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83화 (83/198)
  • # 83

    CBT

    “키에에에에엑~~!”

    구름을 뚫고 날던 드래곤은 하늘을 향해 포효한다. 그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고 있던 남자는 드래곤의 등에서 일어서 펄쩍 땅을 향해 점프한다. 그는 바람을 가르며 자유낙하를 하기 시작한다. 땅에 있는 집, 언덕, 나무, 그리고 강 같은 것을 선명해 졌을 때. 그는 자신이 쥐고 있던 줄을 잡아당긴다.

    등에 있던 낙하산이 펼쳐지며 그는 자유낙하를 멈추고 천천히, 천천히 땅을 향해 내려간다. 그는 목표로 하는 곳은 성에서 살짝 떨어진 작은 마을을 향해 날아간다. 그런데, 자신의 바로 곁에 초록색 피부를 한 근육질 오크도 낙하산을 펼친 채 가다오고 있다. 둘은 공중에서 서로를 쳐다보고, 누가 질세라 땅을 향해 내려간다.

    ‘쿵!’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땅에 내리고 서로를 쳐다본다. 그런데 마침 둘 사이, 밑둥만 남은 그루터기 옆에 도끼 하나가 빛을 번쩍이고 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도끼를 향해 달려간다. 남자는 가까스로 거의 0.1초의 차이로 그 근육질 오크 대신 도끼를 잡아 든다. 그런 다음 공포에 질린 오크 전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숨 막히는 판타지 배틀로얄! 판타지 워 그라운드 CBT 그랜드 오픈’

    그 문구가 뜬다. 나는 생각했다.

    ‘흠 잘 만들었네...’

    게임 내용을 단시간에 잘 표현한 것 같다. 나는 스크롤을 내려보았다.

    ‘CBT 테스터 당첨 확인’

    란이 보인다. CBT란 ‘Closed Beta Test’의 약자로 게임 출시 전 다수의 게이머를 대상으로 게임을 실현 해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예행연습. 대개 될 성 푸른 게임들은 여기서 거의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내 예상대로라면 판타지 워 그라운드는 여기서부터 엄청난 호평을 받게 된다. 월드와이드 히트작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한다. 나는 확인 커서 옆에

    ‘이름 한상훈...’

    이름과 전화번호를 넣고 ‘확인’버튼을 눌러보았다. 그런데

    ‘죄송합니다. CBT에 당첨되지 않으셨습니다. 곧 이어질 OBT를 기다려주세요.’

    떨어졌다. 내 회사 게임 CBT에. 나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서 비서.”

    “네 사장님”

    “카이게임즈에 전화해서, 판타지 워 그라운드 그거. CBT키 하나 갖다 달라 그래.”

    내 말에 서 비서는 .

    “CBT 키요?”

    나는 살짝 시무룩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 나 떨어졌더라고.”

    “하 아니 이 녀석들 대주주 이름도 모르나?”

    “랜덤으로 골랐겠지. 어쨌든 하나 주워와. 아 그리고 너도. 너도 하나 받아서 해.”

    “저도요?”

    “그래. 우리 회사 게임인데. 너도 해봐야지”

    “네 알겠습니다.”

    물론 이러나저러나, 게임은 성공 할 것이다. ‘정정보도’같은 건 오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고객 센터에 물어봐 놓았다. ‘정정보도’가 나오는 데는 시간제한이 없다. 그러니까 언제고 미래가 바뀐다면, 내게 연락이 올 것이다. 다만 그래도, 내 두 눈으로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확인을 하고 싶다.

    ‘우우웅~’

    내가 서 비서에게 전화를 건지 1분이 지났을 즈음. 전화가 왔다. 카이게임즈 신동우 CEO다. 그는 내게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사과를 했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아니...”

    “이게 저희 직원이 랜덤으로 고르는 거라. 미처 대표님인 줄 모르고... 죄송합니다. 클로즈드 베타 키는 바로 문자로 써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는 내가 참 잘했다. 내가 회사 지분율을 60%까지 끌어올려놓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아서 어쩌면 조금 긴장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거 잘못하면 창업자인 내가 잘리는 거 아냐?’

    하고 말이다. 스티브 잡스도 자기가 만든 회사, 애플에서 잘린 적이 있다. 투자를 받다받다 지분이 적어져서. 물론 나는 그럴 의도는 없다. 나는 단지 판타지 워 그라운드의 성공을 나 혼자 충분히 챙겨가고 싶었을 뿐이다.

    “아 괜찮아요. 이해합니다. 인터넷으로 신청하는 건데 저라고 특별대접 받을 수는 없지요. 제가 미리 말씀드릴 걸 그랬네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나저나 CBT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지요?”

    “네 대표님”

    “네 그러면 계속해서 수고해주세요.”

    “네 대표님”

    그는 연달아 똑같은 말을 하고는 가만히 있었다. 내가 먼저 끊기 전에는 본인은 못 끊는단 눈치다. 나는 입술을 한번 삐죽 내밀고는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문자를 보니

    ‘XGKMPK2125’

    ‘KEWN2385KJ’

    같은 베타 키가 20개는 와 있다.

    ‘한 개면 되는데...’

    나는 베타키를 입력했다. 곧 메시지 하나가 뜬다.

    ‘축하드립니다! 판타지 워 그라운드의 CBT에 당첨되셨습니다!’

    이건 ‘당첨이 되었다기’ 보다는 ‘당첨을 시켰다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이윽고 게임 다운로드 창이 한 뜬다. 나는 그걸 받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니 10시 10분. 오늘은 매매도 일찍 끝났겠다. 내가 투자한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겠다. 그런데, 그 사이 서 비서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사장님. 신동우 대표님이 CBT키 바로 보내주셨습니다. 지금 불러드릴까요?”

    “아 아냐. 나 방금 전에 직접 통화했어. 키도 받았고.”

    “아 네. 참. 그리고 방금전에 말씀하셨는데 장 부사장님이 한 번 출근하셨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아 그래?”

    “네 블루E&M건 인수건 하고 인사 문제 때문에.”

    카이게임즈 지분을 사들인 다음, 나는 다음으로 세 번째 회사 블루E&M 인수에 손을 뻗쳤다. 그쪽에서는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를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음... 블루E&M은 그렇다치고 인사는 무슨 문제가 있대?”

    “문제는 아니고... 무슨 청년고용 관련해서 지침 같은 게 내려왔답니다.”

    “어디서? 정부?”

    “두 군데서 동시에 왔다네요. 정부하고, 서울시에서요.”

    “음... 청년실업 때문이구만.”

    “네. 점점 더 심해지니까요.”

    나는 그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최근 들어 ‘정치’며 ‘경제’카테고리에 ‘청년실업’이란 키워드를 수십 번은 본 것 같다.

    “그래서, 청년 좀 더 뽑아달래? 법인세 인하준다고?

    “네. 그런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것 관련해서 부사장님이 직접 사장님과 이야기 하고 싶으시답니다.”

    “음...”

    내 눈 앞에서는 게임이 다운로드 되고 있었는데, 게임 하겠다고 장 부사장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다.

    “갈게. 지금.”

    “그러시겠어요?”

    생각해보니 마침, OH엔터테인먼트에도 일이 있었다. 오전에 회사 들려서 보고 받고, 오후에 OH엔터테인먼트에 가면 될 것 같다.

    “그래. 그리고 권 사장한테 먼저 이야기 해놔. 오후에는 OH엔터테인먼트 갈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나는 통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근해야지 출근.’

    머리를 빗어 넘기고 정장을 갖춰 입고, 창밖을 한번 보고.

    ‘눈이 오네.’

    함박눈이 오는 것까지 본 다음. 두꺼운 외투까지 챙겨 입은 뒤, 집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마침, 옆집에서 이아영이 나온다. 하얀 바지에, 엷은 하늘색 스웨터 그리고 겉에는 하얀 파카를 걸쳤다. 마치 커다란 토끼 같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오 안녕하세요.”

    먼저 반갑게 인사했다. 조금 텐션이 높다. 지난번에 그 일 때문인지, 예전 보다 조금 더 친숙한 느낌이 든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같이 엘리베이터 앞에 왔다. 그녀는 내게 묻는다.

    “지금 출근하시나 봐요?”

    “아 네.”

    “평소에도 이때 출근하시나요?”

    오전 10시에 출근. 확실히 평범한 상황은 아니다.

    “아... 그 때 그 때 다릅니다.”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 네...”

    ‘이 아가씨는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출근시간이 제멋대로인데...’

    그런데 그 때, 그녀가 말했다.

    “역시 회사 CEO가 좋네요. 자기 마음대로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나는 살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아셨어요?”

    내 질문에, 그녀는 간단히 답했다.

    “봤어요. 그 티비 프로.”

    “아...”

    내가 나온 티비는 여태 딱 한 개다. 얼마 전 출연한 ‘MBE 슈퍼개미를 만나다.’

    ‘그걸 봤단 말이야? 젊은 여자가 볼만한 프로그램은 아닌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이어 물었다.

    “아무래도, 개인은 주식에 투자하지 않는 게 좋겠지요?”

    생각해보면 그녀는 꽤 부자였다. 어쩌면 부동산 말고도 다른 투자처를 찾아볼 법도 하다. 그러다가, 내가 나오는 티비를 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네 저는 비추천입니다. 특히... 아영 씨는 미술... 전공 아니신가요?”

    이번에는 그녀가 놀란다.

    “어떻게 아셨어요?”

    “집에 들어 가봤으니까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입을 크게 벌린다.

    “아아...”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점이 있다. 그 사이

    ‘띵~ 동~’

    엘리베이터가 우리 앞에 서고 우리 둘은 그 안에 탔다. 나는 주차장이 있는 지하 1층을 누르며 그녀에게 말했다.

    “주식은 자기가 잘 아는 분야에서 해도, 50% 승률이 될까 말까에요. 미술 관련... 해서는 딱 히 상장된 주식도 없으니까... 주식이라는 게 화가한테 그리 잘 맞는 건 아니죠.“

    내 말에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저... 아직 화가라고 불릴 수준은 아니에요. 제가. 저 아직 학생이에요. 대학원생.”

    그녀는 자기 신변 이야기도 직접 꺼냈다.

    “아 그러셨군요.”

    그래서, 나는 궁금했던 이야기도 꺼냈다.

    “그 때 백인 아가씨는 누군가요 대체?”

    “아 걔는 대학 다닐 때 룸메이트에요.”

    룸메이트. 그래서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 많다. 여기고 저기고 비밀번호 똑같이 해놓는 사람들. 그녀 역시 미국, 한국 모두 집 비밀번호를 똑같이 해놓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제가 대학은 미국에서 나왔거든요. 그 때 잠깐 한국에 와서... 제가 같이 놀아준다고 나갔다가... 그렇게 됐네요.”

    ‘대학은’미국에서 나왔다니까. 검은 머리 외국인은 아닌 것 같다.

    “네... 그러셨군요.”

    ‘띵~동~’

    그 사이 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에 도달하고 우리는 서로 각자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럼”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네.”

    나 역시 손을 들어 그녀와 인사를 했다.

    *

    “에 그래서, 블루 E&M은 유상증자는 다음 주 중으로 완료 될 것입니다.”

    블루 E&M은 돈이 부족한 케이스여서 우리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하는 것으로 정했다. 신 사업을 하려고 해도 자금이 없어 힘들어하던 블루E&M은 우리 자금을 수혈 받아 쌩쌩하게 피가 돌게 되었다.

    “그래요. 그... 제가 다시 따로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 블루 E&M...”

    나는 장 부사장이 들고 온 보고서를 보았다. CEO이름은 오성균이다.

    “오성균 CEO한테. 이번에 런칭하는 시작 판타지 워 그라운드 중심으로 서비스 개편하시라고.”

    “음... 자회사간의 시너지를 위해서 나쁘지 않겠군요.”

    “회사 간의 시너지도 있지만, 그냥... 이게 대박 날거라고. 유러피안TV보다 빨리 선점하라고 하세요. 카이게임즈에게는 제가 말해놓겠습니다. 전폭적인 지원 해달라고.”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리고, 다음 건은...”

    장 부사장은 들고 있던 두 번째 보고서를 꺼내 내 앞에 두었다. 전 까지 말하던, 게임이니, 인터넷방송이니 하던 것에 비해 조금 딱딱한 안건이다.

    “정부와 서울시 동시에 내려온 안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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