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뉴스메이커(4)
나는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 보니 그녀의 긴 속눈썹 위에 눈물방울이 맺혀 있다.
‘울어?’
그녀가 우는 걸 보니 죄책감이 든다. 아무것도 한 건 없었지만, 요상한 생각을 하긴 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영 씨 정신이 들어요?”
그녀는 대답 없이 울고만 있다.
‘뭐야 대체... 갑자기 엄마 아빠 찾으면서 울다니...’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화장대 위에 티슈가 있다. 나는 그걸 가지러 화장대로 향했다. 그런데 거기에 사진이 하나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교복을 입은 나이 어린 이아영이다. 지금과 다르게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 이렇게 보니 완전 청순 미녀다.
‘조금이라도 칼을 댄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그리고 그녀의 뒤로 어머니와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는 인상 좋게 생겼고, 어머니 역시 미인이다. 그녀는 꽃다발을 든 채 두 사람 사이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식으로 보인다.
‘음...’
나는 그 사진에서 몇 가지를 더 캐치했다. 아버지의 시계, 그리고 어머니의 반지. 딱 봐도 부티가 난다. 이 아가씨는 확실히 금수저다. 나는 그걸 보다가 티슈 몇 장을 들고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에 마스카라가 옆으로 번져 살짝 우스워지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아영 씨.”
그녀는 말이 없다. 그 사이 깊이 잠에 든 것 같다. 나는 들고 온 티슈로 꼼꼼히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울지 마라... 네가 울긴 왜 우니. 초 글래머에, 순정 미녀에, 백억 대 부자인데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울어. 네가 울면 대한민국 여자애들 다 울어야 돼.”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나도 기연을 만나 부자가 되긴 했지만. 그전까지의 삶은 그야말로 고생의 연속이었다. 노력을 해도 해도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부모에게 도움을 받는 건 고등학교 까지. 그 이후로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세상에 부딪히는 것. 그게 대한민국 90% 남자, 여자의 운명이다.
‘금수저도 뭐 힘든 일이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돈 때문에 시달릴 일이 없다면, 다른 게 뭐가 크게 문제가 있겠는가 싶다. 눈물을 모두 지워준 나는 그녀를 대충 이불을 덮어 주었다. 외출복을 그대로 입은 상태여서 꽤나 답답하겠지만, 그건 그녀가 알아서 할 일이다. 전에 친구처럼 편하게 벗겨줄 자신은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편하게 벗겨주기만 할 자신이 없다.
‘그럼 갈게 난.’
일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덥썩. 그녀가 내 소매를 잡았다.
“가지마아...”
나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을 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가 남자한테 가지 말라고 하는 거 맞지? 그럼?’
다시 이상한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그런데 그 때 그녀가 한마디를 더 한다.
“아빠”
그 단어를 들으니 들떠 있던 기분이 확 가라않는다.
‘이번엔 아빠냐...’
그녀는 나를 아빠로 착각하고 있나보다. 나는 내 소매를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살포시 놓았다.
‘난 네 아빠가 아니란다.’
그럼런 다음 나는 그냥 그녀를 내버려 둔 채로 돌아섰다. 여기 더 있다 보면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동물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것 같아서, 나는 더 이상한 생각이 들기 전에 그녀를 내버려둔 채 우리 집 안으로 돌아왔다.
선반 위에는 맥주와 과자가 그대로 놓여 있다. 나는 그걸 들어보았다. 맥주는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것처럼 여전히 차갑다. 생각해보면 그녀 방에 갔다 온 게 길어봐야 3분정도 될 것이다.
‘체감은 3시간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시간과 정신의 방에라도 갔다 온 것 같군.’
나는 그 차가운 맥주를 들고 개인 영화관에 가는 대신 그냥 내 소파 위로 왔다. 마개를 여니
‘
피식!’
탄산 소리와 함께 맥주가 조금 흘러나온다. 나는 그걸 마시면서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이아영에 대해서. 다 큰 처자가 엄마, 아빠타령하며 울다니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는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혼이라도 했나? 아빠가 엄마를 버려서 그래서 가지 말라고 한 건가? 아니면...’
나는 오늘은 영화를 보는 대신, 나 스스로가 이런 저런 시나리오를 쓰며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
다음날 아침 나는 출근을 하지 않은 채 집에서 미래 뉴스들을 받았다. 후루루룩 빠르게 돈 되는 뉴스를 걸러내고, 12시간 뒤, 인물 검색에 ‘한중길’을 검색해 넣었다. 현재 식약처 처장. 뉴스가 하나 툭 튀어나온다.
‘한중길 식약처장. 네이처스 기프트 상품 전수 조사 지시’
“오!”
나는 소리를 질렀다.
‘됐다.’
이 사람이다. 네이처스기프트에서 반전을 줄 수 있는 키맨. 나는 신이나 12일 뒤 뉴스에도 이 사람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한중길 식약처장 오송 바이오연구센터 방문.’
다른 뉴스가 나온다. 조금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이걸로 반전의 실마리는 얻었으니까. 잘만 하면, 나는 세력이 그리는 그림보다 앞서서 주가를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12주 뒤, 12달 뒤 뉴스에도 한중길을 검색해 넣었다.
시스템 상. 12주 뒤, 12달 뒤 뉴스에서도 내일 뉴스가 뜰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별 게 뜨진 않는다. 아무래도 확률이 낮긴 할 것이다.
‘결국 승부는 12시간 뒤 아니면 12일 뒤 뉴스에서 날 텐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HTS를 켜보았다. 9시 땡 되는 것과 함께, 네이처스기프트는 오늘도 하한가에 가 있었다. -30%를 두 번 연속으로 맞으니 바로 반토막이 난다. 여태 매일 상한가만 맞아보다가 하한가를 맞아보니 확실히 체감이 된다. 주식은 무서운 게임이다.
‘대략 손실이 70억?’
하지만 나는 자세히 계산을 하지는 않았다. 괜히 멘탈이 흔들릴까봐. 대신 다음번에 상한가를 가는 에프앤엠미디어를 매수하는 데 주력했다.
‘다시 벌면 된다. 벌면 돼... 이번달은 500억... 아니 600억을 벌어버리자.’
나는 그렇게 나를 다잡으며 매매에 열을 올렸다.
*
나는 이아영을 안은 채로 그녀의 침실 안으로 들어왔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뭐야? 나 예전에도 이런 적 있었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녀를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기분이 좋은 듯 슬쩍 웃고 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아니 술 먹고 좋아서 웃어? 남은 너 때문에 생고생하는 줄도 모르고?’
화가 난 나는 이불을 들어 대충 그녀를 덮어놓고 그 자리를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덥썩. 이아영이 내 소매를 붙잡는다.
“가지마아.”
그 말에 나는 그녀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난 네 아빠가 아냐.’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가 눈을 뜨고 내게 말한다.
“오빠. 가지 말고 나랑 놀다 가”
그러면서 그녀는 나를 확 잡아당긴다. 자신이 있는 침대 안으로. 나는 이성을 잃었다. 그녀의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옷을 벗겨버렸다. 뽀얀 살결 위로 검은색 브라가 드러난다. 나는 입고 있던 웃옷을 벗어버리고 그녀를 덮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꼬르르’
갑자기 배가 고프다.
‘배가 고파? 이 상황에서?’
그런데, 진짜 배가 고프다. 반 나체가 된 이아영을 앞에 두고. 너무 배가 고파서, 나는 눈을 떴다.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아...”
‘왠지 지난 번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머리맡에 놓여 있는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오후 5시 반. 평소 저녁 먹는 시간이다. 3시 반까지 매매를 마친 뒤, 잠깐 잠에 들었는데 저녁때가 될 때까지 잔 모양이다. 왠지 아쉬움이 남는 꿈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어제의 아쉬움이 꿈으로 나타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으으... 됐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밥 먹으면서 네이처스기프트 뉴스나 조금 찾아봐야겠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가벼운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그러던 때였다.
“띵~ 동~”
우리 집 벨이 울렸다. 우리집 벨을 울릴 사람은 부모님, 서 비서, 그리고 집주인 이아영 정도다. 앞의 세 사람은 내게 올 때 온다고 연락을 하고 온다. 그러니까 지금 이 벨을 누르는 건 보나 마나 이아영이다. 나는 잠시 그 문을 바라보았다.
‘어제... 기억이 좀 있나?’
생각해보면 지난번처럼 완전 인사불성은 아니었다. 그래도 집. 아니 정확하게는 자기 집 바로 옆집까지는 혼자서 찾아왔으니까.
‘혹시 아주 이상하게 기억하는 거 아니야?’
총체적인 스토리를 보지 않고, 단편만 모아서 보면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설마...’
나는 그러면서도 문을 열어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아영이 양 손을 모은 채로 서 있다. 그녀는 내게 평소처럼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 목소리가 차분한 게 엄청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덤덤하게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저어... 어제는 감사했어요.”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아... 기억나시나요?”
그녀는 엄지와 검지로 집게를 만들며 말했다.
“아주 조금... 솔직히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제도 그쪽을 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또 그쪽이라? 어제는 아빠라고 했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그녀는 손가락으로 복도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어제 저걸 돌려봤는데...”
나는 슬쩍 그쪽을 보았다. 생각해보니 복도 끝 쪽에 CCTV가 하나 있었다. 복도 전체를 가리키는. CCTV에는 다 기록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우리 집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나한테 쫓겨나서, 자기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잤다는 것을.
CCTV에는 아마 내가 머뭇머뭇 하다가 들쳐 없고 금방 그 집을 나온 것까지 다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오해할 거리가 없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그 쪽에게 다시 한 번 실례를 한 것 같더라고요.”
나는 잠시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이웃끼리 돕고 살아야죠.”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이번이 벌써 두 번째인데... 죄송해서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녀는 정말로 죄송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뭐... 저도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본인 스스로를 조금 더 아끼도록 하세요. 여자 혼자서 그렇게 취해서 돌아다니는 건... 본인한테 좋지 않을 것 같네요.”
내 말에 그녀는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는 거의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데... 최근에 한국에 와서 친구들을 사귀다보니...”
‘아하 한국식 음주문화가 적응이 안 되셨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에게는 정중하게 말 했다.
“네 그러니까...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드세요. 앞으로는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대충 이걸로 일단락 된 것 같다. 나는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문이 닫히기 전 그녀가 내게 말했다.
“저기, 저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뭐지? 어제 혹시 침대에서 있었던 일을 이상하게 기억하나?’
그래도 어제 일 통틀어 내가 찔릴만한 행동을 한 건 없었다. 찔릴만한 생각은 했어도,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그런데 그녀는 전혀 예상외의 질문을 꺼냈다.
“저 혹시... 네이처스기프트란 회사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