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98화 (98/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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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 사냥(3)

    나는 덤덤히 모니터를 지켜보았다. 모니터에 위에는 HTS가, HTS위에는

    ‘비상건설 –2%’

    ‘진양개발 +1%’

    두 종목의 가격이 띄워져 있다. 두 주식은 급격한 상승 이후 잠시 보합세를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HTS를 조작해서 두 종목의 최근 대차거래량을 찾아보았다. 대차거래란 주식이 없는 사람이,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먼저 빌려놓는 것으로, 공매도를 치기 위한 예비 과정이다. 아직 공매도는 하지 않았지만, 여차하면 때리겠다는 것. 총을 쏘기 전 장전을 해놓는 거라고 봐야 한다.

    ‘음...’

    두 종목 모두 똑같이, 대차거래량이 엄청나게 쌓여 있다. 마치 전쟁을 앞둔 군사기지처럼. 사업자 선정에 실패하는 순간, 공매도로 쏘아질 폭탄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악재가 터졌을 때 공매도를 맞게 되면 주가는 더더욱 하락할 수밖에 없다. 지옥불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에게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살벌하군.’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운다. 3주 뒤 벌어질 일이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보았다. 문자메세지를 찾아보면, 얼마 전 강주혁 기자가 보낸 문자메세지가 있다.

    ‘투자를 하시려면 진양개발 쪽으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 녀석... 내가 반대로 생각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않나?’

    ‘꾀 많은 조조’이야기가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조조가 후퇴를 하는데 퇴로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과, 피어오르지 않는 곳이 있다. 책사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은 적군이 밥을 해먹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피어오르지 않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조조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니다. 적들은 필시 내가 그걸 생각할거라고 예측했을 것이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은 연막이다. 피어오르지 않는 곳으로 가야한다.’

    그래서 조조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간다. 그런데, 예상외로, 적을 만나게 된다. 제갈량이

    ‘꾀 많은 조조는 한 번 꼬아서 생각할 것이다.’

    그의 생각을 예측해서 정직하게 병사 배치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뉴스메이커 강주혁 기자와의 만남 그리고, 인터뷰를 떠올렸다. 내내 분위기가 좋았다. 인사를 할 때도, 인터뷰를 할 때도, 헤어지고 나서 안부 인사를 할 때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아영이

    ‘이 사람이, 뉴스메이커에요.’

    라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를 진짜 단순한 기자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내 이름을 알릴 기사도 써준, 고마운 기자. 그 역시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정보는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라고 말이다. 그가 나를 ‘꾀 많은 조조’라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우리가 ‘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이 정보는... 정직하게 날아오는 비수... 아니 독을 품은 수라상이라고 해야겠지.’

    나는 시나리오를 써보았다. 어떻게 내부정보를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은 비상건설이 사업자 선정에 유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를 사지로, 진양개발로 보내려고 하고 있다.

    ‘좋아 그렇다면...’

    나는 가지고 있던 진양개발 주식을 슬슬 매도하기 시작했다.

    ‘매도, 매도... 그리고 매도’

    1%에서 놀던 진양개발은 내 매도세를 이기지 못하고 –1%, -2%, -3% 내려갔다. 워낙에 많은 양을 쥐고 있어서 내가 팔 때마다 이윤이 준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전면전은 3주 뒤 이야기다. 지금은 단지 애들 놀이일 뿐.

    ‘좋아... 본 편은 이제부터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

    나는 전화기를 들어서, 서 비서에게 말했다.

    “서 비서, 장 부사장님. 출장 돌아오시는 대로, 사장실로 불러.”

    “네 사장님.”

    얼마 후,

    ‘똑똑똑’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다.

    “들어오세요.”

    곧 장부사장이 들어와 고개를 숙인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 일전에 제가 준비해두었던 팀 있지요? 공매도 팀. 그거 꾸려졌습니까?”

    “네 가장 빠릿빠릿한 트레이더들로 준비해놓았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별말씀을... 그나저나 이제... 대차를 해야 할 차례인데... 어느 주식 하락에 베팅하시겠습니까?”

    “비상건설에 대차거래 신청해 놓으세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 하며 말한다.

    “비상건설... 말씀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비상건설 대차해 놓으세요. 최대한 땡길 수 있을 만큼”

    “...네... 그런데 사장님.”

    그는 평소 그답지 않게 내 말에 토를 달았다.

    “말씀하시지요.”

    “들려오는 풍문으로는 비상건설도 꽤 유력하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만약에 공매도를 쳤다가 비상건설이 사업자로 선정되면 저희 쪽 손실이 꽤나 커질 겁니다.”

    이해가 가는 우려다. 나는 그를 최대한 안심시키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대신 준비나 확실히 해주세요. 제가 큐 사인만 보내면 바로 작동할 수 있도록요.”

    장 부사장은 영 내 말이 탐탁치 앉아보였지만, 이내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장 부사장이 나간 뒤, 나는 다시 한 번 더 진양개발을 팔았다.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두 계좌에 있던 주식들은 증권사 이관을 통해서 모두 분산시켜 놓았다. 들어온 사람은 두 사람인데, 나가는 사람은 여덞 명이다. 누가 누군지 정체를 알 수 없도록 쓰는 분신술이다.

    ‘이걸 가지고... 내 움직임을 알지는 못하겠지... 아니 안다하더라도... 내 의중까지는 모를 거다...’

    *

    3주 뒤. 목요일. 구도심 재개발 사업 사업자 선정 발표를 이틀 앞둔 날. 나는 9시 땡하자마자 여느 때처럼 컴퓨터 앞에서, HTS를 켜놓고 일을 시작했다.

    ‘지금 사고... 일주일 뒤 매도...’

    지금 매매하는 주식은 비상건설도, 진양개발도 아니었다. 단지 달력 앱에 쓰여 있는 보물상자를 여는 식으로 매매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비상건설과 진양개발 주가를 눈에서 놓지는 않았다. 나는 일을 하면서도 때때로

    ‘비상건설 +2%’

    ‘진양개발 –3%’

    곁눈질로 두 종목이 왔다갔다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비상건설 –3%’

    ‘진양개발 +4%’

    두 종목은 완전히 널뛰기를 하듯 냉탕과 온탕을 반복해서 오가고 있다.

    ‘그럼 이제 슬슬 물 담가 볼까...’

    나는 오늘 매매를 마친 뒤, 두 주식으로 시선을 옮겼다.

    ‘비상건설 +5%’

    ‘진양개발 +4%’

    두 주식은 오전 10시 경 둘 다 플러스 권이 되었다. 하루 뒤면 둘 중 하나는 천국에 가고, 하나는 지옥에 가는데도, 겁이 없어 보인다.

    ‘비상건설 +9%’

    ‘진양개발 +5%’

    그런데 비상건설이 조금 더 치고 나간다.

    ‘세력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건가...?’

    그러건 말건 나는 상관이 없다. 거미들이 어떻게 진을 지던, 그 녀석들은 내 손아귀에 있다. 나는 일단 내가 가진 비상건설 물량을 쏟아내었다.

    ‘매도 매도 시장가 매도’

    내 매도세에 주가는 밀린다. +8%, +7%.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받아먹는 사람이 있다.

    ‘얼씨구?’

    100억에 달하는 거금인데도, 그걸 다 받아먹는다.

    ‘역시. 이곳에 앉아 있군.’

    100억을 쏟아냈는데도 +2%. 아직도 플러스권에서 놀고 있다. 단순한 개미가 받을 수 있는 양이 아니다. 이건 100% 세력이 받았다고 봐야한다. 비상건설이 선정될 것이라 확신하는. 100억원치 만큼이나 확신하는 세력이. 비상건설을 모두 처분한 나는 전화기를 들어서, 장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 띠리’

    통화대기음 두 번째에 그가 받는다.

    “네 사장님.”

    전보다 빠르다.

    ‘역시 긴장하고 계셨군.’

    그 역시 이틀 뒤 결착이라는 걸 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비상건설. 오늘 공매도 해서 시총의 0.5%만 채우세요. 가격은 물론 최대한 높은 가격에서. 아셨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던대로... 바로 공시 신청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그 명령을 내린 다음에는 다시 내 주식을 매매 하는데만 신경을 썼다.

    *

    오후 5시경 비상건설에는 한 가지 공시가 떴다.

    ‘공매도 내역 공고,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전체 주식의 0.51% 공매도 물량 보유 중’

    공매도 보유 공시. 전체 시가총액의 0.5% 이상 공매도를 쳤을 때 반드시 해야하는 공시다. 이제 전국의 투자자가 비상건설에 공매도를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스터T 탁준기 이사도, 뉴스메이커 강주혁 기자도. 그리고 일반 개미들도. 종목게시판에서는 난리가 났다.

    뭐야 이거 어떤 미친놈이 시총 0.5%씩이나 공매도를 치네

    인빅투스인베스트먼트? 이 회사는 뭐하는 회사야?

    어 여기... 조금 투자 잘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인데... 우리 좆 된 거 아닌가?

    맞아 카이게임즈 사서 대박낸 곳인데... 여기다가 공매도를 꽂았네... 불안하네요...

    개중에는 그런 글도 보인다.

    이거 뭐야? 내부 정보 알고서 공매도 친 거 아냐?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조사해봐야겠네.

    나는 그걸 보며 중얼거렸다.

    ‘조사해봐라. 뭐가 나오나...’

    이어서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전투 직전에, 한 번 놀려나 주려고. 나는 문자를 보냈다. 강주혁 기자에게

    ‘기자님 시간 되시면 통화 가능하실까요?’

    그런데 바로 답장이 온다.

    ‘네 가능합니다. 대표님.’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곧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예예 대표님 안녕하셨습니까?”

    “아 네 기자님. 잘 지내셨지요?”

    “네 물론입니다.”

    상투적인 대화가 오간 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아니 그나저나 그 구도심 재개발 사업자 선정해서 한 번 더 물어보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혹시 더 정보 나온 건 없으신가요?”

    “아... 없습니다. 지난번에 진양개발 쪽이 유력하다는 것 외에는 더...”

    “네 그렇군요... 안 그래도 저 기자님이 말씀하신대로 진양개발에다가 크게 베팅했습니다. 많이 사 놨어요. 그것뿐만 아니라... 비상건설에도 공매도를 쳐 놨습니다. 이거 두배로 땡길 만한 좋은 기회다 싶어서요.”

    “아아 그러셨군요.”

    ‘흥 이미 봤으면서.’

    작전을 치는 녀석이 그 주식 공시를 보지 않았을 리 없다.

    “아 근데 이게 100%는 아닌데... 혹시라도 비상건설로 선정되면 어쩌시려고...”

    “아 그러면 이번 베팅은 실패한 거라고, 운이 없다고 해야지요. 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저는 딱 촉이 옵니다. 이번 개발자 선정은 진양개발이라고.”

    “하하 그러십니까? 그러면 저도 진양개발 주식 좀 사볼까요?”

    “같이 한 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아이고 저는 말만 그렇게 하지. 담이 작아서 주식은 못합니다.”

    거짓말이다. 그는 본인 돈도 비상건설에 담았을 가능성이 있다.

    “아 그러신가요? 그럼 지켜보시지요. 어떤 패가 나오나.”

    “네 대표님. 잘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전화는 끊겼다. 나는 잠시, 그 ‘강주혁 기자’라고 점멸하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이틀 뒤에 다시 통화할 때는 어떤 어조일지 모르겠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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