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84화 (84/198)

# 84

자기실현적 예언

나는 장 부사장이 가져 온 문서들을 받아들었다. 하나는 ‘고용노동부’, 하나는 ‘서울시’에서 온 것들이다.

“음...”

나는 휘릭휘릭 그것들을 넘겨보았다.

‘중소기업 청년 추가고용 장려금’

‘서울시 청년실업 대책’

과 같은 이야기들이 쓰여 있다. 내가 그것들을 모두 읽어나갈 무렵, 장 부사장이 한 마디를 했다.

“아시다시피 최근에 청년실업이 문제가 되다보니, 각종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나는 문득 지난번에 서 비서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동아리 후배 민서는?’

‘일자리 못 구해서 사장님 뵙고 싶어 하시던데요?’

다들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다. 나 때도 그랬지만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청년을 고용하면 혜택을 준다... 나쁜 제안은 아니로군요. 좋은 일도 하고 보조금도 받고. 장 부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만?”

“회사 내에서 그리 막 필수적인 인원도 아니라서... 그래서 사장님께 여쭤봤던 겁니다.”

나는 다시 보고서를 보며 말했다.

“필수적인 인원은 아니라는 게?”

“당장 업무에는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쓸 데 없이 인건비가 나가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지요. 또 신입사원 교육도 문제고요.”

“하지만 명분이 좋긴 하네요. 여기 참여하면, 정부, 정치인들에게 어필을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네 그런 면은 있습니다. 다만 비용이 문제가 됩니다.”

“음...”

나는 턱을 괸 채로 그걸 지켜보았다. 예전에 금융감독원에서 조사가 나왔을 때가 떠오른다. 별 탈 없이 넘기긴 했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잘못 되었다면, 나는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비용이 든다고 해도... 이것 역시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비용 자체는 별 게 아니다. 그건 내가 대면된다. 고용 없는 곳에 기부도 하는 판에, 청년들 고용하며 생색도 낼 수 있다면 이건 할만하다. 나는 장 부사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거... 하지요.”

“그러시겠습니까?”

“네 지난번에 장부사장님도 그러시지 않으셨습니까? 한국에서 부자가 되려면 어느 정도 공무원들과도 친해져 놔야 한다고.”

“네 그렇습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다. 정경유착까지는 아니더라도, 애초에 경제를 두 가지 큰 축은 하나는 정부고, 하나는 시장(기업)이다. 일을 하다보면 여러 분야에서 서로 몸을 비빌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게다가 세금으로 밥을 먹고 산다지만 공무원들 역시 본인들의 권력을 휘두르길 원하기 때문에 기업인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일은 정치인들에게 공무원들에게 직접 돈을 주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호의를 사는 일이 될 것이다.

“...기왕 하는 거 화끈하게 하지요. 보조금 받으려고 하는 척만 하지 말고... 고용노동부든 서울시든, 권고사항 최상단에 위치하도록. 그래서 공무원들에게 우리 기업 이미지를 잘 심어 줍시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혹시, 필요한 사항 같은 게 있을까요? 인원을 늘렸을 때?”

“아... 공간 문제가 있을 것 같네요.”

“아아...”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꽤 널널했던 우리 회사 사무실은, 최근 들어 조금 난잡하다 싶을 정도로 인원이 늘어나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 위층 아직 비어 않던가요?”

“네 사장님.”

“그러면 거기도 임대하지요. 그러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네 한동안은 다시 한참 남겠지요 자리가.”

나는 거기서 문득 든 생각에 한 마디를 더 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그런데 이 빌딩 매매가가 얼마인지, 양도 의사는 있는지 좀 물어봐 주세요.”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 회사는 점점 더 커질게 뻔하다. 임대료로 고정 지출을 만드느니 빌딩 자체를 사버려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장 부사장은 내게 인사를 한 다음 문 밖을 나섰다. 그가 나간 뒤에 나는 그가 들고 왔던 보고서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정치계 쪽과 연이 닿아 있다면 대원일보 이원재나, 수연그룹의 탁준기 대표와 같은 사람들을 압박할 때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그걸 보다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해보니... 이제 CBT시작했겠네...’

대충 미래를 알지만, 그래도 직접 평가가 어떤지 알고 싶다. 나는 ‘판타지 워 그라운드’를 검색해서 게임웹진이니, 게임커뮤니티, 유명 게임 스트리머 등등을 돌아다니면서 반응을 살폈다. 역시나 초 대박작 답게

‘신선하네요. 한동안 이거 할 듯.’

‘재밌음. 렉만 조금 없었으면 좋겠다.’

‘윗분말대로 서버렉? 이것만 없으면 쭉 할듯요. 지금 CBT가 이건 나아지겠지요?’

대체로 좋았다. 나는 HTS를 켜서 카이게임즈 주가를 보았다. 아침에 +1%대에서 놀던 주식은 CBT할 때 즈음해서 +4%정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좋아 잘 되어 가고 있군.’

카이게임즈는 내가 인수를 한 이후로 계속해서 주가가 올랐다. 그 이유는 먼저 1대 중국 기업, 3대 주주 탁준기 이사 물량을 블록딜로 받아 놓고도 계속해서 더 주식을 사재꼈기 때문이다. 대주주 지분이 무려 60%에 달하기까지 그래서 가격이 맨 처음 샀을 때보다 30%이상 올랐다.

물론 이건 내가 내 돈 써서 가격을 올린 거라 실질적인 이득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계속해서 주식을 사들이다보니 카이게임즈에는

‘대주주가 남들 몰래 혼자만 엄청난 호재를 알고 있다. 그래서 사는 거다.’

는 요상한 소문이 돌아서 개미들도 매수에 동참해 주가가 계속해서 오르기만 했다.

‘다른 게 아니고 단순히 게임이 성공할 걸 알아서 산건데...’

지금 쯤 CBT 시작했을 테니 게임을 잘 아는, 게임 선구안이 좋은 주주들 몇 명도 ‘대주주가 알고 있는 엄청난 호재’를 알아 차렸을 것이다. ‘게임이 재밌다’는 엄청난 호재를. 게임주는 게임이 재밌으면 전부니까. 지난 번 방송에 나와서

‘카이게임즈와 OH엔터테인먼트 주시해보세요.’

라고 말한 것은 점점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절반은 말이다.

‘문제는 OH엔터테인먼트인데...’

OH엔터테인먼트는 내가 가장 먼저 인수를 한 주식이었지만 인수를 한 이후로도 계속해서 우하향을 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묶였던 드라마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오현주, 김준형을 제외하면 딱히 성과를 내는 연예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OH엔터테인먼트 주식게시판에는

‘권오혁 이 대머리 새끼 노답이네 이거... 경영능력이 머리카락 숫자랑 비슷한 듯.’

‘인빅투스 얘넨 뭐하는 애들인가요. 도찬기 퇴직금 챙겨주려고 회사 인수했나요?’

‘한상훈 이 븅신도 회사 사놓고 하는 게 대체 뭐냐?

권 사장, 우리 회사, 내 욕이 다양하게 쓰여 있었다. 물론 내가 하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매일 ‘인물검색’을 통해서 우리 회사 연예인들, 그리고 유망주들까지 합쳐서.

‘이 친구는 이렇게 해주세요.’

‘저 친구는 저렇게 해주세요.’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대게 12달 뒤 뉴스를 보고 지시를 내린 것이라 그게 효과가 주가에 반영되려면 시간이 더 걸려야 했다. 당장 큰 호재로 예상되는 ‘아이돌 매니저 108’ 방영은 올해 여름. 아직 반년이 더 남았다. 그 때까지 조금 더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건 싫다. 나는 좀 더 유명해지고 싶다.

‘이거 오릅니다.’

하면 이게 오르고

‘저거 오릅니다.’

하면 저게 오르는 그런 엄청난 투자자로. 그래야 인물검색에서 ‘한상훈’을 쳤을 때 내가 나올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면 이쪽도 더 사볼까?’

주식이라는 건 사실 뭐가 어떻게 되든 그 가격에 사는 사람이 있으면 가격이 오르는 게임이다. 내 주식 내가 사버리면 내 주식은 오른다. 그래서, 자기실현적 예언이랄까.

‘OH엔터테인먼트 주식이 오를 겁니다.’

라고 했던 내 예언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주식을 올려서.

‘그럼 이건으로 권 사장하고 이야기 좀 해볼까...’

마침 오늘 2시에 이사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서 비서를 불렀다.

“네 사장님”

“OH엔터에 전화해서 권 사장한테 말해. 우리 오후 1시... 아니 점심 같이 먹자고. 그런 다음이사회에는 같이 가는 걸로.”

“네 알겠습니다.”

*

‘지글지글지글’

팔팔 끓어오르는 부대찌개를 앞에 두고 권 사장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저희 회사 주식을 더 사려고 하신다고요.”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 주변에 누군가 듣는 사람은 없다.

“네. 본래 도찬기 씨 지분도 대주주 치고는 조금 적었었지요. 경영안정화도 시키고 주가도 부양할 겸 해서 지분을 더 늘리려고 합니다. 약... 10%정도 더요.”

이건 엄청난 호재다. 일반인이 듣는다면 집 팔고 차 팔아서 살만한 특급 호재. 만약에 내가 회사 다니던 시절에

‘OH엔터테인먼트 모회사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OH엔터테인먼트 지분 늘린다.’

이 뉴스를 미래뉴스에서 봤더라면, 바로 매수를 했을 것이다. 나는 여태 뉴스를 받아서 주식을 매매하고 해왔지만, 이렇게 뉴스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기도 한 것이다.

“주주분들이 좋아하겠군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나는 국자로 부대찌개에서 잘 익은 라면 사리와 햄 몇 개를 떠서 내 앞 접시에 담으며 말했다.

“아 그나저나 권 사장님은 OH엔터테인먼트에 지분이 얼마나 되시지요? 지금?”

“저는 2.6%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적다. 그것도 그가 (구)OH엔터테인먼트를 도찬기 대표한테 넘길 때, 현금 대신 주식을 받아서 얻은 것이었다. 물론 지분가치상 30억원 정도 되긴 하지만. 회사 운영하는 사장님 지분치고는 너무 적다.

“그러면 저희 회사가 본격적으로 자사주 매집을 하기 전에 권 사장님도 지분을 늘리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저도요?”

“네. 아시다시피 시장에서 10%를 쓸어 담으면 주가는 원만하게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장님과 저만 아는 특급호재... 같은 것이니까. 보너스 받는다 생각하고 지금 지분 늘려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사장님이 사면 책임경영 한다. 그런 미사어구를 쓸 수도 있고요. 연봉 받으시는 것 그리고 대출 받는 것 해서 조금 주식을 담아도 괜찮을 겁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를 위해서 말했다. 이건 100% 오르는 특급 호재니까. 게다가 내가 그를 믿는 만큼 중소기업 대표이사 치고 연봉도 꽤 많이 책정을 해주었기 때문에 현금도 있고, 신용도도 높을 가능성이 있었다. 권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렇게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조금 약하다. 나는 그에게 한 번 더 권했다.

“물론 교육비니 뭐니 가정에 돈이 들어가시겠지만 꼭 사세요. 제가 큐! 하고 오더 사인 넣으면 인빅투스에서 일주일 이내로 매집을 시작합니다. 그 전에 사셔야 됩니다.”

그런데 그 때, 권 사장이 말했다.

“네... 그런데 대표님.”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이어 말했다.

“저 미혼입니다. ”

나는 라면사리를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려다가, 깜짝 놀라 그에게 사과를 했다.

“오 그러셨군요.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하하 괜찮습니다. 제 나이 정도 되면 보통 결혼했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겠지요.”

그의 나이는 40살 전후였으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그 쪽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여태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역시 대표이사 직함이 있고, 돈도 꽤 있으니 결혼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대머리인 점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어쨌든 미안해진 나는 화제를 돌리려고 머리를 굴렸다. 생각해보니 권 사장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아시면서’

예전에 탁준기 이사가 나와 헤어지던 때 했던 말.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사장님. 왜 전에 있던 CKD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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