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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 뒤-101화 (101/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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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 사냥(6)

    나는 전화기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강주혁 기자가 뭔가 발설한다면, 그 위에 있는 진짜 흑막의 약점을 잡을 수도 있다. 강주혁 기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저 그게... 저... 근데 사장님”

    공포심 때문일까. 조금 정신이 나간 것 같다. 나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저... 한번 직접 뵀으면 좋겠습니다.”

    “직접요?”

    “네.”

    “뭐 좋지요. 안 그래도 식사 대접 한번 해드리려고 했는데...”

    “어디... 사람 많은 곳... 저 강남 사신다고 하셨지요?”

    “네 저희 집 강남역 근처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렇군요. 그러시군요. 강남역이라면 사람이 많지요. 잘됐군요... 잘됐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직접 뵙고 이야기하지요.”

    “...그러시지요.”

    통화를 마친 뒤 나는 잠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흥 악마도 지옥에 끌려가는 건 두려운 모양이로군.’

    하지만, 나라고 한들 그를 도와줄 방법은 딱히 없다. 이미 비리는 까발려졌고, 비상건설에는 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 전국의 투자자들이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달려들 판이다. 비상건설은 하한가 이후에도 한동안 주가가 하락할 수 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하락 베팅을 한 진양개발에는 기관투자자, 외국인투자자들 뿐만 아니라 달콤한 냄새를 맡고 개미들이 엄청나게 달려들게 뻔했다. 이럴 때는 개미들이 더 무섭다. 그들은 그야말로 비이성적으로, 거품이 껴서 터지기 직전까지 주식을 사재끼기 때문이다.

    ‘손실은 확정이야. 이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내가 그를 도와줄 방법은... 없어’

    물론 내가 내 사비를 들여서 반대쪽 손실을 보전해주면 봐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론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 돈 있으면 차라리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에게 후원을 하고 말겠다. 그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고 해도, 되돌릴 수는 없다. 그 역시 그걸 알 것이다. 제 정신이라면 말이다.

    ‘지금은 목소리 들어보니 정신이 나가서, 나한테 전화를 건 것 같은데... 의미는 없지. 그가 그나마 살 수 있는 길은 자수해서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 정도?’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교도소에 들어가 있으면 최소한 목숨 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드라마에서 보면, 교도소 들어가도 다른 입소자한테 죽고 그렇긴 하던데... 뭐 우리나라 교도소는 그 정도는 아니겠지. 다음번에 만나게 되면... 그런 식으로 설득을 해봐야겠군. 경찰에 자수해서 과거 주가를 조작했던 일들을 모두 고백하고 윗선. 돈 주인들 정체를 까발리고 죗값을 치르라고. 그러면 최소한 야산에 파묻히거나 자살 당하지는 않겠지.’

    그렇게 되면, 이아영의 부모님도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 역시 부모님 때문에 생긴 우울감을 한결 벗어낼 지도 모르겠다.

    ‘그 뉴스가 그녀에게는 어떤 꽃보다 좋은 선물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

    “주성원 시장이 직접 이번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나는 소파에 누워 턱을 괸 채로 뉴스를 보았다. 결국 이 사업자 선정 비리 뉴스는 9시 뉴스까지 탔다. 아무래도 정계의 거물이다 보니, 포커스는 뇌물을 건넨 쪽보다 비상건설과 정기웅 사장보다, 뇌물을 받은 주성원 시장에게 맞춰져 있었다. 정확히는 주성원 시장의 부하였지만. 뉴스에서는

    “야권에서는 주성원 시장의 책임론을 강하게 성토했습니다.”

    정치인의 반응과

    “주성원 시장은 서울시의 장으로서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야...”

    “이번 사건에 대해 시민들은 다소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반응을 보도했다.

    “아무래도 시장도 책임이 있다고 봐야할 것 같고요.”

    “서울시 공무원이 몇 명인데 다른 사람 일까지는 다 알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스스로 밝히고 나오신 게 오히려 믿음이 가는 거 같아요.”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역시 그렇게 되는 군.’

    먼저 치고 나온 주성원시장의 행보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모컨을 찾았다. 내가 볼 뉴스는 봤으니까. 그런데

    “이어지는 뉴스입니다. 구도심재개발 청탁비리 사건에 비상건설 주식에, 주가조작세력이 개입했다는 폭로가 나왔습니다. 전국진 기자입니다.”

    그런 뉴스가 나왔다.

    ‘...뭐라고?’

    나는 그걸 지켜보았다. 뉴스에서는 음성변조가 된 사람의 목소리와,

    “어차피... 비상건설이 될 거다. 반년 전부터 매집을 해서 개미들에게 떠넘기고 가자”

    기자의 목소리가 번갈아 이어진다.

    “그걸 반년 전부터 아셨다고요?”

    “네. 네. 바... 반년 전부터.”

    그런데 그 음성변조가 된 목소리가 왠지 익숙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보자는 구체적인 작전 일정과, 방법을 그대로 폭로했습니다.”

    “다... 전부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어요. 공무원들이랑 이야기가 다 되었다. 예비자 선정... 경쟁자들도 섭외해서 들러리로 세우고. 그다음 비상건설을 선택하는 걸로. 그래서 주가를 두 배를 튀긴 다음 나오자. 그렇게.”

    ‘...이 사람... 강주혁 기자?’

    음성변조를 했음에도 아까 통화를 했던 강주혁 기자가 오버랩 된다.

    “그는 이번 비리사건이 밝혀지면서 작전 역시 물거품으로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원래 상한가... 상한가에 오늘 갔어야 됐는데, 하한가에 가버려서 망했다. 누가 책임질 거냐. 누구냐...”

    목소리 더듬고, 같은 말을 두 번 씩 반복하는 게 딱 그인 것 같다.

    ‘언론에 폭로를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건가?’

    어쩌면 이게 더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번 고영식품 사건을 보면, 공권력 역시 시민들을 지켜주지는 않았다. 차라리 이렇게 문제를 공론화 시켜버리면, 흑막 역시 손을 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기자였으니, 이쪽이 더 쉽고 편했을 지도...’

    “비리사건에 더해 주가조작 까지. 비상건설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BKS뉴스 전국진입니다.”

    나는 눈을 살짝 뜬 채로 그 뉴스를 모두 보았다. 뉴스가 끝날 때즈음

    ‘위이잉’

    휴대폰이 울렸다. 서 비서다. 나는 그걸 받아보았다.

    “응 왜.”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서 비서는 살짝 호들갑을 떨었다.

    “왜?”

    “검찰 쪽에서... 저희 회사도 주가조작 관련해서 조사를 하겠답니다.”

    “아...”

    생각해보니 우리 회사도 껴 있긴 하다. 우리 회사도 비상건설을 매매하긴 했었다. 작전세력과는 완전 반대로 움직이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알았어. 그래서 언제 오신대? 검찰 분들.”

    “내일 당장 오십답니다.”

    “그래 그럼 내일 출근해서 보자.”

    내가 침착하게 말하자, 서 비서도 목소리의 높이가 조금 줄어든다.

    “...네 사장님. 근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우리 회사... 오히려 손실 볼 뻔했는데 뭐.”

    우리 회사는 깨끗하다. 나는 이 시나리오까지 이미 예상을 해놓았었으니까. 쥐고 있던 비상개발 주식도 급등 전에 다 팔았다. 급등이 있을 거란 것을 몰랐던 것처럼.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

    중년의 남자가 내게 묻는다.

    “그래서, 한상훈 대표님은 비상건설이 선정되지 않으리라 보시고 공매도를 명령하셨다고요?”

    나를 보는 눈빛이 번쩍인다.

    ‘검사님이라 그런가 눈빛이 대단하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네. 제가 봤을 땐 비상건설보다는 진양개발이나 한빛시공 쪽이 더 유력하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비상건설 주가가 기대감가지고 50%나 오른 건 너무 과하다. 이건 분명 거품이다. 싶어서 하락 베팅... 공매도를 지시했었습니다.”

    그는 오늘도 –30% 하한가에 걸려 있는 비상건설 주가를 보며 말했다.

    “그러셨군요. 오늘 이제 많이 벌으셨겠네요?”

    따지고 보면 최종 승자는 우리긴 하다.

    “네 하지만... 어제 아침까지도 손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비리 뉴스 터지고 그래서 운 좋게 벌게 된 것 뿐이죠.”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있는 장 부사장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저는 그래서 여기 장 부사장님하고 주말 내내 이거 가지고 토의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이거 손실 커지는데 어떻게 할까. 하고요. 그렇지요? 부사장님?”

    장 부사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정말 손실이 날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사업자 선정 발표 나고 이거 큰일났다 싶어서. 사장님하고 통화해서 어떻게 손실을 줄일 것인지 상의 했습니다. 찾아보시면 통화기록 있으실 겁니다. 그거... 어떻게 통화내용 들어보셔도 좋고요.”

    우리는 분명 주말에, 그런 통화를 주고받았었다.

    ‘공매도 이거 어떻게 할까요. 사장님?’

    ‘괜찮습니다. 투자하다보면 잃을 때도 있는 법이지요.’

    도박판에서 잃은 사람이 기술 썼다고 믿기는 어렵다. 검사도 그 점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검찰의 조사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잔뜩 서류를 들고 와서 말했다.

    “공매도 팀 분들 이야기 해봤는데, 월요일 낮까지도 환매수하려고 대기를 타고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월요일 날 그 뉴스 나오고 더 공매도 하려고 했는데, 그건 너무 빨리 하한가에 가버려서 못하고...”

    보고를 받은 중년의 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군요. 손실을 볼 뻔 했는데 폭로가 나와서 운 좋게 돈을 벌으셨다...”

    그 폭로는 내가 한 것이지만. 그 과정은 누구도 알 수 없게 손을 써놓았다. 애초에 거대 비리를 폭로한 일이라 신변보호 상 찾지도 않을 것이다. 신변보호를 해주는 사람은 차기 대권 유력 주자인 서울 시장 주성원이고.

    “네 수고하세요.”

    이 정도면 깔끔할 것 같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그들이 회사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때, 장 부사장이 그들을 쫒아나간다. 나는 잠시 그를 지켜보았다.

    ‘왜 저러시지?’

    그러길 10분여, 그는 돌아와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 회사는 별일 없을 것 같습니다. 검찰 쪽에서도 저희 보다는 주식을 사들인 쪽을 추적하는데 공력을 쏟기로 했답니다.”

    검사님을 쫒아가서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주워 들어 오셨나보다.

    “그래요?”

    “네. 이번에 주가 조작한 세력이 꽤나 큰 세력인 것 같다고... 검사님들도 그 쪽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더군요.”

    잘 됐다. 사실 뉴스메이커 강주혁 기자는 장기말에 지나지 않는다. 탁준기, 이원준, 이원재 정도는 끄집어내야, 이번 사건이 제대로 풀렸다고 봐야 한다. 나는 죄수복을 입은 그 세 사람을 떠올렸다. 가든 엔비에서 샴페인 잔을 든 것과 꽤나 대비되는 모습이다.

    ‘흥 죄값을 치러야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다.

    ‘위이잉~’

    휴대폰이 한 번 더 울린다. 들어보니, 전화를 건 사람은 대원일보 이원재 이사. 카이지다.

    ‘이거 참. 인기인이로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휴대폰을 들고 사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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