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93화 (93/198)

# 93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초록빛 새싹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나는 그걸 보며 말했다.

“벌써 봄이네.”

서 비서는 운전대를 잡은 채로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시간은 흘러 3월. 봄이 되었다. 나는 따스한 봄볕을 쐬고 싶어 창문을 열었다. 하지만 봄볕의 따스함이 주는 좋은 느낌보다도, 미세먼지의 매캐함이 주는 불쾌감이 내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나는 다시 바로 창문을 닫아버렸다.

“아 요새 미세먼지 너무 심한 것 같아.”

“그러게 말입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없을까?”

“그런 게 있다면 노벨상 감 아닐까요.”

“...그러게 말이다. 만약에 그런 회사가 있다면 내 전 재산을 투자할 거야. 분명 대박을 칠 테니까.”

그 말을 듣던 서 비서는 살짝 웃음기 섞인 말투로 말했다.

“3천억씩이나요?”

나는 백미러로 보이는 서 비서의 둥그런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응? 3천억?”

“네 3천억. 어제 기사에 그렇게 쓰여 있던데요. 사장님 재산 3천억이라고.”

“그래에?”

“네. 못 보셨어요?”

“아니 언제 그런 게 떴지?”

“제가 어제 문자로 보내드렸는데 사장님 이름으로 뉴스 떴다고.”

생각해보니 어제 문자가 오긴 했었다. 오랜만에 동생하고 부모님 모시고 식사하다가,

‘사장님 사장님 이름으로 기사 하나 나왔습니다. 링크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거 슬쩍 보고서는 까먹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검색창에 한상훈을 검색해보았다. 그런 다음 뉴스란으로 넘어가 보았다.

‘한상훈 의원 폭압적 대통령 청와대에 쓴 소리’

역시나 먼저 뜨는 건 이분이다. 한상훈 국회의원. 여전히 열심히 활동 중이시다. 다소 거침없는 언행에 지지층에게서는‘사이다 국회의원’소리를 들으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반대편에서는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 ‘의원의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러나 저러나 대중들의 인지도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한상훈 의원 당권 잡나? 차기 당대표 등판설 솔솔’

심지어 당대표로 나올 수 있다는 뉴스도 있다.

‘흐음...’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크롤을 더 내려 보았다. ‘한상훈 의원’이 아닌 ‘한상훈 대표’는 5번째 기사에 걸려 있다.

‘카이게임즈 판타지 워 그라운드 대흥행. 연일 급등세’

나는 그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카이게임즈의 판타지 워 그라운드가 연일 동시접속자 수를 경신하면서 흥행가도를 질주 하고 있다. 최근 배틀 로얄 장르 게임이 난립한 가운데 경쟁자들을 모두 제치고 전 세계 게임 제공 플랫폼 스팀에서 동시접속자 수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일단 먼저, 게임은 내가 본 미래대로 대흥행을 했다. 강남의 피시방에 가면 너도나도 카이게임즈의 판타지 워 그라운드를 하고 있을 정도. 심지어 나도 가끔 한다. 캐릭터에게 예쁜 옷 입혀주려고 현질도 하고. 내가 내 회사 게임에 돈을 쓰면 이것저것 떼고 다시 내게로 돌아오긴 할 것이다. 일종의 페이백처럼 말이다.

‘...카이게임즈 주가도 이에 반응. 오픈베타테스트이후 연일 급등세를 펼치고 있다. 이에 가장 함박웃음을 짓게 된 사람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한상훈 대표. 작년 말 중국계 투자업체에서 카이게임즈를 인수한 한상훈 대표는 이후 타 대주주의 지분을 흡수한 뒤, 장내 매수를 통해 지분율을 60%까지 끌어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타 대주주란 바로 마스터 T. 탁준기 이사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나름 좋은 가격에 자신의 주식을 매도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때에 비하면 지금 주가는 거의 4배 가까이 올랐다. 만날 일이 없어서 확실히는 모르지만, 매우 속이 쓰려 하고 있을 게 뻔하다. 70억 받고 판 주식이 지금은 300억 가까이 되니까.

‘흥 게임도 하지 않으면서 게임 주식을 한다고? 그게 말이 되니?’

나는 탁준기 이사에게 들리지도 않을 비아냥거림을 하며 스크롤을 더 내렸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현재 지분 가치는 총 2648억으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는 한상훈 대표의 재산은 타 자회사인 OH엔터테인먼트와 블루E&M을 합쳐 3000억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훈이는 마지막 이 문장을 보고 내 재산이 3000억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이건 내 개인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뺀 것이지만.

‘그나저나 누가 이런 기사를 쓴 거지?’

내 기사랍시고 어디서 나왔는지 보지도 않았다. 나는 스크롤을 올려서 이 기사를 쓴 곳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라이트경제뉴스’카이지 이원재 이사의 회사에서 나온 뉴스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그걸 보았다.

“음...”

뭐 사실, 나올만한 뉴스긴 하다. 판타지 워 그라운드의 대흥행과 카이게임즈의 급등. 한 번쯤 잡아서 쓸 만한 소재니까. 하지만, 이 회사에서 나왔다는 게 조금, 조금은 마음에 걸린다.

‘워낙에 속이 검은 녀석이라서...’

무슨 이상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서 비서에게 물어보았다.

“서 비서. 이 뉴스 보낼 때 우리 회사에 연락 같은 거 오지 않았었어?”

“네 왔었습니다. 이러저러한 기사 써서 내보내려고 하는데, 검토해보시겠냐고. 그래서 읽어보고 나쁜 이야기 없기에... 쓰라고 했습니다.”

“아 그래?”

“네.”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왜 그러시죠? 제가 읽어 봤을 땐 내용 좋던데요. 사장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잘 했어.

서 비서는 뭔가 자기가 잘 못한 줄 알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내 명령을 충실히 수행한 것뿐이다.

‘내 이름이 실리는 뉴스는 아주 나쁜 거 아니면 거르지 말고 내보내게 해.’

나는 좀 더 유명해지고 싶었으니까.

“그나저나. 오라클뉴스 인수는 잘 되어 가고 있대?”

“네 장부사장님 말씀으로는 이번 달 내로 마무리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음 그래에”

오라클뉴스는 중소 인터넷 뉴스 사였다.

‘투자할만한 언론사 하나를 가져와라. 상장사 비상장사 가리지 말고.’

내 명령에 장부사장이 물어온 회사들 중 하나. 요새 인터넷신문사들이 난립해서 그런지 꽤 많은 회사들이 장부사장 리스트에 올라왔는데 나는 거기서 최대한 지분이 깔끔하고, 다시 말해 대기업이나 다른 사람 입김이 들어가지 않고. 최대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평판이 좋은 뉴스회사를 골랐다.

오라클뉴스. 오라클oracle이란 따지면 선지자, 예언자란 뜻인데 조금은 묘하다. 미래뉴스를 받아보는 내가 오너가 되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오라클뉴스는 앞으로 그 이름에 걸맞게 조금 ‘미래 예언적인’뉴스를 내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정체를 숨긴 ‘익명의 투고자’에 의하여.

“그런데 그거 말고... 다른 회사 인수 건은 진척이 없네?”

“아무래도 매물이 안 나온다고 하시네요. 장 부사장님이 조금 조건을 까다롭게 고르시는지...”

“음 그러면 그건 내가 말해야겠다. 조건 완화해서. 시너지니 뭐니 따지지 말고, 그냥 괜찮은 회사 있으면 인수하는 걸로.”

“그러시겠어요?”

“그래. 이번 투자도 성공했는데. 조금 공격적으로 가야지.”

나는 마스터 등급을 달기 위한 회사 두 개는 다소 비싸더라도 사기로 마음먹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자산은 기사에 쓰인 대로 3천억이 넘어가고 있었고, 내가 굴리는 돈도 1500억원정도 되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거기서 굴리는 돈은 500억이 채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지금도 충분히 돈은 벌리고 있었지만, 여기서 한 번 더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역시나 더 높은 등급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것이다. 서 비서가 모는 차는 신논현 역 사거리에서 잠시 멈추었다. 우리집에 거의 다 온 것이다.

“그래서 이번 주 다음 주에 다른 일정 뭐 있어? 또 내가 출근해야할만한 일.”

“회사로 출근할 일은 없는데... 서울시청에 한 번 가서야 됩니다.”

“응?”

“왜 지난번에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다음 주 수요일 즈음에 서울시에서 주는 시상식 있다고요.”

“아... 그래. 그랬었지. 그거 서울 시청에서 한 대?”

“네.”

나는 깍지를 껴 머리에 대며 말했다.

“흠... 이 나이 먹고 상 받을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우리 회사는 최근 상도 받았다. 서울시에서 주최한 청년일자리 창출사업에 모범사례로 선정되어서 말이다. 상장을 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주성원 현 서울시장이다. 예전에 서울시장 테마주로 크게 벌었던 것을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인연이다. 장 부사장은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주성원 현 서울시장은 차기 대권주자 1순위로 꼽히는 사람입니다. 최근 들어서 그 주가가 더욱 오르고 있습니다.’

주성원 시장은 최근에 지지율이 더 올랐다. 시정을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지난 서울시장 투표 때 전국을 들썩거리게 만든 루머가 오히려 득이 된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만나셔서 확실히 안면을 터놓으시지요. 들리는 말로는 주성원 시장도 사장님 투자성적에 한 번 놀라고 나이에 두 번 놀랐다고 합니다.’

장 부사장은 내게 ‘대한민국에서 성공하려면 정치인들과도 어느 정도 친해져 놔야한다.’는 기조 하에 그런 말을 하는 듯 했다. 솔직히 그 사실 자체가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긴 하다. 투자에서나 사업에서나 괜히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에게 발목을 잡히고 싶지 않다.

‘음... 가서 인사하고 확실히 얼굴도장 찍어 놔야지... 나중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혹시 알아? 진짜 2년 뒤에 대통령이라도 된다면...?’

일단 시작은 좋다. 상 주는 사람과 상 받는 사이로 만나는 것이니까.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서 비서가 모는 차는 우리 집 주차장까지 왔다.

“그래 수고했어.”

“별 말씀을. 들어가세요.”

나는 차에서 내려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 오피스텔은 이제 꽤 익숙해져서, 정말 ‘우리 집’느낌이 난다. 굳이 돈을 쓰자면 서초동의 고급진 빌라나, 한남동의 부촌 같은 곳으로 이사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월세 내고 사는 게 제일 마음이 편하다.

‘띵 동~’

소리와 함께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마침, 집주인 이아영하고 마주쳤다. 청바지에 분홍색 니트, 그리고 화구가 들어있는 것 같은 커다란 가방. 이렇게 보면 완전히 미대 대학원생 같다. 나는 먼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녀 역시 살짝 고개를 숙여 내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전에 우리집 와서 자고 가며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말했던 대로, 그녀는 다시는 그렇게 취해서 추태를 부리진 않았다. 나는 인사 차

“학교 가시나 봐요?”

그렇게 물었다. 그런데 그녀는 짧게

“네”

그 말을 남긴 채 나를 스쳐 지나갔다.

‘음... 설마 도와달라는 거 안 들어줬다고 삐진 건가? 하지만 나도 도와줄 방법이 없는 걸.’

다소 격렬했던 만남이 있었지만, 우리는 이제 다시 평범한 이웃사촌으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뭐... 이게 정상일지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집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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