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09화 (109/198)
  • # 109

    마스터 등급

    나는 아침 일찍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집 밖을 나섰다. 집에서 나와 복도를 걸어가는데, 옆집, 아영이의 집이 보인다.

    ‘지금 자고 있겠지?’

    요새 아침밥 얻어먹는 다고 거의 매일 들락거렸지만, 오늘은 패스다. 아영이에게도 말해 놓았다.

    ‘내일은 아침 일찍 회사에 가야될 것 같아 중요한 일이 있거든.’

    아영이는 때때로 나랑 붙어있기를 원했지만, 내가 ‘중요한 일’이라고 하면 더 토를 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점은 쿨해서 다행이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와 벤틀리를 몰고 지하주차장 밖을 빠져나왔다. 새벽 6시 반. 강남역 사거리도 한산하다. 우리 집이 있는 강남역과 회사가 있는 논현역은 딱 두 블록이다. 막히지만 않는다면, 10분이면 도착한다.

    ‘흠~흠~’

    나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벤틀리를 몰았다. 반대편에 노란색 람보르기니가 스쳐지나간다.

    ‘음... 저렇게 낮은 차는 운전할만한가?’

    한 번도 타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이번에 등급도 오르겠다... 하나 사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아니. 사자. 오늘 당장. 마스터 등급 받고나면 서 비서랑 가서 람보르기니 예약하고 오는 거야.’

    최근 아영이와 사귀면서 느낀 점은, 내 소비행태는 예나지금이나 흙수저 단위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돈이 많아지면서 이것저것 가격표 보지 않고 사긴 했지만, 사치품들은

    ‘그게 왜 필요하지?’

    하는 게 많아서 그리 돈을 쓰지는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흙수저 아끼고 살던 그 DNA가 깊이 박혀서 돈 쓰는 게 잘 발현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반면에 아영이는 사치품에 대해서 잘 알기도 하고, 본인에게 맞춰서 잘 사기도 했다. 그것도 자신이 받는 월세 내에서 합리적으로. 어렸을 적부터 돈 쓰는 법을 배워서 그런 것 같다.

    ‘그래 나도 돈 좀 쓰고 살자. 너무 맨날 벌기만 하고 쓰질 않으니...’

    부자는 돈 쓰는 것도 미덕이다. 부자가 돈을 벌기만 하고 쓰질 않으면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다. 물론 나는 월급을 주는 ‘고용’이란 형태로 돈을 풀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조금 모자라다. 돈을 더 써야 한다. 그래야 남들도 먹고 살게 아닌가.

    ‘람보르기니도 한 대 사고... 지난번에 벤틀리 가게에서 봤던 그... 뭐였더라? 플라잉스퍼? 그것도 하나 더 사야지.’

    나는 짧은 신호대기를 하는 동안 돈을 더 쓸 것들을 생각했다.

    ‘돈이라... 어디다가 쓴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적에 그거 한번해보고 싶었다. 구단주 놀이.

    ‘예전에 웹소설에서 그런 것 본 적 있었지... 과거로 회귀한 주인공이 구단주가 돼서 축구 팀을 주무르는... 미래에서 온... 구단주였나?’

    예전에 가족끼리 지역 팀 축구장 K리그 관전을 갔었다. 우리 충청도 지역 팀은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도 꽤 약체여서 그 날 경기는 수도권 팀에 무기력하게 패배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잠깐만? 12년 뒤 뉴스까지 받아보게 되면...’

    대충 드는 생각이 있다. 12년 뒤, 스포츠 카테고리.

    ‘2030년 월드컵 대표팀 명단’

    그런 뉴스를 하나 접하게 되면. 그러면 미래의 국가대표들을 우리 팀에 미리 잡아 놓을 수도 있다. 물론 운동 실력이라는 게 성장과정도 중요하겠지만, 아무래도 재능이 우선하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하면... 대박 주식을 쥐고 가는 것이랑 비슷하겠는데?’

    차라리 소설처럼 EPL에 진출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가서

    ‘2034 피파 베스트 11.’

    ‘2038 발롱도르 수상자’

    그런 기사 한 두개만 주워들면

    ‘스카우터. 저어~기 아르헨티나 산타페 로사리오라는 곳에 가면 리오넬 메시라는 녀석이 있을 거야 그놈 데려와’

    라던가

    ‘스카우터. 저어어어기 포르투갈 본토 말고, 서쪽 대서양가는 길에 마데이라라는 섬이 있는데 거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는 섬촌놈이 있을 거야 그놈 데려와’

    그런 식으로 팀을 꾸릴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유벤투스가 호날두를 영입한 이후로 이탈리아 주식시장에서 시총이 30% 늘었다고 했지...’

    그러면 적은 돈으로 유망주를 쓸어 담을 수 있다. 나는 단지 구단에 완벽한 수준의 유소년 교육 시설을 갖춰 놓으면 될 것이다.

    ‘...EPL 구단은 하나에 얼마나 하지?’

    나는 그런 망상을 하다가 우리 회사에 도착했다. 내가 회사 지하주차장에 들어서려는데 익숙한 차가 하나 보인다. 제네시스. 가장 비싼 국산 대형차. 대외 활동을 할 때, 내가 타고 다니는 차다. 나는 차를 세우고 잠시 그 차가 멈추길 기다렸다. 곧 서 비서가 나와서 내게 말한다.

    “오 사장님. 일찍 출근하셨네요?”

    “응.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나는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서 비서는 사장실이 있는 17층을 눌렀다. 지금 보면 14층서부터해서 15, 16, 17. 모두 우리 회사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로고가 박혀 있다. 본래 한 개의 층만 썼었는데, 회사가 커지고 직원이 많아지면서 더 늘어난 것이다.

    ‘아 그렇지 EPL 구단 사기전에...’

    “서 비서 이 건물주 아직도 건물 팔 생각 없대?”

    “지난번에 장 부사장님이 넌지시 물어봤는데 시세보다 비싸게 팔려고 그런다던데요?”

    “그래?”

    “네 워낙에 저희 회사가 잘 나간다고 유명하다보니... 그래서 이번이 기회다 싶었나봐요. 장 부사장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백 억 단위로 더 비싸게 부른다고.”

    “음... 그건 조금 괘씸하네?”

    “그렇죠?”

    “봐서, 방 빼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든가 해야겠다. 그치? 요새 강남 공실도 많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서 비서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17층에 도착했다. 나는 사장실 앞, 비서 자리에 앉는 서 비서에게 단단히 말을 해두었다.

    “오늘은 9시 10분까지 아무도, 누구도 들이지 마.”

    “장 부사장님은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장 부사장님도 안 돼. 오늘은. 혹시 보고할 일 있어도 기다리시라 그래.”

    서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장님.”

    사장실에 들어온 나는 바로 컴퓨터를 켜고 정좌를 했다.

    ‘꼬르르’

    요새 매일 이 시간에 아영이가 해주는 아침을 챙겨 먹어서인지, 살짝 허기가 돌았지만 참았다. 오늘은 너무 중요한 날이었다. 8시. 정각. 그 메일이 온다.

    ‘마스터 등급 스킬 안내’

    나는 주저 없이 그걸 클릭했다. 안에는 익숙한 문구가 나온다.

    ‘축하드립니다. 마스터 등급으로 승급하신 한상훈 독자님. 마스터 등급 역시 각 스킬에 포인트를 투자해 사용, 강화할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꼼꼼히 읽어보았다. 뭔가 달라지는 게 없는지.

    ‘액티브 스킬의 쿨타임은 정액제 기간과 동일한 30일 기준입니다. 현재 마스터 등급에서 선택할 수 있는 스킬은 모두 네 가지입니다. 현재 배분되지 않은 스킬 포인트는 10점입니다.’

    이번에 주는 점수는 10점이다.

    ‘10점.’

    나는 짧게 그 숫자를 되뇌면서 스크롤을 더 내려 보았다.

    인물검색 Lv3 (액티브스킬 – 포인트 3점 필요)

    인물을 검색할 수 있는 슬롯이 하나 더 늘어납니다. 다른 패시브 스킬이 적용된 상태로 사용 가능합니다.

    랭킹뉴스 Lv2 (액티브스킬 – 포인트 2점 필요)

    특정 카테고리에서 누적 조회 수가 많은 뉴스 1위와 2위를 받아 볼 수 있습니다. 2회 사용가능합니다. 다른 패시브 스킬이 적용된 상태로 사용 가능합니다.

    미래뉴스 Lv5 (패시브스킬 – 포인트 5점 필요)

    기존 뉴스들과 함께 ‘12년 뒤’뉴스를 한 번 더 받아 봅니다. 기존 뉴스와 형식은 동일하며, 액티브 스킬 역시 동일하게 사용가능합니다. 다른 패시브 스킬과 중첩됩니다.

    잠입취재 Lv1(액티브스킬 – 포인트 7점 필요)

    특정 대상에 기자를 특파합니다. 기자는 30일간 대상에 대해서 집중조사를 하며 30일 뒤 기성 언론에 보도되지 않을 기사거리 한 개를 가져옵니다. 기자를 특파할 때는 주로 조사할 내용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딱히 새 스킬이 생기거나 달라진 것은 없다. 고민 할 게 없다. 나는 빠르게 의사 결정을 했다.

    ‘잡입취재는 바로 찍자. 탁준기 그 놈도 문제지만... 앞으로 어떤 방해물이 내 앞을 가로막을지 모르니까.’

    생각해보면, 지난 번 비상개발 건 때는 조금 운이 좋았다. 미래뉴스에 떡하니 비리 사건이 나와서. 만약 정기웅 사장이 내년 2월이 아니라 일 년 조금 넘어서 잡혔다면. 나는 아마 정의구현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걸 가지게 되면 ‘기사에 나오지 않는 뉴스’까지 얻어 볼 수 있게 된다. 내게는 이제 ‘오라클 뉴스’를 통해서 기사에 나오지 않는 뉴스도 기사화 시킬 힘도 있다.

    ‘좋아 그러면 일단 7점 들여서 잠입취재 찍자. 다른 것은 지금도 충분히 쓰고 있으니까.’

    조금 아쉬운 건 미래뉴스 5레벨정도. 12년 뒤 뉴스도 받아보고 싶기는 하다. 궁금해서.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호기심 차원의 문제다. 너무 먼 미래의 일들이라 받아 보아도

    ‘오호 그렇구나. 10년 뒤에는...?’

    마치 공상과학 뉴스처럼, 돈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장기간 계획을 세우는 데는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내 자산이 조 단위가 되었을 때, 나중에 그랜드마스터 등급을 찍고 나서 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바로 잠입취재 스킬을 찍었다. 그러자 잠입취재의 스킬 설명이 바뀐다.

    잠입취재 Lv2(액티브스킬 – 포인트 10점 필요)

    특정 대상에 기자를 특파합니다. 기자는 15일간 대상에 대해서 집중조사를 하며 15일 뒤 기성 언론에 보도되지 않을 기사거리 한 개를 가져옵니다. 기자를 특파할 때는 주로 조사할 내용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다른 건 바뀌지 않았는데, 30일이 15일로 단축되었다. 좋아진다는 것은 알겠지만 얼마나 좋아지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일단 써보고.’

    남은 점수는 3점이다. 남은 스킬은 인물검색과 랭킹뉴스.

    ‘이건... 인물검색이겠지.’

    나는 점수가 딱 맞게 인물검색에 투자했다. 랭킹뉴스는 매달 쓰기는 했지만, 돈이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어서 거의 효용이 없었다. 지금은. 반면에 인물검색은 이러나저러나 유용했다. 슬롯이 지금도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생각하면 부족할지도 모른다. 이제 내가 직간접적으로 고용한 사람만 수천 명 가까이 되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러면 이렇게.’

    스킬을 찍으면 축하메시지가 나온다.

    ‘축하드립니다. 마스터 등급으로 승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안내문.

    ‘그랜드마스터 등급으로 귀하의 뉴스를 업그레이드 해보세요! 그랜드마스터 등급 승급에 필요한 것은 금 100억원의 구독료.’

    다행이도, 역시 구독료는 변하지 않았다. 월 백억. 작은 돈은 아니지만, 지금은 충분히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다. 중요한 것은 다음 것.

    ‘그리고 자격조건으로 자신이 속한 국가의 상장사 열 개 이상 지배하되 그 상장사의 시가총액 합이 10조가 넘는 것입니다.’

    이제, 거느리고 있는 회사의 숫자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시가총액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대충 계산을 해보았다.

    ‘지금 지배하고 있는 게 현영제약 1조에 카이게임즈 8천억. 나머지 합치면 대략... 2조?’

    대충 그 정도 된다. 앞으로 8조원이 넘는 회사를 더 내 밑에 깔아야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다.

    ‘뭐 아주 어렵지는 않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몇 년 내로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잘하면 1, 2년 내로.

    ‘좋아 좋아. 그 다음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크롤을 더 내려보았다. 그런데 완전히 처음 보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잠입취재 스킬을 처음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기자 크로우Crow가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만날 장소와 시간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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