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91화 (91/198)

# 91

뉴스메이커(6)

‘우우웅~’

알람이 울린다. 나는 눈을 뜨고 일어났다. 우리 집 소파에서. 소파에서 자서 그런지 왠지 몸이 찌뿌드 하다.

‘젠장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자지도 못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중얼 거리면서 침대로 쪽으로 와 보았다. 우리 집 침대에는 쿨쿨, 이아영이 자고 있다. 어제 입었던 올블랙 패션 그대로. 예쁘긴 예쁘다. 자는 모습을 보니 천사가 따로 없다. 단지 내가 천사의 그 뺨을 때리고 싶을 뿐.

‘아오...’

내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빰~ 빰빰~ 빰빰빰빰~’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 안에서, 이윽고 천사가 눈을 뜬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엄마야!”

하고 깜짝 놀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야구에서도 스트라이크 세 번이면 아웃인거 아시죠?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저... 설마 어제도 업혀 왔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자기 주량 모르시더군요. 아영 씨 주량은... 포도주 두 잔입니다. 소주도 두세 잔 정도면 될 거 같고... 맥주 한 캔 정도라고요. 술자리 같은 덴 웬만하면 가지 말고, 혹시 어쩔 수 없이 낄 일 있으면 사이다나 드세요.”

그건 사실이었다. 어젯밤. 그녀는 딱 두 잔. 포도주 두 잔을 비우고 나를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오빠 밖에 없어서 그래요오~’

다시 오빠라고 부르는 지경까지 갔다. 그녀는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평소엔 그것보다 더 잘 마시는데 어제는 분위기에 더 취했나 봐요.”

어제 분위기 좋았다. 그녀가 딱 술을 마시기 전까지는.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자기가 덮고 있던 이불을 개려고 했다.

“아아 그거 내버려 둬요.”

“그래도 죄송해서...”

“죄송하면...”

나는 뭐라고 더 하려다가, 화제를 바꾸었다.

“그나저나 어제 했던 말 기억나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어제... 했던 말이요?”

“네 복수 같은 거 꿈꾸지 마라. 기억 안나요?”

내 말에, 그녀가 더 놀란다.

“복수요?”

완전히 필름이 끊겼나보다.

‘그 땐 한 잔 마셨을 때인데...’

나는 잠시 어제 밤 일을 떠올렸다.

*

“부모님의 원수에요. 그 사람들.”

나는 놀라 그녀에게 말했다.

“원수요?”

그녀는 잠시 머뭇하더니, 잔에 들어 있는 포도주를 단숨에 비웠다. 격에 안 맞는 것 같기는 했지만, 용기를 내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나는 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그 두 번째 잔에 필름이 끊길 줄도 모르고. 이러나저러나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계속해서 했다.

“네. 저 혹시... 고영식품이라고 아세요?”

들어본 적 없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거기... 저희 부모님이 하시던 회사에요. 공공기관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회사인데... 한 때는 정말 잘 됐어요. 아버지가 정말 열심히 하셨거든요. 그래서 코스닥에도 상장이 돼서... 한때 저희 집은 정말 잘 살았었어요.”

‘부의 원천이 식료품 쪽이었나... 한 때 잘 살았다니... 지금도 잘 사는데 그 땐 진짜 잘 나갔었나보군...’

“그런데 3년 전이었나. 잠깐 회사가 일시적으로 어려워 진적이 있었대요. 거래처가 파산하는 바람에 덩달아 저희 회사도 어려워 진거죠. 그 때 아버지는 모종의 거래를 받으셨다고 해요.”

“거래요?”

“네... 잘은 모르겠지만... 회사 주가를 가지고 하는 어떤 거래였던 것 같아요.”

작전을 펼 때 대주주의 도움 혹은 최소한 용인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거절하셨죠. 자기 회사, 그리고 직원들을 누구보다 아끼시는 분이셨으니... 그런데...”

그녀는 다시 한 번 포도주를 들이켰다. 생각해보면 그쯤에서 자제 시켰어야 되는데, 그거가지고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납품하는 제품 중 하나에서 치명적인 대장균이 검출됐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뉴스가 뜨고 아버지 회사는 급속도로 망가졌죠. 주가는 폭락하고 거래는 끊기고 어디서 조사가 나오고... 아버지는 그걸 견디지 못하셨어요.”

그녀는 다시 한 번 잔을 들이켰다.

“곁에서 지켜드렸어야 됐는데... 저는 미국에 있어서 그런 줄 전혀 몰랐어요. 귀국하고 나서... 제가 본 유서에 마지막에 쓰인 문구가... 아영아 내 딸아 나는 한 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 라고...”

그녀는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참지 못했다. 나는 잽싸게 티슈를 뽑아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스스로 눈물을 닫으며 말했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뒷이야기를 들었어요. 뉴스메이커 그 사람이 와서 아버지와 딜을 하려고 했다는 것, 그게 결렬 되자 뭔가 이상한 일이 생겨나기 시작 했다는 것. 하지만 결국 그 사람들 마음대로 됐어요. 회사는 코스닥에서 퇴출되고 금방 망해버렸죠. 어머니가 최대한 수습을 해서 얼마정도 재산을 지키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어머니 몸에는 종양이 생겨버리셨죠.”

그녀는 나머지 잔을 모두 비운 뒤 내게 말했다.

“오빠.”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보았다. 다시 ‘오빠’란 단어가 나와서.

‘얘 취했구나.’

하지만 그 땐 이미 늦었다.

“예전에 저 두 번이나 도와줬을 때 생각했어요. 이 오빠는 좋은 사람이다. 이 오빠는 믿을 만하다. 게다가, 오빠는 주식도 잘 알잖아요?”

“...네”

“그러니까, 복수해줘요. 우리 부모님 복수를. 제가 할 수 있는 사례는 다 해드릴게요.”

고개를 저었다.

“안돼요. 그건 어려워요.”

“네 왜요?”

“복수를 한다니...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나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떠올려보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복수는 잊어버려요. 그 사람들... 아영 씨보다 훨씬 돈도 많고, 힘도 쌘 사람들이에요. 부모님의 원수는 원통하겠지만... 차라리 경찰이나 검찰에 고발을 해보는 게...”

“그건 안돼요. 그 때에... 우리 부모님이라고 해서 경찰이고 검찰이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언론이 말하는 대로 휘둘려서 우리 부모님을 죄인 취급했죠.”

나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어렵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라면... 아마 그 쪽에도 꽤 연줄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포기하세요. 복수는”

*

“어제 다 말했어요. 아영씨 부모님 하고... 그 때 이야기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요?”

“네.”

“하아...”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어떻게 혼내줄 방법이 없는지 물어보려고만 했는데...”

“어쨌든 들었으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 복수는 꿈꾸지 마세요. 그건 어렵습니다.”

내 말에, 그녀는 잠시 눈을 내려 깔더니, 내게 말했다.

“...그건 저도 알아요.”

그걸 보니 살짝 불쌍하긴 하다. 나를 보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이제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술은... 진짜로 마시지 않을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녀는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고 우리 집 밖으로 나섰다. 그녀가 밖으로 나간 뒤 나는 벌렁 내 침대에 누웠다.

‘역시 여기가 편하군.’

그녀의 향수냄새가 조금 남아 있다. 문득,

‘이번이 두 번째인데... 혹시 고자라고 욕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만취한 여자를 어찌 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그녀 역시 원하지 않았을 테고. 나는 잠시 그녀에 대해서 생각했다.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녀가 복수를 하겠다는 건 어불 성설이다.

회사 정리하고 남은 돈이 백억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그거 가지고 이 쪽 전주인 탁준기랑 부딪힌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탁준기가 도움을 받는 정,재계, 언론의 힘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어찌 생각하면 ‘복수’란 단어를 속에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일지도 모른다.

‘일찍 유학을 갔다와서 수연 그룹이나... 그 쪽의 위상을 잘 몰라서 그럴 수도... 괜히 이상한 짓 하다가 돈이나 날리지 말아야 할텐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 참’

침대에서 스프링처럼 일어났다.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나도 130억이 물려 있다. 지금은 한 60억정도 하게 됐지만.

‘70억이나 날리다니...’

다른 주식에서 벌면 되긴 하지만 70억이 적은 돈은 아니다.

‘어떻게든 잘 빠져나와야 하는데...’

나는 8시 55분에 뉴스가 오자마자 바로 인물검색에 들어갔다. 그런 다음 12시간 뒤, 그리고 12일 뒤 뉴스에 식약처장 ‘한중길’을 써넣었다. 그런데 떴다. 12일 뒤 뉴스에

‘식약처 네이처스기프트 조사 결과 발표’

눈이 뜨인 나는 바로 그걸 클릭해보았다. 그런 다음 빠르게 뉴스를 훑었다.

‘지난 주 네이처스기프트 사의 제품을 복용하고 사망한 사례가 나옴에 따라, 네이처스기프트 전량 조사에 착수했던 식약처가 23일 오후 2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시선을 내려 보았다. 여기서 나쁜 결과가 나오면 주식는 되는대로 정리하고 나온다. 이 결과가 조작된 것인지 아닌지 몰라도, 공매도 세력은 끝장을 볼 셈이라고 봐야한다. 이아영 부모님의 고영식품 때처럼. 반대로 좋은 이야기가 나온다면, 세력은 아래로 한 번, 위로 한 번 해먹을 생각이라고 봐야 한다.

‘이원재 이사가 내게 그런 제안을 했다는 건... 웬만하면 두 번째 케이스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패혈증을 일으킬만한 직접적인 원인은 찾아낼 수 없었으며 이 때문에 네이처스 기프트의 관리 소홀을 탓할 수는 없다고...’

2번 케이스다.

‘23일이라면?’

이번 주 금요일이다.

‘금요일 오후 2시 조사 발표... 그렇다면 그 때까지 나눠서 물을 타 볼까?’

나는 HTS를 켜서 네이처스 기프트 주가를 확인해보았다. -30% 두 번이나 연속 하한가를 맞은 네이쳐스 기프트는 오늘도 –6%대에서 시작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어디까지 내릴지, 그리고 어디까지 올릴지가 관건인데...’

사실 그것은 작전세력이 어느 정도 다 계산을 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개미들이 얼마나 용감하게, 큰 금액을 들고 들어오는 지, 그걸 위에서 다 지켜보고 나서 하락을 멈추거나 상승을 시킨다. 그러니까 절대로, 개미들은 작전주에서 이득을 낼 수 없다. 정말 운 좋은 소수의 개미들 빼고는, 그 사람들도 대부분 이런데서 놀다가 결국 손실을 보게 된다.

‘하지만 나는 확실한 카드가 하나 있으니까...’

‘금요일 오후 2시 공공기관에서의 긍정적인 뉴스’

이건 확실히 단기 반등이 올만한 자리다.

‘그럼 그 때까지 주시를 하자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른 주식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열심히 해야지. 손실을 만회하려면...’

그런데 나는 바로 내 다짐을 살짝 어그러뜨리고 말았다. 거의 800억 가까이 돈을 쏟아 부은 카이게임즈가 +6% 출발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아 이제 한창 CBT 중이겠지...?’

이제 슬슬 너도 나도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 같다. 사실 6%도 급등이긴 하지만, 카이게임즈가 커질 것을 생각하면 이것 역시 작은 시작일 뿐이다. 내 예상대로라면 카이게임즈는 올해 내로 1000%에 가까운 수익률을 올릴 것이다. 나는 카이게임즈 주식게시판에 가보았다.

지금 파는 개미들. 게임은 해보고 파는 겁니까? 이거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대작인데

게이머들 평가 다 좋습니다. 대개 국산 게임은 까고 보는데... 이건 달라요.

한상훈 이 사람 안목이 대단하긴 한가봄 갑자기 800억 베팅하더니. 계속 오르네.

들리는 말로는 천재 투자자라던데 진짜가봐요. 한 대표님 믿고 무조건 홀딩 갑니다.

그걸 본 나는 확 기분이 나아졌다. 역시 나를 주식으로 따지자면, 슈퍼 우량주다. 잠시 흔들릴 수는 있어도 우상향은 틀림 없다. 쭈욱.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카이게임즈 주가는 7%, 8%, 9% 쭈우욱 상향을 했다. 나는 그걸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 주식은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줄 거야. 올라가자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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