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04화 (10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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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 사냥(9)

    이아영은 소파에 앉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 때 나타난 게 바로 뉴스메이커 강주혁 기자였어요. 그 때 아영 씨가 보여준 사진으로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죠. 리자드맨 같은 인상.”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리자드맨?”

    “아... 도마뱀처럼 생겼다고요.”

    “아하...”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비상건설과 진양개발을 흘리더군요. 진양개발이 유력하다는 말과 함께. 그래서 저는 함정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나는 그녀에게 여태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딱 하나, 내가 미래뉴스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빼고.

    “그 와중에, 다른 곳에서 우연치 않게 루머를 들었어요.”

    “어떤?”

    “이번 사업과정에서 모 건설회사가 서울시 공무원에 청탁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를요. 저는 그걸 듣고, 비상건설이라 짐작했죠. 주가조작 세력과 결탁해서 일을 벌이려고 하는구나 하고요.”

    “그래서 비상건설에 공매도를 하셨다고요?”

    그녀는 공매도 같은 기본 주식 개념도 알고 있는 듯 하다.

    ‘생각해보면... 고영식품도 상장폐지 전에 엄청나게 공매도가 쏟아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제 귀에 들어올 정도면 나중에 분명 문제가 생기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회사에 비상개발에 대규모 공매도를 지시했죠. 첫째로 수익이 크게 날 것 같아서. 둘째로 이 주식을 잔뜩 사 놓은 주가조작세력을 엿 먹이기 위해서. 물론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되지는 않았어요. 저는 발표 전에 비리가 밝혀질 줄 알았거든요.”

    그녀는 눈을 껌뻑여가며 내 말을 들었다. 내 말을 다 믿는 눈치다.

    “주말에 비상개발 발표 나고, 우리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기 시작했죠. 저는 생각했어요. 조금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내가 나서서 제보를 해야 할까 하고요. 하지만 다행이도, 정의로운 누군가가 서울시에 비리를 폭로한 모양이더군요.”

    ‘정의로운 누군가’. 역시 나지만, 그것도 비밀로 했다. 아무리 탁준기가 그녀의 부모의 원수라고 해도, 불필요한 정보를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그건 나도 문제지만, 그녀에게도 부담이 되는 정보다. 그걸 모르는 편이 그녀에게도 좋다.

    “그래서... 결국 비상건설에 투자했던 세력들이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된 것이로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런 것으로 보여요. 결과적으로 가장 힘없는 강주혁은 죽고, 그 다음으로 약한 이원준은 구속 되고, 가장 강한 탁준기는... 뭐 그래도 돈은 많이 잃게 될 겁니다.”

    내 말을 듣던 그녀는 내게 물었다.

    “...이원준이 구속 되요?”

    아차. 나는 나도 모르게, 미래의 뉴스를 발설해버렸다. 나는 대충 둘러댔다.

    “아마 그렇게 될 거란 거죠. 이번 일을 지켜보면... 그렇게 교통정리가 된 것으로 보여요. 강주혁은 죽으면서 꼬리를 자르고, 이원준은... 발뺌을 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탁준기는 수연그룹차원에서 비호가 들어 온 건지 뭔지...”

    “그렇...군요...”

    이아영은 들고 있던 포도주스 잔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심경이 복잡해 보인다. 원수 셋 중 하나는 죽고 하나는 감방에 갈 예정이지만, 아주 신나하거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역시 복수라는 게...’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있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어쨌든 원수 중 한 명은 죽었고, 나머지 한명은 감방 생활... 할 가능성이 높고... 나머지 한 명은 제가 앞으로 탈탈 털겠습니다. 그 사람 재벌 3세다 보니 직접적인 위해를 입지는 않았겠지만 이번 일로 금전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겁니다. 한동안 그런 짓 못할 정도로요.”

    그뿐만 아니다. 마스터 등급을 달게 되면, 나는 그 녀석을 완전히 뭉개버릴 것이다. 완전히 재기하지 못하도록. 내 말을 듣던 이아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내게 물었다.

    “그래요... 그런데... 왜 제 복수를 도와주신 거죠?”

    여태 신나게 이야기를 하던 나는 거기서 살짝 말문이 막혔다.

    “음... 일단... 그게 저희 회사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아영 씨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런 녀석들은 한 번 쯤 엿을 먹여줘야 겠다... 싶었거든요. 누가 죽고 누가 경찰서에 끌려갈지는 저도 몰랐지만요.”

    내 말을 듣던 그녀는 나를 보고 살짝 웃는다. 그리고 잔을 들어 남아 있던 포도주스를 모두 마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랬군요. 막무가내로 찾아와서 죄송해요. 뉴스 듣고 너무 놀라서. 그리고 궁금해서. 올 수 밖에 없었어요.”

    나는 살짝 입술을 모으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니 괜찮아요. 부모님 원수들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는데... 저라도 찾아왔을 거예요. 특히 우리는... 바로 옆집 사니까.”

    “...네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오빠. 이번 일... 저 대신 복수를 해준 것도요.”

    그 말을 듣던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녀를 보고 물었다.

    “저...지금 포도주스 마시고 취한 거 아니죠?”

    “네?”

    “제 정신에 저더러 오빠라고 한 거 지금이 처음이라서.”

    그녀는 본인도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아... 그랬나요? 제가?”

    그 물음이

    ‘제가 전에 술 먹고 오빠라고 불렀다고요?’

    를 묻는 건지

    ‘제가 방금 전에 오빠라고 했다고요?’

    를 묻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간단히 답했다.

    “네.”

    그녀는 살짝 얼굴이 빨개지더니 고개를 잠깐 숙였다가 들어 올리며 말했다.

    “취한 거 아니에요... 그럼... 그냥 앞으로도 오빠라고 부를게요. 그래도... 되나요?”

    나도 그 편이 더 좋다.

    “네 그러세요.”

    “네 오빠. 그러면 앞으로 오빠라고 부를게요. 오빠도 저 부를 때. 씨를 빼주세요.”

    “네? 씨를... 빼 달라고요?”

    “저 부를 때 아영 씨 아영 씨 그러잖아요. 그거 영 어색하단 말이에요. 그냥 말 편하게 하시고 제 이름 불러주세요.”

    “아아... 그럴게요. 아영...아? 아니. 아니지”

    나는 잠시 그녀의 요구대로 필터링을 거친 다음, 고쳐 말했다.

    “그럴게 아영아.”

    내말에 그녀는 싱긋 웃는다. 그 때, 이 집 아래 부동산에서 처음 만났을 때 도도하고 고압적이던 그녀를 생각하면 정말 달라도 많이 달라졌다.

    “저 그럼 가볼게요. 야밤에 갑자기 찾아와서 물었는데... 솔직하게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요. 오빠.”

    다 솔직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믿고 있는 듯하다. 그 편이 좋다. 나를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나는 문 앞에서 그녀에게 말했다.

    “어찌되었든 오늘 한 말은 절대 비밀이다.”

    “저도 알아요. 저... 보통은 절대 부모님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아요. 그건 걱정마세요.”

    그도 그럴 만하다. 대개, 타인과 좋은 이야기는 나눌 수 있어도 슬픈 이야기는 나누기 어려운 법이다. 타인이 부담을 느끼니까. 정말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왜 나는...?’

    문득 그런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녀가 말한 대로 아마 술 취한 그녀를 세 번이나 케어해준 게 신용을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 나는 현관문 앞에서 그녀를 배웅했다.

    “그럼 들어가.”

    “네. 오빠.”

    그녀는 내게 배꼽인사를 하고 바로 옆 자기 집 안으로 갔다. 나는 슬쩍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을 닫았다. 복도 쪽에서

    ‘띠띠띠띠띠띠’

    비밀 번호 들리는 소리가 나고,

    ‘철커덩’

    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들린다. 거기까지 들은 나는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벌렁 누웠다. 방금 전까지, 이아영이 앉아 있던 자리 체온이 느껴진다. 나는 잠시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원수 세 명중 두 명은 죽거나 감방에 갔다. 나머지 한 명은 치명상을 입었다.

    ‘복수에 성공했으니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을까?’

    생각해보니, 아까 집에 돌아가던 때, 봤던 뒷모습에 평소 추욱 쳐져 있던 어깨가 살짝 올라가 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 100%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조금 덜 무겁긴 할 테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위이잉’

    탁자 위에 올려 있던 내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그곳에 가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문자 하나가 와 있다. 보낸 사람은 옆집에 있는 이아영.

    ‘오빠. 생각해보니 고맙다고 말만 하고 말았네요. 사실상 대신 복수를 해준 거나 다름없는데... 제가 한 번 더 밥을 살게요. 메뉴는 뭐든 말만 하세요. 제가 요즘 친구들이랑 맛집이란 맛집은 다 돌아다녀봤거든요.’

    나는 그걸 내려보다가, 답장을 보냈다.

    ‘좋아. 술만 안마시면.’

    *

    ‘똑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린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장 부사장이 들어온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어 있다.

    “아니 걸어오셨어요?”

    그는 손수건을 꺼내며 이마를 훔치며 말했다.

    “네. 미팅 장소가 근처 카페여서 조금 운동 삼아 걷자 하고 걸어 돌아왔는데... 그 새 이렇게 땀이 났네요.”

    나는 슬쩍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볕이 쨍쨍하다.

    “작년 여름도 덥더니, 올해는 더 더운 것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사장님.”

    2019년. 7월 요즘 꽤나 덥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쪽에서는 뭐라던가요?”

    “바로 예스를 하지는 않았지만, 혹하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사장님이 말씀하신대로 연구개발비가 워낙에 많이 들어서 적자는 커지고 성과는 안 나오고... 하다 보니 주가는 떨어지고 채권은 안 팔리고 그런 상황이었나 봅니다. 저희 쪽 투자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연구진의 독립성만 보전해 주면요.”

    “네 그건 확실히 말해 주세요. 저희는 연구 쪽은 전혀 하나도 건들지 않겠고, 수익성에만 신경 쓴다고 카이게임즈나 OH엔터테인먼트 블루E&M 예시도 보여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장 부사장이 나간 뒤, 나는 의자를 툭툭 치며 생각했다.

    ‘좋아 이 회사들만 내게 넘어오면 바로 마스터 등급이다...’

    마스터등급을 달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인수할 회사를 모색한 것이 성과를 냈다. 뒷조사는 충분히 했으니, 아마 투자는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리고 내게 엄청난 이익도 줄 것이고.

    ‘좋아좋아 순조롭군...’

    비상건설, 진양개발 사건 이후, 결심을 했으니. 두 달 반만에 성과를 낸 것이다.

    ‘두 달 반.’

    주로 따지면 대략 10주 정도다.

    ‘음... 그러면...’

    나는 과거 뉴스를 검색해 본 것이 기억이 났다. 나는 검색창에

    ‘이원준’

    을 검색해보았다.

    ‘법원 주가조작 혐의 이원준 이사에게 1심에서 징역 5년 벌금 50억원 선고.’

    미래뉴스에서 검색했던 뉴스가 비슷하게 뜬다.

    ‘탁준기’

    에도 역시

    ‘수연여행 탁준기 이사 중국 청두 방문 중국 여행사업 직접 시찰.’

    비슷한 뉴스가 떠있다.

    ‘흥. 겉은 괜찮은 척 하고 있어도 다 안다. 속이 썩어 들어갔다는 것을.’

    비상건설과 진양개발은 내가 그림을 그린 대로, 하나는 폭락하고, 하나는 폭등했다. 나와 우리 회사는 2배로 수익을 얻었고, 그만큼 탁준기는 2배로 손실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이 녀석아. 그런 짓 해놓고 멀쩡하게 중국 여행을 가?’

    마스터 등급을 달면, 엉덩이를 한 번 더 때려줄 것이다. 그래서 먼저 가 있는 이원준이랑 똑같은 교도소에 쳐 넣을 것이다.

    ‘중국 여행은 갔어도. 할아버지 제사는 못 갈 거다. 이놈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보았다. 그러던 때,

    “띠리리리리”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보았다.

    “응 서 비서 왜?”

    전화기 너머로, 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장님. 여자 친구분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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