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92화 (92/198)
  • # 92

    거미줄에서 날아간 잠자리

    ‘톡톡’

    나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치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에프앤엠미디어 +30%’

    내가 사 모은 에프엔엠미디어는 12일 뒤 뉴스에 나와 있는 대로 상한가에 직행해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박수를 치며 환호할만한 광경이겠지만, 나에게는 일상이 돼서 그런지 조금 덤덤하다. 나는 단지

    ‘음 이걸로 네이처스기프트에서 잃은 손실은 모두 복구되었군.’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나는 바로 네이처스기프트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네이처스기프트는 사망 사고 기사가 난 월요일 –30%, 화요일 –30%, 그리고 어제 수요일은 낙폭과대랍시고, 반등에 성공해서 +5%를 찍었는데 오늘은 다시 –3%정도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순간 –6%, 그러다가도 –3%. 완전히 오락가락이다. 개미 수준에서는 절대로 예측을 할 수 없는 주가. 하지만 누군가는 이걸 보며 웃고 있을 게 뻔하다. 이 작전을 설계한 사람.

    ‘마스터T?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작전을 하는 사람은 탁준기 이사뿐만은 아니다. 하지만, 시총 8천 억대 기업을을 상대로 계략을 걸만한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탁준기 이사 혹은 그 정도 급이 되는 사람만이 가능할 것이다.

    ‘음...’

    문득 생각이 난 나는 ‘고영식품’을 검색해보았다.

    ‘고영식품 학교 납품제품에서 장 출혈성 대장균 검출’

    ‘뿔난 학부모들 고영식품 찾아가 항의’

    ‘고영식품 이강산 사장 유서 남기고 목매’

    ‘고영식품 상장폐지 절차’

    흉흉한 뉴스가 이어진다. 찾아보니 고영식품 차트가 남아 있다. 2010년 상장해서 2016년도 상장 폐지. 한창 잘 나가던 2013년대엔 시가총액이 2000억에 달했던 적도 있었다.

    ‘잘은 몰라도 가족 재산이 최소 300억은 됐겠군. 많으면 1000억까지도... 지금 가지고 있는 부동산은 확실히 초라한 수준이다...’

    지금 보니 상장 폐지 전, 그 뉴스가 뜨기 전에도 1000억 원대에서 오가고 있었다.

    ‘그래도 시총 1000억 원짜리를 상장폐지 시키다니... 거기서 얻는 이득이 상당했겠군.’

    나는 돌아와 네이처스기프트를 보았다. 그런데 마이너스에서 놀던 주가가 갑자기 +10%에 등급해 있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지금 팔고 나올까?’

    이정도면 대충 반 토막 정도에서 손실을 확정하고 나올 수 있다. 나는 매도버튼에 마우스커서를 가져갔다가, 한 번 참았다. 오히려 이 반등이

    ‘반토막 나서 고통스럽지? 지금이라도 팔아. 내가 어느 정도 손실은 보전 해줄게’

    하고 손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가장 크게 물린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일 것이다. 어닝서프라이즈를 보고 130억어치를 매수했으니.

    ‘으으 생각할수록 화나네.’

    이 녀석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내 돈을 가져갈 거라 생각하니 화가 난다.

    ‘내일 보자 이새끼들...’

    나는 커서를 뒤로 물렸다. 내일 확실한 호재가 뜬다. 식약처에서 뜬 뉴스. 이건 국가기관에서, 공신력이 있는 곳에서 나오는 뉴스이기 때문에 분명 반등이 나온다. 지금보다 더 좋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말이다. 좋은 타이밍에 물을 탄다면, 어쩌면 이득을 보고 나올 수도 있다.

    ‘그래 내일까지만 참자. 오늘 가격이 어떻게 되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예 HTS를 꺼버렸다.

    *

    금요일. 나는 8시 55분에 천천히 뉴스를 읽고 9시 장이 시작됨과 동시에 에프엔앰미디어를 살살 팔았다. 이 사이트에서 연재된 무협소설이 중국 내에서 게임화, 드라마 화 된다는 뉴스를 타고 주가는 +16%에서부터 시작했지만, 나는 더 욕심을 내지 않고 주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네이처스기프트에서 본 손실을 만회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예정보다 많은 주식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미안 나는 여기까지만 먹을게.’

    +20%. 오늘도 상한가를 찍을 것처럼 상승세를 타려던 주가는 내 매도에 상승폭을 줄이며 하락했다. 몇몇 개미들은 내 매도세를 보고 놀라서 같이 떨어져 나왔다. 그걸 본 나는 매매를 멈추고 잠시 기다렸다. 남은 물량은 오후나, 다음 주 월요일 즈음 팔아야 겠다. 이쪽 매매를 마친 나는 다시 네이처스기프트로 넘어와 보았다. 네이처스기프트는 오늘은 –1% 보합권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그걸 유심히 지켜보았다.

    ‘오후 2시에 결과가 나온다... 작전을 치는 녀석들이라면 식약처에 연줄을 대놓든 해서 100%결과를 알고 있을 거야. 그러면 반등이 나온다. 그 때, 잘 봐서 물을 탄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때였다. 그런데 오전 11시 즈음. 갑자기 주가가 –8% 밀리기 시작했다.

    ‘뭐지?’

    나는 네이처스기프트를 검색해보았다.

    ‘네이처스기프트 제품 먹고 두 번째 피해자 발생?’

    ‘속보 네이처스기프트 제품 두 번째 부작용 보고’

    “뭐라고?”

    나는 놀라 소리쳤다. 나는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신 모씨(42)는 갑자기 어지러움증과 함께 미열이 올라...’

    ‘최근 파워레드V를 복용한 것으로...’

    ‘현재 진찰 후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 째 피해자. 하지만 솔직히 대단치 않은 뉴스다.

    ‘아니 어떤 증상도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입원을 했다고?’

    하지만 확실히 투자심리를 악화시킬만한 뉴스긴 하다. 뉴스가 올라온 것은 캐치뉴스. 가끔 보이는 중견 인터넷뉴스다.

    ‘...이런데는 돈만 주면 기사를 써준다... 대원일보 라인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이 두 번째 피해자 신 모씨. 첫 번째 진짜 사망했으니 잘 몰라도 병원에 입원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꾸며낼 수 있다. 나는 주식창을 보았다. -12%. 아무리 반토막이 났다지만 네이처스기프트는 아직 시총 4000억대의 회사다.

    ‘누구 한명 입원시키고 시총 480억을 움직인다면...’

    못할 것도 없다. 고영식품 건을 보면 알지만, 작전을 치는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 하나는 쉽게 쳐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16%. -18%. 계속해서 떨어지는 주식창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게 마지막 개미털기 아닐까? 2시 호재에 상승 반전 시키려는?’

    나는 잠시 이원재 이사가 했던 제안을 떠올려보았다.

    ‘200억 정도 들이시면 기대값이 60억은 나오는 물건입니다.’

    그 물건을 받을 타이밍이 지금인지도 모른다. 생각한 나는 과감하게 매수를 하기 시작했다. 주가는 –20%, -24%. 거의 패닉에 가까운 매도세를 보였지만. 나는 침착하게 소량. 소량씩 매수를 했다. 그런데 요상하게 나오는 매물을 챙기려고 하다보면, 어떤 사람이 또 와서 채가는 사람이 있다. 나와 그 사람의 매수세에 주가는 더 떨어지지 않고 반등하기 시작했다. -22%, -20%.

    ‘이거... 이 녀석?’

    나는 슬쩍 뭉텅이로 주식을 매수해보았다.

    ‘20억원 매수.’

    내가 과감히 거액을 베팅하자, 잠시 매도세가 멈춘다. 그런데 동시에 –18%. 그 어떤 녀석도 10억 가까이 되는 물량을 챙겨갔다.

    ‘이 녀석이로군!’

    찌를 당기는데, 묵직하다. 나는 여기서 정체를 모를 매수자와 경쟁적으로 매수를 하기 시작했다. –16%, -14%, -12%.

    ‘시발 이거 완전... 대놓고 작전이잖아.’

    더 이상 눈치 볼 필요가 없다. 나는 계속해서 주식을 사들였다. 두 큰손이 대량매수를 하자 주가는 계속해서 상승했다. -6%, -2%. 결국 주가는 방금 전 두 번째 피해자 뉴스가 나오기 전 수준으로 올라왔다. 나는 여기서 매수를 잠시 멈추었다. 혹시나 모를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30분. 나는 잠시 숨을 죽인 채 주가를 더 지켜보았다. 주가는 보합 근처에서 잠시 쉬고 있다. 나는 –5%대에서 매수를 걸어놓은 채 잠시 기다렸다.

    ‘곧 있으면 2시... 주가는 반등한다...’

    나는 가만히 그걸 지켜보았다. 방금 격렬하게 흔들렸던 주가는 거의 삼십분이 넘도록 그 즈음에서 놀고 있다. 나는 호가창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도 휴대폰을 들어서 주식게시판에 가보았다.

    아니 시발 뭐야 이거 내렸다가 올랐다가 오늘 단타치다 좆됐다 시발

    이거 완전 작전주네요. 방금 뉴스 나오자마자 급락했다가 바로 올린거 보면

    주포 운전 개같이 하네... 같이 좀 먹자 주포야

    대게 주식게시판의 글 수는 주가의 급등락 지수와 동일하다. 글의 격렬함 또한 그렇다.

    3년간 보유했던 주주인데 이거 더 못 참겠네요. 금감원에 신고하겠습니다.

    그런 글도 보이지만, 솔직히 그런다고 해서 작전 세력이 잡힐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애초에 이건 피해자도 있고, 그걸 보도해주는 언론도 있을 정도니까. 이렇게 정밀하게 시나리오를 짜고 들어간 것에는 금감원도 어떻게 주가조작을 했다고 증명을 해내기가 어렵다. 나는 문득 이아영이 했던 말, 그리고 그녀가 보여줬던 사진을 떠올렸다.

    ‘뉴스메이커라는 사람이에요.’

    마른 체형, 길게 위로 올린 머리에, 옆으로 째진 예리한 눈. 그리고 창백한 피부.

    ‘...무슨 리자드맨 같았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호가창을 지켜보았다. 오늘도 점심은 피자다. 주식을 하다보면 이렇게 수천억 부자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게 만든다.

    ‘돈이 대체 뭔지...’

    하지만 지금 당장 수백억이 달려 있는데 딴 짓을 하긴 어렵다.

    ‘젠장 이번 일만 끝나면 오늘 저녁은 최고 호화로 먹겠어.’

    나는 그런 다짐을 하면서 주가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약속의 오후 2시가 다될 무렵. 오후 1시 54분. 갑자기 주가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8%, +12%. +16%. 아직 뉴스는 뜨지 않았는데, 역시나 주가가 먼저 오른다.

    ‘이러니까 한국 개미들이 불쌍하지.’

    대다수 개미들은 오늘 식약처 발표가 있는 지 없는 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나마 정보가 빠른 개미들도 식약처 발표 내용은 더더욱 모를 것이다. 알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식약처 내에 뭔가 친분이 있지 않는 한. 주가는 +22%정도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그러다가 2시에

    ‘속보 식약처장 네이처스기프트 제품에 이상 없어’

    그 뉴스가 뜨면서 바로 +30% 상한가를 말아 올려버렸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그걸 지켜보았다.

    ‘오늘 오전에 산 게 100억 살짝 넘었지?’

    대충 계산을 해보니 이제 이득권이다. 물 타기 대성공. 이제는 언제 나올지를 생각해봐야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지금 보다는 조금 더 올라야한다. 하한가 두 번을 맞기는 맞았으니... 하지만 한 번 루머가 있었으니... 제품 이미지는 이미 날아간 거고 소비자들도 굳이 이 제품을 사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대중들은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당시의 이야기만 기억하지 그 후의 이야기는 기억하지 않는다. 나중에 억울하다고 해봐야, 이미 네이처스기프트는 대부분의 대중들에게

    ‘먹고 사람이 죽었던 건강기능식품’

    으로 각인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의혹이 완전히 해소된다고 해도 제값을 받을 수는 없다...’

    생각한 나는 여기서 적당히 팔고 나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여긴 누군가가 쳐 놓은 거미줄이다. 걸렸다면 무사히 살아나오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그래도 가장 큰 대어가 살아 나갔으니... 작전 친 놈들도 꽤 엿을 먹었겠지. 언론에 식약처까지 동원된 것을 보면 설계하는 데 꽤나 공을 들였을 게 뻔한데 말이지...’

    오늘 거의 100억 가까이 손실도 난 적이 있었는데 살짝 이득을 보고 나가니까. 작전을 친 사람들은 눈앞에서 100억을 놓친 셈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그쪽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는 타이밍. 하지만 무사히 나왔다고 해서 내 기분이 모두 풀린 건 아니었다.

    ‘이 녀석들...’

    이렇게 비열한 방법으로 돈을 타내 가다니,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기회만 된다면, 아쉬움의 한숨이 아니라 비통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주고 싶다. 기회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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