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뉴스메이커
나는 좌, 우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빠르게 키보드를 놀렸다. 몇 초에 수억 원의 주식이 오가지만, 나는 이제 이 일에도 꽤 익숙해져 있었다.
‘...좀 이것까지만 사가라...’
나는 계좌잔고와 호가창을 번갈아 보았다. 거의 다 팔았는데. 30억원치 사서 +40%. 12억원 정도 벌고 있는 계좌 하나가 상한가를 갈 듯 갈 듯 못가고 있다.
‘꼬르르...’
점심시간인데. 오히려 매도가 밀린다.
‘그럼 여기까지만 먹고 나갈까.’
나는 그냥 30억원어치 주식을 시장가에 풀어버렸다. 주가는 주우욱 밀린다. 큰 손이 물량을 턴 자리에는 개미들 간의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그럼 잘들 해보세요.’
나는 HTS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 그랬듯 내 계좌는 순항 중이다. 매달 안정적으로 300억에서 400억 사이의 돈을 벌어들였다. 덕분에 매달 100억씩 구독료를 내고도 계좌에는 1200억에 달하는 돈이 들어 있었다. 요새는 자금이 너무 많아져서 거의 대부분의 돈은 굴리지도 않고 있었다. 사실 코스피, 코스닥에서 노는 데는 300~400억 정도만 있어도 충분했다.
‘800억 남는 거 중에... 일단 4번째 5번째 회사 위해서 인빅투스에 조금 더 증자하고... 남는 건 빌딩이라도 사 놓을까... 해외선물은 아직 무린데...’
해외선물 계좌를 틀어서 1억 원 정도 넣어놓고 연습을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수익률이 잘 나오질 않았다. 일단 첫째로 ‘세계’ 카테고리에 경제뉴스보다도
‘50년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인도 남자’
‘중국에서 세쌍둥이 판다 태어나’
그런 뉴스들도 섞여 나와서 그다지 경제성이 없었고, 둘째로
‘OPEC 석유 감산 시사’
‘미국 대중국 압박 위안화 환율 절상 임박?’
그런 게 나와도 주식처럼 그게 그대로 반영이 되질 않았다. 한국 주식시장에 비해 시장참여자들이 워낙 많고, 변수도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일단 연습도 해놓기는 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쪽 시장도 개척을 해 놔야하니까. 나는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 전에 달력 앱을 켜서 다음으로 공략을 할 주식을 찾아보았다.
‘ㄴㅇㅊㅅㄱㅍㄷ ㅇㄷㄱ ㅇㄴㅅㅍㄹㅇㅈ’
‘음... 네이처스기프트... 어닝서프라이즈...’
인건 알겠는데, 중간에 ‘ㅇㄷㄱ’이 뭐였는지 딱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였더라?’
나는 그걸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곧 그걸 유추해냈다.
“아아 역대급! 네이처스기프트 역대급 어닝서프라이즈”
기억이 난다. 한 달 전, 미래뉴스 기사에서도 그렇게 나와 있었다. ‘역대급 어닝서프라이즈’라고. 네이처스기프트는는 국내 2등을 건강기능식품 회사였다. 최근 홍삼과 몇 가지 한약재를 섞어서 만든 건강기능식품이 홈쇼핑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매출이 우상향하고 있었다.
작년 분기에 추석에 연말까지 겹치면서 선물 셋트가 불티나게 팔려나간 모양이다. 그래서 작년 4분기는 그야말로 ‘역대급’매출을 썼다. 매출이 나오면 사지 말라고 해도 사가는 게 주식이다.
‘좋아 그럼 오늘부터 조금씩 사볼까.’
역시나 아쉬운 건 시총이다. 시총이 8000억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주식을 그리 많이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300억정도만 담가 볼까. 목표 100억 정도만 챙겨서 나오는 걸로.’
나는 그렇게 타깃을 정해 놓은 뒤 내가 직접 매수를 하고 조건부 매수를 조금 더 걸어놓았다. 조건부 매수란 내가 원하는 조건이 됐을 때 시장가 매수를 해서 자동으로 매매를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내가 직접하는 것보단 효율이 떨어졌는데, 그럴 수 밖에 없다. 나 말고 누군가가 내가 작업하는 방식을 보게 되면
‘이 사람 뭐야? 어떻게 미래 주가를 알고 있는 거야?’
라고 생각할 게 뻔하니까. 이건 어쩔 수 없다. 죽을 때까지 나만 알고 가야할 비밀이다. 대충 매수를 해놓은 나는 슬쩍 카이게임즈 주가를 보았다. 판타지 워 그라운드 CBT 3일차를 맞이한 카이게임즈 주가는 슬금슬금 계속해서 우상향을 하고 있었다. 아마 게임을 해보고
‘이건 대박이다.’
감 잡은 개미들이 달라붙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점심을 먹기 위해 집 밖을 나섰다. 문득 궁금하기에, 휴대폰으로 카이게임즈 주식 게시판에 들어보았다.
판타지 워 그라운드 이거 재밌네요. 월급 들어오는 대로 추매 들어갑니다.
리뷰진도 호평이고. 게이머 평점도 좋네요. 대박각 나옵니다.
제가 게임인생 30년인데, 해보니까 딱 느낌 옵니다. 파워 홀딩하세요.
왠지 대주주가 엄청 사더라니... 한상훈 이사람 능력이 있긴 있나보네.
드디어 나를 칭찬하는 글이 딱 하나 보인다. 나는 그걸 보며 씨익 웃고 말았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우우웅~’
문자가 하나 왔다. 서 비서에게서
‘사장님 이틀 뒤 블루E&M 안용균 대표가 감사 인사 온답니다. 이날은 출근해 주세요.’
나는 대낮에 강남역 주변을 활보하며 답장을 써 보냈다.
‘응 알겠어.’
*
“감사드립니다. 대표님. 대표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요. 앞으로도 잘 해주시길 바래요.”
“네 대표님.”
그가 사장실 밖으로 나간 뒤, 장부사장도 내게 축하를 해주었다.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세 번째 인수로군요.”
“네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사장님”
블루E&M 투자까지 완료된 이 시점. 이제 마스터 등급까지 회사 2개만 남았다. 나는 장 부사장에게 물었다.
“그래서 투자할만한 매물은 더 나오지 않았습니까?”
“네 계속해서 찾고 있습니다만... 사장님이 원하시는 딱 조건에 맞는 매물이 없더군요. 다 시총이 너무 크거나... 아니면 너무 위험하거나 해서요.”
“지금 남은 돈은?”
“거의 없습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블루E&M에 투자하고 카이게임즈 지분을 장내 매입하느라 돈이 거의 다 떨어져 있었다.
“음...”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해보았다.
‘등급이 올라가면 혜택이 좋긴 하지만...’
지금도 내 개인 계좌는 안정적으로 돈이 벌리고 있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가 투자한 카이게임즈는 곧 급등을 할 것이다. 굳이 무리해서 이상한 회사를 사거나, 아니면 시드머니가 후달릴 정도로 큰 회사를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건 모두 시간문제다. 반년이나 정도는 느긋하게 올라가도 될 것이다.
“그래요 그럼. 너무 무리 하지 마시고, 천천히 찾아봐 주세요. 찾는 대로 바로 증자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사장님.”
장 부사장은 내게 인사를 하고 사장실 밖으로 나섰다.
‘좋아 그럼 이건 이거대로 됐고... 나는 돈이나 더 벌자. 돈만 있으면 회사 인수야. 어차피 절차 문제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HTS를 켰다. 타겟이 된 네이처스기프트르 더 사기 위해서. 나는 이틀 전과 어제 양일간 100억원어치를 이미 사놓았다.
‘오늘 내일 100억원치를 더 사고... 주말을 보낸 뒤... 다음 주 수요일까지 100억원 더 사면... 그날 어닝서프라이즈가...’
대충 일정은 나왔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 네이처스기프트 주식을 호가창에 넘어가 보았다. 네이처스기프트는 최근 한동안 우상향을 했던 피로감 때문인지 오늘 –6%대에서 조금 강한 조정을 받고 있었다. 개미들이 꽤 우울해할만한 성적표다. 하지만 물론 나는 개의치 않는다. 아마 나도 오늘 이 종목에서 6억원 정도. 손실을 보고 있을 테지만, 첫째로 그게 그리 큰 금액이 아니고, 둘째로 결국 오를 걸 알고 있으니까.
‘주가가 내리면 싸게 사서 더 좋지’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식을 더 사모았다. 그런데, 요상하게, 매물이 계속해서 나왔다.
‘음...?’
나는 살짝 이상하다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주식을 더 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조금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워낙에 연전연승을 하다보니까. 나는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매물을 보면서도
‘왜 이렇게 바보같이 주식을 팔지? 보자. 앞으로 200억원치 더 살 건데 안 오르고 배길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매수를 해댔다. 계좌 바꿔가면서. 아니나 다를까 주가는 올랐다. -2%. 내가 사는데 안 오를 주식 없다. 애초에 나만큼 커다란 규모의 포커 플레이어가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그러던 중이었다. 그렇게 30분여가 지났을 때 즈음 갑자기 매물이 더 터지더니.
‘-22%’
순식간에 하방VI가 걸려버렸다.
‘어라?’
나는 그제야 조금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매수를 멈추었다.
‘뭐지?’
그 사이 주식은 그대로
‘-30%’
하한가까지 밀려서 하한가에 잔량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미 130억이 넘는 금액을 사서 쥐고 있는데, 이러면 오늘만 거의 40억 손해다.
‘이건... 뭔가 터졌단 말인데?’
그래도 나는 침착하게 익스플로러를 켰다. 40억이 큰 금액이긴 해도 이 역시 하루 이틀 벌면 금방 만회할만한 돈이다. 물론 집어넣은 130억이 다 날아가면 그건 살짝 아프겠지만.
‘시총 8천 억짜리 회사가 하루 이틀 만에 망하고 그러진 않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포털사이트를 들어가
‘네이처스기프트’
를 검색해보았다. 기사 두 세 개가 뜬다.
‘네이처스기프트 건강기능식품 먹고 사망자 발생 일파만파’
“아이고...”
누군가 건강기능식품을 먹고 죽었나보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이러면 시총 8천억 짜리 회사라고 해도 장담을 할 수 없다.
‘다음 주 수요일이면 어닝서프라이즈인데... 그 사이에 이런 게 뜨다니...’
이건 마치 로또 당첨 돼서 신나서 은행을 향해 뛰어가다가, 트럭에 치인 격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에는 가끔 이런 일이 있긴 하다. 신호대기를 타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박는 것 같은 수준의 악재가 터지는 일이.
‘아니 어닝서프라이즈 기사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좀 써주지...’
미래뉴스에는 단지 ‘작년 4분기 역대급 어닝서프라이즈’라고만 쓰여 있었다.
‘음...’
나는 입술을 뾰족 내밀면서 호가창으로 돌아와 보았다. 하한가에는 백억원이 넘는 금액이 쌓여 있다. 이건 그대로 하한가다. 어떻게 빼도 박도 하지 못할 하한가.
‘이건 내일 하한가도 조금 각오를 해야 할지도...’
어쩌면 130억 중에 65억이나 30억 정도. 반토막이나 3분의 1토막 정도 날지 모르겠다.
‘아 요즘 너무 경각심이 없었나... 어닝 서프라이즈라고 하면 100% 버는 뉴스는 아니었는데...’
나는 살짝 반성을 하면서 그걸 지켜보았다. 그런데 아까 장 초반부에 –6%대에서 조정 받던 주가가 생각이 난다.
‘아마 지난 분기 어닝서프라이즈는 몇몇 사람은 알고 있었을 거야. 그래서 주가가 계속해서 우상향을 했던 것이고... 그럼 오늘 악재도 몇몇은 알고 있었을까?’
그럴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까 그것은 언론에 발표되기 전, 누군가 급하게 주식을 처분했던 것이다.
‘흠...’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기분이 상한다. 나는 다시 포털사이트로 돌아와 그 사망기사를 더 찾아보았다. 이제
‘네이처스기프트’
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올라와 있을 만큼 이미 핫한 뉴스가 되어 있다. 나는 뉴스가 올라온 순서를 찾아보았다. 이 사건을 가장 먼저 보도한 것은 ‘라이트경제뉴스’. 그런데 낯이 익은 이름이다.
‘이건 분명...’
예전에, 내가 OH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할 때, ‘한상훈’ 내 이름이 실린 기사를 처음으로 내보냈던 그 회사였다. 대원일보 이원재 이사가 운영하는 그 회사.
‘음...’
나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내 휴대폰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