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99화 (99/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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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 사냥(4)

    이어진 금요일, 구도심 재개발 사업 발표 하루 전. 마지막 거래일이다. 나는 오늘도 단지 달력 앱을 보면서 내 돈 챙기기에 신경을 썼다. 비상건설, 진양개발 두 주식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단지 슬쩍슬쩍 어떻게 흘러나가 움직임만을 지켜보았을 뿐이다.

    ‘+6% +2% -4% -7% -2% +3%’

    두 주식 모두 위로 갔다가, 아래로 갔다가 격렬하게 흔들린다. 나는 와중에 한두 번 비상건설 호가창을 보았다. 호가창을 보면, 매 한 틱 위마다 걸리는 매물이 생긴다. 저것이 바로 공매도 매물이다. 호가창 바로 위에 쌓여지는 매도. 다 우리 것은 아니겠지만 일정 부분은 장 부사장의 공매도 팀이 올려놓는 공매도일 것이다.

    ‘음... 잘 하고 있군.’

    나는 이번에는 진양개발 쪽에 가보았다. 그런데, 진양개발에도 공매도 수량이 꽤 쌓여 있다.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진양개발 하락에 베팅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비상건설이 선정될 것이란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렇게 하겠지.’

    지금은 두 종목 모두 바닥권에서 60%가까이 올라와 있는 상태다. 만약 여기서 선정이 되지 않는 다면 하한가 두 번은 각오해야하는 말이다. 지금 베팅하는 사람이 있다면 꽤나 담력이 쌘 사람이다. 아니면, 미리 결과를 알고 있거나. 장 마감 시간.

    ‘비상건설 –7%’

    ‘진양개발 –9%’

    두 종목은 모두 조정을 받은 상태로 장을 마감했다. 주말 발표결과에 따라 혹시 지옥에 갈지도 모른단 불안감에 개미들이 도망갔기 때문인 것 같다. 양쪽 다 공매도 물량이 상당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걸로 베팅은 끝났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진행하는 구도심개발사업 첫 번째 사업자 발표는 내일 오후 3시다. 거기서 나오는 회사 이름에 따라 월요일 두 종목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

    나는 손에 팝콘을 든 채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움직이는 나무에 발이 붙잡힌 이완 멕그리거가 말한다.

    “나는 내 죽음을 봤어. 나는 이렇게 죽지 않아.”

    그러자 나무가 그를 딱 놓아 준다. 스크린에 나오는 영화는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 중 하나. 여태까지 열 번 가까이 봤음에도, 다시 또 보게 된다.

    ‘역시 명작이라니까...’

    나는 영화에 푹 빠져

    “때로는 거짓된 환상이 진실보다 좋을 때가 있단다. 특히 그것이 사랑으로 만들어졌을 때에는”

    엔딩이 나올 때까지 그걸 다 보았다. 볼 때마다 감동이다.

    ‘후... 역시 팀버튼 천재야.’

    나는 영화감상을 마친 뒤, 내 개인 영화관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와 보니

    ‘우우웅~’

    내 휴대폰이 울린다. 나는 그걸 들어보았다. 서 비서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왜 무슨 일인데?

    “그거 사업자 선정 있지 않습니까? 그거 비상개발로 발표 났단 말입니다.”

    나는 다소 놀란 척 그에게 말했다.

    “아... 그래?”

    나는 슬쩍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 43분이다.

    “네! 그래서 장 부사장님이 몇 번이나 전화 드렸는데. 전화를 안 받으신다고.”

    “아아... 그래. 그거 영화 보는데 집중하려고 꺼놨었어.”

    “아니 지금 저희 공매도 들어간 금액만 100억 가까이 되는데...”

    “괜찮아. 주식하는데 손실 보는 거야 병가지상사지 뭐. 지난달만 해도 카이게임즈 시총 200억은 올랐을걸.”

    “아니... 그래도...”

    “어쨌든 내가 장 부사장님에게는 다시 전화할게.”

    “...네 사장님.”

    통화를 마친 뒤, 나는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내가 영화를 보는 사이 부재중 전화가 네 통이나 와 있다.

    ‘장 부사장’

    ‘장 부사장’

    ‘장 부사장’

    ‘서 비서’

    ‘아이고 장 부사장님이 조금 놀라셨나보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 띠...’

    “사장님!”

    그는 이번에는 딱 통화 연결음이 두 번 울리기 전에 내 전화를 받았다. 그만큼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아 네. 서 비서에게 들었습니다. 사업자 선정 비상개발로 났다고요?”

    “...네. 이거 저희 어떻게 할까요? 저희 공매도 친 것 환매수 해야 되는데...”

    남의 주식을 빌려서 공매도를 쳤으면 다시 주식을 매수해서 그걸 갚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다시 비상개발 주식을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일부터 상한가 행진. 소위 점상을 할 게 유력하기 때문이다.

    “이거 다음 주 월요일... 아니 화요일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상한가에 직행해서 다시 살 수가 없을 지도 몰라요.”

    이런 대 호재가 떴을 때는 두 배, 세 배까지도 오른다. 여기에 대놓고 작전을 치려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평소 보다 더 오를 게 뻔하다. 더 올랐다가 뻥 하고 개미들한테 물량을 넘긴 뒤 터트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확실히, 세력이 주가를 올려 준다.

    자기들도 비싸게 팔고 싶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더 점상을 만든다. 다른 사람이 주식을 사지 못하도록. 자기들만 이익을 독과점 하려고. 개미가 1억원 사려고 해도 살 수가 없게 만드는 게 세력들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무려 100억원어치 공매도를 쳐놨다. 이건 한참 주가가 올라서야 울면서 겨자를 먹으며 사야한다는 말이다.

    ‘별 다른 변수가 없다면.’

    나는 장 부사장을 달래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요. 베팅 했는데 지는 거야... 투자자들에게 일상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장 부사장은 내 결정이 틀렸다는 것 자체에 조금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여태 사는 족족 오르고, 예견하는 족족 맞춰서 나를 대단히 신뢰를 하고 있었을 텐데. 그 점은 나도 아쉽다.

    ‘공매도까지 칠 필요는 없었나?’

    하지만 나중을 생각해보면, 이것도 필요한 과정이다. 나는 장 부사장에게 말했다.

    “장수가 매번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이번 실패는 툭툭 털어버리고 다음 투자에 집중합시다.”

    장 부사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네 사장님. 그런데 공매도 친 수량은... ”

    “적당히 봐서 환매수하세요. 손실 100억... 넘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습니까? 감내해야지요.”

    공매도는 치는 사람도 꽤나 부담이 되는 투자다. 만약애 100만원짜리 주식을 샀다가 최악의 경우 상장폐지를 당하면 -100만원 잃고 끝이지만, 100만원짜리 주식을 공매도 했다가 그게 300원, 400원이 되면 –200만원, -300만원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상황이 그렇다 대호재가 났다고 해서 2일, 3일 점상을 보내버리면 바로 2배가까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장 부사장은 마치 자신이 손실을 본 것처럼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역시 충성스럽군.’

    참 그 점이 마음에 든다. 회사 돈도 자기 돈처럼 생각하는 것이.

    ‘이번 일 끝나면 연봉을 더 올려드려야겠어.’

    지금도 업계 최정상급 연봉을 받고 있지만, 여기서 조금 더 올려드려야 될 것 같다.

    “네 그러면 그렇게 아시고, 너무 심려치 마세요.”

    “네 사장님.”

    통화를 마친 후, 나는

    “후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놀란 척, 슬픈 척, 나름 노력했는데 얼마나 그렇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 역시 비상건설이 선정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까.

    ‘역시 거짓말은 어렵다니까... 참... 그 기자 놈은 참 잘하던데’

    나는 휴대폰 통화기록을 넘겨보았다. 이틀 전, 강주혁 기자와 통화를 주고받았던 기록이 남아 있다. 뉴스메이커. 이 사람은

    ‘탁준기 이사님과는 잘 모르는데...’

    얼굴하나 변하지 않고도 거짓말을 참 잘했다. 나는 그에 대해서 생각했따.

    ‘지금 아주 신나 있으시겠구만.’

    아마 성대하게 파티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작전은 작전대로 먹혔지, 거기 나라는 대어가 와서 비상개발은 공매도를 쳐서 물량을 대주고, 진양개발은 사서(실제로 사지는 않지만 그렇게 내가 말해놓았다.)그들 공매도를 받아주었으니까.

    여기까지는 그들 생각대로다. 그들이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하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들이 짜놓은 시나리오도, 내 시나리오 일부분일 뿐이란 것을.

    ‘그럼 언제 방아쇠를 당기냐인데...’

    나는 소파에 앉아 잠시 생각했다. 어느 때가 가장 극적일지, 어느 때가 적을 파괴하는데 가장 효과적일지 말이다.

    *

    돌아온 월요일. 장이 열림과 동시에, 비상건설은 +30%. 상한가에 달려갔다. 반대로 진양개발은 –30%. 하한가에 꽂혀서 나오질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평소처럼 내가 하던 대로 매매를 하면서 그걸 지켜보았다. 내가 걱정되는 것은, 비상건설에 들어와 있는 세력이 여기서 먹고 나가는 것이었다. 지난 번 강주혁 기자가 말한 대로

    ‘주식에 100%는 없으니까’

    오늘 점상이지만 여기서 팔고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건 불가능해.’

    이건 포 카드를 가지고 레이스를 하지 않는다거나, 장땡을 쥐고 콜을 받는 다거나, 굳은 패가 바닥에 깔려있는데 고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거래량을 보면 거의 거래가 되지 않고 있다. 세력도, 운 좋은 개미도, 지금 가격에서는 절대 팔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좋아 그러면... 오늘 큐 사인 내고... 내일 구경해볼까?’

    생각한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Q’

    딱 한 글자만.

    *

    화요일. 오늘도 똑같다. 비상건설은 +30%. 진양개발은 –30%.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비상건설은 거의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비해, 진양개발은 조금씩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한가 두 번 맞았으니, 이제 가격이 제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진양개발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내 매수에 하한가에 가 있던 진양개발은 살짝살짝 들썩인다.

    ‘이 가격에라도 사주다니 감사합니다.’

    베팅에 실패한 개미들은 내 매수에 바로바로 물량을 내놓았다. 그들에게 결과 발표가 난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그리고 오늘까지 4일간은 정말 지옥 같은 나날들이었을 것이다. 뭐 어쩔 수 없다. 확실하지 않은 승부에 돈을 걸었으니. 나는 그러면서, 비상건설 주가를 보았다. 비상건설은 상한가에서 요지부동이다.

    ‘정말 끝까지 털어먹겠다 이거로군.’

    나는 슬쩍 시계를 보았다. 오전 9시 반. 이제 조금 있으면 쇼타임이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장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공매도 팀은 뭘하고 있습니까?”

    “아... 지금 지켜보고 있는데... 상한가에 가 있어서 살 수가 없어서 손을 놓고 있습니다. 내일이라도 상한가 풀리면...”

    “아아 그러지 말고, 아직 대차수량 남아 있죠?”

    “...네? 네”

    “다시 공매도 칠 준비 하라고 하세요.”

    “네에?”

    나는 이건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언론 쪽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얼핏 들었는데... 어쩌면 상황이 반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발표...”

    “자세한 사항은 말해드릴 수 가 없고요. 대신...”

    그런데 그 때였다. 잠시, 비상건설의 상한가가 풀렸다.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공매도 더 치라고 하세요.”

    장 부사장은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마 우리 공매도 팀은 오늘 얼마 공매도를 치지 못했을 것이다. 방금 전까지 상한가에 가 있던 비상건설 주가는 단 몇 초만에 수직 낙하하여, 하한가에 꽂혔기 때문이다.

    ‘이건 예상외인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보다 빠르다. 몇 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몇 초만에 꺼졌다는 건. 기사의 임팩트가 강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인터넷에 접속해보았다. 포털사이트 매일 맨 위에. 그런 기사가 올려져 있다.

    ‘주성원 시장. 서울시 구도심 재개발 사업. 사업자 선정에서 비리 있었다. 폭로.’

    나는 그걸 보며 입을 모았다.

    “오~ 시장님이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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