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82화 (82/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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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E 슈퍼개미를 만나다

    “MBE 슈퍼개미를 만나다. 2019년 새해 첫 번째로 만나볼 게스트는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젊은 CEO 한상훈 씨입니다.”

    MC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방청객들은 박수를 친다.

    ‘짝짝짝짝짝짝’

    나는 침을 한 번 삼킨 뒤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한 번 예행연습을 마친 녹화방송임에도 꽤나 떨린다. 젊고 아름다운 여 MC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한다.

    “제가 슈퍼개미를 만나다. 진행하면서 뵌 분 중 가장 젊으신 CEO같은데요.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지요?”

    “올해 서른이 되었습니다.”

    “네 올해 서른이 되는 한상훈 대표. 투자회사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를 창업해서 운영하고 계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오 대단하시네요. 다른 동기들이 회사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을 때, 스스로 회사를 차린 셈이시네요.”

    “네 저는 학창시절부터 창업을 꿈꿨었거든요. 운 좋게 기회가 닿아서 꿈을 쫒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업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현재 자산은..,”

    남MC는 준비되었던 원고를 보며 말한다.

    “네? 750억?”

    이미 알고 있음에도, 연기를 참 잘한다. 방청객들도 그의 연기를 보고 술렁거릴 정도니까.

    ‘750억?’

    ‘저 나이에?’

    ‘세상에’

    그 웅성거림이 조금씩 들려온다.

    ‘이건 개인 계좌에 있는 돈은 뺀 건데...’

    남MC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서른에 CEO. 자산이 750억. 그럼 시청자분들도 방청객 여러분도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실 텐데요. 조금 무례를 무릅쓰고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아버님이 뭘 하시나요? 기업 운영? 아니면...”

    “아버지는 평범하게 유도 도장을 운영하십니다.”

    “오 정말요? 그럼 할아버지는요?”

    “할아버지는 평범한 농부셨던 걸로...”

    “그럼 엄청 땅이 많으셨나요?”

    나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금수저가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네 저희 집은 중간... 조금 이하라고 해야 할까요. 그냥 그저 그런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그러면 자수성가를 하셨단 말인데요.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초창기에는 운이 꽤 따랐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이건 정말로 자세히 말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건 녹화 전 미리 짜놓은 대사가 있다.

    “로또나 코인 같은 거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 네. 그런 것들...”

    나는 초반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뭉개게 해두었다. 이쪽 저쪽 해놓은 말이 다 다르기도 했고, 그것 자체도 당당하게 밝힐만한 것도 아니니까. 나는 바로 이어서 말했다.

    “덕분에 일단 자본금 50억을 쥐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와~”

    방청객들은 내 스토리 자체보다는 50억이란 금액에 집중을 하는 듯 했다.

    “그런데 그게 750억이 되었다?”

    “네... 그렇지요.”

    다른 건 할 만한데, 거짓말 할 때는 조금 입이 타는 것 같다. 현재 2019년 1월. 해가 바뀐 내 자산은 750억이 아니라 2000억 정도다. 인빅투스인베스트가 750억. 개인계좌가 1250억정도. 여 MC가 내게 묻는다.

    “그러면 50에서 750이니까... 대략 15배. 그럼 그걸 모두 투자로 불리셨단 말인가요?”

    “네.”

    “아무래도 조금 믿기 힘든 이야기인데요.”

    여 MC의 말에 남 MC가 그걸 받는다.

    “그러게 말입니다. 최근에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꾸며서 사기를 쳤다가 구속된 분도 있기도 해서... 혹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하시는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그런 걸 하지 않습니다.”

    “왜요? 젊은 분들이 많이 하시지 않나요?”

    “그럴 겨를이 없어서요.”

    “허허... 그런 거 하시면 지금 들어 가보려고 했거든요. 혹시 부동산이나 외제차 자랑 같은 게 있을까 해서요.”

    그렇게 자신의 재력을 자랑해서 사기를 치는 건 사기꾼들이나 하는 짓이다. 진짜 돈이 있는 사람, 그리고 돈을 벌 사람은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 외제차나... 고급 부동산을 좋아하지 않으신다고요?”

    “아니요. 저도 좋은 집 좋은 차 모두 좋아합니다. 단지 그걸 가지고 자랑을 한다는 게 좀... 요즘 세상에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요.”

    여 MC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생각이 참 건전하시네요. 말씀하시는 것만 봐도 사기꾼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어보이세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네 저는 누군가한테 투자를 하라고 권유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개인투자자들은 되도록 주식투자를 하지 마시라고 하고 싶어요.”

    내 말에, MC들은 물론, 방청객들도 꽤나 놀란 표정이다. 주식관련 방송에 나와서 주식을 하지 말라고 하니까.

    “놀랍군요. 주식을 하지 마라?”

    나는 확신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본인은 주식으로 수백 억원을 벌고, 남은 하지 말라... 조금 아이러니한 상황인데요. 어째서 그런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일단 첫째로 개인들은 주가가 오르내리는데 영향을 미치는 핵심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정보 습득이 하루 이틀, 길게는 일주일 이상 느린 경우가 많아요.”

    이건 나 같은 사람.

    “둘째로... 임의로 주식 가격을 주무르는 사람들도 꽤 있어서...”

    이건 탁준기 이사 같은 사람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개인투자자는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개인분들은 왠만하면 주식 투자를 하지 말라고 하고 싶네요.”

    물론 하지 말라고 해서, 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지금 방청객만 봐도 다 그렇다. 다들 내가 ‘750억을 벌었다.’는 말에 귀를 기울였을 뿐이지, ‘주식 하지 말라’라는 말은 대충 넘겨 들었을 것이다. 주식은 할 사람은 결국 하고, 하지 않을 사람은 계속 권해도 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그러면 투자회사를 세운 이유는 뭡니까? 다른 투자자분들 자금을 유치하지는 않습니까?

    “네 저희 회사는 일반인 투자자분의 투자를 받지도 않고, 권하지도 않습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완벽하게 제 자산만을 굴리는 제 개인용 투자회사거든요.”

    “오 그러시군요. 남의 투자를 받지 않는 개인용 투자회사다.”

    “네 본래 홀로 자금을 굴리려고 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규모가 커지고 또 다른 회사를 인수하려면 다른 분들의 도움도 필요하겠다 싶어서. 그래서 회사를 세운 것뿐입니다.”

    “그러면 일반인 투자는 앞으로도 아예 받지 않으시겠단 말씀이십니까?”

    “네 일단은... 제가 굴리는 금액 규모가 1조원정도 되고, 해외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지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 당장은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거든요.”

    남 MC는 눈을 크게 뜨며 말한다.

    “1조원이요?”

    “네”

    “지금 자산이 750억정도인데 그러면 거의 10배. 15배 가까이 수익을 올리셔야 한다는 말인데요.”

    나는 덤덤히 말했다.

    “그 정도 되겠네요.”

    남MC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만약 그렇게 되면, 당장 저부터 투자하겠습니다. 아니, 그 땐 제발 제 돈 좀 가져가주세요!”

    그의 말에 방청객 들이 낄낄대며 웃는다.

    “네 그 때가 되면, 이 방송에 다시 나오겠습니다. 하지만 그전에는... 제 돈으로 먼저 잘 해보고 싶네요. 해외 공략 전 까지는 솔직히... 다른 분 돈이 필요가 없어요.”

    “대단한 자신감이세요. 1조원이라니.”

    나는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마 그리 멀지는 않을 겁니다. 길게 잡아도 5년... 짧게는 2~3년 정도...”

    사실 난 1년 내에 그렇게 되리라고 보고 있었지만, 일단 그렇게 말해놓았다. 지금 말하는 5년이나 2~3년도 미치광이 소리처럼 들릴게 뻔했으니까. 남MC도 허허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그렇게 되면 정말 대단한 일이 되겠네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방금 전

    ‘당장 저부터 투자하겠습니다. 아니, 그 땐 제발 제 돈 좀 가져가주세요!’

    그런 말을 하기는 했지만,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단 눈빛이다.

    ‘흥 나름 경제전문 TV에서 몇 년 MC짬밥을 먹었다고 말도 안 된다 생각하나 본데... 반년 만 지나봐라 그 땐 네 돈 제발 가져가라고 해도 안 받아 줄 테다.’

    여자 MC가 화제를 돌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두 개의 회사를 인수하셨어요. OH엔터테인먼트와 카이게임즈인데요. 어느 면을 보고 그렇게 투자했는지...”

    “저는 단순합니다. 제가 잘 아는 것, 그리고 제가 잘 알 수 있는 것을 하는 회사를 고릅니다.”

    “잘 아는 것 그리고 잘 알 수 있는 것이요.”

    “네.”

    “엔터나 게임 쪽에서 조예가 조금 있으신지...”

    “제 생각에, 저는 사람을 꽤 잘 볼 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게임에도 꽤 흥미가 있었고요. 그래서 엔터와 게임회사에 투자를 하게 되었습니다.”

    녹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처음에는 꽤 긴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방송에도 익숙해져 갔다.

    “주식투자에 성공한 비결을 말해주신다면?”

    “저는 뉴스를 엄청나게 봅니다.”

    “뉴스요?”

    “네 뉴스는 현재의 이야기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지요. 과거에 어떤 뉴스가 떠서 어떤 주식이 올랐고. 그 점을 중점적으로 보고요. 앞으로 어떤 뉴스가 나올지 그걸 예측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그러시군요.”

    “앞서서 주식을 추천하지 않는다 말씀하시긴 했는데, 저희 프로그램 공식 질문이어서 이건 피해갈 수가 없네요. 시청자들에게 앞으로 이런 주식이 유망하다. 추천을 해주신다면?”

    나는 짐짓 생각하는 척 하다가, 대본에 쓰인 대로 말했다.

    “이런 말 하면 조금 그렇지만... 저희 회사 투자한 두 회사 모두 유망합니다.”

    “OH엔터테인먼트와 카이게임즈요?”

    “네. 둘 다 올해를 기점으로 폭풍 성장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까는 남의 돈으로 투자 받는다 하시지 않더니, 자기가 투자한 회사를 추천하시네요?”

    남 MC가 깔짝인다.

    ‘이녀석 비호감이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 대본에 없는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애널리스트 분들이 이거 사라 저거 사라 하는 건 조금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좋은 주식이라면 본인이 사는 게 맞지요. 왜 굳이 남에게 돈을 벌게 시켜주겠습니까? 저는 단순히 제가 좋다 생각하는 주식을 산 것 뿐이고. 그거 외에는 달리 잘 아는 주식이 없어서 말씀을 못 드리는 겁니다.”

    내 말에 많은 방청객들이 조용해진다. 다들 이 방송 보고 누군가 추천해주는 주식을 많이 사봤을 게 뻔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카이게임즈 같은 경우는 저는 1대주주 3대주주 분의 주식도 매입한 다음에, 장내 매수를 통해 60%까지 지분율을 끌어올렸습니다. 제 돈을 들여서요. 말로 수 백번 이거 오른다 저거 오른다 하는 거보다 자기 돈을 들여서 주식을 사는 것 보다 확실하고 분명한 추천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게 떨어지면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저인데요.”

    여MC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건 그렇네요.”

    나는 나를 주시하는 카메라에 대고 분명히 말했다.

    “올해 OH엔터테인먼트와 카이게임즈. 주가를 지켜보세요.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곧 알게 되실 겁니다.”

    *

    “수고 많으셨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나오는데 서 비서가 말했다.

    “어땠어?”

    “잘하시던데요? 딱! 임팩트도 있고.”

    “기자들은 뭐라고 하디?”

    여기에는 경제 관련 기자들도 꽤 와 있었다. 애초에 이 방송에 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 이름, 그리고 회사 이름이 뉴스에 더 오르내리도록.

    “일단... 기사 쓸거리가 많아서 좋다고 하던데요? 한상훈 대표의 자신감 넘치는 인터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증권방송에서 큰손들은 대게 오를 수도 있지만 내릴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모호하게 말을 하는 편이다. 나중에 틀릴 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나는 카메라를 보고 확언을 해버렸다. ‘내가 찍은 주식이 오를 거다’라고.

    “만약 잘 되면 사장님은 영웅이 되겠지만... 안되면 순식간에 사기꾼이 될지도...”

    서 비서는 조심스레 말했지만,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좋아 이것도 베팅이지 뭐. 영웅이냐 사기꾼이냐. 보자고. 어떻게 될지.”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서 비서의 가슴을 한 대 툭 치며 말했다.

    “봐봐 내가 베팅에서 지는 거 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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