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크로우
나는 입술을 모은 채로 잠시 그 문구를 지켜보았다.
‘기자를... 보내준다고?’
여태 ‘12시간 뒤’를 처음 접한 이후로 지금까지 온라인에서, 이메일만 받아왔던 내게 조금 신기한 일이다. 오프라인에서 누굴 만난다니.
‘크로우CROW라...’
크로우란 까마귀를 뜻한다.
‘기자가 까마귀? 날아와서 뭘 물어다 줘?’
그건 아닐 것 같다. 고객센터에서는 ‘우리 측 기자는 매우 유능한 사람’이라고 했었다.
‘그러면... 이 크로우라는 건... 일종의 별명 같은 건가?’
나는 조금 더 시선을 내려 보았다.
‘만날 장소와 시간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주십시오.’
밑으로 커서가 반짝인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본사. 사장실’
이라고 쓰려다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턱을 쓰다듬으며 그걸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12시간 뒤의 사람... 그러면 최대한 비밀로 해야겠지... 12시간 뒤 이메일처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거기에다가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
오전 10시 30분. 나는 사장실 문 밖을 나섰다. 서 비서가 내게 묻는다.
“사장님 나가시게요?”
“응.”
“제가 모실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개인적인 일이야.”
“아... 네”
그렇게 나는 홀로 지하주차장에 가 포르쉐를 몰고 서쪽으로 향했다. 반포역, 고속버스터미널 역을 지나 국립중앙도서관에 차를 댔다. 그런 다음 길가로 나와, 바로 옆의 언덕길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8월의 찌는 듯한 더위, 땀범벅이 되어서 도착한 곳은 몽마르뜨 공원이다. 나는 그늘이 진 벤치에 자리를 잡고 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 55분.’
약속시간까지 딱 5분 남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낮의 공원에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온 주민들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사람이 없었다. 여기라면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마주칠 가능성은 없다. 그 크로우라는 사람이 오면 모르는 사람처럼 쿨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면 될 것이다.
‘007영화나... 미션 임파서블처럼 말이지... 서로 정체를 숨긴 쿨한 첩보원들처럼...’
나는 벤치에 앉아서 영화의 한 장면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게 뭐...?’
멀리서, 검은 색 형체가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런 기대를 접어야만 했다. 멀리서, 장신의 남자가 내 쪽을 향해 걸어오는 게 보인다. 검은 색 정장에, 검은색 외투를 입은 남자. 외투는 무슨 소재로 되어 있는지, 겉면이 불규칙적인 털로 덮여 있다. 그를 딱 봤을 때 떠오르는 단어는
‘까마귀.’
좋다. 컨셉은 제대로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이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반팔만 입고 있어도 쪄 죽을 지경인데, 풀 정장에, 검은 색 외투를 입은 남자라니. 딱 봐도 미친놈이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시키던 한 아주머니는, 그를 보더니
“밍키. 그 쪽으로 가지마. 집에 가자. 가자. 빨리.”
목줄을 쥐어들었다. 개도 놀랐는지 황급히 몸을 튼다. 나는 잠시 굳어서 그를 지켜보았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순간, 우리는 눈이 딱 마주쳤다. 그는 키가 크다. 190cm정도 되는 것 같다. 얼굴은 흰편인데, 이목구비가 요상하다. 눈은 우리 황인들처럼 검고 길게 째져 있는데, 코는 높고 커서 마치 백인들 코 같다. 위 아래로 입술은 두터 워서 흑인들의 그것과 닮았다.
‘뭐야 혼혈?’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갑자기 위화감을 넘어 공포감이 들었다. 이 더위에 털옷을 입은 혼혈 외국인이라니, 위험하다. 나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벤치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그가 굵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한상훈 씨 맞으십니까?”
나는 자리를 뜨려다 말고, 그에게 말했다.
“...네.”
그러자, 그는 마치 중세의 기사처럼, 내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크로우. 오늘 부로 한상훈님의 종복이 되도록 명받았습니다.”
예의가 참 바르다. 바른데, 나는 주먹을 머리에 갖다 댔다. 첩보 영화에서 보던 그림.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멀리 허공을 바라보며
‘그쪽이 크로우인가?’
‘그쪽이 한상훈?’
‘좋아 이야기를 시작하지.’
은밀한 대화를 나누려던 내 구상은 완전히 깨어졌다. 주변을 둘러볼 자신도 없지만, 그래봐야 다들
‘뭐야 저 미친놈들은.’
나까지 싸잡아서 그렇게 보고 있을 게 뻔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새벽 4시에 보자고 할 걸 그랬군.’
나는 미간에 손을 댄 채로 그에게 말했다.
“네 반갑습니다. 일단 앉으세요.”
나는 그에게 옆 자리를 권했다. 그러자 그는 딱 내게 바로 옆에 앉는다. 그의 외투를 감싸고 있는 털들이 내 피부에 닿는다. 더운건 둘째치고, 이래가지고는 미친 짝궁들 같다. 나는 손짓을 해서 그를 벤치 끝으로 밀어냈다.
“떨어지세요. 저 끝까지.”
“네.”
다행이도 그는 내 말을 잘 따랐다.
“주인님.”
주인님이라는 호칭까지 써가면서.
‘이런 시발 이 녀석은 대체 어느 차원에서 온 미친놈이야.’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를 슬쩍 보았다. 그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나는 이번에는 앞쪽으로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앞으로 쭈욱 저쪽 보세요. 저 보지 마시고요.”
“네 주인님.”
그는 앞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제야, 내가 원하는 그림이 조금 나온다.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앞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좋아요. 이대로 대화를 나누죠.”
“주인님께서 그걸 원하신다면.”
그런데, 이제 주인님이란 말이 계속 신경 쓰인다.
“그리고... 그 주인님 대신... 대표님이라고 해주세요.”
“네 대표님.”
‘좋아. 말은 잘 듣는 군.’
이점은 좋다. 바로바로 교정이 된다는 점. 나는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로 말했다. 마치 멀리서 혼잣말을 하듯이.
“덥지 않으십니까?”
“매우 덥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외투를 입고 계신 거지요?”
“저희 기본 복장이 이렇습니다. 대표님.”
“그 기본 복장이라는 건 누가 정한 것인데요?”
“저희 상사께서.”
상사도 있나보다.
“...그 상사란 분은 참 이상하신 분이시군요...”
그는 대단히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상사 분은 뭐... 하시는 분이시죠?”
“저희를 총괄하시는 분입니다.”
“저희... 라면...?”
“크로우들입니다.”
크로우라는 것은 이름이라기보다는 단체를 뜻하는 것 같다.
“당신 말고도 있나요? 크로우가?”
“네.”
나는 놀라서 물었다.
“지금 활동하는 분이 더 있단 말입니까? 이 세상에?”
이 질문에는
‘너 같은 미친놈이 더 있다고?’
그런 뉘앙스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이 세상에 파견 된 사람은 저 뿐입니다.”
“이 세상이요?”
“네.”
슬슬 안드로메다로 가는 대화가 나온다. 고객센터와 나누던 대화가 생각이 난다. 나는 경험적으로 이쪽 질문은 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주제를 돌렸다.
“그... 기본 복장이라는 거, 제가 입지 마라 하면 입지 않을 수도 있는 거지요?”
“네 물론입니다. 대표님.”
“그럼... 다음부터는 그 외투는 절대 입지 말고 오세요. 딱 정장만 입으시길.”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나는 슬쩍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내 명령대로 나한테 한 번 눈길을 주지도 않고 앞을 보고 있다.
‘이거 사람 맞아? 정말? 로봇 아냐?’
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외투에서 하얀색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저 그... 더우시면 벗으시죠. 그 외투.”
“네. 대표님.”
“좀... 그 셔츠도요.”
“네 대표님”
그는 주섬주섬 외투와 셔츠를 벗어서 벤치 위에 올려놓는다. 가까이서 보니, 외투에 달려있는 것은 영락없이 새의 털이다. 까마귀 털. 뭔가 스킬을 잘못 찍었다 싶은 생각도 든다.
‘이 살짝 고장 난 로봇 같은 사람이 뭔가를 조사해올 수 있을까? 차라리 12년 뒤 뉴스 받아서 회사 단위 장기투자 플랜이라도 짜놓을 걸.’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그... 기자시라고요?”
“네 기자. 이 세상에서는 그런 이름으로 불리더군요. 저희는 대가를 받고,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님.”
“대가요?”
“네”
“대가가 뭔데요?”
“그건 비밀입니다.”
이 녀석도 그 대사를 친다. 고객센터와 뭔가가 연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그 대가는.. 제가 치르는 겁니까?”
“아닙니다. 고용주가 치르는 것입니다. 대표님은 이미 고용주에게 거액의 구독료를 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용주란 고객센터를 비롯해, 메일을 보내주는 쪽 같다.
“음 그래요오...”
나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는
“네 그렇습니다. 대표님.”
그렇게 내 혼잣말도 잘 받아주었다. 예의는 참 바르다. 앞으로 나가서 백 덤블링 세 번 하고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 100번 하라고 하면. 최소한 시도는 할 것 같다.
‘그 점은 마음에 드는데... 조사를 잘 해올지...’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저 그 혹시 주식이나 경제 대해서 압니까?”
“무엇을 물어보시는 지...?”
“어떤 회사의 이번 분기 실적이 어떻다든지, 그런 것도 알아봐 달라고 하면...?”
내 질문에,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저는 유능합니다.”
고객센터도 그랬는데, 본인 스스로도 유능하단다. 나는 여기서 주변 한번 둘러보았다. 아까 놀라서 도망갈 사람은 다 도망가고, 새로 온 사람들은 그냥 개들 산책시키면서 유유자적 공원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단지 평범한 비즈니스맨 한 명과 키 큰 외국인 정도로 보일 것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러면... 이거 부탁해보죠. 지난 번 비상건설 비리 및 주가조작 사건 때, 주가조작을 지시한 실세가 누구인지, 어떻게 돈을 세탁해서 주가 조작에 썼는지, 비상개발 정기웅 사장과 결탁한 흔적은 없는지. 리고 어쩌다가 강주혁 기자가 죽게 되었는지. 예전 고영식품 상장폐지와는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는지. 그에 관한 모든 정보를 조사해 주세요.”
나는 그렇게 말해놓고, 살짝 그를 쳐다보았다. 혹시나
‘한 번에 너무 원하는 것이 많습니다.’
할까봐. 그래서 나는 이를 종합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한 마디로 이 비상건설 청탁 및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모든 전말을 알아다 주세요.”
그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내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내게 말했다.
“그것이 이번 달의 의뢰이십니까?”
진중하다. 나는 다시 앞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네. 그거. 정리해서 알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일단 대답은 시원시원하게 한다. 결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나는 문득 든 의문에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조사결과는 대체 어떻게 알려주죠? 메일을 통해서? 아니면 다시 이렇게 직접 만납니까?”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나는 옆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벤치에 놓여 있던 외투도 사라져 있다.
‘뭐야?’
나는 공원 전체를 둘러보았다. 그 검은색 옷은 보이지 않는다.
‘시선을 뗀 것은 단 몇 초뿐이었는데... 어느새...?’
이건 딱 첩보영화에서 나오는 장면 같다. 나는 귀신에 홀린 듯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결국 포기했다.
‘신출귀몰한 면은 있군... 뭐... 조사결과야 고객센터에 물어보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보니, 그의 외투가 놓여 있던 자리에 검은 색 털 하나가 남아 있다. 나는 그걸 들어보았다. 검은 색. 까마귀 털. 나는 그걸 손으로 만질만질 거리면서 이 이름을 생각했다.
‘크로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