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00화 (100/198)

# 100

거미 사냥(5)

나는 올라온 기사를 제목을 보고 다소 놀랐다. 기사의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는 것은, 아마 비리 혐의를 가진 당사자들 빼고, 내가 제일 먼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놀라운 것은, 서울시 행정부의 장인 주성원 시장이 직접, 비리를 폭로했다는 것이었다.

‘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나는 기사를 클릭해서 보려다가,

‘아 참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먼저 HTS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상건설은 몇 초 만에 하한가에 가 있었지만, 반대로 진양개발은 하한가가 풀렸음에도 –14%에서 어물쩡어물쩡 거리고 있었다. 비상건설이 사업자선정에서 떨어지면 유력한 곳은 진양개발이 된다. 단순한 계산이지만, 아직 시장 참여자들은 그걸 모르거나, 알아도 돈이 없었다.

‘돈이라면 내가 있지.’

나는 바로 진양개발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이건 호가창을 볼 필요가 없다. 시장가로

‘10억’

‘20억’

‘15억’

‘30억’

바로바로 돈을 쏘아 부었다. 주가는 이내 올라서 내가 매수 주문을 넣기 시작한지 30초 만에 상승 반전되었다. 슬슬 개미가 달라붙는다. 나는

‘120억’

바로 상한가에 매수를 걸어버렸다. 이걸로 진양건설의 가격변동은 끝이다. 뉴스를 뒤늦게 접한 사람들에게 기회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내 120억에 대항할 사람도 없긴 하지만. 이걸로 일단, 길가에 떨어져 있는 돈은 모두 주웠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까 보던 기사로 말이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궁금했다. 내가 본 미래 기사와 어떻게 다른지 말이다. 한달 전 내가 본 미래 뉴스는 이것이었다.

‘정기웅 비상건설 사장 구속영장 발부. 구도심 재개발 사업 차질 빚나?’

인물 검색으로 ‘정기웅’을 검색해보았는데, 12달 뒤 뉴스에서 떡하니 이게 나와 버렸다. 기사의 내용은 2020년. 그러니까 내년 1월. 어떻게 뚫었는지 모르지만, 비상건설 정기웅 사장이 서울시 공무원에게 뇌물을 먹이고 구도심 재개발 사업을 따냈다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토목 비리인데. 이미 삽을 푼 상태에서 걸린 지라 중단은 못하고 CEO만 구속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대로라면, 비상건설에 들어온 작전세력은 본인들이 쓴 시나리오대로, 돈을 벌고 나갔을 것이다. 비리가 밝혀지는 건 거의 1년 뒤지만, 비정상적으로 오른 주식을 처분하는 데는 한 달이면 되니까. 그래서 나는 이 내용을 폭로하는 기간을 9개월 땡기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그 기사를 긁어서, 외우고, 폐기한 다음, 재구성했다. 아예 새 기사처럼. 그런 다음, 그 자료를 ‘Q’사인만 보내면 서울시 공무원 전체에 퍼지도록 준비를 해놓았다. 익명의 투고였지만 비리에 연루된 인물이며, 금품 수수 금액이며, 수수 방법까지. 워낙에 내용이 상세했기 때문에 서울시 입장에서도 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토대로 조사를 하면.

‘자네 작년 12월 19일 경에 여의도 칼튼 호텔에서 정기웅 사장한테 청탁성 금괴 3억원치 받은 사실이 있나?’

부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이것이다.

‘주성원 시장. 서울시 구도심 재개발 사업. 사업자 선정에서 비리 있었다. 폭로.’

여기서 내가 살짝 놀란 것은, 주성원 시장 본인이 폭로의 주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수족이 비리를 저지른 사건이라... 밝혀지면 본인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나는 기사를 읽어보았다. 중요한 내용만 추려서.

‘...선정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고, 관련자에게 사실 확인을 한 뒤, 바로 언론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입찰심사 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것은 아니지만, 저 또한 책임을 통감하며...’

기사 내용을 보니, 그는 정치적인 타격을 입는다 하더라도, 당당하게 밝히는 것을 택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잘 한 것 같다. 이렇게 솔직하게 나와 버리면,

‘결국 시장이 가장 윗대가린데, 시장도 돈 받아먹은 거 아니야?’

하고 의심할 사람들도 주춤 할 수밖에 없다. 사업자가 선정 된지 3일 만에 나와버려서, 딱히 세금이 샌 적도 없다. 어쩌면 이번 것도, 지난 번 가짜 미투 사건처럼. 전화위복이 될 지도 모른다. 정치인의 스토리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늘 1+1=2, ABC다음 D처럼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니니까.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정치적인 센스가 있는 사람이로군.’

어쩌면, 진짜로, 차기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하고는 연을 더 맺어놓는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장 부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

“네 부사장님”

“급하게 공매도 팀 가동 시켰는데... 미처 매도를 못했습니다. 너무 빨리 하한가에 직행해버려서요.”

나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우리 매도 물량 여전히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네 그렇지요.”

우리는 공매도한 주식은 여전히 쥐고 있었다. 욕심쟁이들이 두 번의 상한가에도 팔아주질 않아서. 하지만 이제는 팔지 못해서 안달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거 하한가... 앞으로 두 번... 아니... 경찰 조사결과 조금 잘못 나오면... 어쩌면 상장폐지까지 갈지도 모를 사안 같군요.”

“그렇습니다.”

비상건설은 누르고, 진양개발은 올린다. 이제 비상건설에 달라붙은 세력은 우리가 전에 겪었던 상황을 고대로 겪게 된다. 잔뜩 매수해놓은 비상건설 주식은 하한가에 달려서 팔수가 없고, 공매도를 신나게 쳐 놓은 진양개발은 상한가에 가서 되살 수가 없다. 지옥으로 가는 속도가 2배. 나는 장 부사장에게 확실히 말해놓았다.

“공매도... 남은 물량 모두 쏟아 부으세요. 아시겠지요?”

지금은 사자가 가젤의 목을 물은 격이다. 장 부사장은 절대 주가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호가 위에 매물을 쌓아놓을 것이다. 작전 세력의 숨통이 완전히 끊길 때까지. 절대 숨도 쉬지 못하도록 말이다. 며칠 전만해도 시무룩해 있던 장부사장은 활기가 도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사장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장 부사장과의 통화를 마친 다음, 나는 잠시 몇 명의 얼굴을 떠올렸다.

‘마스터T 탁준기, 뉴스메이커 강준혁, 카이지 이원재. 그리고 이원재랑 비슷하게 생긴 그의 형.’

지금 쯤 아마 얼굴색이 비상건설 호가창마냥 파래 져 있을 것이다.

‘흥 여태까지 남들 지옥 보내면서 얻은 돈. 한번 신나게 토해봐라.’

먹은 건 당연히 다 토해야하고, 위액까지 짜서 토해야할 판이다. 지금 나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투자자들, 외국인들도 공매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을 테니. 나는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될 수만 있다면, 전화를 걸어서 한 번 놀려주고 싶다.

‘하하. 이제 누가 손실이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전화를 못 걸 것도 없다. 특히 강주혁 기자. 그와 나는 표면적으로는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친한 친구. 정보제공자와 투자자. 심지어

‘진양개발에 투자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조언도 맞아떨어졌다.

‘흠 그럼 전화나 한번 해볼까’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그에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름이 아니라,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 그와 내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려보면, 당연히 나는 그에게 감사를 해야 한다. 한 번 위기가 있었지만, 역전만루홈런을 치게 되었으니까.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통화 연결음이 계속해서 이어 진다 20초 정도.

‘역시 안 받나?’

안 받는 지 못 받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저쪽 진영은 난리가 나 있을 것이 뻔하다. 나는 통화를 걸던 것을 멈추고, 그냥 문자나 하나 남겨두었다.

‘강 기자님. 오늘 뉴스 보셨습니까? 참 운이 좋네요. 삼일 전만 해도 크게 손실 볼 줄 알았는데, 반대로 큰 수익 나게 생겼습니다. 언제 한 번 연락 하시지요. 제가 크게 한 턱 쏘겠습니다.’

나는 그대로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문자를 보내고 나니 문득 생각이 든다.

‘아니 그나저나... 내가 밥을 산다고 먹을 수나 있을까?’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강주혁 기자는 돈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잃을지도 모른다. 내가 비상건설을 매매해본 느낌으로는, 여기 들어온 작전세력은 최소 300억. 진양개발 공매도까지 생각하면 500억 가까이 자본을 굴리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이대로 가다간, 반의 반토막도 못 건지게 된다. 그 돈 아마, 탁준기. 혹은 그에 준하는 거물의 돈일 것이다.

‘300억, 400억씩 날리고서 제정신일 리가 없지.’

특히 방금 전까지 300억 400억 벌 줄 알았는데, 그만큼 손실을 보게 생겼으니, 그 충격은 더할 것이다. 700억, 800억. 누군가 책임을 져야만 한다면, 아마 뉴스메이킹을 한 그에게 화살이 돌아갈지도 모른다.

‘어디서 이런 정보가 샌 거지? 자네 어떻게 일을 처리한 거야?’

어쩌면

‘너 설마? 반대로 베팅한 거냐? 내 돈 노리고?’

그렇게까지 될지도 모른다.

‘흠 그렇게 되면...’

이 사람들은 사람 목숨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아마, 대한민국의 수많은 야산 중 한 군데에 쥐도 새도 모르게 묻히거나, 아니면 ‘주식투자 실패로 인한 인생 비관’으로 유서를 쓰고 목을 메달지도 모른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칼 들고 서 있겠지만. 하지만 그런다 한들 어쩌겠는가. 자업자득인 것을.

그의 조작 때문에, 이미 다른 사람도 목을 매단 적이 있다. 고영식품 이강산 사장. 이아영의 아버지. 그 뿐만 아니라, 전국에 주식 투자에 실패해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거 생각하면,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악마가 지옥에 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니까. 그런데 그 때였다.

‘위이잉’

내 휴대폰에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강주혁.

‘지금 봤나? 내 문자를?’

나는 잠시 휴대폰을 내려 보며 생각했다. 뭐라고 첫 마디를 띄워야할지 말이다.

‘아이고 강 기자님.’

너스레를 떨까. 아니면

‘감사합니다. 강 기자님’

바로 본론으로 들어 가버릴까. 나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그걸 귀에 가져갔다. 그런데, 예상외로,

“사장님. 사장님 살려주십시오.”

그에게서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뭐야? 이렇게 급하게?’

대충 사정은 짐작이 간다. 하지만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말했다.

“아니... 왜 그러세요? 기자님?”

내 말에 그는 그답지 않게 횡설수설을 하며 말했다.

“아니 저... 그게 혹시... 저 이번 거, 이번 발표 말입니다.”

“사업자 비리 사건 말씀이시죠?”

“네. 그 혹시 사장님이... 기획하신 거 아닌가요?”

“네에?”

그는 뉴스메이커다운 추리력을 발휘했다.

“아니... 갑자기 비상개발에 공매도를 치시지 않나... 그러셔서요. 이번 사건 따지고 보면 결국 최종 승자는 사장님이시잖아요.”

하지만 증거는 없다.

“아니요. 저는 단지... 기자님 말씀 듣고... 진양개발이 유력해보여서... 그렇게 했습니다만...”

그는 잠시 숨을 삼켰다가, 내게 말했다.

“정말이십니까? 제 말만 듣고 200억가까이 공매도를 준비하셨다고요?”

나는 태연히 대답했다.

“네. 저도 진양개발이 유력해보였거든요. 비상건설 쪽에 비리가 있었다는 것 저도 오늘 방금 알았습니다. 아시잖아요. 우리가 가진 회사도 뭐, 게임회사, 엔터테인먼트, 개인방송국 노는 쪽 밖에 없는 거.”

“아... 네 그러시군요... 그러셨군요...”

그는 이빨을 딱딱 부딪이며 말했다. 겁에 질린 모습이다.

‘역시... 이게 틀어졌으니... 본인이 잘 못 될거란 걸 알고 있군.’

나는 이 때 생각했다.

‘이 사람이 죽고 끝?’

그건 조금 좋지 못한 엔딩 같다. 이 사건의 본체는 더 깊숙한 곳에 있다. 대원일보, 그리고 수연그룹. 나는 휴대폰에 ‘녹음’버튼을 누른 다음. 그에게 말했다.

“저... 왜 그러시는데요? 솔직하게 말씀해보세요. 기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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