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90화 (90/198)
  • # 90

    뉴스메이커(5)

    나는 잠시 굳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주식 이야기를 꺼낸 것도 이상한데, 하필 그 네이처스기프트라니.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네 최근에 루머 때문에 급락한 주식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왜 그러시죠?”

    물론 130억이 물려 있다는 말은 빼고.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저 그게...”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저 저녁식사 하셨나요?”

    방금 배가 고파서 나갈 참이었다.

    “아니요.”

    “그러면 저녁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 하면 안 될까요? 저녁은 제가 살게요.”

    이런 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올려보는데 거절할 수가 없다. 그녀 사정이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요.”

    “그러면... 혹시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본래 혼밥 할 생각에 김치찌개나 순대국밥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미녀랑 저녁을 먹는다니 메뉴를 바꿔야할 것 같다.

    “연어...?”

    무심코 나온 메뉴인데, 그녀는 그걸 바로 받았다.

    “아 연어라면 제가 괜찮게 하는 집 알아요. 그러면 저... 외출 준비하고 나올게요. 10분... 아니 15분 뒤 이 복도에서 다시 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그녀는 그렇게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문을 닫은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지? 왜 하필 네이처스기프트를...? 혹시 혼자서 주식을 하다가 물리기라도 한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내가 방송 나온 걸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서, 주식 이야기를 잠깐 하기도 했었다. 그 때는

    ‘전문가가 아니면 주식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역시 그게 좋겠지요?’

    그런 대화를 주고받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하지 않는 다고 해놓고... 혼자서 한 건가? 결국?’

    하라고 하든 하지 말라고 하든, 주식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흐음... 그래서 손실 보고 속상해서 술을 먹고...?’

    그런 시나리오를 생각하니 조금 깬다. 그런데

    ‘엄마.... 아빠...’

    그 말을 했던 것도 떠오른다.

    ‘주식 잃고 울면서 엄마 아빠를 찾을까?’

    그건 아닐 것 같다.

    ‘뭐지 대체?’

    조금 있으면 그녀 입으로 직접 듣게 될 텐데, 그거 기다리기가 어렵다. 나는 잠시 내방을 빙빙 돌다가, 문득 내가 츄리닝 차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데이트인데 이러고 나갈 수는 없다. 나는 드레스룸으로 와서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미녀와의 데이트에 맞는 복장으로,

    그리고 약속 시간보다 살짝 빨리 복도 밖으로 나왔다. 마침 이아영도 자기 집에서 나온다. 세련되어 보이는 올블랙 패션이다. 검은색 코트, 부츠도 가방도 검은색이다. 반면 그걸 걸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하얘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평소에도 예쁜데, 이렇게 전력을 다해서 치장을 한 그녀는, 정말 아름답다. 왠지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가시죠.”

    *

    “이쪽으로.”

    나는 이아영을 따라 청담동 가로수길의 골목을 따라 들어갔다. 골목 한켠에 한자로 물고기 어漁가 달려 있는 음식점이 보인다.

    “저기에요.”

    딱 봐도 고급스러워보인다. 나는 그녀와 함께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그러던 중 대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20대 남자들이 옆을 지나갔다. 그런데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아영한테 쏠리는 게 느껴진다. 남자는 다 똑같다. 옆에 자기 여자가 있는 게 아니라면, 미녀에게는 눈이 돌아간다.

    ‘우와 진짜 예쁘다.’

    하고 속으로 외치는 게 내 귀에 들릴 지경이다. 그 때 이아영이 내게 말했다.

    “예약이 돼서 다행이에요. 급하게 전화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네.”

    이제 그 남자들은 나를 쳐다본다.

    ‘저 놈은 뭐야? 뭔데 저런 미녀랑 데이트를 하는 거야?’

    하는 눈초리다.

    ‘옆집 살아서 그런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그 음식점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 들어서니 여자 아르바이트 생이 다가와 묻는다.

    “예약하셨습니까?”

    뒤에 따라오던 이아영이 대신 말한다.

    “이아영이요.”

    그런데 여자 아르바이트생도 그녀를 보더니 잠시 멈칫한다. 예쁜 건 여자 남자 가리지 않나 보다.

    “아. 잠시만요오. 이쪽으로”

    나와 이아영은 아르바이트생의 안내를 받아 자리 안으로 들어섰다. 이아영은 이곳에 자주 와 본 모양이다. 그녀는 메뉴판을 들어서 내게

    “여긴요. 이게 맛있고...”

    이래저래 설명을 해주었다. 딱 봐도 알 것 같다. 그녀는 미식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그럼 아영 씨 추천대로 할게요.”

    “네 그럼.”

    그녀는 아르바이트생을 불러서 능숙하게 주문을 했다.

    “...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주문을 받은 아르바이트 생이 떠난 후, 나는 그녀를, 그녀는 나를 쳐다보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던 중,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참.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번 저녁은 제가 사지만... 이것가지고 감사의 표현이 다 될지...”

    “네 그건 괜찮습니다.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조금 곤란하겠지만요.”

    “아 네. 죄송해요. 제가 제 주량? 이라는 걸 잘 몰랐어요.”

    “네 그러실 수도 있지요. 미국이랑 한국이랑 술 문화가 많이 다르니까요.”

    “...네”

    그녀가 먼저 말을 여니 나도 자연스럽게 말을 하게 된다.

    “그나저나 네이처스기프트란 회사는 왜 물어보신 거예요? 혹시 주식이라도 사신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그녀는 말꼬리를 흐리더니, 이어서 말했다.

    “혹시 한상훈 씨는 어떻게 생각하나 해서요. 이번 폭락에 대해서”

    나는 그 말을 듣고 먼저 생각했다.

    ‘이름이 불린 건 이번이 처음으로군... 여태 그 쪽, 오빠, 아빠. 갭이 큰 대명사로 불리기만 했는데’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평범한 대사를 읊었다.

    “폭락... 할 만하다고 생각하지요. 아무리 그래도 사망자가 나왔다고 하니까요... 이건 사실관계를 따지기 이전에 주가는 폭락할 만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역시... 그렇군요. 저 그런데... 혹시 이번 일이... 작위적이란 건 느끼지 못하셨나요?”

    나는 아까 그 종목명을 들었을 때보다도 더 놀랐다. 그래서 말하고 말았다.

    “그건 어떻게...?”

    그러자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역시 전문가 눈에도 그렇게 보였군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확실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요. 뉴스가 나오기 전에 공매도가 대량 나왔다는 점이랄지... 그런 것 정도요.”

    그녀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자신의 백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내 앞에 건네주며 말했다.

    “저 이거 한 번 보시겠어요?”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봉투다. 나는 그걸 받아서 내용물을 확인해보았다. 거기 안에는 세 장의 증명사진이 있었다. 그런데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다. 세 장 중 한 명 마스터T, 수연여행의 탁준기 이사다. 나는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뭐야 이 사람은 어떻게 아는 거야?’

    게다가 나머지 두 명도 낯이 익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아마 이번 폭락... 이 사람들이 만든 것일지도 몰라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얘는 이걸 어떻게 알지?’

    나는 그런 생각은 숨기고 넌지시, 그녀에게 말했다.

    “이 사람들이 누군데요?”

    그녀는 사진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은 이원준 대원일보 이사에요. 대원일보의 후계자...”

    ‘아... 이 사람... 카이지의 형이었구나.’

    어디서 봤다 싶었는데, 이원재 이사의 형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사람은 수연여행의 탁준기. 투자계 큰 손이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마지막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강주혁이란 사람이에요. 딱히 직함은 없는데 별명이 뉴스메이커.”

    “뉴스메이커?”

    “네. 말 그대로 뉴스를 만들어서 주식을 올리고 내리고 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래요. 그래서 이걸로 큰돈을 번다고...”

    나는 그 사진들을 보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걸 저한테 알려주는 이유가 뭡니까?”

    “혹시... 이 사람들을 혼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요.”

    나는 잠시 시선을 내려 깔았다. 이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나도 그렇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 사람들을 ‘혼내 주려고’할까?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왜지요? 네이처스기프트를 산 것도 아니고... 혹시 이쪽 회사와 관련이 있으신가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것도 아니에요.”

    “실례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침 아르바이트 생이 음식을 들고 오는 바람에.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끊겼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나온 화려한 음식들을 보며 그녀는 내게 말했다.

    “그럼 일단 저녁 드시고 이야기해요. 이집 연어 정말 맛있거든요.”

    *

    “감사합니다.”

    “네에”

    그녀는 아르바이트생이 건네주는 영수증을 받아들고 문 밖을 나섰다. 생각해보니 최근 들어서 남의 돈으로 뭘 먹어본 게 오랜만인 것 같다.

    “어떠셨어요? 식사?”

    “맛있었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맛은 있었다. 양이 조금 적어서 그렇지. 조금 여성 취향인 음식점이어서 그런지 메뉴가 다 양이 적었다. 그런데,

    “조금 양이 적었죠? 남자가 먹기에는.”

    그녀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아 네 조금요.”

    “으음...”

    우리는 잠시 가로수길을 걸었다. 내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공영주차장을 향해. 나는 그녀가 주식 이야기를 다시 꺼내길 기다렸다. 그녀는 결국 그 음식점에서 주식 이야기를 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 뭘까? 그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왜 혼내주려고 하는 거야?’

    더 참기 힘들다.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그녀가 갑자기 서더니 말했다.

    “아 이 집 빠에야 잘하는데.”

    휙 보니 바인지 레스토랑인지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의 음식점이 있다. 그녀는 말했다.

    “드시고 가실래요. 아직 배가 고프시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사실 집에 가서 라면이라도 하나 더 끓여 먹을 참이었으니까. 안에 들어와 보니 진짜 분위기가 좋다. 앉아 있는 사람들도 다들 남녀 연인들 혹은 연인이 될 것 같은 사람들뿐이다. 이번에도 주문은 이아영이 했다.

    “여기 빠에야 하나하고요.”

    그런데, 그녀는 의외로 먼저 술 이야기를 꺼냈다.

    “포도주... 드실래요?”

    ‘어제도 술 때문에 업혀와 놓고는?’

    하지만 그런 생각은 단 1초정도 지나갔을 뿐이다. 미녀가 먼저 술 먹자고 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안주와 함께 소믈리에가 와서 퍼포먼스를 하고 잔을 따라주고 갔다. 그녀가 먼저 잔을 든다. 나 역시 그녀를 따라서 잔을 들었다. 이런 걸 보면

    ‘술을 엄청 좋아하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부모님의 원수에요.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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