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88화 (88/198)
  • # 88

    뉴스메이커(3)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로 TV를 보았다. TV에서는 기자 하나가 국회를 배경으로 무언가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음... 뜰 때가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아나운서가 운을 띄웠다.

    “몸에 좋다는 건강기능 식품. 다들 한번 즈음 드셔보셨지요?”

    왔다. 아나운서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최근 건강기능식품을 먹고 사망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생겨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전국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화면은 바뀌고 바로 누군가의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온다.

    “건강한 사람이었어요. 의사가 혈압이 조금 높다고는 했는데 그거 말고는 건강했던...”

    사망자의 남편이라는 사람이다. 안경을 쓴 기자 하나가 빨간색 기다란 포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그런데 이걸 드신 이후로 그렇게 되셨다고요?”

    모자이크가 되어 있었지만 하루 종일 그것만 찾아본 나는 딱 봐도 알 것 같다. 네이처스기프트의 파워레드V다.

    “네 이걸 먹으면서 몸이 가렵고 그러다가... 갑자기...”

    “평소 건강했던 홍 모 씨. 하지만 환갑을 맞아 건강관리용 기능식품을 사서 먹은 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이 제품을 복용한지 한 달 만에 몸에 가려움증이 느껴지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수포가 생기고, 급성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제조사는 바로 반박했습니다.”

    “저희 회사는 전 제품 모두 식약처의 권고 기준 하에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제품을 먹고 사망했다는 건 어떤 근거도 없습니다.”

    가운을 입은 의사의 인터뷰도 실린다.

    “...가능성 자체는 낮습니다. 하지만 부작용 보고 사례가 보고되어 있고, 미 FDA에서도 곰팡이 감염과 같은 심각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뉴스는 거의 1분정도 이어지는 것 같다.

    “...경찰은 정확한 사건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걸 본 내 소감은 이러했다.

    ‘내일도 주식 팔기는 그른 것 같네.’

    130억. 적다면 적은 돈이고 크다면 큰돈인데. 그렇게 될 것 같다. 공중파 8시 뉴스에 떡하니 이렇게 나와 버렸으니까. 이 네이처스기프트가 세력의 조작인지 확실하진 않았지만, 조작이라고 한다면 기본 반토막 정도는 예상하고 쳐 놓은 것 같다. 당장 나라도 지금 공매도를 칠수 있다면 칠 수준이니까.

    ‘이 건강기능식품을 먹고 사망했다는 분명한 인과관계가 밝혀지면... 사실상 상장폐지까지 다이렉트로 달려간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오늘 퇴근 전에나, 퇴근을 한 이후에나 엄청나게 찾아본 바로는 그렇게 약학적인 인과관계를 밝히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애초에 이 홍삼이니 프로바이오틱스니 하는 게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일만한 분명한 요소가 있었다면, 그렇게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시나리오를 그려보았다.

    ‘일단 폭락은 맞다... 사람이 죽었고 뉴스가 나와 버렸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폭락을 시킨 다음에 주가를 싸게 매수하고 반전을 주면 쉬운 게임이 되겠지.’

    경찰조사도 들어갔으니, 이에 관한 기사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일단 쭈욱 부정적인 기사로 밀어버리다가, 나중에 긍정적인 기사를 내서 반전을 주면, 판이 뒤집어 지는 것이다.

    ‘이건 타이밍의 문제인데...’

    하지만 칼자루는 이걸 취재하는 언론사들이 쥐고 있다. 언제 칼을 휘두를 것이냐. 나는 이원재 이사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녀석...’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호감인 녀석은 아니다. 몇 번 대화를 나눠보니 탁준기 이사만큼 잔인하게 일반인을 개돼지 취급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정보를 쥐락펴락 하면서 중간에서 이익을 챙긴다는 게 조금 얄밉다.

    ‘어쩌면 좋은 동료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미래의 뉴스를 알고 있고, 이 녀석은 현재의 뉴스를 내보낼 수 있다. 우리 둘이 같이 일을 한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녀석하고 같이 일을 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다. 기본적으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게 제일 큰 문제다.

    ‘그냥 이 쪽 회사를 확 사버리고 싶네 진짜’

    하지만 이 대원일보는 비상장사다. 애초에 대기업 쪽 자본이 흘러나와 형성된 곳이기 때문에 돈이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차라리 그 모기업을 사는 게 더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건 조 단위로 돈이 들겠지만. 그걸 생각하던 나는 문득

    ‘차라리 언론사를 하나 사버릴까?’

    그런 생각을 했다. 대원일보 같은 대형 언론사는 무리겠지만 그래도 인터넷신문사. 그것도 깨끗한 축에 속하는 신문사 한 개정도는 살만 할 것 같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대기업들은 다 언론과 조금씩 연줄이 닿아 있다. 자기들 여론을 유리하게 조작하기 위해서.

    우리 회사도 계속해서 커질 텐데, 우호적인 언론사 하나 정도는 끼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게다가 마스터 등급을 찍게 되면 ‘잠입취재’ 스킬을 얻게 된다. 잘은 몰라도 고객센터에서

    ‘우리 특파원은 매우 유능합니다.’

    그런 말을 해 놨으니까. 혹시나 내가 정보를 쥐게 된다고 해도, 어디다가 제보할 곳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면 내가 찾아볼 뉴스는 대부분 호외가 될 만한 뉴스들일 것이다. 그런 호외를 모두 받아 쓰게 될 행운의 언론사. 될 수 있다면 그것도 내것인게 좋을 것이다.

    ‘그래 좋아. 그러면...’

    생각이 난 나는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서 비서에게.

    ‘장 부사장님한테 연락해서 언론사 한 번 알아보라고 그래. 투자할만한 회사로. 되도록이면 상장사가 좋겠지만... 아니면 비상장사라도 알아오라고 그래.’

    답장은 곧 왔다.

    ‘네 사장님’

    언론사 하나를 쥐고 있다면, 어쩌면 내 미래뉴스를 조금 조작해서 내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한 달 뒤

    ‘발라드 가수 구정찬과 걸그룹 채소영 열애’

    그런 뉴스가 있다고 하면, 그걸 일주일 뒤에 터쳐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가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 대표 이번에도 투자 대성공’

    나 칭찬하는 뉴스도 내보내고 말이다. 그러면 나중에 12시간 뒤 뉴스에서 한상훈이 나올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고...’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시계를 보았다. 8시 53분이다. 뉴스 보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나는 내 컴퓨터 앞에 서서 메일 받아볼 준비를 했다.

    ‘D 12시간 뒤’

    ‘D 12일 뒤’

    ‘D 12주 뒤’

    ‘D 12달 뒤’

    역시나 네 개의 메일이 와 있다. 그런데 그걸 보니 조금 드는 생각도 있다.

    ‘어쩌면... 타이밍을 잡을 수도?’

    언제 낚시꾼이 낚시대를 들어 올릴지 알 수 있다면, 손해를 만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타이밍을 잡는데 필요한 것은 이름들이다. 먼저 네이처스기프트 오너 ‘원영성’ 회장. 지금은 별다른 대응이 없지만, 경찰 조사나 이런 곳에서 입을 열 가능성이 크다.

    그를 추적하면 뭔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필두로, 보건복지부 장관, 식품의약품안전처 소위 식약처 처장 등등의 이름을 리스트에 올려두었다. 나는 이제 이걸 시간마다 번갈아가면서 ‘인물검색’에 써넣어 볼 작정이다. 이 사람들 입에서

    ‘화제가 된 건강기능식품은 무해한 것으로...’

    ‘이번 사망과는 상관관계가 희박한 것으로...’

    따위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 때가 반등 타이밍이다. 이원재 이사는 그런 말을 했다.

    ‘200억 들이면 60억은 나오는 물건입니다.’

    지금 130억이 들어가 있는 것에 몇 십억 혹은 몇 백억을 더 들이면 손해를 만회하고 나올 수도 있단 말이다.

    ‘물타기라...’

    물론 그냥 이번 건은 쿨하게 손실 확정 시켜버리고 다른 주식에 전념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자존심 문제기도 하다. 단 한번도지지 않아왔는데, 손실을 보게 생겼으니 말이다.

    ‘좋아 상황 봐서 물타기도 생각해봐야지. 이게 진짜 작전이라면... 나 혼자 엿 먹고 말 수는 없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뉴스를 보았다.

    ‘12달 뒤’

    뉴스에서

    ‘전장업체 에이에스진 수성전자에 피인수’

    하나 뉴스를 건져서

    ‘좋아 수성전자에 피인수라 대박 호재로군... 날짜는 내년 9월 10일.’

    달력에

    ‘ㅇㅇㅇㅅㅈ ㅅㅅㅈㅈ ㅍㅇㅅ’

    그렇게 초성을 써놓았다. 내년 9월이면 조금 멀지만 그 때 가서 이 주식도 내게 크게 이득을 줄 것이다. 오늘 손실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대박 재료 하나를 건져놓으니 마음이 편하다.

    ‘그래 이번 일은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면서 메일함을 닫았다.

    ‘그럼 오늘은 뭐하지? 영화나 한편 볼까?’

    요새 조금 바빠서 개인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지 꽤 되었다. 정신 놓고 웃을 수 있는 코미디 영화 한편 보고나면 스트레스는 다 날아갈 것이다.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서 들고 과자 한 개를 챙겨 개인 영화실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띠디띠띠띠~’

    요상하게, 누군가 우리 집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살짝 소름이 돋는다.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그런데 누군가가 우리 집에 들어오려고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다.

    ‘도둑? 아니면...?’

    우리 집에는 그다지 돈 나가는 게 없다. 애초에 나는 사치품을 좋아하는 성격이 못 되서 값나는 현물이라면

    ‘고급시계 1억 원치 정도?’

    생각해보니 그거면 충분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뭔가 무기로 쓸 것이 있나 해서 그런데 그 때 밖에서

    “에이 왜 안돼에~”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딱 듣는 순간 어떤 상황인지 다 알 것 같다.

    “아니 이 아가씨가 진짜...”

    나는 들고 있던 맥주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 문을 열었다. 밖에는 이아영이 살짝 눈이 풀린 상태로 나를 보며 말했다.

    “응? 옆집 오빠네... 오빠가 왜 우리집에서 나와요오.”

    이 아가씨는 술도 못하면서 왜 이렇게 맨날 이러고 다닐까.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여긴 우리집이고 이아영 씨 집은 옆입니다.”

    “으응?”

    그녀는 옆을 보더니

    “아아 그러네요. 미안해요 오빠아”

    다시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고는 하는데, 기억도 못할 것 같다. 나는 살짝 집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집에 잘 들어가나 해서. 그녀는 곧바로 쓰러질 것처럼 비틀비틀 거리면서 자기 집 앞으로 간다. 그런 다음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525720’

    나는 그 비밀번호를 뇌까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쩐지 그게 외워져서 잊히지 않았다. 그녀는 다행이도 비밀번호를 정확하게 눌렀다.

    ‘띠리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문을 닫고 내 집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쿵!’

    소리와 함게 그녀가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게 아닌가.

    ‘아니...’

    나는 잠시 그녀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땅바닥에 머리를 댄 채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1월. 복도에는 한기가 도는 상황이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자면 후유증이 있을지도 모른다.

    ‘입이 돌아간다거나...’

    이런 미녀가 입이 돌아갈 거라 생각하니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녀는 술에 취해 거의 매달리듯 내게 쓰러졌다.

    ‘...어쩔 수 없군.’

    나는 그녀의 등과 다리를 들어 소위 ‘공주님 안기’를 한 채로 그녀 집 안에 들어섰다. 강한 데자뷰가 느껴진다. 당연하다 지난 번에도 똑같이 그랬으니까. 그런데 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에이영’

    지켜보는 친구가 없다는 점이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그녀의 침실, 침대 위에 일단 내려놓았다. 화려한 미모에 굴곡진 몸매는 여전하다. 이성의 끈이 살짝 엷어진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에 먼저 찾아왔잖아? 이거 혹시... 나한테...?’

    그런 요상한 이론도 생겨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때였다. 갑자기 그녀가 손에 눈을 가져가더니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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