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97화 (97/198)

# 97

거미 사냥(2)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평소처럼 미래 뉴스를 읽었다. 12달 뒤 ‘경제’면에 뉴스 하나가 걸린다.

‘좋아 대두 값 급락으로 식용유 제조사가 급등이라 이거지. 관련주는...’

나는 달력 앱에 주식 몇 개를 집어넣고, HTS를 켰다. 내 계좌에는 아직 200억원 어치의 주식이 들어 있다. 수익률 35%를 기록하고 있는 주식들. 나는 적당한 가격 선에서 매도를 걸어 놓고, 시선을 옮겼다.

‘비상건설 +1.8%’

‘진양개발 +2.5%’

두 종목은 다 조금씩 꾸준히 올라 저점에서 모두 20%가까이 올라 있었다. 이제 슬슬 테마가 시작되려는 시점이다. 정보 빠른 기관투자자들, 눈치 빠른 개미들만이 달라붙은 상태. 확실히 내 귀에 들어온 타이밍이 빠른 편이다. 아직 언론에는 다섯 개의 후보자가 선정되어 있다는 말조차 나와 있지 않았으니까. 뉴스메이커 강주혁 기자는 나름 좋은 미끼를 내게 건넨 것이다.

‘이거 한 번 먹어봐. 지금 들어오면 10%는 쉽게 먹을 수 있을 걸.’

하고 말이다. 구도심 재개발 사업은 수천 억짜리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라서 한번 사업자로 선정만 되면 몇 년 치 매출은 걱정 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된다. 주가가 두 배 이상 뛰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다. 최종사업자로 선정이 되든 안 되든 그 기대감으로도 30~40%까지는 오를 만하다. 10%는 쉽게 먹을 만한 자리라는 것이다.

‘거미가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정황상, 이 두 주식에는 이미 진을 치고 있는 거미가 있다고 봐야한다. 그것도 작전으로 사람 하나 둘 죽이는 건 쉽게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거미들이. 10%먹는 다고 덤볐다가 손실이 날 수도 있다. 이런 주가조작단의 경우 누가 어떤 사람이 얼마나 어떻게 주식을 사는 지도 모니터링을 하는 편이라서, 개미가 주식을 사면 내리고, 팔면 올리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들어가지 않는 게 맞다.’

그게 상식적이다. 개미든 누구든 작전주는 절대 하지 않는 게 맞다. 한번 어쩌다가 벌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잃고 말 것이다. 이것은 설계된 포커 게임과 같다. 호구는 정직한 게임을 하는 반면, 반대쪽 타짜는 모두 패를 보고 친다. 한두 번, 운 좋게 이기는 경우는 있어도, 결국 깡통을 찰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내게는 숨겨진 조커 카드가 하나 있었다. 지난 번 인물검색에서 나온, 히든카드. 녀석들이 내 패를 본다 하더라도, 내가 갑자기 이걸 꺼내들면 그 녀석들도 크게 엿을 먹을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조건만 맞는다면...’

그 ‘한 가지 조건’만 확인 되면, 이 녀석들에게 바로 빅엿을 선사해줄 수 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나는 마우스 커서를 빙글빙글 돌리며 생각했다.

‘그래서 참전할까? 말까?’

내게 남은 것은 내 결단뿐이다. 돈만 보고서는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어차피 나는 돈을 잘 벌고 있으니까. 다만

‘개돼지들. 나는 저런 천한 것들이랑은...’

탁준기 이사를 생각했을 때나

‘이 사람들 제 원수에요.’

이아영을 생각했을 때, 참전해야만 할 것 같다. 돈이 아닌, 정의를 위해서. 나는 곰곰이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았다.

‘그래 ‘그 조건’이 만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돈을 잃을 가능성은 없다.’

리스크 없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면, 참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 내가 아무리 미래 가치를 가지고 매매를 했다고는 하지만 여태 수 없이 많은 기관투자자, 외국인투자자, 그리고 개미들 돈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야. 그러면 최소한 거기 보답하는 수준에서, 시장 질서를 바로잡아 줘야지.’

결심을 한 나는 나 멀티 모니터에 2개의 계좌만 띄워놓았다. 보통 나는 8개 계좌를 돌려서 큰 손이 들어온 지 아닌지 모르도록 잠행술을 쓰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존재감을 드러내기로 했다.

내가 전투에 참전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나는 2개의 계좌로 비상건설과 진양개발 두 종목을 모두 매수하기 시작했다. 최근 급등을 이어가는 바람에, 매도대기물량이 꽤나 많았지만, 나는 그걸 다 사들였다.

‘+3%, +5%, +8%’

+2%대에서 놀던 두 주식은 내가 엄청나게 사버리는 바람에, 10%까지 급등했다. 나는 거기서 매수를 멈추고 잠시 추이를 지켜보았다.

‘와 오늘 가나보다!’

주가가 급등하자 개미들이 더 달라붙는다. +11% +12% +13%. 하지만 내 돈이 더 들어가지 않으니, 주가가 올라가지는 않는다. 주가는 다시 +12% +11% +10% 바로 제자리로 돌아온다. 딱히 더 사는 사람도 없고, 더 파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 모니터 너머에서 나를, 내 계좌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음 이거 가지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 말이지?’

나는 일단 매수를 멈추고 전화를 걸었다. 장 부사장에게

‘띠리리~ 띠리리~ 띠리’

통화대기음이 세 번 나오려고 할 즈음

“네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가 내 전화를 받는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부사장님. 저희 회사에 가용 자금 얼마나 있지요?”

“가용 자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카이게임즈 지분 매입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 부어서...”

“아 그러면 제가 내일 자로 증자를 할 테니까. 그 돈으로 대규모 공매도 팀 준비해주세요. 손 손 빠른 트레이더 몇 명 꾸려서”

“대규모 공매도요?”

장 부사장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내가 여태 ‘이거 사라, 저거 사라. 인수할 회사 알아와라. 그거 인수해라’ 그런 말은 자주 했어도, 공매도를 준비하라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네. 대규모 공매도.”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나는 휴대폰을 든 채, 다시 HTS 창을 보았다. 주가는 살짝 더 흘러내려 +8%에서 거래되고 있다. 큰 손이 들어왔다가 손을 놓아버린 뒤, 개미들만 남아 혼란을 빚는 전형적인 상황이다. 나는 휴대폰을 터치해서 전화번호부를 불러냈다.

‘강주혁 기자’

지난 번 인터뷰 때 주고받은 전화번호가 있긴 하다.

‘분명 보고 있을 텐데...’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

‘안녕하시죠. 기자님. 올라온 기사 잘 보았습니다. 제 이야기 잘 각색해서, 잘 써 주셨던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구도심 재개발 사업 관련 정보도 감사했습니다. 이미 꽤 수익 보고 있는데, 이거 크게 갈 것 같네요. 눈치 봐서 더 사려고 합니다.’

나는 거기까지 썼다가,

“음...”

고민하다가, 한 줄을 더 써넣었다.

‘혹시 더 정보 나오는 거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최종사업자가 누가 되는지 따라서 결국 주가가 갈릴 것 같으니까요.’

그런 다음 전송.

‘이 녀석 뭐라고 하려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HTS에서 일어났다. 아직 급하게 매매를 할 만한 것은 없다.

‘그럼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옷을 챙겨 입은 뒤, 문 밖으로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 가서, 하강 버튼을 누르려는데,

‘띵~동’

마침 내 앞에 엘리베이터가 섰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이아영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내 인사에,

“네 안녕하세요.”

그녀는 사무적으로 그걸 받은 뒤 나를 스쳐지나간다. 나는 그런 그녀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잘록한 허리에서 이어지는 엉덩이 라인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텐데. 오늘은 그보다 축 처진 어깨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왠지 그 어깨가 쓸쓸해 보인다.

‘무남독녀인데,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

그런 배경을 알고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흠...’

나는 그녀를 보다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엘리베이터 문은 그새 닫히려고 하고 있었다.

‘이런’

나는 빠르게 하강 버튼을 눌러서 그 문을 다시 열고 그 안에 탔다. 그런데 그 때,

‘위이잉’

휴대폰이 울렸다. 강주혁에게서 온 문자다. 나는 방금 나를 지나쳐 간 이아영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본인의 원수와 문자를 주고받고 있다는 걸 알면... 그녀가 뭐라고 할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 문자를 확인해보았다.

‘아이고 별 말씀을요. 대표님. 저도 좋은 인터뷰 기사 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대표님 이야기 듣고, 다들 호평이 자자하더라고요. 구도심 재개발 사업 건은 제가 뭔가 더 정보를 알게 되면 바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흥 바로 알려준다고?”

나는 육성으로 피식 웃었다. 절대 바로 알려줄 리가 없다. 아니 어쩌면 그는 이미 모든 정보를 다 쥐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좋다. 어차피 속고 속이는 복마전이라면, 내가 더 강하다. 그들이 내게 ‘진짜 정보’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나 역시 그들에게

‘나는 미래 뉴스를 받아 보고 있어.’

라고 정보를 알려주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

그로부터 이주일이 지났다. 도심 재개발 사업자 선정 발표가 삼주 앞으로 다가온 시점. 비상건설과 진양개발의 주가는 둘 다 모두 들썩였다. 이쪽에 관해서 뉴스가 슬슬 나오기 시작해서, 일반 개미들도 모두 ‘정책테마주’에 다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비상개발이 유력하다더라’

라는 말이 들리면

‘비상건설 +7%’

‘진양개발 –8%’

그렇게 되었다가

‘진양개발이 앞섰다더라’

그런 이야기가 들리면

‘비상건설 –9%’

‘진양개발 +6%’

그렇게 하루 만에 주가가 반전되기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각각 100억씩 일찍 베팅한 나는 두 종목 모두에서 10%. 10억씩 수익을 보고 있었다. 예상대로다.

‘여기서 먹고 나가면... 뭐 승자긴 하네. 작은 승리긴 하지만.’

다소 얌체 같이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단순히 여기서 돈 벌려고 들어온 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달력 앱에 쓰여 있는 다른 종목을 사고 팔면서 그걸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러던 중

‘위이잉’

문자 하나가 왔다. ‘강주혁 기자’. 나는 생각했다.

‘왔군.’

나는 그 문자를 들어보았다. 꽤나 장문의 문자다.

‘대표님 잘 계시지요? 제가 그 구도심 재개발사업 관련해서 조금 더 심층 취재 해봤는데 아무래도 요즘 공무원분들이 이쪽에 정보 새는 거 민감하고 그러셔서 정말 이야기를 안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집요하게 물어보니까. 선정단 중 한 분이, 비상건설보다는 진양개발 쪽이 좀 더 유력하다고 조용히 흘리시더라고요.’

그걸 본 나는 박수를 쳤다.

“됐다.”

이 녀석들을 수장시킬 빅 엿이 장전되는 순간이다. 나는 문자를 더 읽어보았다.

‘그래서 투자를 하시려면 진양개발 쪽으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잘 아시겠지만, 100% 확실한 건 아닙니다. 대표님.’

나는 그걸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100%확실한 건 물론 아니지.”

세상에 100% 확실한 미래는 없다. 그것은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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