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내일 만나러 갑니다.
나는 수저를 조심스럽게 국을 입에 가져갔다. 조금 긴장되는 순간이다. 나는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걸 먹으면 맛이 있든 없든, 맛이 있다고 해야 한다.
‘후르릅.’
그런데,
“맛있다!”
나는 진심으로 말하고 말았다. 내 표정을 유심하게 살피던 이아영은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정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미국에 있었으면서 된장국 하는 건 어디서 배웠어?”
“그냥 인터넷 보고 배운건데?”
“허...”
나 역시 자취생활을 10년 가까이 해 온지라 해보지 않은 게 아니다.
‘내가 할 때는 절대 이런 맛이 나지 않았는데...’
그녀는 요리 쪽에서는 확실히 금손을 타고 난 것 같다. 나는 그녀가 해온 된장국과 서니사이드업 프라이, 그리고 김치를 비롯한 간단한 밑반찬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다 맛있는데? 이런 건 유학 갔을 때 혼자서 배운 거야?”
“아니. 유학 갔을 때는 대부분 사먹었어 나는 미국식도 잘 맞았거든. 그런데 한국 오니까 엄마가 해주시던 집밥이 생각나서... 이것저것 따라 해봤어.”
“음... 그랬구나...”
나는 그녀와 그렇게 아침식사를 했다. 여자 친구가 바로 옆집 산다는 게, 이럴 때는 좋다. 물론 조금 부담스러울 때도 있긴 하지만. 나는 그녀가 해준 밥에, 커피까지 얻어 마셨다. 그러던 중
‘띠리리리’
알람이 울렸다. 아침 8시 50분이다.
“나 가볼게. 일할 시간이야.”
“오빠 그냥 하루 정도 쉬고 나랑 놀면 안 돼?”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게 안 되네. 나도.”
내가 일 하지 않으면 하루에도 몇 억씩 날아간다. 이미 수천억 원대 부자가 되었어도, 그 몇억원이 아쉬워서 일을 놓을 수가 없다. 조 단위 부자가 되어도 이걸 포기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 같다. 나는 살짝 풀이 죽어 있는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장 끝나면 오후에 영화나 보러가자.”
“정말?”
“그래. 어차피 영화관도 바로 옆인데 뭐.”
“그러면 뭘 보지? 오빠 무슨 장르 좋아해?”
“뭐든. 나는 별로 가리지 않아.”
“그러면 내가 보고 싶은 것으로 고른다?”
“그래 그래.”
나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음, 그녀 집을 나와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컴퓨터는 이미 켜져 있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메일을 받아들었다.
‘12시간 뒤’
‘음...’
요새는 12시간 뒤 뉴스는 잘 참고하지 않게 된다. 굴리는 돈이 워낙에 커져서 12시간짜리 단기적인 뉴스로는 수익이 별로 나지 않기 때문이다. 요새 주력은 오히려 ‘12일 뒤’ 혹은 ‘12주 뒤’뉴스다. 이정도 되어야 뉴스의 파워를 분석할 시간도 충분하고 매집할 기회도 많아진다.
“흠흠흠~”
나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12일 뒤 뉴스를 눌러보았다. 그런데, 다소 재밌는 뉴스가 뜬다.
정치 – 개헌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돼. 총선과 동시 투표 제안.
경제 – 최대주주 변경에 현영제약 급등.
사회 – 극심해지는 혐오 사회. 무엇이 문제일가.
경제 부분에, 현영제약 뉴스가 떠 있다.
‘우리 회사 뉴스잖아?’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현영제약이 최대주주 변경 소식에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중견 투자회사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대표 한상훈)는 최근 연달아 대규모 주식양수도를 체결하고 이어 제 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현영제약의 최대주주로...
뉴스에 내 이름도 보인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이제 나도 미래뉴스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구나.’
점점 더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여기서 거느리는 회사를 10개, 20개, 50개, 100개를 만들어버리면. 내가 싫어도 뉴스에 나오게 될 것이다. 인물 검색을 하면
‘한상훈 대표가 중국 출장...’
‘한상훈 대표의 투자가 이번에도 적중...’
과 같은 뉴스를 받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지금은 내가 젊고, 또 12달 밖에 보지 못하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 12년 뒤 뉴스까지 받아들게 되면.
‘한상훈 회장 폐암으로 숨져.’
그런 뉴스를 받아볼지도 모른다. 그러면 12년 빨리, 폐암검사를 해서 먼저 예방을 하거나 수술을 받을 수도 있다. 폐암 같은 경우 1기에 발견되면 생존율이 70%이상이지만, 4기에 발견되면 5%미만이니까. 나는 원래보다 몇 년은 더 살게 될 것이다. 교통사고 같은 건 그냥 그날 일정을 바꾸는 것만으로 쉽게 피할 수 있고.
‘좋아좋아 잘 되어 가고 있군.’
나는 그런 생각에 인물 검색에도 내 이름을 써넣어 보았다.
‘한상훈 원내대표 청와대 개헌의지 보여야.’
그런데, 여전히 정치인 한상훈한테는 밀린다. 아무래도 인지도 면에서 넘사벽 이어서 그런 것 같다.
‘정치인 대 경제인이니까...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회사 CEO로 당 원내대표와 비슷한 수준으로 회자가 되려면 우리나라 5대그룹 안에는 드는 회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거기까지 한... 10년?’
그리 멀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10년이란 시간도 지금의 다이아 등급 능력으로 비춰봤을 때 걸리는 시간일 뿐. 등급이 높아지면 훨씬 더 짧은 시간내에 내 제국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좋아 다다음 주면 완성이다 이거지...’
다음 주면 계약 체결이고, 다다음 주면 유상증자가 완료된다. 지난 번 다이아 등급을 달 때를 생각하면, 완전히 주식 양수도가 끝나는 시점에서 12시간 뒤의 ‘등급 안내’ 메일이 온다. 마스터 등급이 되면 나는 더욱 더 강해질 것이다.
*
‘좋아 여기서... 동시호가에서 6억 매수 하고 끝.’
나는 오늘 마지막 주문을 넣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이 끝나고 이아영과 데이트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영화관 데이트. 나는 바로 집 문을 열고 들어가 옆집, 이아영네 집 초인종을 눌렀다. 사실 그녀의 친구 사라 덕분에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내게 직접 알려준 적이 없었으므로 굳이 아는 티를 내지는 않았다.
“일 다 끝났어?”
“응.”
“그래 그럼 바로 가자. 3시 50분 영화야.”
“무슨 영화인데.”
“아 참. 내일 만나러 갑니다. 멜로 영화”
그걸 들은 나는 살짝 입을 벌리며 말했다.
“아아... 내일 만나러 갑니다...?”
‘내일 만나러 갑니다.’는 오현주 주연의 영화였다. 얼마 전 정례 보고 때, 권오혁 사장에게서
‘시사회 평가가 좋았습니다.’
라고 했던 바로 그 영화. 오현주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고, 권오혁 사장에게
‘꼭 보러 가겠습니다.’
라고 이야기까지 해놓기는 했지만, 왠지, 여자 친구인 이아영과 보러가는 것은 왠지 모를 불편함이 있다. 내 눈치를 살핀 이아영이 내게 말했다.
“왜 멜로는 싫어?”
“아니... 아니야. 괜찮아. 보러 가자.”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 나를 잠깐 올려다봤지만
“으음...”
더 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
커다란 스크린 위로, 오현주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청순한 얼굴로 남자 주인공을 돌아보며 대사를 말한다.
‘내일... 내일 만나러 갈게요.’
나는 사 놓은 콜라에 손도 대지 않고 영화를 지켜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오현주 미모도 뛰어나지만 진짜 연기 잘한다.’
는 것. 원래 무명 일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최근 들어서 연기력이 더욱 일취월장 한 것 같다. 비련의 여주인공 역을 맡아서 연기를 하는데, 정말 본인이 그 캐릭터가 된 것만 같다. 둘째로 드는 생각은 다소 속물적인 생각이다.
‘아니 이거... 제작사가 어디지? 상장사라면 이거 급등할 만한데?’
이 작품은 확실히 대박이다. 예전에 좀비영화 ‘서울행’을 보고 이득을 봤던 것처럼, 이 영화도 제작사에 투자하면 몇 십억은 챙길 수 있을 것 같다. 오현주의 소속사인 OH엔터테인먼트도 많이 오를 것 같다. 아이돌 매니지먼트 108 이전에 말이다.
‘대단한데?’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감싸고 있던 암전暗轉이 사라지면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갔다. 나는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이아영을 보았다.
“재밌네? 그치?”
그런데, 그녀는 아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입을 막고 살짝 울먹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영화관 들어 올 때 산 나쵸와 같이 온 티슈를 발견하고는 그녀에게 건냈다. 그녀는 그걸로 눈 주변을 닦더니 내게 말했다.
“너무... 너무 감동적이다 오빠. 그치?”
“그러게.”
그녀를 보니 내가 살짝 메말랐구나 싶긴 하다. 연인의 비극적 스토리, 감동적인 재회, 그리고 다시 이별. 그 뛰어난 스토리를 보면서도
‘이거 제작사가 어디지?’
그걸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뭘 보고 울기는 글렀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의 울음이 그치길 기다렸다.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 그녀와 팔짱을 낀 채로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여전히 감흥이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진짜 재밌었어. 오빠.”
“그러게, 자주 보러 오자.”
“응.”
영화가 끝나니 딱 5시 30분이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면 될 것이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그 여배우분. 정말 연기 잘하시더라. 이름이 뭐야 오빠?”
“아... 오현주 씨.”
왠지 여자 친구 옆에서 그 이름을 말하는 것 만으로도 조금 죄책감이 든다. 옛 이상형이어서 그럴까.
“그래? 나는 광고에서만 보고... 연기하시는 건 처음 봤는데 연기 잘하시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유명하지.”
“그래? 또 뭐 찍으셨는데? 오빠 잘 알아?”
잘 알기는, 이미 개인적으로 아는 수준인데. 나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아... 그렇지. 사실 그 분 우리 회사 자회사 OH엔터테인먼트 소속이거든. 예전에 드라마 너와 나의 아저씨랄지... 그런 것 유명해.”
물론 그녀가 나의 이상형이었다든지, 내가 그녀를 위험에서 구해줬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쏙 빼놓고.
“오오 그랬구나... 오빠 회사 사람이었구나? 나와 너의 아저씨? 그것도 봐야 겠다.”
나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빨리 화제를 돌렸다.
“응 그래. 그나저나 오늘은 뭐 먹지?”
*
그로부터 일주일 뒤, 마침내 공시가 떴다.
‘현영제약 대주주변경을 수반하는 제 3자배정 유상증자.’
공시와 동시에 현영제약 주가는 12%급등했다. 나는 주식게시판에 가보았다.
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투자 실화냐! 두배 가즈아!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가 어딘데요? 뭔데요?
여기 비상건설 역베팅 해서 크게 먹었던 곳인데...
그것보다 카이게임즈로 대박친 곳이죠 잘 됐네요.
예전에 인수를 하면
‘이 듣보잡 회사는 대체 어디야?’
하면서 주가가 오르긴 커녕,
‘자본금 300억? 동네 점빵이네요’
하락했던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다.
여기 주식천재 한상훈 대표가 운영하는 곳 아냐. 이거 따따블 확정이다 이미.
한상훈 대표 또 돈 냄새 맡았나 보네요. 근데 게임도 아니고 엔터도 아니고 제약주를?
이사람 진짜 천재에요. 게임이든 엔터든 건설이든 제약이든 안 가리는 것 같던데.
게시판에는 나를 찬양하는 댓글들도 많다. 이제 슬슬 주식투자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명성이 퍼지고 있는 듯하다. 그럴 수 밖에,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내가 처음 기획한 대로 ‘절대지지 않는 투자회사’가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좋아. 이제 슬슬 나도 유명세를 타게 되었군.’
나는 그 게시판을 보면서 의자 뒤로 살짝 누웠다. 그리고 이로부터 일주일이 더 지난 시점. 나는 마침내 그걸 받아들게 되었다.
‘마스터 등급 안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