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96화 (96/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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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 사냥

    [정말 흙수저 출신이신가요?]

    [흙수저의 정의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집이 유복했던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평균. 아니면 조금 이하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초중고 다닐 때 용돈이 넉넉했던 적 없었고, 대학학비도 모두 학자금대출을 받아 다녔습니다.]

    [그렇다면 어렸을 적부터 늘 부에 대한 갈망이 있었겠군요.]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분식집에서 떡볶이 사먹고 피시방에서 같이 게임 할 수준의 용돈만 있으면 충분했어요.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돈에 대한 갈망이 생긴 것은 취직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돈을 벌 게 되면서 오히려 돈에 대한 갈망이 생기셨다고요?]

    [네. 그 이유는...]

    “흠...”

    나는 턱을 괸 채로 스크롤을 내려 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뉴스메이커 강주혁 기자가 올린 내 기사다.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삼일 만에 바로 인터넷에 기사가 올라왔다.

    [제가 이 나이에 많은 부를 획득하기는 했지만 운도 따라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상훈 대표는 겸손한 어조로 조용히 인터뷰를 마쳤다.]

    내 특유의 속독 능력으로 기사를 모두 읽은 나는 생각했다.

    ‘나쁘지 않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잘 써줬다. 흙수저 출신, 개천에서 승천해 성공을 일군 30대 젊은 CEO로 청년들의 우상처럼 말이다.

    ‘확실히 기자님은 기자님이신가보군...’

    기사 끝 부분에는

    ‘강주혁 기자의 다른 기사’

    목록도 있다. 나는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암울한 조선업 경기, 언제까지 이어지나’

    ‘OPEC 증산 합의. 국내 경기에 미칠 영향은?’

    경제지 기자로서 딱 맞는, 아주, 아주 평범한 기사들을 쓰고 있다.

    ‘기자로서 일하면서... 그런 일을 하는 건가?’

    그런데 지금 보니

    ‘서울시 구도심 재생 사업. 사업자 선발부터 난항’

    그런 기사도 있다.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기사에는 구도심 재생 사업자 선발에 대한 과정, 그리고 논란에 대해서 쓰여 있었다.

    ‘음 확실히... 일선에서 일하면서 소스를 얻는 건가?’

    나는 잠시 상상을 해보았다. 기자 일을 하다보면, 분명 돈이 될 만한 정보가 생길 때도 있다. 몇 천 만원, 몇 억짜리. 아니 자본만 제대로 만나면 수 십, 수백억이 될 만한 정보들 말이다. 그런데, 본인 월급은 쥐꼬리다. 그렇다면 당연히 정보를 팔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을까. 정보 값을 제대로 쳐주고, 그걸 제대로 활용할 사람에게.

    ‘탁준기 이사 같은 사람.’

    탁준기 이사라면 좋은 뉴스는 작게는 몇 천 만원, 크게는 몇 억 원을 주고 살만 하다. 그걸 가지고 돈을 더 불릴 수 있으니까. 평범한 직장인이 그런 딜을 한두 번 하다보면, 그 맛이 달콤하고 황홀했을 것이다. 참을 수 없을 만큼. 하지만 그런 뉴스가 매일, 자주 뜨는 건 아니다. 끽 해봐야 2~3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돈은 벌고 싶은데 뉴스는 없다.

    ‘그래서 뉴스를 조작하거나... 결국 없던 뉴스를 만드는 지경까지 간다... 뉴스 메이크... 뉴스 메이커.’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시나리오다. 그 과정에서 탁준기 이사 같은 사람이 유혹을 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다가 대원일보 둘째랑 엮이고, 셋째랑도 엮이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 밖에서

    ‘똑 똑 똑’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거기 대고 말했다.

    “들어오세요.”

    서 비서의 전화를 거치지 않고, 직접 내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사람은 둘 뿐이다. 서 비서 본인과, 장 부사장. 곧 문이 열리고 장 부사장이 들어온다. 그는 꽤나 많은 양의 A4용지를 들고 있다.

    “사장님. 요청하신 보고서 가져왔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걸 받으며 말했다.

    “아 네. 고마워요.”

    받는데 꽤 묵직하다. 양이 많다.

    ‘그냥 이메일로 받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종이에 동그라미, 밑줄, 메모, 낙서를 하면서 읽는 게 좋다. 그래야 집중이 잘 된다. 나는 그걸 내 책상에 올려놓고, 펼쳐보았다. 다섯 개. 회사 보고서가 있다.

    ‘비상건설’

    ‘진양개발’

    ‘한빛시공’

    ‘시티앤씬’

    ‘씨브이건설’

    장 부사장은 이어서 말했다.

    “사업자 선정, 그리고 사업자 발표도 누가 언제 어떻게 하는지 완전 비밀이어서 어떻게 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음... 뭐 그게 당연하겠지요.”

    나는 겉으로 그렇게 말 했지만, 속으로는

    ‘탁준기나 강주혁은 알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을 했다. 장 부사장이 내게 물었다.

    “사장님. 구도심 재생 사업 관련주에 투자하시려고요?”

    “아... 일단 검토만 해보려고요.”

    장 부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최근 들어 기대감에 주가들이 조금씩 들썩이긴 하더군요.”

    나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보고서를 두드리며 말했다.

    “음... 장 부사장님이 보시기에는 어떤 회사가 유력한 것 같으시던가요?”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본 바로는 이 사업이 단순 개발이 아니라 구도심을 갈아엎는 종합적인 재개발산업이어서... 이쪽에 경험이 많은 비상건설 혹은 진양개발 그리고 한빛시공 쪽이 유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두 쪽은 신생회사라서 조금 어려울 것 같고요.”

    비상건설, 진양개발. 두 개는 뉴스메이커 강주혁 기자가 추천해준 회사랑 일치한다. 나머지 하나 한빛시공만 다를 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해요.”

    “별 말씀을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셔요.”

    나는 책상 위의 보고서로 시선을 돌리다가, 문득 든 생각에, 문 밖을 나서려는 장 부사장을 붙잡았다.

    “아 참. 그건 그렇고... 오라클 뉴스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 그건 사장님이 말씀하신대로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그쪽도 계속해서 수고해주세요.”

    “네 사장님.”

    장 부사장은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문을 열고 나섰다. 홀로 남은 나는 다섯 개의 회사 보고서를 모두 읽어보았다. 재무제표부터 해서 회사 연혁, CEO약력 등등. 내 생각도 거의 비슷하다. 업력으로 보나 뭐로 보나 비상건설 혹은 진양개발이 첫 사업을 따내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빛시공도 나름 능력이 있지만, 여기는 비상장 업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서울시에서 주가 조작을 하라고 일부러 앞의 두 개를 밀어주지는 않겠지만, 애초에 상장을 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시공능력을 시장에서 인정을 해줬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니 기억해두자.’

    나는 모니터로, HTS로 넘어가보았다.

    ‘비상건설 +4%’

    ‘진양개발 +3%’

    두 주식은 오늘 나란히 상승을 하고 있다. 최근 한 달 차트를 보니 거의 판박이다. 같이 내렸다가, 같이 올랐다가, 테마가 슬슬 시동을 걸려고 하고 있는 타이밍이다.

    ‘그 녀석은 왜 내게 이런 정보를 흘렸을까? 나도 작전에 가담하라고?’

    만약에 매집이 끝난 상태라면, 그것 자체로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가든 엔비’에서 볼 수 있듯이, 돈 많은 사람에 정보가 풀리는 것, 화제가 되는 것은 늘 호재다. 코스피 코스닥에는 수 없이 많은 종목이 있고, 당연히 사람들은 전부를 알 수 없다.

    어떤 물건이 팔리려면 홍보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주식도 당연히 홍보가 많이 되면 될수록 가격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나 같이 돈 많은 사람, 주식 투자하는 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엄청난 도움이 된다. 내가 혹시라도

    ‘이거 사업자 선정만 되면 대박인데?’

    이 이야기에 혹해서 주식을 사게 되면, 주가가 오를 테니까. 그래서 여의도 증권가에서 다들 기를 쓰고 유명 투자자 행세를 하는 것이다. 먼저 나 주식 잘한다 홍보를 하고, 둘째로 자신이 어떤 주식을 사고,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에게 추천을 하면서 넘기고 떠나는 것이다.

    차트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두 주식 모두, 최근 한 1년간 횡보를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오르락 내리락 하기는 했지만 차트에 평균값을 내어 줄을 그어보면 거의 일자가 그어진다.

    ‘이렇게 횡보를 했다는 건... 세력이 매집할 시간이 꽤 있었다는 것...’

    막상 서울시장 선거가 있을 때 테마주로 오르내린 건 동보건설이지만, 그건 개미들 꼬시기 좋은 ‘사외이사 재직’이라는 명함으로 만들어낸 환상이었을 뿐이다. 업계 사정이 밝은 사람들이라면, 재개발사업에는 비상건설 혹은 진양개발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캐치했을 수도 있다.

    ‘특히 작전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알고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아예 투자를 하지 않는 게 맞다. 년 초에 있었던, 네이처스기프트 사건 때도 그랬지만, 거미가 쳐 놓은 거미줄에서 거미를 상대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 때도 가까스로 살아만 나왔지 거미를 어떻게 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금도 여기 거미줄이 쳐져 있다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확실한 정보가 없다면 말이지.’

    하지만 내게는 미래 뉴스가 있다. 여기서 뭔가가 긁어져 나온다면, 거미줄을 쳐 놓은 거미보다도 내가 더 강할 수 있다.

    ‘그럼 정보를 좀 더 수집해보고... 여기 참전할지 말지 생각을 해보자.’

    오늘 오전 뉴스는 이미 받아보았다. 저녁에 미래뉴스가 한 통 오면 그 때부터 정보전 시작이다. 시간이 남는 나는 먼저 주식게시판에 가보았다. 먼저 비상건설.

    비상건설. 서울시 구도심사업 타고 비상하자.

    최근 매출 추이 보세요. 진양개발은 상대도 안 되죠.

    주성원 시장 눈깔이 있으면 당연히 정기웅 대표 손 들어줘라. 존 말할 때 해라.

    정기웅은 비상건설의 CEO다. 45세. 건설업체 CEO치고는 젊은 축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진양개발

    진양개발 내일 상한가 가즈아~!

    이번 사업자 닥치고 진양개발입니다. 최근 광주 구도심 재개발 사업도 잘해냈어요.

    서학범 할배 서울시에 연줄 없나? 여태 30년 넘게 일했으면 연줄 하나정돈 있을 법 한데?

    서학범은 진양개발의 CEO. 68세. 일흔에 가까운 나이인데, 정력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사업자 선정, 그리고 발표는 누가 하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 이름은 아니까... 검색을 해보면 뭔가 나오긴 하겠지.’

    내 예상은 딱 맞아떨어졌다.

    *

    그날 밤. 나는 컴퓨터 앞에서 오후 8시 55분이 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뉴스는 주식 시장 개장이랑 시간이 멀어서 살짝 느지막이 보는 편인데, 오늘만큼은 딱 시간이 될 때를 기다렸다가, 뉴스를 받았다.

    ‘D 12시간 뒤’

    ‘D 12일 뒤’

    ‘D 12주 뒤’

    ‘D 12달 뒤’

    매 뉴스에는 이름을 적어 넣는 두 개의 슬롯이 있다. 인물 검색 레벨 업을 하나 해놓은 덕분이다. 나는 그 슬롯마다 정기웅, 그리고 서학범을 써넣었다. 그런데, 예상 외의 월척이 걸렸다. 나는 인물검색에서 걸려 나온 기사 하나를 보고, 입술에 손을 가져갔다.

    ‘아니... 설마...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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