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11화 (111/198)

# 111

크로우(2)

크로우가 떠난 뒤, 나는 다시 언덕길을 내려왔다. 국립도서관 주차장에 대놨던 포르쉐를 타고, 교대역을 거쳐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땀투성이 옷을 빨래바구니에 던져 놓은 뒤 샤워를 했다. 물에 묻은 물기를 대충 씻고 에어컨 바람을 쐤다.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에 피부에 남아 있던 물기가 날아가며 몇 배는 시원한 느낌이 든다.

‘후우... 작년에도 덥더니... 매해 더워지는 것 같단 말이야...’

생각해보면 최근에 매매했던 주식 중에

‘폭염으로 인해 냉방기 수요 폭등 일성전자 상한가’

그런 주식도 있었고,

‘무더위로 인한 전력 수요 폭증. 블랙아웃 관련주 일제히 上’

그런 테마가 발생하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올해 여름이 매우 더울 것이라는 것을 봄부터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주식 살 생각에 종목만 외우고 있었군... 다 수십 억 씩 벌긴 했지만... 내용은 별 생각 안했네...’

돈에 숫자에 매달려 살다보니 이렇게 피부로 와 닿는 면을 간과하는 면이 있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에어컨 앞에 서서 몸을 식히면서 ‘크로우’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상한 것 투성이다. 일단 그 복장은 그렇다 치고, 흑인인지, 백인인지, 동양인인지 알 수 없는 외모와 수수께끼의 말들까지.

‘...정말...이상하단 말이지...’

나는 내 컴퓨터들이 있는 책상으로 왔다. 트레이딩 용 컴퓨터는 지금도 켜져 있다. 오늘은 마스터 등급 안내서를 받는 날이라, 내가 매매를 하는 대신 자동으로 알고리즘 매매를 걸어놓고 출근을 했기 때문이다.

‘...잘 되고 있군.’

나는 그 컴퓨터는 내버려두고, 게임용 컴퓨터 앞으로 와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 창을 띄워서 메일함을 열고, 12시간 뒤 메일을 통해 고객센터로 가는 링크를 열었다. 곧 채팅창이 뜬다.

안녕하십니까? 한상훈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센터는 늘 그랬듯, 친절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하여간 인사는 친절하다.

‘답변이 불친절해서 그렇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크로우에게 한 의뢰의 결과물은 어떻게 받아봅니까?

역시나 0.1초 만에 답변이 온다.

30일 뒤, 조사가 완료되는 시점에 직접 만나 보고를 받습니다. 보고를 받을 시간과 장소는 이 이메일을 통해서 명시해주세요.

매번 그렇게 만나서 보고를 받아야 하나보다.

‘이거 부담스러운데...’

그래도 그 이상한 기본 복장만 어찌 해결되면, 만나는 게 그리 어렵지만도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른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크로우가 일을 하다가, 뒤를 잡히거나 할 일은 없을까요? 예를 들면 누군가를 조사하다가 조사대상에게 들킴을 당한다든지.

그럴 일은 없습니다. 크로우는 매우 유능한 기자입니다.

조금 단호한 답변이 나온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매우 유능한 기자라... 본인은 기자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것 같았는데...’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단지

‘대가를 받고 정보를 파는 사람’

이라고 했었다.

‘설명만 들었을 때는 ‘기자’라기 보다는 ‘첩보원’에 가까운 느낌인데...’

뭐 어찌되었든, 일에서 만큼은 프로라는 것 같다. 나는 마우스 커서를 채팅창 우상단에 가져갔다. 물어볼만한 것은 모두 물어보았다. 더 물어봐야 제대로 된 답변이 돌아 올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커서를 돌리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물어보기로 했다. 뭘 물어보든 이 녀석은 답을 해주긴 해주니까.

크로우는 대체...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그러자 생각했던 것보단 긴 답변이 돌아왔다.

크로우가 되는 사람은 크로우가 되는 시점에 나이, 이름, 국적과 같은 정체성을 모두 소멸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국적은 무의미합니다.

그렇다고 딱히 궁금증이 풀리는 답변은 아니었지만.

이 세상에 파견됐다고 하는데,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까?

이 세상 사람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나왔다. 고객센터의 ‘그건 비밀입니다.’에 필적하는 비기 ‘이건 짜장면이기도 하고 짬뽕이기도 합니다.’뭐 그래도 어느 정도 답변이 되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은 아니란 거군.’

이 이메일을 보내는 쪽은 확실히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것 같다. 크로우란 사람이 많이 비현실적이었던 것처럼.

크로우의 상사는 누구입니까?

크로우의 상사는 마스터 크로우입니다.

‘마스터 크로우?’

크로우의 상사 이름은 마스터 크로우라는 것 같다. 크로우에게 그 이상한 털옷을 입힌 사람. 그 이상한 크로우조차 이상하다고 한 사람.

그 마스터 크로우란 놈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데요.

마스터 크로우는 ‘다커 댄 블랙’의 주인이며 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 중 한명입니다.

이번에는 더더욱 이상한 답변이 돌아온다.

‘다커 댄 블랙? 마스터 크로우? 세계에서 가장 강해?’

그 말이 조금 웃기다.

뭐가 어떻게 강한데요?

정보를 아는 사람은 강합니다. 그는 매우 많은 크로우를 거느리며 세상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강하다. 라는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지금 강한 이유도 미래를 알 수 있으니까. 강한 것이다. 다만 강하다는 것이 그렇게 단순히 사회적으로 강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다. 나는 그 점을 물어보았다.

육체적으로도 나보다 강합니까? 내가 유도장에서 그를 갖다 메치면

그는 당신에게 메쳐지지 않습니다. 그가 당신과 유도 시합을 한다고 한다면 어느 쪽으로 달려들지 알고 있을 겁니다.

‘아 그래요오...’

뭔가 세상 외의 것과 맞닿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호기심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보았다.

그 마스터 크로우란 사람, 만나볼 수도 있습니까?

그는 현재 매우 바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한상훈 고객님께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답변을 듣다가 조금 위화감을 느껴 스크롤을 조금 올려보았다.

‘소멸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을 겁니다.’

‘바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못 할 것 같습니다.’

와 같은 추측성 답변들이 있다. 대개 이 고객센터는

‘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단정적으로 말하는데. 비밀스럽기는 했어도, 완전무결해보였던 고객센터도 이쪽은 확신이 없어 보인다.

‘특이하군...’

나는 여기서 채팅창을 껐다. 그리고 잠시 의자에 기대서 크로우에 대해서 생각했다.

‘만났을 당시에는 너무 당황해서 생각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불쌍한 느낌도 나는군... 요즘 세상에 그런 옷을 입고, 내가 하라 마라 하는 대로 고대로 따르고... 뭔가 이상한 계약에 묶여서 일을 하고 있을 게 아닐까.’

한 달 뒤 크로우가 결과를 물어 오면, 그 때는 밥이라도 좋은 거 한 번 사주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라도 나눠야겠다. 그 마스터 크로우라는 사람은 몰라도, 나는 좋은 상사이고 싶으니까. 일단 이것으로 마스터 등급 적응은 끝났다. 나는 슬쩍 옆에서 자동으로 돌아가는 컴퓨터 매매를 보았다.

‘오늘은 파는 건 없고 나눠서 사는 것이었지?’

분할 매수를 하는 건 사실 내가 굳이 손을 대든 대지 않든, 거의 차이가 나질 않았다. 어떨 때는 내가 직접 하는 것보다 컴퓨터가 더 잘하는 때도 있엇다.

‘그러면 오늘은... 쉴까? 아영이 불러서 어디로 놀러 라도...?’

생각해보니, 아영이는 오늘 지방에 있는 친척 집에 간다고 했다.

‘음 그럼...’

생각해보니, 오늘 하나 하려고 했던 것이 있다. 바로 새 차 사기. 마스터 등급도 달았겠다. 차나 하나 더 사야겠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응 서 비서. 차 끌고 우리 집으로 와. 새 차 사러가자.”

“무슨 차... 말씀이십니까?”

“이번엔 스포츠 카로 하나 사려고.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같은 것으로.”

“아 네. 사장님 바로 가겠습니다.”

서 비서는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나는

‘이 참에 스포츠카나 몰아볼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서 비서, 지훈이는 나보다도 더 차에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꼭 차 사러 간다고 하면 나보다도 더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회사 세울 때 3년 안에 포르쉐 몰게 해준다고 했는데...’

앞으로 2년 남았다. 지금 연봉, 그리고 앞으로 오를 연봉 생각하면 그는 2년 뒤 포르쉐를 결국 갖게 될 것이다.

‘아니 그 때 되면... 그냥 내가 사줘야겠다. 3년 근속 기념으로다가... 그러면 짜식 엄청 기뻐하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 비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띠리리’

휴대폰이 울린다. 나는 그걸 받아서 그에게 말했다.

“응 내려갈게.”

그는 정말 금방 왔다. 가까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차 산다기에 신나서 달려온 모양이다.

*

나는 서 비서와 함께 람보르기니 매장을 둘러보았다. 강남에서도 가끔

‘부아아앙~’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을 봐왔지만 이렇게 빤질빤질하게 빛을 내놓은 것을 보면 정말 예쁘긴 하다.

“이 모델이 아벤타도르입니다. 고객님.”

“아까 저건?”

“우라칸 모델이고요.”

영업 사원은 잘생긴 30대 남자 직원이다. 나보다 몇 살 더 많아보이지도 않는데, 나를 따라오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미드쉽 6.5L 자연흡기 V12 엔진을 세로로 장착한 모델입니다. 출력이 무려 700마력.0 100키로까지 속도를 올리는데 2.9초 면 됩니다. 200키로까지는 8.6초. 최대 350키로까지 내실 수 있어요...”

그 말을 듣는데, 드는 생각은 솔직히

‘200키로로 달릴 곳도 없는데... 아니 애초에 그러면 과속으로 불법이잖아’

그런 생각이다. 한국에서 그렇게 스포츠카를 제대로 몰만한 곳은 없다. 단지 강남에서 차들 사이에서 느릿느릿하게 운전을 할 수 있을 뿐. 스포츠카의 아이러니함이 있다.

‘하지만 뭐 달리려고 사는 게 아니니까.’

이걸 사는 이유는 단순히, 색이 아릅답고, 곡선이 유려하고, 각진 모습이 강인해보이기 때문이다. 순전히 미적인 이유랄까. 서 비서가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모델입니다. 사장님.”

그럴 만 한 것 같다. 정말 예쁘다. 포르쉐 파나메라, 벤틀리 벤테이가, 옆에 세워놓으면 또 하나의 좋은 컬렉션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얼마라고요?”

“네 출고가는 5억 5천...”

나는 뒤 숫자는 듣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살게요. 이거. 아벤타도르로.”

내 말에 영업사원의 표정이 매우 밝아진다. 서 비서도 대리 만족한 모습이다. 한번 시승시켜줘야겠다. 영업사원은 영업점 안쪽으로 손짓을 하며 말했다.

“잠깐 이리로 오시겠습니까?”

뭔가 서류 작업을 할게 있나보다. 나는 그를 따라서 안쪽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아이고 대표님 이런 곳에서 뵙는군요. 오랜만입니다.”

누군가가 내게 인사를 해왔다. 익숙한 얼굴. 대원일보 셋째, 카이지 이원재 이사다. 일단 나는 그와 표면적으로 나쁠 건 없었다. 나는 역시 살짝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네 이사님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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