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03화 (103/198)
  • # 103

    거미 사냥(8)

    매번 그러하듯 오늘도 메일이 네 통온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

    ‘D 12시간 뒤’

    그 메일을 클릭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어지는 뉴스 아래에는

    ‘인물검색 – 이름을 써넣어 주세요.’

    ‘인물검색 – 이름을 써넣어 주세요.’

    두 개의 인물검색 슬롯이 있다. 나는 먼저 이원준을 검색해보았다.

    ‘대원일보 이원준 이사 주가조작 연루설 부인’

    그런 기사가 뜬다. 지금부터 12시간 내에 뜨는 기사니까.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 즈음 뜨는 기사라고 봐야한다.

    ‘유서에 이름이 나왔는데... 부인했군. 검찰 조사가 들어가도 부인할 수 있을까?’

    나는 뒤이어 탁준기를 검색해보았다.

    ‘검색된 뉴스가 없습니다.’

    뉴스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동명이인의 뉴스도 없다는 뜻이다.

    ‘준기라는 이름은 몰라도, 탁 씨는 그리 흔하지 않으니까.’

    나는 이어서 두 번째

    ‘D 12일 뒤’

    에도 똑같이 검색을 해보았다. 이원준.

    ‘대원일보 이원준 전무이사 불구속 입건’

    이원준은 결국 철창행이 결정이 났다. 나는 이어서 탁준기를 써보았다.

    ‘수연여행 탁준기 이사 다문화 가정 아이들 여행 지원.’

    그런데 웬걸. 탁준기 쪽에는 오히려 미담이 나온다.

    ‘이 녀석은... 피해갔나?’

    나는 이어서 12주 뒤 뉴스를 뒤져보았다.

    ‘D 12주 뒤’

    ‘대원그룹 3세 이원준 1심에서 징역 5년 벌금 50억원 선고.’

    이원준 이사는 결국 실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중국 청두 방문한 탁준기 이사. 중국 여행사업 진두지휘’

    탁준기는 해외 간 게 뉴스가 되어 있다. 나는 손가락으로 의자를 쳐 가며 마지막 메일에 들어갔다.

    ‘D 12달 뒤’

    ‘이원준 인천 남구청장 경로식당 방문’

    이원준은 아예 다른 사람 뉴스로 대체되어 있다. 흔한 이름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할아버지 묘소 찾은 탁준기 이사’

    탁준기는 할아버지 묘소 찾았다는 뉴스가 떠 있었다.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탁준기가 차에서 내리는 사진이 찍혀 있다.

    ‘그의 할아버지라면...수연그룹 탁진운 회장...’

    이 날은 탁진운 회장의 제삿날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그 주변에 소위 ‘회장님 차’라고 불리는 검은색 고급차가 줄줄이 늘어져 있다. 마치 수연그룹의 파워를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한참 그걸 바라보다가, 이메일을 닫아버렸다.

    ‘됐다 됐어.’

    자세한 상황이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사건의 진정한 흑막.

    ‘90%이상 탁준기 이사... 아니 이아영이 했던 말을 생각하면 99%다.’

    어찌되었든 그 흑막은 밝혀지지 않고 끝을 맺은 듯하다. 나름 미디어재벌의 후계자 중 하나인 대원그룹의 이원준이 잡혀서 실형을 살게 되었는데도, 탁준기는 ㅌ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게 수연그룹의 힘인가...’

    검찰, 경찰, 언론. 어디까지 손이 뻗쳐 있는지는 모르겠다. 당장은 화가 나지만 손을 쓸 도리가 없다.

    ‘저런 새끼는 완전히 조져야되는데... 수연그룹 비호를 받다니... 어떻게 빼도박도 못할 증거를 캘 방법이 없나...?’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포인트 7점의 ‘조사원 특파’ 마스터 등급이 되면 얻을 수 있는 액티브 스킬. 지난번에 12주 뒤, 12달 뒤 뉴스를 받아 보기 위해서 잠시 미뤄두었지만 그 스킬이 있다면 뭔가가 구린 구석을 제대로 캐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저희 조사원은 매우 유능합니다.’

    고객센터에서 그렇게 말했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 그러면... 최대한 빨리 두 회사를 더 인수하자. 그 스킬을 얻게 되면... 뭔가가 풀릴지도 몰라.’

    이러저러한 일들이 많았지만, 나는 뉴스에서 나오는 호재를 달력에 적어놓고 계속해서 매매를 해왔다. 매달 100억의 구독료를 내고도 적어도 200억, 많으면 400억까지, 벌어서 쟁여놓고 있었다. 내가 가진 현금은 2천억. 무럭무럭 불어나는 카이게임즈 지분을 60% 가지고 있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자산은 3천억 가까이 되었다.

    ‘장 부사장님은 적당한 매물이 없다고 했지만...’

    적당한 매물이 있던 없던, 돈으로 밀어붙여서 하나 사면 될 것이다. 이제 효율을 따질 시기는 지났다. 굳이 돈을 더 내서라도 등급을 올려야겠다.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상건설에 물려있는 돈, 그리고 진양개발에 때려져 있는 공매도 세력을 쥐어짜는 것이다. 아무리 재벌 3세라고 해도 몇 백억이 작은 돈은 아니니까.

    ‘흥 법은 피해갔어도, 시장에 들어온 이상 돈은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메일 창을 닫았다.

    *

    다음 날 아침. 비상건설은 –27%로 장을 시작했다. 누군가 돈으로 시초가를 떠받히려고 하는 느낌. 하지만 이내 그 호가 위로 공매도 폭탄이 떨어졌다. 우리 회사 인빅투스 인베스트를 비롯한 다른 회사들이 그걸 올라가게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상건설은 그걸 채 1분 못 버티고 바로 하한가로 직행했다.

    ‘이건 지금부터 반토막이 날 때까지 하한가다.’

    우리 회사 공매도 자금은 이미 30%이상 수익이 나고 있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고삐를 쥘 생각이었다. 그렇게 돈을 좋아하는 녀석들이니, 여기서 지옥을 맛보게 시켜주려고. 나는 이어서 진양개발 쪽을 보았다.

    ‘응?’

    진양개발은 +25%대에서 상한가 갈랑말랑,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해는 간다. 비상건설이 떨어졌다고 해서, 진양개발이 사업자로 선정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다시 사업자 선정을 하려면 최소 몇 달은 걸릴 것이다. 어쩌면 진양개발은 다음 선정 때는 아예 배제될 수도 있다. 시공능력은 뛰어나지만, 워낙에 비상건설 비리사건의 충격이 컸으므로. 새 후보군은 완전히 뉴페이스들로 꾸릴 가능성도 있다.

    ‘두 번 상한가는 조금 그렇다 이거군.’

    나는 상한가까지 남아 있는 금액을 대충 계산해보았다.

    ‘50...아니 60억 정도인가.’

    이정도라면 베팅을 해도 그다지 치명적이진 않다. 나는 계좌를 돌려가며 빠르게 주식을 사재겼다.

    ‘5억, 7억, 10억 매수’

    파동은 바로 전해졌다.

    ‘상한가 가나? 못 가나?’

    긴가민가 하던 개미들은 내 매수세에 바로 다시 달라붙었다. 나는 적당히 타이밍을 봐서

    ‘50억 매수’

    상한가에 50억을 던져버렸다. 당연히 남아 있는 물량이 모두 체결되고, 진양개발은 두 번째 상한가를 맞이했다. 다소 억지로 만든 상한가긴 했지만,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개미들은.

    ‘큰 손이 올리기로 했나보다.’

    그 정도로 납득을 할 것이다. 여기다가 공매도를 친 녀석들은.

    ‘아니 어떤 새끼가 50억을 지르고 난리야.’

    고통스러워하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조금 손해 보더라도 상한가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밀어버려야겠어...’

    공매도 칠 때는 신났겠지만, 이제 150% 200% 오른 가격으로 갚으려고 하면 꽤나 괴로울 것이다. 내 50억 위로 금액이 더 쌓인다. 3천만 원, 6천만 원, 1억2천. 내 매수에 달라붙는 개미들이다. 이 개미들 역시 공매도세력을 괴롭히기 충분하다. 그래서 결국 오늘도 비상건설은 하한가. 진양개발은 상한가로 움직이기 않게 되었다. 여기 돈을 쏘아 부은 탁준기고 이원준이고 꽤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좋아 그러면 이건 됐고...’

    나는 평소대로 돌아와 다른 주식을 매매하기로 했다. 이번 건도 수백억 정도 벌 것 같지만, 평소 버는 게 사실 더 크다. 나는 휴대폰 달력앱을 불러서 초성으로 쓰인 암호를 찾아냈다.

    ‘ㅈㅅㅈㄱ ㄱㄱㄱㅇ ㅈㄱㄴㅂ ㅁㅊㅇ 120’

    “장성제강 공급계약 작년대비 매출액... 120%짜리.‘

    그런데 그러던 중이었다.

    ‘띵~동~’

    우리집 현관 벨이 울렸다.

    ‘뭐야?’

    대낮에 벨이 울린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택배를 시킨 건 없다. 부모님은 지지난주에 왔다 가셨다. 서 비서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사람은 딱 한사람.

    ‘이아영?’

    그녀인 듯하다.

    ‘하긴 그녀도 이 기사를 봤겠지... 어제 대문짝하게 뉴스가 났으니.’

    자신의 세 원수 중 하나가 자살하고, 유서에 다른 한 명을 지목했다. 뭔가 이상하다 느끼긴 했을 것이다. 나는 이어 현관문에 다가갔다. 문을 열어보니, 역시나 이아영이 있다. 청바지에 흰 티를 입었는데, 정말 예쁘다. 역시 패션의 완성은 외모다. 하지만 지금 그녀 외모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아침부터 무슨 일로?”

    그러자, 그녀가 내게 말했다. 거두절미 하고.

    “기사 봤어요.”

    대충 예상이 되지만, 나는 되물었다.

    “무슨 기사요?”

    그녀는

    “알잖아요. 시치미 떼지 말아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가 비상개발에 공매도 한 것도 다 찾아봤으니까.”

    역시 그 이야기다. 그녀는 현관 앞에 선 채로 말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예요?”

    나는 잠시, 그녀 뒤를 쳐다보았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지만, 목소리가 잘 울려 퍼진다. 나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들어와요.”

    그녀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우리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상투적으로 말했다.

    “뭐 마실 것이라도?”

    “됐어요. 그보다 이야기나 해줘요. 뭐가 어떻게 된 거에요?”

    나는 눈을 내려깔고 턱을 쓰다듬었다.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발설할 가능성은 없다. 그들은 그녀의 원수였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이야기를 들었다가, 혹시나 위험한 짓을 할까봐. 그게 걱정이 된다. 나는 애둘러 말했다.

    “...말하자면 긴데...”

    그녀는 거실 소파 옆에 서며 말했다.

    “길게 해줘요. 나 어차피 오늘 수업 없으니까.”

    “...제가 바쁠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아요?”

    “보통 출근 안 하시잖아요.”

    그녀는 내가 출근을 잘 하지 않는 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뭐야 나 출퇴근 하는 거 관찰이라도 한 거야?’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나 같은 트레이더들은... 출근 하지 않아도 집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요.”

    나는 눈짓으로 내 컴퓨터들을 가리켰다. 그녀는 그걸 보더니 되돌아가려는 듯 뒤를 돌아섰다.

    “그러면 다음이라도 시간 나실 때...”

    나는 그런 그녀를 붙잡았다.

    “아니에요. 말해줄게요. 앉아요. 대신...”

    그녀는 나를 살짝 째려보며 말했다.

    “대신?”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말 것.”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못해요. 이건. 미국에 있는 사라정도 아니면. 그리고 사라는 한국말 못해요. 당신도 봤죠?”

    사라. 그 때 그 백인 미녀의 이름은 사라인가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냉장고에 다가갔다.

    “진짜 아무것도 안 마실래요? 이야기 진짜 긴데.”

    “그럼... 아무 주스나 한잔주세요.”

    나는 냉장고에서 포도 주스를 꺼내 잔에 채우고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문득 예전에, 포도주 두잔 마시고 취한 그녀가 생각난다. 나는 주스로 먼저 목을 축인 다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제가 서울시청으로 상을 받으러 갔을 때부터 시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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