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마스터T(3)
“지분양수도 거래 완료 되었습니다.”
장 부사장은 내게 문서를 건네며 말했다. 나는 그 문서를 받아보았다. 거기에는 탁준기 이사가 가지고 있던 65억원의 지분을 프리미엄 20%를 더해 80억 정도에 양수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그러면 저희 지분이”
“29.4%입니다.”
“좋아요. 그러면 이제부터 직원들, 트레이더들 움직여서 카이게임즈 장내매수하세요.”
“어디까지 매수할까요?”
“일단 50%까지.”
“50%까지요?”
나는 달력을 슬쩍 보았다. 다행이도 12월 달로 잡혀 있던 판타지 워 그라운드 CBT는 카이게임즈 사정으로 한 달 반 가량 늦춰졌다.
“네 일단 내년 1월까지 매수해놓으세요. 가격이 조금 오르더라도요. 공시 띄울땐 경영권 안정화를 위해서 뭐 그런 이야기 붙여놓고요.”
“네 알겠습니다.”
장 부사장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서려고 했다. 나는 한 번 그를 붙잡았다.
“아 장 부사장님”
“네?”
“그 탁 이사는 어떻던가요?”
“어떻...다니요?”
“인상이랄까 뭐 그런 점이요.”
장 부사장은 잠시 그를 떠올리더니
“뭐... 평범한 재벌 3세 같아보였습니다. 자신감 넘치고, 호쾌한 스타일. 조금 나쁘게 말하자면 오만하기도 하고요.”
“음 그렇군요...”
“그나저나 그분은 사장님 칭찬을 많이 하시더군요. 유능하시다고.”
그 사람에게 칭찬 여러번 받아봐야 그다지 기쁘지 않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넵.”
장 부사장이 나간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점심때가 되어서인지, 수 많은 셀러리맨들이 빌딩에서 나와 골목안 식당 쪽으로 삼삼오오 모여 간다. 그걸 보다보니 문득,
‘벌레들, 개돼지들’
그 말을 내뱉던 탁준기 이사가 떠오른다.
‘그런 사람은 소설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하긴, 최근 갑질로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탁 이사도 그중의 한 명일뿐 아주 특이한 케이스는 아니란 생각도 든다.
‘뉴스에 나오는 건 아마 빙산의 일각이겠지...’
집에서 바퀴벌레가 한마리보이면 대개 그 집에는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뉴스에서 일 년에 꼭 한 두 번 꼴로 갑질을 하는 재벌 뉴스가 나오는 걸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재벌들이 일반인들을 벌레, 개돼지로 생각할지 대충 짐작이 간다. 애초에 언론도 그들 편이니까. 기자 입막음까지 생각해보면 뉴스에 뜨는 경우는 진짜 소수일 것이다.
‘뉴스에 뜨는 경우도 아마... 정치적 이유나... 아니면 경쟁사의 압력이나... 그런 이유겠지.’
문득 나는 카이지. 대원일보의 이원재 이사를 떠올렸다.
‘그 녀석...’
탁준기 이사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가능성 높은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서로 정체를 알게 된 대원일보의 이원재가 말했거나, 내게 초대장을 건넨 김혜숙 과장이 말했거나. 두 쪽 누구든, 누가 말했든 나중에 내게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나중에, 탁 이사와 큰 일을 하게 될 때. 이 둘 중 하나가 나를 감시한다면, 운신에 문제가 생길 지도 모른다. 이 사람 중 하나는 정보전에 능한 회사의 주인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주 계좌가 어떻게 움직이는 지 알 수 있는 사람이니까.
‘이거 어쩐다?’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목록에는 ‘이원재 이사’가 있다. 하지만
‘네가 말했니?’
라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목록을 위로 올려 ‘김혜숙 과장’을 보았다. 이쪽이라면 대놓고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럼 여기부터 파볼까?’
하는 생각에 나는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탁’
연결대기음이 세 번 울리기 전에, 김혜숙 과장은 내 전화를 받았다.
“어머 네 한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
마치 내게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다름이 아니고 말입니다. 그 가든 엔비에 관해서 물어 볼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내 입에서 가든 엔비 이야기가 나오니 그녀는 꽤 놀란다.
“오 네 잠시만요오.”
그녀는 잠시 통화를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가든 엔비 말씀이세요. 대표님”
그녀에게도 이건 여전히 비밀스러운 일인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살짝 압박하며 말했다.
“과장님. 제가 묻는 것에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오... 네 물론이지요.”
그녀는 언제나처럼 곱상한 말투를 썼지만, 목소리가 살짝 흔들린다.
“혹시 그쪽에 제 정보를 판 적 있습니까?”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녀는 분명 제대로 알아 들었음 에도, 잘못 들었다는 듯 내게 물었다.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말 그대롭니다. 돌리지 말고 이야기 하세요. 제 이름이나 나이, 성별 외모 그런 것 가든 엔비에 말한 적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머 그런 일 없어요. 대표님. 제가 고객님 신상을 어디에다가 이야기하고 다닌다니요. 그건 말도 안 되죠오.”
“그래요? 그럼 어떻게 그 쪽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제 이름을.”
“글쎄요... 탁준기 이사님 같은 경우는 워낙에 투자 쪽에 인맥이 넓으셔서 그럴 거예요. 아마. 그래서 대표님 보고 딱 알아보시지 않으셨을까요.”
그런데 그 말이 조금 이상하다. 나는 가든 엔비내에서 내 이름을 알게 된 사람이 탁준기 이사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나는 그 점을 꼭 찝어 말했다.
“저는 가든 엔비 내에서 제 이름을 안 사람이 탁준기 이사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만...”
내가 그 말을 하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어머머 아 그러니까. 탁준기 이사님이 주최자시니까. 알아보신 분이 아마 그 분이지 않을까. 그렇게 짐작해서 말씀드렸던 거지요.”
그 말을 하는데 꽤나 옹색하다. 말투도 평소답지 않게 꽤 흔들린다. 99.9%다. 나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이 여자가 범인이로군.’
정말 짐작을 한다고 했다면,
‘그 쪽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제 이름을’
내 말 이후에 최소한 몇 초 정도 생각할만한 조금의 시간이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바로 탁 이사의 이름이 나왔다는 건 내가 추궁을 시작할 때부터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나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아 네 잘 알겠습니다.”
“대표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오해 푸시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차갑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업은 신용이 기본이다. 서로 믿을 수 있어야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서광은행 계좌는 지점이 가까워서 내가 가장 큰 액수를 거래하는 곳인데. 내 정보를 그렇게 말하고 다니다니. 그녀는 언제고 탁 이사의 도둑고양이가 되어서 다시 내 정보를 팔아넘길지 모른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말했다.
“서 비서.”
“네 사장님. 점심 뭐 드시겠습니까?”
점심때다 보니 딱 그 일인 줄 알았나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니 통화 하나만 하고 밥 먹으러 가자. 서광은행 청담지점 지점장 바꿔 달라 그래.”
*
점심을 먹고, 나는 서 비서와 한담을 나누며 회사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상승 버튼을 눌러서 엘리베이터를 잡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서 비서에 물었다.
“그래서 창욱이 걔는 어떻게 지낸다니?”
창욱이는 우리 창업동아리 후배 중 한명이다.
“고향으로 내려갔대요. 얼마 전에 공무원시험 붙어서”
“오 그래? 잘됐네. 요새 공무원 되기 어렵잖아.”
“뒤져라 공부했으니까 됐겠지요. 원래는 7급 한다고 했었는데, 하다보니까 안돼서 9급으로 낮춰서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요새 서울대 연고대 애들도 7급 본다니까. 쉽지는 않았겠지.”
‘띵~동’
엘리베이터가 우리 앞에 서고, 나는 그 안에 들어가며 말했다.
“그 동아리에서 인기 많던 애... 예쁘장하던 애 민서는?”
“아 민서요. 안 그래도 저한테 물어봤었는데 까먹고 있었네요. 걔 지난 주말엔가 한 번 저한테 연락 왔었어요. 개인적으로 사장님 한 번 뵐 수 없냐고.”
“나를? 왜?”
“듣자하니 대기업 원서 여기저기 넣어봤는데, 다 떨어져서 우리 회사도 기웃거리는 것 같던데요.”
대기업 떨어지고 우리 회사 기웃거린다니, 아무리 동아리 후배라도 딱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나는 바빠서 어렵다고 해. 대신 정식으로 입사지원서 넣으라고.”
“그럼 섭섭해 할 텐데.”
“아니 우리 회사가 무슨 대기업 떨어지면 찔러보는 대안회사야? 그건 나도 싫지.”
“그건 저도 그렇습니다만... 그러면 그렇게 말해놓겠습니다. 입사지원서 넣으라고.”
“그래. 장 부사장님이 잘 알아서 판단 해주시겠지.”
회사 안으로 들어오면 직원들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해준다. 나는 그 인사를 받으면서 사장실 안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직원 중 하나가 따라붙어 말한다.
“사장님. 손님이 와계시던데요.”
“누구...?”
“서광은행 청담지점 지점장이라고...”
조금 놀랍다. 점심 먹기 전에 전화를 했는데 벌써 와 있다니. 안으로 들어가보니 서 비서 자리 옆에 백발에 정장을 입은 60대 남자 하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한 대표님 지난번에 저희 지점에서 한 번 뵀지요. 서광은행 청담지점 지점장 이효은입니다.”
나는 사장실 문을 열어 말했다.
“아 네 들어오세요.”
그는 사장실 문을 닫자마자 내게 말했다.
“듣자마자 놀라서 달려왔습니다. 갑자기 저희 증권 계좌도 폐쇄해버리고 예금도 전부 이체하시겠다고 하셔서.”
그도 그럴만 할 것이다. 나처럼 수백억대의 예금을 하고 또 수천억 원씩 매매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도.”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앞으로는 더 이상 서광은행... 최소한 청담지점하고는 거래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예 어째서... 대표님 다시 한 번 만 생각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저희가 더 나은 조건으로 모시도록하겠습니다.”
그는 마치 애원하듯 내게 말했다. 그런데 딱 이 모습이 그거다. 갑질.
‘이렇게 갑질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내 정보를 들락날락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돈을 쟁여둘 수는 없다. 이건 정당한 행위다.
“그건 안 될 것 같네요. 서광은행은 신용에 커다란 문제가 생겨서요.”
“그러면 대표님. 최소한 왜 그러시는지 말씀이라도 해주시겠습니까? 말씀을 해주셔야 저희도 반성하고 개선을 하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잠시 탁자를 두 번 치며 김혜숙 과장에 대해서 생각했다.
‘차라리 탁 이사 때문에 수연그룹 후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었다고 솔직하게 말했으면...’
그렇다면 나는 최소한 미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조금 애처롭게 여겼을 것이다. 재벌과, 재벌 3세의 위압에 져버려 어쩔 수 없이 발설을 한 불쌍한 사람. 하지만
‘어머 그런 일 없어요. 대표님. 제가 고객님 신상을 어디에다가 이야기하고 다닌다니요. 그건 말도 안 되죠오.’
그렇게 자기 입으로 말하다니. 나는 내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싫다. 특히 일 관련해서는 말이다. 나는 지점장에게 그녀의 이름을 말해 놓았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뭐하고, 김혜숙 과장님에게 물어보세요. 그 분이 더 잘 알 테니까요.”