김 비서란 그 여자는 내게 다가와서 인사를 하며 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이원재 대표님 모시고 있는 김수아입니다.”

나는 그녀와 악수를 나누었다. 이 미녀는 단순 비서 업무만을 위해서 뽑힌 게 아닌 것 같다. 지금 보니 정장이라고 입고는 있는데, 그 스커트가 매우 짧다. 관상용 혹은 그 이상을 위해서 뽑은 느낌이 든다. 나는 의례적으로 내 비서도 소개를 시켜주었다.

“서 비서는 예전에 뵀지요?”

“아... 네.”

이원재 대표는 서 비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딱히 기억을 하거나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에게 서 비서가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두 번째 뵙겠습니다. 비서 서지훈입니다.”

“네 서 비서님.”

그 둘의 인사를 보고 있는데,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잠깐 돌이켜 보니, 나는 곧 그 정체를 깨달았다. 이원재 이사의 호칭이 ‘대표님’으로 바뀌었다는 것. 나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말했다.

“대표님 되셨습니까? 이사님?”

“아아. 네. 저 얼마 전 저희 큰 형이 있던 데일리스포츠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큰 형은 대원일보 본사로 들어가셨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러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네. 대표님.”

그는 씨익 웃으며 내 축하를 받았다. 이 때 생각나는 사람은, 그의 작은 형 이원준 이사. 그는 지금 교도소 안에서 이 찌는 더위에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둘째가 실각하고 첫째 셋째가 자리를 옮겼군.’

이원준 이사가 비상건설 주가조작 사건으로 교도소에 들어간 이후, 대원일보 내에서 뭔가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어쩌면

‘이제 큰 형만 어찌되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원재... 대표님도 차 보러 오셨나보군요.”

“네. 뭐 이제 한 회사의 대표니까요. 그에 걸 맞는 걸 하나 사려고 왔습니다.”

그는 꽤나 즐거워 보인다. 그는 계속 싱글싱글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아 저 시간 되시면 잠깐 이야기라도 나누시겠습니까?”

이 녀석은 못 믿을 녀석이긴 하지만, 때때로 유용할 때가 있다.

“...네 그러시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그 미녀 비서에게 손짓을 했다.

“김 비서 잠깐.”

따라오지 말라는 뜻이다. 뭔가 비밀스러운 대화를 하려나보다. 나는 서 비서에게도 눈짓을 해두었다. 둘 만 남게 된 비서들은 살짝 뻘줌하게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이어서 조금 더 떨어져 있는 딜러에게도 말을 해놓았다.

“계약은 조금 있다가 하겠습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자신의 고객들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우리 둘은 그렇게 둘이서, 람보르기니 매장 외측에 위치한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나저나 요새 정말 잘 나가시더군요. 현영제약이라니. 저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마침 서로 요구하는 게 맞았을 뿐입니다.”

“그래도요. 이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자산이... 1조?”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말없이 진열된 차에 시선을 돌렸다. 단지

‘이 녀석이 뭐라고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참 대단하십니다. 대표님. 어떻게 그렇게 급격하게 자산을 불리셨는지...”

나는 별 생각 없이 그에게 말했다.

“뭐 운이 좋았지요.”

그런데, 그는 그걸 강력하게 부정하며 말했다.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한상훈 대표님은... 저희 또래 중에 거의 제일. 유능하신 분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칭찬에 어깨를 우쭐해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조금 그랬던 적도 있지만, 해가 지나고, 내 밑에 장 부사장부터 해서, 어디 사장 사장 사장. 몇 명을 두다 보니 이런 칭찬은 익숙하다 못해 귀에 딱지가 얹을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가요?”

“네. 저는 어렸을 적부터 수많은 재계 사람들... 뭐 수성이니, 미래니, GL이니, 수연이니 하는 대기업의 후계자들을 많이 만나 보아왔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 때문에 강제로 만나기도 했고, 나중에는 비즈니스 때문에 싫어도 억지로 만났습니다.”

“...그러셨군요.”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 말은 진심인 것 같다.

‘하긴 대원일보는 국내 4대 언론 중 하나니까.’

언론과 재벌의 유착은 말하기 입 아프다. 그의 아버지는 대기업 회장들과 친했을 것이고, 자기 아들 역시 그들의 아들에게 친하게 지내게 만들어 놨던 것 같다.

‘...이원준이랑 탁준기처럼 말이지...’

그것은 재벌 후계자간 우정이 좋지 않게 끝난 예 중 하나일테지만.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제 생각에. 그 사람들은 본인들이 유능하기보다는... 모두들 자신의 부모들 덕택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제 생각에 그들은... 어쩌면 베팅을 하지 않아요. 다들 물려받은 것 현상유지만 할 줄 알지...”

나는 곰곰이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았다.

“왜 그 사람들은 이제 3대, 4대 아닙니까? 창업자들은 60~80년대 스스로 부를 축적한 거인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손자 손녀들이야. 뭐 솔직히 운 좋은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꽤나 위험한 발언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하지? 굳이 따지고 보면 본인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그 생각을 하는데, 그가 말했다.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한상훈 대표님이 생각하시기에 저도 그런 사람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저 스스로 딱 하나 정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능력... 말씀이십니까?”

“사람을 보는 능력.”

나는 속으로 살짝 웃었지만

‘으흠... 그래?’

그래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제가 눈에... 한상훈 대표님은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베팅해서 성공을 하고 그리고 또 계속해서 베팅을 하고 계시단 것입니다. 다른 재벌 아들딸들은 다들 몸 사리느라 바쁜데... 한상훈 대표님은 달라요. 그 수저가 흙수저 출신이어서 그러신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 말을 하다가 내 눈치를 살피고 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아 이건 칭찬입니다. 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역시 금수저 출신이라서 이해를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로 다른 재벌 3세, 4세들과 정말 그 점이 다른 것 같았습니다. 한상훈 대표님은 달라요. 용감합니다. 그리고 또 그 결과물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요.”

사람 보는 능력이 뛰어난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나를 잘 본 것은 맞는 것 같다. 나는 용감하다. 왜냐하면,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그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를 차리기 이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는, ‘12시간 뒤’의 존재는 모르더라도, 내가 기적과 같은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군.’

‘12시간 뒤’는 완벽하게 숨긴다 해도, 나오는 결과물을 숨길 수는 없다. 특히 이렇게 아주 초창기부터 나를 관찰해온 사람에게는.

“과찬이십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이... 제 생각에 한상훈 대표님이... 확실히 다른 대기업 자제들보다 유능하다. 그리고... 미래도 더 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겸손을 떨었다. 카이지는 자신의 길고 가는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저는 최근에 확신했습니다. 한상훈 대표님은 아마 지금 있는 재벌들 보다, 더욱 더 큰 사람이 되실 것 같다고. 그래서... 말입니다.”

익숙한 패턴이다. 앞서서는 칭찬으로 기분을 띄워 주고 뒤에서는 본론을 내뱉는. 너무 익숙하다. 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뭘 원하는데?’

그런데, 예상외의 답변이 나온다.

“앞으로 저는 한상훈 대표님 밑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네에?”

나는 눈을 크게 뜬 채로 그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롭니다. 대표님은 잘 아시겠지만, 저희 언론사는 늘 거대 기업과 연줄을 만들어 놔야합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에게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그래서요?”

“지난번에 말씀드렸지요? 더욱 더 친해지고 싶다고. 저는 그걸 넘어서서 저, 그리고 장기적으로 제 회사가 될 대원일보가 한상훈 대표님 밑으로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예전부터, 나는 그의 능력을 탐내긴 했다. 그보다도, 그의 배경이, 국내 4대 언론 중 하나인 대원의 이름이. 내가 최근 오라클뉴스를 인수하긴 했지만 그건 작은 변방의 인터넷뉴스일 뿐이었다. 아무리 내가 오라클뉴스를 키운다고 해도 그것은 상업적인 성공일 뿐이다.

50년 넘게 4대 언론 지위를 지배해온 대원일보의 이름을 가져다가 쓸 수는 없다. 상장되어 있다면 돈 주고 사기라도 할 테지만 우리나라 4대 언론사는 모두 비상장 회사다. 언론 중립성(그것도 사실 거짓말이지만)을 지킨다는 미명이 깔려 있어서. 나는 그를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이 녀석 감은 좋군. 아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딱 하루 참석한 가든 엔비에서 나를 만났으니...’

나쁜 딜은 아니다. 대원일보가 내 밑으로 들어오면, 나는 가진 돈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단 그전에 결정되어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저 죄송한 말씀이지만... 대원일보의 후계자로 이원재 대표님이 결정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은 사실입니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그래도 그는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최근 저희 둘째 형이 교도소에 가면서 대원일보 내에서 권력구도가 재편되고 있습니다. 저희 형 이원상쪽에 붙는 사람들, 그리고 저에게 붙는 사람들이요. 물론 저희 형 쪽에 붙는 사람들이 더 많긴 합니다. 하지만 한상훈 대표님이 저를 조금 도와주신다면, 제가 회사를 차지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만은 않습니다.”

‘결국 그 이야기로군...’

역시나 이 녀석이 나 칭찬하고 싶어서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름 저도 금수저 물고 태어나긴 했지만 셋째로 태어난 이상. 언더독일 수밖에 없었어요. 어떻게 해도 넘어설 수 없는 벽. 저는 그것 때문에 절망했습니다. 최근에 둘째 형이 실각하기 전까지는요. 그 때 저는 희망을 봤습니다. 저는 상승하는 분. 한상훈 대표님과 배를 같이 타고 싶습니다. 대표님이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는 대표님을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기도 이해가 가고, 딜의 결과물도 나쁘지는 않다. 단, 내가 그를 믿을 수 있다면 말이다.

“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앞으로 서로 도울 일 있으면... 도와주면서 이야기를 더 해보도록 하지요.”

나는 그렇게 운을 띄워놓았다. 이 말은 그것이었다.

‘너 하는 거 봐서.’

그런데 그는 바로 이야기를 꺼냈다.

“네 그 점에서 말입니다. 제가 먼저 대표님에게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그 때 그가 말했다.

“탁준기 대표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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