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94화 (94/198)

# 94

봄(2)

창밖으로 넓은 잔디밭 너머 파도처럼 생긴 서울 시청이 보인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큼흠”

목소리를 가다듬고, 옷깃을 고쳐 입었다. 잠시 후면, 대권 잠룡 중 하나로 꼽히는 주성원 시장을 만나게 된다. 최근 들어 긴장을 할 일은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조금 긴장이 된다. 서 비서가 모는 차는 서울 시청 주차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그러던 중

“와 저거 사장님 차랑 똑같은 차네요?”

서 비서가 창문 옆을 보더니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쪽 보았다. 우리 차 바로 옆에 벤틀리 벤테이가. 내 애마와 똑같은 종류의 차가 있었다. 색이 검은색이라는 점이 조금 다르지만.

‘...3억짜리 차를...’

저건 아무나 굴릴 수는 없는 차다. 나는 슬쩍 창문 안쪽의 인영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썬팅이 워낙에 진해서, 안이 보이질 않는다.

‘누구지?’

생각하는 순간, 그 차가 우리 차를 앞질러 먼저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서 비서에게 물었다.

“서 비서 오늘 상 받는 회사 우리 말고도 더 있는 거지?”

“네 개 정도 됐던 것 같은데요?”

“저 차는 어디 다른 곳 사장님 차인가 본데?”

“아 그렇겠네요. 그러고 보니까. 저런 차를 아무나 몰수도 없고.”

“음...”

주차장에 차를 댄 서 비서는 내게 말했다.

“가시죠.”

“응”

나는 서 비서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던 중이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멀리서 살짝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놀랍게도 마스터T. 탁준기 이사가 서있었다. 그 검은색 벤틀리 옆에

“한 대표님 이런 곳에서 뵙는군요.”

그의 옆에 지난 번 보았던 거구의 남자도 보인다.

“아~ 네 오랜만입니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다가와서 내게 악수를 청했고, 나는 손을 흔들었다.

“잘 지내셨지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뉴스에서나 업계 사람들 쪽에서나”

“아아 그러셨습니까?”

“네 특히 뭐... 카이게임즈는 대단하던데요?”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카이게임즈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다. 겉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속은 타고 있다는 말이다. 카이게임즈 주가는 수익률 400%를 넘어선 지난주 때보다도 20% 더 상승해 있었다.

‘흥 그래. 아쉽겠지 상당히.’

나는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며 말했다.

“네 뭐... 저도 잘 만들었다 생각은 했는데... 예상보다 더 흥행하더군요. 아시다시피 이게 영화나 게임 같은 시대를 잘 만나야 더 잘 나가고 그런 게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뭐 그렇기는 하지요. 운이 참 좋으신 것 같습니다. 한 대표님”

나름 겸손하게 이야기를 했더니 바로 운이라고 이야기를 돌려버린다. 본인이 싸게 주식을 팔았다는 게 자존심이 그렇게 상하나 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라. 멍청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그렇지요. 그나저나 탁 이사님은 오늘 여기 무슨 일로...?”

“아 오늘 저 상 타러 왔습니다. 그 청년... 뭐라고?”

그는 고개를 돌려 그 덩치 큰 비서를 보았다. 그러자 그가 이어서 말했다.

“청년 고용 캠페인입니다. 이사님.”

“아 그거. 그거 말입니다.”

그는 수연여행의 대표는 아니었다. 단지 대주주였을 뿐. 이사라는 직함을 가지고는 있지만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아마 예상하기로는 그냥 창업자 손주에게 감투 하나 씌워놓은 것 같은데, 상은 그가 받으러 온 듯 하다.

‘이런 상은 다 대표에게 주는 건 아닌가? 아니 어쩌면...’

어쩌면, 이런 상은 수연 그룹 사람에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겠다.

“그럼 가시지요.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한 대표님.”

“하하 네.”

나는 그와 함께 살짝 불편한 상태로 서울 시청 위로 올라갔다.

*

“어이고, 반갑습니다. 탁 이사님.”

“누구시더라?”

“에이솔루션의 구찬용입니다. 전에 왜 투자설명회에서 만났었지요.”

“아아... 기억납니다. 인터넷 보안 쪽이셨지요?”

“네 이사님. 기억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이고 똥꼬 헌다 헐어.’

주성원 시장을 만나기 전, 상을 타기로 한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탁준기 이사는 꽤나 인기인이었다. 머리가 완전 까진 백발의 남자도 와서 머리를 조아린다.

“안녕하십니까 탁 이사님 장문건설 고순길입니다. 아버님은 잘 계시지요?”

“예예”

확실히 재벌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 전체 시가 총액이 1800조원이라고 하면, 그 중 절반인 900조원이 재벌 계열사 시가 총액이라고 하니 말 다했다. 어디서 무슨 사업이라고 따 내려고 하면, 결국 재벌이랑 연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탁준기 이사는 태어날 때 탁 씨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런 대접을 받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참 불공평하다니까.’

그러는 도중, 깔끔하게 오피스룩을 한 여자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대표님, 이사님. 이쪽으로.”

다섯 명의 수상자들은 그녀를 따라서 시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주성원 시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주성원 시장은 실물로 보니 꽤나 잘생겼다. 코는 크고 입도 큰데 대체로 웃는 낯을 가지고 있다. 사진으로 봤을 때도 잘 나가는 중년 트로트 가수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 이상이다.

‘하긴 정치인은 연예인이랑 한 끗 차이라고 했던가...’

“이리로 오시지요.”

그는 우리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그가 더 뭐라고 하기 전에, 미녀의 비서가 한 명 한 명 소개를 시켜주었다.

“이 쪽은 수연여행의 탁준기 이사십니다.”

주성원 시장도 ‘수연’이야기를 들으니 바로 입이 열린다.

“아~ 수연그룹 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

탁준기 이사도

“반갑습니다. 시장님”

그에게 고개 숙이며 인사를 했다.

‘저 아저씨가 진심으로 남한테 머리를 굽힐만한 인간이 아닌데...’

어디서나 왕 행세를 하시는 분이신데, 그 역시도 권력 앞에서는 일단 머리를 숙이는 것 같다. 전대 대통령 그리고 재벌 총수들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납득은 간다. 매 정권마다 친한 기업이 있고 친하지 않은 기업이 있다. 정치적인 내막은 알 수 없으나, 그 친하고 친하지 못하고에 따라서 회사가 흥하기도 몰락하기도 한다.

‘수연그룹의 망나니라고 하더니 그래도 여기서는 얌전히 있나보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내 차례가 되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한상훈 대표님이십니다.”

그런데, 내 이름을 들은 주성원 시장은

“아아~ 한상훈 대표님.”

아까보다도 더 큰 소리를 내며 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젊은 나이에 대단하시더군요.”

“과찬이십니다.”

나는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참 이야기 들어보니 흙수저 출신이시라고?”

“아... 네.”

“그런데 그렇게 큰 부를 쌓으셨다니 대단하시군요. 우리 지금 보니 동향사람이군요.”

“네? 동향사람이요?”

나는 잠시 내 고향. 충청도에 있는 내 고향을 떠올렸다.

‘이 사람이 충청도 출신이던가?’

하는데. 그가 말했다.

“저도 흙수저 출신입니다. 크하하하하!”

그 웃음소리가 맑고 쾌활하다. 정치인답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했다. 시장 개인과의 만남 이후, 우리는 시장실 안쪽에서 시상식을 했다. 예전에 학창시절 시상식이라면, 다른 학생들이 관객이었겠지만, 지금은 기자들이 관객이다. 주성원 시장이 상장을 들고 나에게 건네주면 나는 그것을 들고 카메라를 보았다.

‘번쩍 번쩍’

스포트라이트가 터진다. 상장수여식 이후, 우리는 같이 식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청 근처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피자와 스파게티를 시켜놓고 같이 식사를 한 것이었다.

‘최대한 친해져 놓으십시오.’

장 부사장의 조언대로, 나는 최대한 주성원 시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성원 시장도 정말 ‘동향 사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 식사 내내 내게 이야기를 걸었다.

“그러면 한상훈 대표님은 우리나라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나라와의 가장 큰 무역국인 중국과 미국과의 경쟁이 점점 더 심화 될 것이라 보거든요.”

서울시정이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서 묻는 걸 보면 그는 분명 큰 꿈이 있다. 대권 도전이라는 큰 꿈이.

“음 길게 보시는군요. 정치인들은 미국 내 정치적인 요소 때문에 그리 길게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던데”

“아니요. 작게 보면 그렇지만 이건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서 21세기 패권을 다투는 문제기 때문에 분명 장기화 될 겁니다.”

주성원 시장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단히 흥미로워했다. 그래서 나는 알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내놓았다.

“내년까지. 아니 사실상 중국이 백기를 들고 항복할 때까지 미국의 압박은 심화될 것입니다. 미국도 출혈이 있겠지만 당장은 호황이므로. 지금 가지고 있는 체력을 소비해서라도 중국을 최대한 때려놓으려 할 겁니다.”

이건 단순한 예상이 아니라, 12주 뒤, 12달 뒤 뉴스에서 읽은 내용을 섞어서 하는 이야기였으므로, 그는 언젠가

‘한상훈 대표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맞아떨어지는군.’

그런 생각을 하는 때가 있을 것이다. 12달 내로.

“음 그러면 우리나라도 쉽지는 않겠군요.”

“네 하지만 동시에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도 기회를 잡을 일이 있을 겁니다.”

점심식사가 끝난 뒤, 주성원 시장은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저희 캠페인에 협조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럼 안녕히들 들어가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시장님.”

“들어가십시오. 시장님.”

확실히 서울시장 즈음 되면 권력이 어마어마한 것 같다. 나 역시 끝까지 그와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다. 그가 나를 보며 웃는 것을 보면, 장 부사장이 말했던 퀘스트

‘차기 대권 주자인 현 서울 시장과 친해져 놓으시오.’

를 완벽히 이행한 것 같다.

‘좋아 다음번에 만나면 아는 척이라도 할 수 있겠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탁준기 이사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한상훈 대표님.”

“네 탁 이사님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탁준기 이사와도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인사를 할 때, 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 묘하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뱀의 눈빛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 섬뜩하면서도 끈적이는 눈빛이다.

‘여러 모로 기분 나쁜 녀석이란 말이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 비서가 기다리는 주차장을 향해 걸어갔다.

“오셨군요. 사장님.”

나는 하고 있던 넥타이 끈을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

“응 가자. 시장님 앞에서 점잖은 척 했더니 힘들다 야.”

그런데, 그 때, 서 비서가 말했다.

“아 사장님. 그런데 사장님하고 인터뷰하고 싶다는 기자님이 있으셔서...”

그 말을 하는 데 서 비서 뒤로 누군가가 나타난다.

‘기자라고?’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