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85화 (85/198)

# 85

자기실현적 예언(2)

“CKD 시절에...”

나는 살짝 말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성 상납이랄지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매우 낮고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단어가 나오자 권 사장은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나 듣는 사람이 있을까봐. 하지만 그건 내가 아까 주식이야기를 할 때, 이미 봐두었다. 이 근처 자리에는 앉아 있는 사람이 없다. 그는 내 질문에 답을 해주는 대신 내게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나는 내 앞 접시에 놓인 햄을 집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예전에... CKD때 접대를 받았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아서 아쉽다고.”

나는 일부러 그렇게 꾸며서 말했다. 사실 탁준기는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거의 그렇게 말한 거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이야기를 꺼내자 벌써 반응이 왔다.

“에 그게... 그러니까...”

권 사장은 말꼬리를 흐리며 뭐라고 대답할지 곤란해 했다. 예전에 도찬기 때도 그랬지만, 거짓말하는데 재능이 없는 것 같다. 나는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있었군요.”

내 말에, 권 사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을 인정한다는 침묵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그를 추궁했다.

“지금도 그렇습니까?”

‘지금’ 이야기가 나오니, 그는 그제야 입을 연다.

“아니! 아닙니다. 지금은 이제 그런 일 없습니다. 절대로요.”

“예전에는 있었고요?”

“있었는지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저희 회사가 자회사 였을 때 저희에게도 그런 요구가 있긴 있었습니다. 저는 끝까지 거부했지만 그런 압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권 사장의 비호 덕분에 확실히 OH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연예인들은 비껴간 것 같다. 오현주 포함해서.

“그걸 요구한 사람이 도찬기 대표 본인입니까?”

“...저희가 자회사긴 했지만 엄연히 다른 체계를 가진 다른 회사였습니다.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도찬기 씨 밖에 없었지요.”

나는 협상 도중 내 앞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던 그를 떠올렸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본인도 성적인 이유로 차별받는 처지에... 남들을 그런 곳에 보냈던 거군요.”

내 말에 권 사장은 눈을 더 크게 뜬다. 아마 그는 내가 여태, 도찬기 대표가 동성애자라는 걸 모르는 줄 알았나보다.

“뭐 흔한 케이스긴 하지요. 유색인종이라고 차별받는 흑인들이 동양인 비하 랩을 한다던가... 본인이 당할 땐 괴로워하면서 남은 쉽게 괴롭히는 게 인간이니까요.”

권 사장은 다시 한번 침묵했다.

“음 알겠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는 거지요?”

“네 대표님. 그건 제가 사장 자리를 걸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런 압력이 있긴 했지만... 제가 다 거절했습니다.”

“어디서 그런 압력이 옵니까? 정확하게.”

“PD, 언론 고위 간부, 아니면 재벌 쪽 분들.”

“개중에 수연그룹도 있습니까?”

나는 도찬기 대표를 딱 저격해 물었다. 하지만

“...수연 그룹은 없었습니다.”

그건 빗나갔다. 이상한 일이다 생각하는 데, 그가 한 마디를 더 했다.

“하지만 또 모릅니다. 그 정도 되는 재벌들은... 대개 대리인을 통해서 연락이 옵니다. 요새 워낙 밝은 세상이다 보니 본인들이 다치고 싶지 않아하니까요.

“음...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권 사장은 내 눈치를 본다. 그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진 것 같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냥 궁금했어요. 그런 이야기가 들리기에.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이 없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아 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이사회나 갑시다.”

“그러시지요.”

내가 일어나자 권 사장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혹시나 해서, 그에게 한 마디를 해두었다.

“아 참 아까 제가 주식 이야기 했던 것은... 공식적으로는 없었던 겁니다. 아직 확정된 사항도 아니고요... 사장님이 어떻게 하시든 본인 선택이지만... 저는 아무 말도 한 적 없습니다.”

혹시나 아주 혹시나, 내부자거래로 걸릴 지도 모르니까. 내가 물론 내부자거래가 문제가 된 것은 언젠가 장관임용 전 청문회 때 딱 한 번 보았지만, 그마저도 의혹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래도 조심은 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권 사장은 내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대표님. 사실... 제가 최근에 아파트를 사서 그럴 돈이 없습니다. 대출도 이미 받을 만큼 받았고요.”

“아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조심을 할 것도 없다. 나는 그와 함께 부대찌개 집을 나와 OH엔터테인먼트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OH엔터테인먼트는 여기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러 던 중이었다.

‘부웅~’

우리가 걷던 골목으로 익숙한 밴 하나가 지나가는 게 아닌가. 검고 높은 그 벤츠 밴. 오현주가 타고 다니는 벤츠다.

“어 저거?”

내가 그걸 보고 말하자, 권 사장이 확인을 해주었다.

“맞습니다. 스타 촬영하고 돌아오는 중인가 보네요.”

“오 오현주 씨가 러닝스타에 출연 했어요?”

러닝스타는 수요일 저녁에 방영되는 국민예능프로그램 중 하나다. 시청률이 매우 높은 토크 쇼. 거의 TV를 보지 않는 나도 이건 챙겨보는 프로그램이다.

“네 이번 영화 홍보 차... 같이 출연한 동료 배우들과 같이 나갔습니다.”

“아아 그랬군요. 언제 쯤 볼 수 있을 까요?”

“오늘 촬영했으니 아마 한 4주 뒤 즈음 나갈 겁니다.”

“아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 때였다. 벤츠 밴이 갑자기 우리 앞쪽에 갓길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거기서 오현주가 내리더니, 갑자기 우리를 향해 활달히 뛰어오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대표님!”

언제 봐도 엄청난 외모다. 세상 전체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은, 존재 자체로 빛이 나는 것 같은 미녀. 그녀는 그렇게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내게 달려와 물었다.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네 오늘 이사회가 있어서요.”

그녀는 손을 모으며 말했다.

“그러셨구나~!”

살짝 텐션이 높은 게 뭔가 좋은 일이 있는 듯하다. 권 사장은 그녀에게 물었다.

“촬영은? 잘 했어?”

“좋았어요. PD님도 그리고 MC분들도 워낙에 저한테 잘해주셔서요. 부담감 없이 재밌게 촬영했어요.”

러닝스타의 MC들은 넷. 그리고 넷 모두 남자다. 남자라면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잘 해줄 수 밖에 없다. 그녀의 미모는 정말 마법과도 같은 수준이니까.

‘참... 세상은 불공평하다니까...’

그녀의 미모를 보고 있노라면 조금 서글픈 생각도 든다. 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해서. 누군가는 죽어라 노력해도 될까 말까한데, 그녀와 같은 미모를 가지고 태어나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남자, 그리고 질투심 없는 여자까지, 모두 쉽게 복종을 시켜버리니까.

어쩌면 그것은 돈보다도 더 원초적인 힘이다. 아기들한테도 미남미녀 사진을 보여주면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녀를 보면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까. 그녀는 내 옆에 오더니 우리와 발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두 분은 무슨 이야기 하고 계셨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성 상납에 주식내부자거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어... 그러니까...”

권 사장은 여기서도 버벅인다. 내가 대신 말해주었다.

“이사회 안건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아~아~”

그렇게 조금 걷다보니 우리는 그녀의 밴 옆까지 왔다. 오현주의 매니저는 나에게 먼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그리고 이어서 권 사장에게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현주는 거기서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저는 점심 먹으러 가볼게요. 아침도 못 먹고 계속해서 촬영을 했더니 배가 고프네요.”

나는 손을 편 채 그녀에게 손을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네 가세요.”

그리고 반대로, 권 사장은 위 아래로 손짓을 했다.

“응 들어가.”

“네 그럼 열심히들 하세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긴 뒤 다시 자신의 밴에 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 사람이 꽤 모여 있다.

“와 봤어? 오현주다 오현주.”

“진짜. 실물이 더 예쁘다.”

거기에 나와 권 사장 이야기도 들린다.

“저 사람들은 뭔데 오현주랑 아는 척을 하지?”

“그러게... 근데 저 오빠 부잔가봐. 시계 봤어?”

“어느 쪽?”

“머리카락 많은 쪽”

“헐 설마 남친?”

생각해보니 그녀의 미모에는 따르는 세금이 있긴 하다. 유명세라는 세금이.

‘맞아 예전에 스토커한테 칼 맞을 뻔도 했었지...’

나는 오랜만에 그 때를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

“...하반기 전략은 이렇게 하는 걸로. 혹시 더 하실 말씀 있으신 분?”

이사회가 진행되던 도중, 나는 딱 한 번 손을 들었다. 이사회가 시작된지 30분여, 잠자코 있던 내가 손을 들어 모든 사람의 이목이 내게 쏠린다.

“아 한 대표님.”

“다른 건 아니고... 이번에 여름에 촬영하는 아이돌 매니지먼트 108 있지요? 저는 그쪽에 저희 쪽 연습생을 대거 투입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두 명 나가긴 합니다.”

두 명. 두 명은 너무 적다.

“연습생들 더 있지 않습니까? 최대한 나갈 수 있는 사람 더 추려보세요.”

내가 이렇게 고집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12달 뒤 연예 카테고리에서 그 뉴스만 열 번 정도 보았으니까. 여태 연예 카테고리에 그렇게 뉴스가 자주 나오는 것은 처음 봤다. 그만큼 올해 연예계를 강타할 커다란 화두가 된다는 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걸그룹 흥행에 실패했던 OH엔터테인먼트에게 좋은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는 실력이 부족한 아이들도 있는데...”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이 또 이슈가 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우리 이사님들이 더 보는 눈이 높으시겠지만... 생각해보세요. 어디 어디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있는 신춘문예 몇 명이나 봅니까? 그 대신 철저하게 조회 수로 판정되는 웹소설은 수만 명이 봅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내 말에 이사들은 모두 귀를 기울인다. 나는 이어 말했다.

“전문가의 평가보다도 소비자의 평가가 더 생명력이 있다 이 말입니다. 제가 예상하기로는 이 아이돌 매니지먼트 108 엄청나게 흥행할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전까지 최대한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실력을 끌어올려야겠지만, 그 이후는 대중들의 평가에 맡기도록 하세요. 가수... 특히 아이돌이라면 실력이 좋은 사람이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는 사람이 실력이 좋은 겁니다.”

내 말에 이사들은 토를 달지 못했다. 내 말이 논리적으로 맞아서 수긍을 하기 보다는 최근 몇 년간 본인들이 프로듀싱 한 아이돌 들이 실패를 해서, 그게 더 컸겠지만 말이다. 아이돌 담당인 이사가 말한다.

“네 그러면, 한상훈 대표님 말씀 따라서 방침을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돌 매니지먼트 108에 더 많은 연습생을 내보내는 것으로.”

나는 이제 팔짱을 낀 채로 보고서를 내려 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제 별 생각이 없었다. 내가 ‘미래뉴스’를 보고 와서 할 말은 다 했으니까. 하지만 딱 이거 하나면 된다. 이거 하나으로도 OH엔터테인먼트는 올해 꽤 순항할 것이다. 여태

‘아이돌 매니지먼트 108. 이주현 연습생. 탑 12안에 들어’

‘노브엔터 이유진 순위 급등.’

‘데뷔 멤버 확정을 앞둔 아-매108. 최종 멤버에 들게 될 사람들은?’

이런 뉴스를 열 개 가까이 봐왔으니까. 아마 지금쯤, 방금 내가 했던 말 때문에 정정보도가 꽤 와 있을 것이다. 나는 두 어번 허공을 쥐었다가 폈다. 마치 미래가 내 손에 잡혀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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