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95화 (95/198)

# 95

자객

서 비서 뒤로, 중년의 남자 하나가 나타난다.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른 체형, 길게 위로 올린 머리에, 옆으로 째진 예리한 눈. 그리고 창백한 피부. 딱 리자드맨처럼 생겼다. 리자드맨. 나는 잠시 그의 이름을 떠올려보려고 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단지 이아영이 말해줬던 별명만 생각이 난다.

‘뉴스메이커’

내가 그 생각을 하는 데, 그가 내게 손을 건네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한 대표님 제일경제 강주혁 기자입니다.”

나는 그제야 강주혁. 그 이름을 떠올렸다.

“아... 네.”

나는 살짝 떨떠름해 하며 그의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제일경제? 거긴... 대원일보 계열은 아닐텐데... 그나저나 이 사람이 왜...?’

하는 순간, 그가 웃으며 말했다.

“먼저 이번 수상 축하드립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저... 다름이 아니라, 위에서 이번에 상 타신 분들 중에 한 분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대표님 인터뷰를 꼭 하고 싶어서 비서님하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인터뷰에 응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의 뒤로 서 비서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마치

‘한 건 물어왔습니다. 대표님.’

하는 표정이다. 그건 그럴만 하다. 내가 전부터 서 비서에게 누누이 말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은 매체에 노출되도록 해줘. 우리 회사든, 내 이름이든.’

하지만 문제는 이 녀석이 물어온 사람이 대단히, 대단히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저 녀석 이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강주혁 기자에게 눈을 돌리며 말했다.

“왜 하필 저를... 수연여행 탁준기 이사님 같은 분도 있는데...”

“아아~ 탁준기 이사님이요? 탁 이사님은 수연그룹 사람이라 조금...”

그는 나한테 살짝 얼굴을 드밀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요새는 독자들이 기사에 금수저들 올라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클릭수가 안 나옵니다. 게다가... 듣기로는 성격도 되게 까칠까칠하시다고 하셔서...”

‘듣기로 까칠까칠하다고? 4~5년 전부터 같이 일했다는 걸 아는데?’

그들은 고영식품을 무너뜨릴 때부터 이미 동료였다. 이 사람은 눈 하나 껌뻑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어떻게 보면 놀라운 기술이다. 나 역시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에게 말했다.

“아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요새는 워낙에 상대적 박탈감이 심한 시대다 보니까요.”

“네 그래서... 다른 사람 말고 한 대표님 인터뷰를 따고 싶었습니다. 아까 시장님이랑 대화하시는 거 들었습니다. 흙수저 출신이라고?”

“네 뭐... 그렇습니다.”

“캬 좋군요. 아무래도. 재벌 3세가 돈 써서 상 탔다는 이야기보다는 흙수저 출신 CEO가 그것도 30살 CEO가 같은 청년들을 많이 고용해서 상을 탔다. 이게 딱 그림 나오는 기사 아닙니까? 대표님?”

그는 살짝 바보 같은 미소를 흘리면서 내게 말했다. 나는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

‘이 녀석... 탁준기 이사 지령을 받고 찾아온 자객이로군. 본인은 나한테 전혀 정체가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아영을 통해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뉴스메이커. 뉴스를 만들어서 주가를 흔들고, 개미의 돈을 갈취해가는 사람. 정체를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자객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한 번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등을 노리고 날아오는 단도도, 궤적을 알고만 있다면 피하는 건 가능하다. 잘만하면 역습을 할 수도 있고 말이다.

“듣고 보니... 그럴싸한 이야기군요. 좋습니다. 하지요. 인터뷰.”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뒤에 있던 서 비서가 엄지를 ‘척!’ 펴 보인다. 나는 그걸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으휴... 네가 낚아온 건 장어가 아니라, 물뱀이야 임마’

*

“대표님은 주식을 볼 때는 어떤 것을 주로 보십니까?”

“아무래도 미래 성장성을 많이 보는 편입니다. 주식이라는 건 꿈을 먹고 크는 것이니까요. 저는 최대한... 미래를 예측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오호 그러시군요. 하지만 미래라는 건 인간의 힘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한 영역 아닙니까?”

“불가능이라고만은 할 수는 없지요. 앨빈 토플러나, 그런 미래학자들은 놀랍도록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저는 불가능이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고, 매우 어렵다. 정도로 답하고 싶습니다.”

“매우 어렵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하지만 그 어려운 것을 성공한다면, 그 대가는 매우 크다.”

“아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는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타자를 써내려갔다. 그 모습이 매우 익숙해보인다. 확실히 기자 일을 오래 해온 것 같기는 하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제가요?”

“네. 30대에 성공한 사람으로서 뭐 덕담 같은 것도 좋고... 아니면 따끔한 충고 같은 것도 좋고요.”

그 말에 나는 잠시 턱을 쓰다듬다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요. 저는 그런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군요.”

“그러면...?”

“저는 단지 힘내라고... 그것 말고는 말해주고 싶은 게 없어요.”

강주혁 기자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조금 뭔가가 구체적인 것을 이야기해주시면 안될까요? 미래 예측을 잘 하시는 분이니까.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어떻게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라... 예를 들면 중국어를 배워보는 건 어떻겠느냐... 아니면 코딩을 배워보는 건 어떻겠느냐...”

나는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저도 이른 나이에 성공을 하긴 했지만... 그건 역시나 어느 정도 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제 능력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건 겸손의 말이 아니었다. ‘12시간 뒤’뉴스가 없다면, 나는 이렇게 까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다들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데, 불특정 다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저는... 그건 오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무책임한 짓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단지 청년들이 무슨 일을 하든, 힘내라고...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는 빠르게 손을 놀렸다.

“그럼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라. 그정도로 해놓을까요?”

그런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요 그것도 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된다... 그것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일은 열심히 해도 되지 않는 일도 있어요 엄연히. 그리고 어떤 때는 살짝 뒤로 한 발짝 물러서서 쉬는 것도 도움이 될 때가 있죠.”

강주혁 기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그냥... 무슨 일을 하던 나는 너를 응원한다. 힘내라. 살다보면 운이 돌아올 때가 있다. 그 정도 밖에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이 나이에 조금 많은 부를 획득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운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음...”

강주혁 기자는 아랫입술을 끌어올리며 다소 불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러십니까? 알겠습니다아...”

그게 기사감이 없어서 그런지 자기 생각과는 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이걸로 인터뷰는 마치겠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최대한 좋게 각색되어서, 일주일 뒤 즈음에 저희 주간지 그리고 인터넷사이트에 올라갈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강주혁 기자는 자신의 노트북을 챙겨 주섬주섬 자신의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뭐야? 이게 끝이야?’

그런 생각이 든다. 탁준기 이사랑 헤어지자마자 나타나서, 인터뷰를 요청하기에, 뭔가가 요상한 제안을 해올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없다.

‘...오늘은 그저 나랑 안면을 트러 온 건가? 탐색전?’

그런데 딱 그 때였다.

“그나저나 이건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나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

“네 말씀하시지요.”

“한 대표님께서는 이번 서울시 구도심 재생 정책 사업자에 누가 선정되리라고 보십니까?”

나는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네?”

“왜 있지 않습니까. 주성원 시장님의 공약.”

“아아... 구도심 재생 사업이요.”

그것은 주성원 시장의 가장 큰, 1순위 공약이었다. 서울 구도심의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 새로운 상권을 생성함으로서 구도심에 활력을 되찾아주는 그런 공약. 솔직히 말하자면 예나 지금이나 개발, 재개발처럼 좋은 공약이 없다. 그건 부동산 업자들도 좋아하고, 주민들도 좋아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그런 공약이다.

서울시장 선거 때 당시에도 주성원 시장이 사외이사로 있었던 동보건설이 대장주가 된 것도. 그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 대개 정치테마주란 선거 전에는 누가 당선될 것이냐에 이목이 집중되고, 선거 후에는 그 당선자가 무엇을 할 것이냐에 이목이 집중 된다. 이른바 정책테마주이다. 주성원 시장이 뽑힌지 이제 반년이 살짝 넘었으니 슬슬 시동을 걸 때가 되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거... 최근에 진행이 되어가고 있던 가요?”

“오 모르셨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몰랐다. 미래뉴스에서는 그 쪽 뉴스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런 뉴스가 없더라도 내 달력 앱에는 이미 초성으로 된 보물지도가 깔려 있었으니, 딱히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당선 되자마자 다들 공약 지켜라 뭐 해라 해서... 최근에 급진전되고 있었습니다. 일단 맨 처음으로 중구 쪽 재개발 사업... 여기 사업자 선정까지 앞두고 있는 걸요.”

“오호... 그렇군요. 그럼 동보건설를 비롯해서...?”

“아니요 동보건설은 오히려 명단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왜 그 시장님이 전에 사외이사로 있었다고 해서... 특혜논란이 일까봐 그냥 빼버린 것 같더라고요.”

“하아...”

요새는 인맥이 있으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주변에서 하두 째려보니까.

“그러면...?”

“지금 후보로 선정된 것이 다섯 개 정도인데...”

그는 그러면서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아하 이제 본심을 드러내셨군.’

내 눈에 그 종이 한 장이 종이가 아니라 단도로만 보인다. 나를 찌르려고 하는 단도.

“가장 유력한 것이 여기 비상건설과 진양개발. 이 두 가지로 압축이 된다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건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하아. 뭐 여기저기서... 기자 일을 하다보면 가끔 들려옵니다. 풍문이요. 하하”

‘들러오는 풍문? 네가 만든 풍문이 아니고?’

그 별명이 괜히 뉴스메이커란 별명이 붙은 건 아닐 것이다. 나는 은근 슬쩍 말했다.

“오... 그러면 여기서 잘만 고르면 좋은 기회가 나겠군요. 이거 예산이 꽤 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그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아마 그는 물고기가 찌를 물었다 생각해, 그렇게 웃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쉽게 낚일 사람이 아니다.

‘흥 네가 나를 낚을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이 녀석을 바다로, 수면 아래로 침몰 시켜줄지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아마도, 비통의 눈물조차 흘리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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