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02화 (102/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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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 사냥(7)

    나는 사장실로 들어와 휴대폰을 내려 보았다. 이 녀석이 무슨 의도로, 무슨 생각으로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건과 관련돼 있을 확률이 높다.

    ‘...대체 왜...?’

    이러나저러나, 전화를 받지 않을 이유는 없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이고 한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저 대원일보 이원재입니다.”

    “네 이원재 이사님. 오랜만입니다.”

    “네 오랜만입니다. 한 대표님 요새 잘 지내시지요?”

    이원재 이사는 그래도 강주혁 기자처럼 목소리가 맛이 가 있지는 않다. 나는 넌지시 물었다.

    “네 물론입니다. 이사님도 잘 지내시지요?”

    “네 저도 잘 지냈습니다. 하하”

    나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듣고 살짝 놀랐다.

    ‘웃어?’

    그는 어쩌면, 이번 사건에서는 손을 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내게 왜 전화를 건거지?’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는지?”

    “아니... 다름이 아니라...”

    그는 살짝 말꼬리를 흐리더니.

    “감사인사를 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나는 되물었다.

    “감사인사요?”

    그는 내게 말을 꺼냈다.

    “네. 뭐... 이번 일 있지 않습니까. 비상건설과 진양개발.”

    나는 최대한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아아 네. 그런데 왜... 감사인사를 하신다는 건지?”

    “이번 일... 한상훈 대표님이 그리신 그림 아닙니까?”

    역시 이 녀석도 나를 배후로 여기고 있다. 강주혁 기자도 그렇고, 검찰도 그렇고. 뭐 어쩔 수 없긴 하다. 추리소설을 봐도, 누군가 죽으면 그 죽음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부터 추궁하기 마련이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 회사와 나는 수 백 억대 이득을 취하게 되었다. 작전 세력 엿 먹이려고 시작한 일이지만 말이다.

    ‘돈으로 때리는 놈 돈으로 때려 주다보니 이렇게 된 것 뿐인데...’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모르쇠로 일관했다.

    “아니요. 일개 투자회사 사장인 제가 어떻게 그 비리를 캐고, 정보를 미리 알았겠습니까? 틀린 쪽에 베팅을 했다가 운 좋게 얻어걸린 셈이 되었습니다.”

    “아아... 그러셨군요... 제 생각에도 그럴 가능성은 낮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돈이 흘러가는 쪽이 그쪽이다 보니... 하하 죄송합니다. 괜한 의심을 해서.”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말을 100%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흥 여우같은 놈.’

    그런데 드는 의문이 있다. 이 녀석은 왜 나한테 감사하다고 했을까.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저한테 감사하다고 하셨는지? 혹시 대표님도 진양개발을 사셨습니까?”

    “아니요. 저는 진양개발이 아니라 비상건설을 샀었습니다. 어제 상한가 갔을 때 팔았어야 됐는데... 욕심이 내다가 하한가를 맞아버렸네요. 10억 담갔는데 얼마나 건질 수 있을지... ”

    비상개발을 10억원어치 샀다. 그럼에도 감사하다. 도통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한테 어째서 감사를?”

    “아아 10억 보다 큰 것을 얻었거든요.”

    이 녀석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댄다.

    “그게 무슨...?”

    이원재 이사는 내게 말했다.

    “하하 그게... 지금 말씀드리기는 뭐하고... 나중에 기사로 보시지요. 아 사장님 그 비상건설 공매도는 계속해서 때리실 생각이신가요?”

    “...네 이사님에게 죄송하지만 그건 저희 회사 이익에 관한 것이라. 계속해서 때릴 겁니다.”

    “아하 그러시군요.”

    역시나 이상한 반응이 나온다. 자기가 산 주식 가격을 내리겠다는데, 기뻐한다.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묘한 말을 남겼다.

    “알겠습니다. 오랜만에 통화해서 반가웠습니다. 제 생각에... 저희 인연이 좋은 인연인 것 같아요. 한 대표님이 어떻게 생각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앞으로 저희 회사에 부탁할일 있으시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제가 기사 자알 써서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네.”

    통화를 마친 후 나는 그 휴대폰을 내려 보았다.

    ‘손해를 봤는데 더 큰 이득을 보았다.’

    ‘내가 산 주식 공매도를 때려줘서 고맙다.’

    이상한 말 투성이다. 나는 잠자코 그 말들을 생각해보았다.

    ‘이게 가능한 시나리오...’

    생각해보니 딱 하나 있다.

    ‘설마... 그건가?’

    *

    당일 저녁. 인터넷에 기사가 떴다.

    ‘비상건설 정기웅 사장 모든 혐의 시인’

    예상대로다. 내가 유포한 자료가 워낙에 정밀했기 때문에, 어떻게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기사를 읽어보았다.

    ‘...10년 전부터 서울시청 안에 인맥을 만들어놓고, 이번 사업 후보군을 선정 할 때부터 접촉해 왔던 것으로...’

    사장이 시인했으니, 비상건설은 내일도 하한가 확정이다. 여태 하한가를 두 번 맞기는 했지만, 여태 오른 것. 거품이 빠진 것에 지나지 않았다. CEO가 범죄를 저질렀으니 이제 평소가격보다 아래로 가야 맞다. 나는 스크롤을 더 내려 보았다.

    ‘...단, 최근 불거진 주가조작혐의는 부인했습니다. 정기웅 사장은 이번 사업이 선정되면 주가가 오를 것이라 예상했을 뿐 딱히 누구와 정보를 나누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주가조작은 부인.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거짓말 하고 있군.’

    비상건설 같이 재료를 가지고 주가를 폭등 시키는 경우, 대개 대주주의 허락 혹은 용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가가 폭등했을 때, 대주주가 주식을 팔아버리면, 작전 세력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대주주가 주식을 팔아도 미쳤다고 더 오르는 주식도 있긴 하지만, 대개 그렇다. 나는 서울시청에서 탁준기에게 굽실거리던 중소기업 건설사들을 떠올렸다.

    ‘정기웅 사장도 이번 사업자에 선정되면 주가가 정상치보다 훨씬 더 오를 것이라는 건 알았을 거야... 대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사를 끝까지 모두 읽어보았다. 기사 댓글에는

    ‘뇌물비리 주성원 시장 내려와라.’

    ‘시장님이 무슨 죄라고. 스스로 밝히고 나오셨는데. 오히려 서울시의 폐단을 끊은 거 아닌가요?’

    대체로 정치관련 댓글이 주를 이루었다. 아무래도 대중들은 이런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내가 궁금한 것은 조가조작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나 인데...’

    문득 든 생각에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강주혁 기자를 검색해보았다. 어제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사... 사장님 살려주십시오.’

    ‘강남역? 사람이 많아서 좋군요.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는 분명 내게 다시 연락을 한다고 해놓고, 연락이 없었다.

    ‘어떻게 됐으려나?’

    어제 저녁에 나름 방송국에 접촉을 한 듯 해보였지만, 그것만 가지고 확실한 안전장치를 얻었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윗선을 자극했을지도...’

    생각해보니 그것은 나름 본인이 승부수를 건 것이었다. 봐라, 나는 언론에, 경찰에 폭로를 할 수가 있다. 나를 건드리지 마라.

    ‘하지만... 그 메시지를 무시한다면?’

    살짝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가 아무리 악인이라고 해도, 야산에 파묻히거나, 발목에 돌이 메인채로 서해바다에 버려지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경찰서, 법원, 교도소를 거쳐서 죄 값을 치뤘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탁준기 이름도 좀 발설해주고.

    ‘하지만 왠지...’

    그럴 게 될지 않을 것 같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이원재 이사의 요상한 전화를 생각해보건대, 물밑에서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는 건 분명했다.

    ‘나중에 기사로 보시지요.’

    하지만 이미 결정은 나와 있다고 봐야한다. 단지 경찰이든 언론이든 어떻게 세외에 밝혀질지 그것을 고민하고 있는 타이밍 정도라고 봐야할 것이다.

    ‘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내 의문이 풀리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저녁 8시 반 경. 나는 게임도 하지 않고, 영화도 보지 않은 채로 9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BKS 9시 뉴스를 보려고. 강주혁 기자가 접촉했던 곳이 그곳이었으니, 오늘 뭔가가 더 정보가 나올지도 모른단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별 생각 없이 집어든 스마트폰.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에 그런 뉴스가 하나 떠 있었다.

    ‘제일경제 강주혁 기자. 비상건설 주가조작 폭로 후 자살.’

    제목을 본 나는

    “아...”

    살짝 신음소리를 흘렸다.

    ‘결국 이렇게 됐나...’

    어쩌면 어제의 그 폭로가 그를 죽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폭로를 하지 않았더라도 산다는 보장은 없지만. 나는 기사를 읽어보았다.

    ‘...경제전문 신문지인 제일경제 강주혁 기자가 주가조작을 폭로하는 유서를 쓰고 본인의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평소였다면

    ‘그렇게 갔구나.’

    하고 생각하고 말았을텐데. 이번에는

    ‘수면제를 먹이고 번개탄을 피운건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는 기사를 더 읽어 내려가 보았다.

    ‘...유서에 따르면 본인이 주가조작 팀의 브레인이었으며 어떤 사업을 대상으로 주가조작을 할지, 어떻게 뉴스를 내보내고 자금을 운용할지에 대해...’

    나는 스크롤을 더 내려 보았다. 그의 죽음은 아쉽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윗선이다. 나는 이름을 찾았다. 주가조작의 핵심이 되는 돈 줄. 나는 곧 익숙한 이름을 하나 발견했다.

    ‘...이원준 대원일보 전무, 세리인베스트먼트 박수영 사장과 모의해 비상건설 주식을 매집했으며...’

    이원준 대원일보 전무. 그것을 본 나는 생각했다.

    ‘역시... 이원재가 좋아했던 이유가... 이거였나.’

    아까 그와 통화했을 때, 내게 생각나는 시나리오 딱 하나였다. 그의 형인 이원준 대원일보 전무. 잘은 모르지만, 이아영이 자신의 원수를 지목할 때, 이원재가 아닌 이원준을 지목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원재보다는 이원준이, 이 주가조작 세력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원재는 이야기를 주워듣고 10억을 투자했다. 하지만 세력의 몸통인 이원준은. 100억가까이, 어쩌면 그 이상을 투자했을 수도 있다.

    ‘100억원 이상 날리고 주가조작으로 걸린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아마 대원그룹 승계과정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셋째 이원재에게 돌아갈 몫이 훨씬 많아진다. 거기서 지분이 높아진다면, 10억은 매우 작은 돈이 된다.

    ‘친형이 잡혀갈 거라 알고서 좋아했던 것이군. 역시 돈 많은 집 형제들끼리 친한 경우 별로 없다더니...’

    나는 이어지는 이름을 보았다.

    ‘세리인베스트먼트? 이건 뭐야?’

    나는 포털창에 그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지금 보니 우리 회사 근처에 있다. 강남에 위치한 한 투자회사. 그런데.

    ‘세리인베스트먼트 자본금 50억.’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만 봐도 대충 감이 잡힌다.

    ‘이건 도마뱀 꼬리다.’

    50억이라니. 내가 본 것만 봐도 500억 이상 돈이 옮겨갔는데. 나는 다시 기사 쪽으로 돌아와 보았다. 유서에는 탁준기 이사. 혹은 그 정도 거물은 전혀 올라와 있지 않다.

    ‘유서를 조작...? 아니면...?’

    지금 소설을 써봐야 남는 건 없다. 나는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았다.

    ‘...경찰은 그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나는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기가 찬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할 사람이라면 아예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확실히 조작된 상황이다. 어쩌면 조사를 한 경찰까지도. 나는 문득

    ‘저는 저런 천한 것들이랑은 영...’

    나는 비열한 웃음을 짓던 탁준기 이사를 떠올렸다. 이번 사건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죽은 강주혁 기자에게도, 이원재 이사에게도. 나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8시 45분. 두 번째 미래뉴스가 오기 5분 전이다.

    ‘...이 녀석... 지금은 걸리지 않았다고 해도... 미래에도 그럴지 한 번 보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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